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6권 지은이: 제인 오스틴 옮긴이: 홍건식 도서출판 육문사 52 엘리자베드는 회신을 가능한 빠른 시일에 받는 만족감을 맛볼 수가 있었다. 편지를 손에 넣자마자 다른 사람의 방해가 거의 없을 성싶은 작은 숲속으로 뛰어들어서는 벤치 위에 걸터앉아 즐길 준비를 했다. 무엇보다도 그 편지 길이로 미루어 볼 때 거절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신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스런 조카에게 너의 편지 받아 보았다. 한 줄로서는 하고자 하는 말이 다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침 나절 꼬박 걸려서 회신을 쓰기로 했다. 사실은 너의 문의를 받고 깜짝 놀랐구나. 설마 네가 그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화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 다오. 다만 너에게 그런 일을 물을 필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다는 것을 알아 주기만 하면 되니까. 네가 만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점을 양해 못한다면 나의 이 무례를 용서해 다오. 외삼촌께서도 나에 못지 않게 놀라고 계시다. 너 또한 이 일에 관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셨던 것이다. 네가 정말로 단순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면 난 너에게 명백히 말해 두어야 한다. 내가 롱본에서 돌아오던 날 외삼촌께서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손님의 방문을 받게 되셨다. 다아시 씨가 찾아와서는 몇 시간 동안 외삼촌과 단 둘이 있었단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벌써 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내 호기심은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만큼은 괴롭지가 않았겠지. 다아시 씨는 네 동생과 위컴이 있는 곳을 찾았다는 점과 그리고 두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위컴 하고는 여러 차례 리디어 하고는 꼭 한 번은 일에 관해 외삼촌께 알리러 왔던 거야. 내 생각 같아서는 다아시 씨는 우리들 보다 꼭 하루 늦게 더비셔를 떠나서 그 두 사람을 찾으려는 결의를 갖고 런던에 왔던 모양이다. 그 표면적인 동기로서는 대체적으로 품성이 있는 젊은 여성 같으면 위컴을 사랑하거나 신뢰하지 못할 만큼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오로지 자기 탓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분은 관대하게도 모든 일을 자신의 잘못된 것으로 하면서, 그 전에 위컴의 사적 행동을 세상에 공포하는 것을 품위에 어긋나는 걸로 생각했었다고 고백했어. 그 사람의 인품은 가만히 내버려두어도 누구나가 다 알게 될 것으로 여겼다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당장 행동에 옮김으로써, 자기 때문에 생겨난 해악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만일 또 하나의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분에게 수치스런 일은 못됐을 거다. 런던에 온 지 며칠 안돼서 두 사람을 찾을 수가 있었지만, 우리들보다 수색의 단서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 점을 고려했던 것이 우리 뒤를 따르기로 결심을 한 또 하나의 이유였던 거다. 영부인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얼마 전에 다아시 양의 가정교사로 지내다가 뭔가 불미스러운 일로 해서 해고를 당했다는 거야, 물론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은 에드워드 가에 큰 집을 사서는 그 후 사뭇 하숙을 치면서 생계를 유지해 왔던 모양이야. 이 영부인이란 사람이 위컴하고는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그분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런던에 도착하자 곧 위컴의 정보를 들으러 그녀에게로 찾아갔던 거야.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알고 싶던 일을 듣게 된 것은 2,3일이 지나서였지. 매수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마음을 도저히 돌릴 수 없었던 걸로 생각되는데, 그 여자는 자기 친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위컴은 런던에 도착하자 즉시 그녀에게 갔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 여자가 두 사람을 자기 집에 들여놓을 수만 있었더라면 두 사람은 그곳에다 거처를 정해 버렸겠지. 아뭏든 궁극에 가서는 우리들의 친절한 벗은 소원 성취가 된 셈이다. 두 사람은 ㅇㅇ가에 있었던 거야. 그분은 위컴을 만났고 그리고 리디어도 만나고 싶다고 요구했단다. 그애를 만나고 싶은 제일의 목적은 그분도 인정하고 있더라만, 그애를 설득해서 현재의 불명예스런 입장을 떠나서 집안 사람들이 그애를 받아들일 것을 승낙만 한다면 그 길로 그들 품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그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대로의 원조를 하겠다고 했대. 그러나 리디어가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심정으로 굳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겠어? 그애는 친한 사람들의 간섭이 귀찮고 그분의 원조는 원치 않으며 위컴 곁을 떠난다는 것은 듣기조차 싫다고 했단다. 틀림없이 두 사람은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며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그녀의 감정이 그렇다면 남은 일은 결혼을 확정짓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길밖에 없다고 그분은 생각했지만 위컴과 처음 이야기를 나누고서 그 자리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런 생각을 장본인인 그 사람은 꿈에도 하고 있지 않더라는 것이었어. 그는 매우 절박해진 도박 빛 때문에 연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하면서 리디어가 도망친 일로 해서 야기된 재앙은 깡그리 그녀 한 사람의 우매 때문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더라는 것이야. 그는 지금 당장에라도 사임해 버리고 싶지만 장래에 대한 전망이 서지를 않는다고 말했단다. 어디엔가 가야겠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으며, 먹고 살 건덕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아시 씨는 왜 곧 리디어 하고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었나 봐. 베네트 씨는 원래 대단한 부자는 못되지만 그를 위해서는 손을 쓸 것이며, 결혼하면 그의 입장도 유리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타일렀던 것 같아.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위컴은 어딘가 다른 지방에서 결혼함으로써 좀더 착실한 재산을 만들어 보겠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러나 그러한 궁지에 빠져든 그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당장 구제 받을 수 있다는 유혹을 이겨내지는 못했던 모양이야. 몇 차례 그들은 서로 만났던 것 같아.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겠지. 위컴은 물론 손에 넣을 수 있는 이상의 많은 재산을 원했지만 끝내는 적당한 선으로 깎이고 말았어. 당사자간에 모든 문제가 일단락 되었고, 다아시 씨의 다음 조처는 외삼촌께 그 사실을 알리는 일로서, 내가 귀가하기 전날 밤에 처음으로 그레이스처치 가를 방문하게 된 것이란다. 그러나 너의 외삼촌과 만나지를 못한 채로 다아시 씨가 더욱 알아본 결과 너의 아버지께서 아직 함께 계시고 다음날 아침에 런던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그분은 너의 아버지를 외삼촌만큼 적당한 의논 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 곧 아버지의 출발 후까지 외삼촌을 만나는 것을 연기하기로 하셨다는 거다. 이름을 안 밝히고 가고 말았기 때문에 다음날까지 어떤 신사분이 용무로 찾아오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단다. 마침내 토요일 날에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래서 나도 그분을 만났지. 월요일에 비로소 만사가 다 해결되었고 그 길로 롱본으로 속달을 띄었던 거다. 그러나 우리 집을 찾아온 손님은 옹고집이었다. 이건 내 생각이다만 리지야, 완고하다는 점이 바로 그분 성격의 결점이다. 그분은 때를 달리하여 많은 종류의 결점을 비난받아 왔지만 이것만은 속절없는 결점이다. 해야 하는 일은 모조리 자기 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도무지 뜻을 굽힐 줄을 모르더라. 실은 외삼촌께선 마음에서 우러나서 사건 해결을 전담하실 작정이셨다. 그렇다고 이것은 생색을 내자고 하는 말이 아니니 이것에 대해선 아무 말 말아라. 두 분은 구 문제에 대해서 장시간 티격태격했는데, 그 일에 관련된 두 남녀를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값어치도 없는 문제였지. 그리고 마침내 외삼촌께서 양보를 안하실 수 없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조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끔 허용되는 대신에 단지 그 일에 대한 그럴 듯한 명예를 뒤집어 쓰는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거야말로 외삼촌의 성미에 안맞는 일이었지. 그러니까 오늘 아침의 너의 편지는 외삼촌한테서 헛된 명성을 벗겨 드리고 마땅한 곳에다 칭찬을 돌려야 할 성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외삼촌께서는 매우 기뻐하시고 계시다. 그러나 이 얘기는 리지야, 너만 알고 있거나 아니면 고작 제인한테만 알리도록 하여라. 그 젊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너는 잘 알고 있을 줄 안다. 그 사람이 젊어진 빚은 1천 파운드를 실히 넘는 줄 알고 있다만 그것을 변제하기로 돼 있으며, 곁들여서 리디어에게 분배될 그애의 몫에 1천 파운드를 더 얹어서 보내기로 했고, 나아가 장교의 지위마저 사주기로 돼 있다. 왜 이만한 일을 그분 혼자서 도맡아 하는지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대로다. 위컴의 성격이 그토록 잘못 이해됨으로써 그와 같은 대접을 받고 남들의 이목을 끌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즉 자기가 침묵을 지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 여기엔 얼마간의 진실도 들어 있겠지만, 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이 과연 그분의 침묵에 있는지 또 다른 누구의 침묵에 달려 있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하여튼 리지야, 이 모든 그럴 둣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 속에는 또 다른 이해관계의 명분이 그에게 있다고 판정하지 않았더라면 외삼촌께선 양보하셨을 리 만무임을 너는 믿겠지. 이만하면 모든 것을 다 얘기한 것 같다. 넌 이걸 알고 나면 매우 놀라운 얘기라 말하겠지. 그러나 난 적어도 네가 불유쾌하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리디어는 나한테 왔었고 위컴도 무상 출입하도록 허락을 받게 됐다. 그 사람은 허어퍼드셔에서 알게 되었던 그대로였지만 나한테 체류하고 있는 동안의 그 아이의 행동거지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여서 이미 요전 수요일의 제인의 편지로 그애가 귀가한 후의 행적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너에게 새삼 이런 얘기를 하더라도 무슨 새로운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더라면 이런 편지는 쓰지 않았을 거다. 난 정말 진지하게 몇 번이고 그 아이가 저지른 일이 얼마나 나쁜가, 가족들에게 어떠한 불행을 초래했는가에 대해서 십분 이해가 되도록 타일러 주었다. 그애에게는 마이동풍격이었지만 내가 한 말이 귀에 들릴 정도라면 꽤나 다행스런 일이 되겠지. 난 이따금 크게 분개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사랑스런 엘리자베드나 제인이 생각나서 그 두 사람을 위한다고 생각해서 그애한테는 꾹 참아 왔던 것이다. 다아시 씨는 약속한 대로 시간을 지켜서 돌아왔고 리디어가 말한 것처럼 결혼식에 참석했던 것이다. 다음날 우린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재차 런던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리지야, 이번 기회에 내가 그분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아느냐고 묻는다면(전에는 이런 말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만) 넌 나한테 화를 내겠느냐? 우리들에게 대한 그분의 태도는 죄다가 더비셔 때에 못잖게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그분의 이해력과 사리 판단은 정말 썩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되더라.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쾌활성 뿐이겠는데, 그 점은 만일 신중한 결혼을 하는 경우에는 아내가 가르쳐 주면 되는 문제이다. 난 구분이 매우 능청스럽다고 생각했다. 너의 이름은 죽어도 안 비쳤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능청은 요즈음의 유행인가 보더라. 내가 너무 주제넘은 말을 했다면 용서해 주기 바란다. 적어도 날 팸벌리에서 몰아내는 형벌만은 가하지 말아 주길 빈다. 난 바로 그 저택을 다 돌아보기 전에는 완전히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자그마한 잘 생긴 두 필의 망아지가 끄는 나직한 사륜 마차 같으면 정말 안성마춤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젠 더 쓰지 못하겠다. 반 시간 정도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9월 6일 외숙모 M. 가디너 이 편지 내용은 엘리자베드를 가슴 설레는 경지로 몰아넣었는데, 그 속에서 기쁨과 고통의 어느 편이 이기고 있는가를 결정짓기가 어려웠다. 다아시 씨가 동생의 결혼을 추진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주지나 않았나 하는 막연하면서도 불안한 의심이 반신반의 속에 싹트긴 했었지만, 설마 그랬으랴 싶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선행의 발휘라 더 계속하기라 두렵고 또 신세지는 괴로움 때문에 아니기를 빌었던 그 의심이 뜻밖에도 사실로 판명되고 말 줄이야! 그는 우정 런던까지 두 사람의 뒤를 뒤쫓았으며 그러한 탐색에 따르게 마련인 노고와 굴욕 같은 것을 전부 한 몸에 짊어졌던 것이다. 그 과정에는 혐오하며 경멸해 마지않았음이 분명한 한 여인에게까지 부탁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테고, 평소에는 되도록 회피하고 싶었으며 그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고통스러웠던 남자와도 만나야 했었고, 그것마저 자주 만나서 도리를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끝내는 매수까지 해야만 했다. 그는 이만한 일을 호의도 갖지 않았던 한 사람의 여성을 위해 해냈던 것이다. 그는 그 일을 자기를 위해 해준 것이라고 그녀의 가슴은 속삭였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도 다른 사정들을 고려해 보면 금방 제지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의 청혼을 거절해 버린 자기가 위컴 하고 친척 관계가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극히 당연한 혐오감을 이겨 가면서까지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기대하기에는 자기의 허영심으로도 별다른 도리가 없음을 그녀는 곧 깨달았기 때문이다. 위컴의 동서가 된다구! 그러한 연분에는 오만 가지의 자부심이 반항하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한 노릇이다. 과연 그는 큰 일을 치러 주었던 것이다. 얼마나 엄청난 일이었을까 생각할 때 마냥 부끄러워지기만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개입한 데 대해서는 그다지 무리를 하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이유는 말해 놓고 있었다. 그가 자기의 과실로 느끼고 있다는 것은 순리에 맞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너그러운 면이 있었고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도 있다. 그가 그런 일을 한 주요 동기로서 그녀는 자기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의 평정이 실질적으로 좌우될 문제를 위해 그가 발벗고 나선 것은 그녀에 대한 미련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 거라고 그녀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갚을 수 없는 상대방에게 자기들이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리디어를 되돌려 오고 그녀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그의 덕분인 것이다. 아, 그에게 대해 함부로 불태웠던 무례한 감정과 그에게 함부로 내뱉었던 당돌한 말들이 그 얼마나 통렬하게 사무쳤던 것인가!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겸손해졌고 그에 대해서는 자랑을 느꼈다. 동정심과 명예를 위해서 그가 스스로를 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외숙모가 그를 칭찬하고 있는 대목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보았다. 그것으로서는 흡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다. 다아시 씨와 그녀 사이에 여전히 애정과 신뢰가 존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삼촌과 외숙모도 얼마나 믿게 되었는가를 알게 되자, 그녀는 후회의 감정이 뒤섞이긴 했어도 어느 정도의 기쁨마저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상념을 중지하고 말았다. 옆의 작은 길로 들어서기 전에 위컴이 뒤쫓아왔다. "혼자 걸으시는 데 혹시 방해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처형?" 그녀 있는 데까지 와서 그가 말했다. "되구말구요. 그러나 방해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그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방해가 된다면 전 정말 미안할 따름입니다. 우린 항상 좋은 사이였었고 지금에 와서는 더욱 그런 입장입니다." "그래요. 다른 분들께선 다들 나가셨나요?" "글쎄요. 장모님과 리디어는 마차를 타고 메리튼으로 가시려나 봐요. 그런데 처형, 외숙부님과 외숙모님 말씀을 들어볼 것 같으면 처형께선 직접 펨벌리에 가 보셨던 것 같아요."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즐거움은 저에겐 부럽기만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과분한 즐거움이겠죠. 그렇지만 않다면 뉴우캐슬까지 그 즐거움을 지니고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나이 든 가정부를 만나셨겠네요. 가엾은 레이놀즈, 그 사람은 언제나 이 사람을 좋아했거든요. 그러나 물론 그분이 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겠죠" "아뇨, 말했어요?" "그래 뭐라고 말하던가요?" "댁에서 군대에 입대했는데, 어쩐지 뭔가 잘못된 것 같더라구요. 거리가 그만큼 떨어지고 보면 소문이 잘못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습니다." 이만하면 그의 입을 봉해 버렸으려니 했더니 그는 잠시 후에 말을 이었다. "전달에 놀랍게도 런던에서 다아시 군을 만났지요. 몇 번 서로 지나치게 됐습니다. 그 사람 런던에서 뭘하고 지내는지요?" "드 버그 양과의 결혼 준비라도 하고 있는 거지요. 이맘때쯤의 계절에 런던에 가 계시다니 꽤나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겠지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램턴에 가셨을 때 그 사람을 처형께선 만나셨습니까? 전 가디너 씨 내외분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래요, 자기 누이에게도 소개해 주셨어요." "그래 그녀가 마음에 드시던가요?" "들고말고요." "그분도 한두 해 동안에 매우 훌륭해지셨다고 듣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희망이 없어 뵀는데요. 처형께서 그녀를 좋아하시다니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녀가 훌륭해지기를 발라 뿐입니다." "걱정 없을 것 같습니다. 가장 시련이 많을 나이는 지났으니까요." "킴프넌 촌을 통과하셨던가요?" "그건 기억에 없는데요." "그 말을 하는 동기는 제가 받기로 돼 있었던 성직록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훌륭한 목사관이지요! 모든 점에서 저에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설교하는 일을 좋아하셨어요?" "아주 좋아했죠. 자기의 의무의 일부라고 생각했었고 그 길을 위한 노력이라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불평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어김없이 저에겐 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유유자적한 생활은 저의 행복관을 완전히 충족시켜 주었을 텐데! 그러나 그렇게 되질 못했습니다. 처형께서 켄트에 체류하셨을 때 다아시 군이 그 사정을 말씀드리던가요?" "훌륭하다고 믿어지는 소식통으로부터 들었지만, 성직록은 조건부에 불과했고 현재의 후원자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는 겨예요." "들으셨군요! 그랬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내용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들은 말이 있어요. 설교를 하신다는 것이 현재나 다름없이 댁에게는 맞지가 않는 때도 있어서 결국 성직자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를 실제로 표명하셨기 때문에 따라서 그것에 의해 그 일은 끝장나고 말았다는 내용이지요." "그렇게 들으셨군요!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은 아닙니다. 처음 처형에게 말씀드렸을 때 제가 그 점에 대해서 말한 것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두 사람은 거의 문간까지 와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에게서 빠져 나오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생을 위해서 그를 노엽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상냥스럽게 미소로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저어, 위컴 씨, 우리 남매간에 된 거예요. 지나간 일로 해서 입씨름은 하지 말았으면 해요. 앞으론 말이예요, 우리 모두가 한 뜻이 돼야 하겠어요."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으면 좋을지 망설이면서 애정 어린 은근한 태도로 손에다 키스를 해주고 나서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ff 53 위컴 씨는 이번 대화로 매우 만족했기 때문에 그 화제를 다시 끄집어 냄으로써 두 번 다시 자기를 곤경에 빠뜨린다든가 상냥스런 그의 처형 엘리자베드의 기분을 해치는 그런 일은 하지를 않았다. 그녀 역시 이만하면 그를 잠자코 있게 하기에 충분했으리라고 생각되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이윽고 그와 리디어의 출발일이 다가왔는데,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가족 전체가 뉴우캐슬까지 함께 그녀의 계획을 남편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1, 2개월 동안 별거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아, 귀여운 내 딸 리디어. 이번엔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담" 그녀가 말했다. "어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앞으로 한두 해는 아마 안될 거예요." "자주 편지 내도록 하여라, 얘야." "되도록 자주 낼께요. 그러나 결혼한 여자가 편지 쓸 여가가 많이 있으려구요. 언니들은 저에게 편지 쓰실 수 있어요. 별로 할 일이 없으니까요." 위컴 씨의 작별 인사는 자기의 처보다는 훨씬 애정 어린 것이었다. 미소짓고 예절 바른 태도로 많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저토록 훌륭한 인물을 난 만나 본 적이 없다. 싱글싱글 능글맞게 웃는 품이 흡사 우리들에게 사랑의 속삭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크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윌리엄 루커스 경께서도 그 이상으로 값어치 있는 사위를 구하지 못하실 거다." 마차가 집에서 나가 버리자 곧 베네트 씨가 말했다. 베네트 부인은 딸이 안보이자 며칠간 매우 침울한 나날을 보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집안끼리 헤어지는 것만큼 마음 쓰라린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만큼 고통스런 일은 없을 게다." "딸을 시집보낸 결과가 이런 거예요. 어머니. 나머지 넷이 그대로 독신으로 남아 있으니까 얼마간 위안이 되겠지요." 엘리자베드가 말을 받았다. "그런 게 아냐. 리디어가 결혼해서 우리하고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게 아니고 남편 연대가 어쩌다가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지. 좀더 가까왔더라면 그애 하고의 이별이 이렇게는 빠르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빠져들었던 의기소침해진 상태에서 그녀는 곧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맘때쯤 퍼져 나가고 있었던 어떤 정보에 의해서 그녀의 마음은 다시 한 번 희망의 충동을 향해 줄달음치게 되었다. 네더피드의 가정부는 주인이 몇 주간 수렵을 하기 위해 하루 이틀 사이에 내려갈 테니 영접할 준비를 하도록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베네트 부인은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일방 제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가 했더니 웃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도 저어 보기도 했다. 필립스 부인이 맨 처음 그 소식을 전해 왔었다. "그래, 그래, 마침내 빙리 씨가 오게 되는 거지, 동생. 그래, 참 좋은 일이구먼. 그렇다고 내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건 아냐. 그분은 우리하곤 아무 관계가 없으니까 말야. 난 정말 그분하고 두 번 다시는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고. 그러나 저러나 그가 바란다면 네더필드에 오는 것을 난 대환영하겠어. 더우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어! 그렇더라도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 되겠지. 집에선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않기로 합의를 보았거든. 그건 그렇다 치고 그분이 오게 되는 건 확실한 건가?" 필립스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믿어도 좋아요. 가정부 니콜즈 부인이 간밤에 메리튼에 있었으니까. 지나가는 것을 보고서 우정 나가서는 사실인가를 확인해 본 거예요. 그랬더니 사실이잖겠어요. 늦어도 목요일이나 아니 아마도 수요일쯤해서 올 거라나요. 수요일에 맞게 고기를 주문하러 푸줏간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마침 잡을 만한 오리를 여섯 마리나 샀다나 봐요." 베네트 양은 그가 오게 된다는 소식에 접하자 안색이 안 변할 수가 없었다. 지금껏 몇 달 동안 엘리자베드에게 그의 이름을 말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제 단 둘이 있게 되자 그녀가 말했다. "오늘 필립스 이모님께서 이 소식을 알려 왔을 때, 리지야, 네가 그때 내 쪽을 바라다보는 것을 깨달았어. 내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쑥스런 일이 원인이 됐다고 상상하지 말아 다오. 관찰 당할 것이라고 짐작이 갔었기 때문에 그 순간 약간 당황했을 뿐이다. 난 그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다는 걸 명백히 말해 두마. 한 가지만 기쁜 일이 있다면. 그분 혼자서 오시게 된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린 그분을 덜 자주 만날 테니 말야.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을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이 두려운 거야." 엘리자베드는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더비셔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오는 목적은 일반이 인정하고 있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인을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가 친구의 허가를 얻고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대담하게도 허가를 얻지 않고서 오는 것인지, 어느 쪽이 더 큰가를 결정짓기 힘들었다. 엘리자베드는 때때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야. 가없게 그분께선 법률적으로 제대로 수속을 밟은 셋집에 드는데 이토록 억측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니! 나 같으면 그분에게 내맡기고 말겠어.' 그가 오는 일에 대해서 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명백히 선언했고 또 그렇다고 믿고 있겠지만 엘리자베드는 언니의 심정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쉽사리 인정할 수가 있었다. 이토록 마음의 혼란이 일어나고 동요가 생겨나는 것을 지금껏 자주 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일 년 전쯤 해서 양친 사이에서 그토록 격렬하게 검토되었던 일을 지금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빙리 씨가 오게 되면, 당신 물론 인사하러 가 주시겠지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안돼요. 작년에 임자 쪽에서 억지로 날 방문하게 해놓고서 만일 내가 가게 되면 그 사람은 우리 집 딸 중의 하나하고 결혼하게 된다고 약속 했잖았소. 그러나 이 일이 허사가 되었으니까 두 번 다시는 바보스런 심부름은 안하기로 했소." 그의 부인은 그 사람이 네더필드에 되돌아온 이상 근처의 남자들은 그만한 예절도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말했다. "그런 예법은 난 경멸하오. 우리하고 교제를 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찾아오면 될 것 아니오. 우리 집을 그 사람은 알고 있을 테니까. 인근 주민들이 가고 올 때마다 따라나서느라고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단 말요." "그런데, 아시겠지만요, 당신께서 방문을 안하신다면 아마도 절대로 실례가 되고 말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 집으로 식사 초대하려는 저의 결심은 안 변할 거구요. 곧 롱 부인과 굴딩 집안의 사람을 초대해야 하게 끔 돼 있어요. 다 합하면 모두 열 세 사람이 되니까 그분의 자리 하나는 비어 있는 셈이죠" 이러한 결의로써 마음을 달래 가면서 그녀는 남편의 무례한 점도 이럭저럭 참아 갈 수가 있었다. 비록 그 일 때문에 이웃 사람들이 모두 자기들 보다 먼저 빙리 씨를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몹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사람의 도착일이 다가오자, 제인은 동생에게 말했다. "그분이 오시는 것이 왠지 슬퍼지는 것 같구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분에게는 아주 냉정한 입장에서 만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일을 귀가 아프도록 듣게 되니 견딜 수가 없구나. 어머니께선 호의로 하시는 일이겠지만 당신이 하신 말로 해서 내가 얼마나 괴로와 하는가를 모르시고 계실 테고 그 누구도 모를 정도야. 그분의 네더필드 체류가 끝나면 난 얼마나 좋을까!"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언니에게 위로될 만한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전혀 그런 힘이 나에겐 없어요. 마음으로라도 알아 주도록 해줘요.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게 인내하라고 설교를 함으로써 만족할 수 있는 흔한 사람이 못돼요. 언니는 큰 인내심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빙리 씨가 도착했다. 베네트 부인은 하인들의 원조에 의해 이럭저럭 빠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지만, 그것에 의하면 자기가 그토록 걱정하고 마음 죄며 기다렸던 기간을 가능한 한 연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초대장을 송부할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손꼽아 세어 보았다. 그 전에는 그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허어퍼드셔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그녀는 화장실의 창문을 통해서 그가 말을 타고 소목장으로 들어서며 집 쪽으로 접근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어머니는 딸들을 열심히 불러들였다. 제인은 단호한 태도로 식탁을 향한 채로 였으며 엘리자베드는 어머니를 흡족하게 해주기 위해서 창가로 갔다. "또 한 사람의 남자분이 함께 오는데요, 어머니. 누구일까?" 키티가 말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일 테지, 정말 내가 모르는 사람일 거야." "어머나!" 키티가 말했다. "그 전에 함께 다니시던 그분 같아요! 이름이 뭐라더라. 왜 키 크고 거만한 사람 말야. 어머나! 다아시 씨야! 그럴 거야, 틀림없어. 그래 빙리 씨의 친구분 같으면 누구든지 우리 집에서는 환영을 받겠지만, 친구만 아니라면 콧등을 보는 것도 싫다고 말해 줄 텐데" 제인은 놀라움과 걱정으로 엘리자베드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더비셔에서 두 사람이 만났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동생이 그의 해명 편지를 받고 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것으로 알고 매우 어색한 일이 될 것으로 여겼다. 두 자매의 심정은 산란한 상태였다. 저마다 서로의 심정을 위해 마음을 썼으며 동시에 물론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다아시 씨가 싫지만, 빙리 씨의 친구로서만 정중하게 대해 주겠다고 결의를 표명했는데 두 사람의 어느 편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에게는 제인이 감지할 수 없는 불안이 있었다. 가디너 부인한테서 온 편지를 제인에게 보여 준다든가 다아시 씨에 대한 자기의 감정이 변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든가 할 용기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다. 제인의 눈에는 그 사람은 동생에게 결혼을 청했다가 거절을 당했으며 얕잡아 볼 만큼 값어치가 없는 존재에 불과하겠지만,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엘리자베드 입장에서 볼 때는 가족 누구나가 가장 중요한 물질적이 은혜를 입고 있는 사람이며, 아주 상냥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제인이 빙리에 대해서 느끼는 만큼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관심을 그녀 자신이 품고 있는 대상인 것이다. 그가 오고 있다는 사실, 네더필드로 해서 롱본으로 해서 자진해서 자기를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그녀의 놀라움은 더비셔에서 일변한 그의 태도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에 조금도 덜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사라졌던 혈색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애정과 원망이 아직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쁨의 미소가 그녀의 눈에 광채를 더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심하는 기분이 되지는 못했다. "먼저 어떠한 행동으로 나오는가 그것부터 보기로 하자. 그때 가서 기대해 본대서 늦지는 않을 테니까 말야."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자수에다 정신을 쏟았으며 눈을 치켜 뜨지 않으나 하인이 문턱에 가까이 왔을 때는 불안한 호기심 때문에 언니 쪽을 바라다보았다. 제인은 평소보다 약간 창백해 보였으나 엘리자베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침착했다. 남자들이 나타나자 안색이 상기되긴 했지만 꽤 태연하면서도 원망의 내색도 없이, 그렇다고 불필요한 애교의 기색도 없이 예절바른 태도로 그들을 맞아들였다. 엘리자베드는 실례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느 편에 대해서나 말수를 줄였으며 자리를 잡고서는 다시 수예를 시작했고 그 일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열의를 쏟았다. 꼭 한 번 용기를 내어서 다아시 씨 쪽을 힐끗 바라다보았다. 그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펨벌리에서 만났을 때의 그보다는 허어퍼드셔에서 많이 보았던 그런 표정에 가깝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도 어머니 앞에서는 외삼촌이나 외숙모 앞에 있을 때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추측치고는 괴로운 추측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터무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빙리 쪽에게도 그녀는 일순 시선을 돌렸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즐거우면서도 어색해서는 그의 표정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베네트 부인한테서 두 딸이 부끄러워할 만큼 은근하게 영접을 받았는데, 그의 친구에 대한 그녀의 냉랭하며 의례적인 인사말과 대조해 볼 때 특히 수치스런 생각이 나곤 했다. 어머니의 귀여운 딸을 돌이킬 수 없는 오명에서 구해 준 은혜를 다아시 씨에게 입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엘리자베드는 이 뒤바뀐 차별대우를 보고 고통스러울 만큼 마음이 아프고 쓰렸다.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에게 가디너 부부의 안부를 물어서 당황하지 않고서는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질문을 해놓고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 옆에 앉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잠자코 있었는데 더비셔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땐 그녀에게 말을 안 건넬 땐 친척에게 말을 걸곤 했었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났는데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이따금 호기심의 충동을 이겨내지 못해서 눈을 치켜 떠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제인과 자기쪽을 보다가 때로는 하릴없이 마룻바닥만 내려다보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지난 번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사색적이고 호감을 사려는 노력이 덜해진 것이 역력히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낙담했고ㅎ 또 낙담하는 자기에게 화가 치밀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밖에는 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런데 여길 왜 온 거지?" 그녀는 그 이외의 누구하고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의 누이의 안부를 묻고 나서는 그 이상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빙리 씨, 떠나가신 후로 말예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동의했다. "난 또 혹시 전혀 안돌아오시지나 않나 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말씀이 당신이 미카엘 제에는 거길 완전히 떠나고 말 것이라고들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떠나시고 난 후에 여기선 많은 변화가 생겨났죠. 루커스 양이 결혼해서 가정을 갖게 됐구요. 그리고 내 딸 아이도 말예요. 그것에 대해선 소문을 들으셨겠지만서두. 신문에서 틀림없이 보셨을 거예요. '타임즈'지와 '쿠리어.' 지상에 보도됐다니까요. 하긴 제대로 게재되지 못하긴 했지만. '최근 조지 위컴님은 리디어 베네트 양과 화촉을 올렸음' 정도로 실렸을 뿐 그애 아버지에 관해서도 출신지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니까요. 그 원고마저도 제 동생 가디너 씨가 초를 잡았더랬지 뭐예요. 그런데도 왜 그런 서투른 결과가 돼버렸는지 의아스럽기 그지없군요. 혹시 읽어보셨던가요?" 빙리는 보았다고 대답하고 축하의 말을 했다. 엘리자베드에게는 눈을 치켜 뜰 용기조차 없었다. 그리하여 다아시 씨가 어떤 표정을 지었던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베네트 부인은 말을 이었다. "뭐니뭐니해도 딸을 좋은 데로 시집보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지요. 그렇지만 빙리 씨, 딸을 빼앗긴다는 건 정말 마음 쓰린 일이에요. 그애들은 뉴우캐슬인가 하는 퍽 북쪽에 있는 곳에 가서 살게 됐나 본데 그곳에서 얼마나 오래 살게 될지 그것마저 확실하지가 못한 거예요. 사위의 연대가 거기에 있나 보죠. 그 사람이 ㅇㅇ주 연대를 그만두고서 정규군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어 알고 계시겠지요. 정말 고마운 일이지 뭐예요! 친구 몇 사람이 있는 모양 같아요, 더 많아야 할 입장이지만서도" 엘리자베드는 이 말이 다아시 씨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스런 수치감에 사로 잡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다른 일로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지만 이 일로 해서 그녀에게는 말해 보려는 노력이 생각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빙리에게 당장 앞으로 얼마나 더 시골에 체류하게 될 것인가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2, 3주간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베네트 부인이 또다시 말했다. "댁의 새를 다 쏘고 나시거든 빙리 씨. 제발 이곳으로 오셔서 베네트 저택에서 마음껏 쏴보시도록 하세요. 우리 집 주인께서도 기꺼이 도와 주시려 들 것이고 댁을 위해서 제일 좋은 메추리 때를 남겨 두실 테니까 말예요." 그러나 불필요하고 공연한 참견에 대해 엘리자베드의 비참한 심정은 그 도를 더해 가기만 했다! 설사 일 년 전에 자기네를 들뜨게 했던 것과 같은 유망한 전망이 지금 다시 생겨난다 하더라도 만사가 전과 같이 안타까운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그녀는 행복한 세월이 몇 해 더 지속된다 해도 제인이나 자기에게는 이와 같은 고통스런 순간을 보상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의 으뜸가는 소원은 이 두 사람 중 누구하고도 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는 거야. 두 사람하고 교제한다고 해서 이토록 비참한 심정을 보상해 줄 만한 기쁨은 결코 얻어지지가 않는 거야! 두 사람 중 어느 편이고 다시 보지 말아야 하는 거야.' 그러나 행복스런 나날이 몇 해가 지나도 상환되지 못할 비참한 생각은 얼마 안가 언니의 아름다움이 언니의 옛 애인의 찬탄의 감정을 다시 불태우는 것을 보게 되자 충분히 구원받을 수가 있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는 그는 그녀에게 거의 말을 건네지 않았으나, 그녀에 대한 그이 관심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여전히 아름다우며 작년만큼 말을 하지는 않아도 한결같이 마음씨가 아름답고 순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인 입장으로서는 자신이 변해 있는 사실을 조금도 보여 주고 싶지가 않았으며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었지만, 마음 속을 오가는 일이 하도 많아서 자기가 잠자코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되돌아가려 했을 때 베네트 부인은 평소에 마음먹고 있던 정찬에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2, 3일 내에 롱본에서 식사를 하기로 언약이 이루어졌다.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댁에선 나한테 방문해야 할 빚을 지고 있는 거예요, 빙리 씨. 왜 지난 겨울에 런던으로 떠나시면서 돌아오는 대로 우리 집안끼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잖아요. 난 안 잊고 있어요. 그래서 안돌아오시고 약속도 안지켜 주셔서 난 많이 실망했었죠" 빙리는 이 비난에 대해 짐짓 쑥스런 표정을 지으며 용무로 해서 약속을 못 지키게 된 점을 사과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나가 버렸다.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오늘이라도 남아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언제나 풍성한 요리 준비를 하는 그녀로서도 두 코스 정도로서는 사위로 맞아들이겠다고 열망해 온 남성을 대접하기에는 미흡할 테고 매년 수입 1만 파운드나 되는 사람의 식성과 자부심을 충족시켜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ff 54 두 사람이 떠나가고 나자 곧 엘리자베드는 산책하러 나가서 원기를 돌이켜 볼 심산이었다. 아니 차라리 더욱 원기를 잃게 하고 말 문제를 남의 방해를 받지 않고서 곰곰이 생각해 볼 참이었다. 다아시 씨의 태도는 그녀를 놀라게 했으며 괴롭혀 주기까지 했다. "입을 꼭 다물고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시치미를 떼기만 하면 다야. 그렇다면 왜 찾아왔던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의문에서 기쁜 답을 끌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런던에 왔을 때만 해도 외삼촌과 외숙모님께는 그토록 상냥스러웠고 기분 좋은 태도를 취할 수 있었는데 왜 나한테 대해선 그렇지가 못할까? 내가 두렵다면 여기까지 올 게 뭐람? 그리고 이젠 더 내 생각을 않는다면 왜 줄곧 침묵만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걸까? 심술궂은 사람이야, 정말 너무나 심술궂은 사람이야! 이제 다시는 그 사람 생각은 안하기로 하겠어.' 그녀의 결심은 언니가 접근해 왔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잠시 동안 보류하게 되었다. 언니는 쾌활한 표정으로 그녀와 어울렸는데, 그 표정으로 보아 방문객들에 대해 엘리자베드보다는 훨씬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녀가 말했다. "이런 정도로 해서 이번 첫 대면도 끝난 것이니까 나도 더할나위없이 느긋한 기분이야. 이젠 내 힘도 알게 되었고 그분이 다시 찾아오신다 해도 두 번 다시는 내 마음이 흐트러지지가 않을 것이니까 말야 말야. 그분이 오는 화요일이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은 기쁜 일이야. 그때 가서 우리 두 사람 사이가 평범하고 무관한 사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니까." 엘리자베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정말 무관심하게 말예요. 아, 언니! 조심해요!" "어머나, 리지야! 나를 지금도 위험스럴 정도로 약한 여자로 생각해선 안돼" "그분으로 하여금 그 전처럼 격렬하게 사랑에 빠지게 할 만한 대단한 위험이 언니에겐 있다고 난 보는 거예요." 그녀들은 화요일까지는 그 남자들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반면에 베네트 부인은 그간 빙리의 반 시간의 방문에서 그가 보여 준 명랑함과 평범한 예절에 의해 되살아난 행복한 계획에 온통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화요일 롱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걱정스럽게 기다려지던 두 사람은 시간 엄수를 자랑이나 하듯 꼭 시간을 대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식당으로 들어서자 엘리자베드는 빙리가 그 전의 어떤 파티에서도 한결같이 앉았던 자리, 즉 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는가를 확인하려고 열심히 지켜보았다. 세심한 그녀의 어머니도 같은 심정이었던 모양으로 그를 자기 옆으로 청해 보자는 마음을 억눌렀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주저 하는 빛이 보였으나 제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미소를 띠자 일은 결정이 나고 말았다. 그가 그녀 옆에 앉게 된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득의만면한 기분으로 그의 친구 쪽을 바라다보았다. 그는 초연한 무관심으로 참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 입장으로서는, 만일 빙리의 양쪽 눈이 반쯤 웃어 가며 놀라는 그런 표정으로 다아시 쪽을 향하는 것을 보지 못했더라면 장본인 빙리가 친구로부터 행복해도 좋다는 인가를 이미 받아들인 줄로 상상했을 것이다. 식사 중 언니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그녀를 애모하고 있는 사실이 역력하게 나타났으며, 그것이 그 전에 비할 때 더욱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만약 전적으로 그에게 일임하기만 하면 제인의 행복도 나아가 그의 행복도 얻어질 것이라고 엘리자베드는 믿게 되었다. 그러한 결과를 필연적인 것으로 믿고 안심할 만한 용기가 그녀에게는 없었지만, 그런데도 그의 태도를 관찰하는 일은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결코 쾌활한 기분에 젖어 있지는 못했어도 그녀의 원기로서는 북돋을 수 있는 최대한의 활기에 불타 있었다. 다아시 씨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그녀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 위치에 있게 되면 어느 편에도 그다지 즐거움을 줄 수가 없을 뿐더러 이롭게 해줄 리가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그녀가 앉아 있지는 못했으나 두 사람이 거의 입을 떼지를 않고 말을 건넨다 해도 서로의 태도가 형식적이며 냉랭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가 있었다. 어머니의 무례로 말미암아 자기네가 그에게 은혜를 지고 있다는 의식이 더 한층 엘리자베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때때로 가족 전원이 그의 친절을 알지도 못하고 눈치채지도 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특전을 가진다면 그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녀는 밤이 되면 그와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으며, 그가 들어섰을 때의 단순한 의례적인 인사보다도 좀더 이야기다운 이야기도 해보지 못한 채로 이번 방문이 끝나 버리지 말기를 기원해 보는 것이었다. 걱정스럽고 불안해져서, 남자들이 식당에서 나오기 전에 응접실에서 기다리는 동안은 그녀는 거의 난폭해 보일 정도로 따분하고 갑갑해 했다. 그녀는 그날 저녁의 즐거울 기회가 온통 그 시점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그들이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번에도 나한테 가까이 안 와 봐라. 그땐 영원히 단념하고 마는 거야.'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가 그녀의 희망을 이루어 줄 그러한 표정을 짓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아! 베네트 양이 차를 준비하고 엘리자베드가 커피를 따르고 있는 테이블 둘레에 여자들이 잔뜩 의좋게 들어갈 만한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남자들이 접근해 오자 딸들 중의 한 사람이 먼저보다도 더 바싹 다가서서는 나직한 소리로 속삭였던 것이다. "남자들이 와서 우릴 떼놓지 못하도록 마음은 단단히 해야 해요. 우리에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니까, 안 그래요?" 다아시는 방 저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녀는 눈으로 그의 뒤를 쫓았고 그가 말을 건네는 사람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부러워했으며, 커피를 남에게 권하는 마음의 여유도 없어져 버리고 끝내는 그러한 자신의 아둔함에 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한 번 청혼해 온 것을 거절해 버린 사람인걸! 그 애정의 소생을 기대할 만큼 내가 바보가 되다니! 같은 여자에게 두 번씩 청혼하려는 약한 마음씨에 반발심을 안 느낄 남자가 또 어디 있을라구? 그만큼이나 남자들의 기분에 거슬리는 모욕은 또 없을 거야!' 그러나 그가 자기 손으로 커피 잔을 돌려 주려고 찾아왔을 때 그녀의 원기는 어느 정도 생겨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기회를 포착해서 말했다. "누이께선 아직 펨벌리에 계신가요?" "예, 크리스마스까진 그곳에 머물게 될 것 같습니다." "아니 혼자서 말예요? 친구분들은 다들 돌아가셨겠지요?" "앤즐리 부인께서 함께 계시죠. 딴 분들께선 스커버러로 떠난 지 3주일째 됩니다." 그녀는 그 이상 말할 일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가 그녀의 말 상대가 되고 싶었다면 충분히 성공했을 것이다. 그는 몇 분 동안 말없이 옆에 서 있는 체로 였으나 이윽고 아까 그 젊은 여자가 다시 엘리자베드에게 속삭이자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차 도구를 치워 버리고 카드 테이블이 대신 들어서자 부인들이 모두다 일어났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그로 인해 곧 그가 와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녀의 예상은 깡그리 뒤집혀지고 말았다. 휘스트 놀이의 사람 수를 억지로 채워 보려고 급급해 있는 어머니에게 그가 때마침 붙잡혀서 얼마 안 있어 상대들과 함께 자리에 앉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녀로서는 기쁨의 기대 같은 것을 송두리째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들은 오늘 저녁은 이럭저럭 자기네 앞의 테이블에 붙박이가 되고 말 터인즉 그녀로서 바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의 시선이 되도록 자주 자기 쪽을 향함으로써 게임을 해나가는 그 역시 자기 못지 않게 서투른 일만을 저질러 주었으면 하는 정도밖에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네더필드의 두 신사를 저녁 식사 때까지 붙들어 놓을 참이었으나 불운하게도 그들이 탈 마차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명령해 놓았기 때문에 그녀로서는 그들을 붙잡을 기회가 없었다. 집안끼리만 남게 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애들아. 오늘은 어땠느냐? 내 생각으론 모든 일이 제대로 잘된 것 같다만. 정말 요리가 그렇게 잘된 건 처음 있는 일이었지. 사슴 고기도 알맞게 구워졌고, 그렇게 살찐 허리 고기는 난생 처음 봤다고들 입을 모아 말하더라. 수프는 지난 주 푸커스 댁에서 맛보았던 것보다는 쉰 배나 더 맛있었고 다아시 씨 그 양반까지도 자고새 맛이 여간 좋지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분은 불란서 요리사를 적어도 두세 사람은 고용하고 있을 텐데 말야. 그리고 얘 제인아, 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 내가 롱 부인에게 정말 그런가 하고 다짐을 했더니만 그렇다고 하셨다. 더우기 그분께서 무슨 말을 하셨는지 아니? 아, 베네트 부인, 마침내 댁의 따님께선 네더필드 사람이 되고 마는 거예요! 라고 하지 않겠어. 난 롱 부인만큼 좋은 분을 본 적이 없구나. 그리고 그분의 조카들도 여간 예의가 바르지 않다구. 인물은 별로 나을 게 없지만, 난 그만 반하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은 요컨대 매우 발랄해 있었다. 제인에 대한 빙리의 태도에 대해서는 딸이 끝내는 그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까지 충분히 관찰했다. 기분이 매우 좋을 때면 가족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그녀의 기대는 이성을 초월해 버리는 정도로서 바로 다음날 빙리가 청혼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완전히 낙담하고 말았다. 베네트 양이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어. 모인 사람들도 제대로 골랐던 편이고 서로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 그 사람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으면 좋겠어."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지었다. "리지야, 너 그렇게 웃지 말아. 날 의심하면 못써. 내 마음이 슬퍼지니까. 확실히 해두지만, 호감이 가고 양식 있는 청년으로서 그저 대화를 즐길 수 있을 뿐으로 그 이상의 소원은 나에겐 없단 말야. 다만 그분의 성품은 누구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누구에게나 다 잘하려는 강한 기분을 가지고 있을 뿐이야." "언닌 너무 잔인해요. 나더러 웃지 말라고 해놓고선 늘 웃게 만들어 놓거든요." "어떤 경우엔 사람을 믿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절대로 믿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넌 왜 내가 인정하고 있는 이상의 감정을 내가 지니고 있다고 설득하고 싶어 못 견디는 거지?" "그 질문은 나로선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성질의 것이예요. 우린 모두가 알려 주는 일을 좋아하는 거죠. 알 만한 가치도 없는 일밖에 알지 못하는 주제에 말예요. 용서해 줘요, 아무것도 아니라고 끝내 버티신다면 나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돼요." @ff 55 이번 방문이 있은 2,3일 후에 빙리 씨는 다시 한 번 찾아왔는데 이번엔 혼자서 왔다. 그의 친구는 그날 아침에 런던을 향해 떠났는데 열흘쯤 지나면 다시 돌아오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들하고 한 시간 이상 자리를 함께 했는데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베네트 부인은 그에게 꼭 식사를 하고 가라고 초청해 보았지만 유감스럽다는 말을 여러 번 늘어놓으면서 실은 다른 곳에 약속을 해놓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인이 또 말했다. "다음에 또 오실 때 좀더 운이 좋았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초대는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가 어떻게나 시간을 잘 지켰던지 숙녀들은 아직 채 의상도 제대로 갖출 겨를이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화장 의상을 입은 채 머리도 대충 손본 채 딸들 방 안으로 뛰어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제인아, 어서 서둘러서 내려오도록 하여라. 그분이 오셨다. 빙리 씨가 오셨어. 정말 그분이 온 거야 빨리, 빨리. 이봐 사라, 이 길로 베네트 양에게로 가서 옷 입는 것을 도와 주도록 해요. 리지 양의 머리는 상관 말고 말야." 제인이 말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내려 갈께요. 그렇지만 우리 둘보다는 키티가 한 걸음 앞서 거예요. 반 시간 전에 벌써 2층에 올라와 있었으니까요." "아, 키티야 아무러면 어때! 그애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구? 어서, 빨리 서둘러요! 너의 허리띠는 어디 있느냐?" 그러나 어머니가 가 버리고 나자 제인은 동생 하나를 안거느리고서는 내려가려 들지를 않았다. 밤이 되었는데도 두 사람끼리만 있게 하겠다는 어머니의 한결같은 걱정은 여전히 뚜렷하게 보였다. 차를 마시고 나자 베네트 씨는 평소처럼 서재로 들어갔고 메어리는 2층으로 올라가 악기 쪽으로 갔다. 다섯 중 두 장애물이 이럭저럭 물러가자 베네트 부인은 상당한 시간을 앉은 채로 엘리자베드와 캐더린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는데도 두 사람에게는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녀 쪽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키티가 그쪽을 바라다보게 되었을 때 그녀는 짐짓 천진스럽게 이렇다 말했던 것이다. "웬일이세요, 어머니? 왜 저한테 자꾸 눈짓을 하시는 거죠? 절 어떻게 하시려구요?" "아무것도 아니다, 얘야. 난 너에게 눈짓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앉아 있다가 이와 같이 중요한 때를 헛되게 보낼 수는 없었던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키티에게 말했다. "얘, 너 이리로 온, 할 말이 있다." 그녀를 방에서 데리고 나갔다. 제인은 곧바로 엘리자베드를 향하면서 그런 미리 꾸민 책략은 곤란하니 너만은 제발 그 술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간청이나 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리지야, 너하고 할 말이 있구나" 엘리자베드는 싫어도 가야만 했다. 복도로 나가자 곧 어머니가 말했다. "둘이서만 남겨 두는 것이 좋지 않겠니. 키티와 난 2층으로 올라가서 내 화장실에 있겠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하고 상의하려 하지 않고서 그녀와 키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용히 복도에 남아 있다가 응접실로 되돌아왔다. 이날의 베네트 부인의 계획은 효과가 없었다. 빙리는 공공연하게 딸의 애인 행세를 안했으나 그 밖의 점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매력이 넘쳐 흘렀다. 그의 여유 있고 명랑한 점이 그날 밤의 모임에 다시없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어머니가 부질없이 간섭하려 드는 것을 참아 냈으며, 제인으로서 각별히 감사해야 할 인내와 의연한 표정으로 어머니의 바보스런 말을 듣고 있었다. 그에게 저녁 식사 때까지 남아 있어 달라고 청하는 것은 거의 불필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돌아가기 전에 주로 그와 베네트 부인의 결정으로 내일 아침 남편과 사냥을 하기 위해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이후로 제인은 자기로서는 무관심하다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빙리 일로 해서 자매들 사이에서는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았으나, 엘리자베드로서는 다아시 씨가 예정보다 앞당겨서 빨리 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모든 일이 급속하게 결말을 보게 되리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믿으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러나 따지고 들면 이번 일의 전부가 다아시 씨의 합의에 힘입어 이만큼 진척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은 일같이 느껴졌다. 빙리는 약속한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전날 말했던 대로 베네트 씨와 함께 오전 시간을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베네트는 상대가 예기했던 바보다는 훨씬 친숙하기 쉬운 편이었다. 빙리에게는 베네트 씨의 비웃음을 살 만하다거나 불쾌한 침묵으로 빠져들게 할 만큼 잘난 체하거나 어리석은 점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베네트 씨 쪽은 상대방이 지금껏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괴팍스럽지가 않았다. 빙리는 물론 함께 식사하러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와 자기 딸을 딴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으려는 베네트 부인의 계획이 다시 한 번 시도되었다. 엘리자베드는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차 시간이 끝나자 그 목적을 위해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카드놀이를 시작했었기 때문에 그녀는 구태여 그곳에 남았다가 어머니의 계획을 방해하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를 다 써 버리고 응접실로 되돌아오니 놀랍게도 어머니의 영리함이 그녀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고 혀를 두를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문을 열자 언니와 빙리가 나란히 난로 옆에 서서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만 갖고는 아무런 의심도 살 만한 것이 못되었지만, 두 사람이 놀라며 돌아다보고 서로가 떨어져 버렸을 때의 표정에는 자초지종을 읽어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입장은 자못 난처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녀 자신 쪽이 더욱 그러한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서로간 말 한마디도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드가 다시 그 자리를 뜨려고 하니까 언니와 같이 앉아 있던 빙리가 돌연 일어서더니 언니에게 몇 마디 속삭이고는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이렇게 되자 제인은 비밀을 고백해 버림으로써 즐거움을 주게 되는 경우에는 엘리자베드에게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별안간 그녀를 끌어안고서 자기만큼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라고 더할나위없이 강한 감동을 불어넣으면서 인정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너무 좋은 거야! 너무너무 좋은 거야. 나로선 그럴 만한 자격이 없어. 아, 남들은 왜 나만큼 행복하지 못할까!" 엘리자베드의 축하 인사는 성실성과 온정과 환희의 정을 가지고 말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말만 가지고는 표현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속속들이 친절한 한마디 한마디는 제인에게는 새로운 행복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경우에 동생한테만 머물러서 아직 남아 있는 나머지 반에 대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길로 어머니에게로 가야지. 이 딸이 귀여워서 걱정을 하시는 것을 어떤 이유로라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단 말야. 그분께선 벌써 아버지에게로 가 버렸을 거야. 아, 리지야, 내가 할 말이 우리 가족 전체에 얼마나 큰 기쁨을 안겨다 줄까! 이토록 큰 행복을 내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서 그녀는 우정 카드 놀이를 그만두고서 2층으로 키티와 함께 가 있던 어머니에게로 갔던 것이다. 혼자 남게 된 엘리자베드는 지금까지 몇 달을 두고 신경을 쓰고 괴로와 했었던 문제가 마침내 한꺼번에 쉽사리 해결을 보게 된 데 대해 미소를 지어 보는 것이었다.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분 친구의 걱정에 넘친 심사숙고의 결과이고 또 그분의 누이의 위장과 책략의 결말인 거야! 가장 행복스럽고 가장 현명하며 가장 도리에 맞는 그런 결과일 거야!" 잠시 후 빙리가 돌아왔는데 아버지와의 대화는 짧기는 했으나 목적대로 처리되었던 것이다. 그는 문을 열면서 황급히 말했다. "언닌 어디 계시오?" "어머니하고 2층에 계실 거예요. 틀림없이 곧 내려올 거예요." 그리고 나서 그는 문을 닫고 그녀에게로 다가와서는 동생으로서 축하와 사랑의 말을 들려 달라고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정직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서 친척 관계가 맺어진 데 대한 기쁨의 말을 전했다. 두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악수를 나눈 후 언니가 내려올 때까지 그가 지금 얼마나 행복하며 제인이 또한 얼마나 완전한가에 대해 그가 말하는 것을 그녀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연애하고 있을지언정 행복에 대한 그의 기대는 모두 다 이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엘리자베드는 명백히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기대 속에는 제인의 뛰어난 이해심이나 나아가 더욱 훌륭한 그녀의 기질이라든가 또는 그와 그녀 사이의 감정이나 취미의 전반적인 유사점이 그 기반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가족들 모두의 즐거움은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베네트 양의 심적 만족은 얼굴에 그 그대로 아름답고 발랄한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더 한층 눈을 부시게 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키티는 그저 싱글벙글해 가며 자기 차례도 곧 올 것이라고 원하고 있었다. 베네트 부인은 반 시간 동안이나 빙리에게 별달리 이야기를 못했지만, 그녀로서는 자기 감정에 흡족할 만큼 따뜻한 말로 동의를 하거나 승낙할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 때 모두 함께 있게 되었던 베네트 씨는 그의 목소리나 태도로 보아서 그가 진정으로 행복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손님이 작별할 때까지는 그 일에 대해서 그의 입장에 한마디 말도 없었으며, 손님이 떠나가 버리자 딸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인, 축하한다. 넌 정말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다." 제인은 곧바로 아버지에게로 가서 입을 맞추며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에 감사했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넌 좋은 딸이다. 너의 일이 이렇게 행운스럽게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하니 난 기뻐 어쩔 줄을 모르겠구나. 너희 두 사람이 잘해 나가리라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로의 성격은 너무나 닮았어. 너희들은 서로가 상대방을 따르는 성격들이라 어떤 일이고 결정을 못 내리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마음들이 좋아서 하인들의 속임수를 당할 것 같기도 하구나. 그리고 너그러워서 언제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고 말 테지." "그렇지 않기를 바라요. 금전상으로 경솔하다든가 무분별하다든가 하는 일은 저희들에게는 허용될 수 없어요." 베네트 부인이 외쳤다. "수입을 초과한다구요! 여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분의 수입은 일 년에 4, 5천 파운드 아녜요, 그 이상이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리고 나서 딸에게 말을 건넸다. "제인아, 네 어미는 정말 기쁘구나. 난 틀림없이 밤새도록 눈을 붙여 보지 못할 것 같구나. 어떻게 될 것인가 난 알고 있었다. 끝내는 이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네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아무 소용없이 지날 리가 없을 것이라고 난 생각했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면 작년에 그분이 처음 허어퍼드셔에 왔을 때 난 그 사람을 보기가 무섭게 너희들은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 내 생전에 그렇게 잘생긴 남자를 본 일이 없구나!" 그녀는 위컴이나 리디어에 대한 일은 모두 다 잊고 말았다. 어머니에게는 제인의 존재가 제일 아끼던 딸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에 들게 되었다. 그 순간에는 다른 어떤 일도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손아래 동생들은 언니가 장차 자기들에게 베풀 수 있는 행운의 목표를 따내기 위해 손을 쓰기 시작했다. 메어리는 네더필드의 도서실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며, 키티는 겨울철마다 몇 번씩이고 무도회를 개최해 달라고 사뭇 간청하는 것이었다. 빙리는 이때부터 줄곧 매일 롱본을 찾아오는 방문자였다. 때로는 아침 식사 전에 찾아와서는 항상 저녁 식사 후까지 남아 있곤 했다. 하기야 제아무리 미워해도 다하지 못할 만큼 야만스러운 이웃 사람들로부터 초대를 받고서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경우는 별문제였다. 지금의 엘리자베드는 언니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거의 조금밖에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가 있는 동안에는 제인은 다른 누구한테도 관심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이따금 두 사람이 떨어져 있어야 할 그런 경우에는 자기가 두 사람 어느 편에게도 유용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제인이 없을 때는 그는 늘 그녀 이야기를 해가며 즐기기 위해 엘리자베드는 곁을 떠날 줄을 몰랐으며 반면 빙리가 없을 때는 제인은 끊임없이 같은 수법으로 위안의 손을 바라곤 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제인은 엘리자베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즐거웠어. 그분께서는 내가 지난 봄에 런던에 갔었던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셨다지 뭐니! 그럴 수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난 그러리라 생각했댔어요. 그런데 그분께선 어떤 식으로 설명하셨죠?" "십중팔구 그분의 누이들이 한 짓이었을 거야. 그들은 그분이 나하고 교제하시는 걸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너무나도 뻔한 거야. 왜냐하면 그분께선 여러 가지 점에서 훨씬 훌륭한 상대를 고를 수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내가 그분하고 함께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 주리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는 날이면 그들도 흡족해 할 것이고 우리 모두가 다 의좋게 될 거니까 말야. 서로가 원래대로는 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용서할 줄 모르는 말을 언니가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선량하신 우리 언니! 언니가 두 번 다시 빙리 양의 거짓 호의에 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면 난 정말 슬퍼질 거예요." "넌 믿어 주겠지 리지, 작년 11월에 그분께서 런던으로 가셨을 때 날 사랑하시면서도 다시 돌아오시지 않은 것은 오직 내가 무관심하다고 남들이 설득했기 때문이야." "그분께선 약간 오해하셨던 것 같아요, 틀림없이.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그분이 겸손하셨기 때문이죠" 그러자 제인은 그의 겸손과 자신의 장점을 그다지 내세우지 않는 점을 입이 닳도록 칭찬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친구의 간섭을 남에게 누설시키지 않았음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제인은 세상에서 둘도 없이 관대한 마음의 소유자이긴 했으나 그 일에 관해서만은 그의 친구에게 대해서 커다란 편견을 품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인은 소리내어 말했다. "확실히 나만큼 행복한 사람은 이 세상엔 없을 거야! 아, 리지야, 난 어떻게 해서 우리 가족 중에서 이와 같이 선택되어 누구보다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단 말이냐? 너도 나나 다름없이 행복하게 됐으며 얼마나 좋겠니!" "그런 분을 마흔 명 준대도 난 언니만큼 행복해질 순 없을 거예요. 언니의 그런 성질, 그리고 그러한 선량함이 없이는 나로선 언니 같은 행복을 얻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냐, 아냐, 내 힘으로 어떻게 결말을 내보도록 하죠. 두고 보세요. 그리고 만일 억세게 재수가 좋으면 이럭저럭 제2의 콜린즈 씨와 만나게 될지 누가 아우" 롱본의 일가에 어떤 일이 발생했던가는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 둘 수는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그것을 필립스 부인에게 속삭이는 특권을 휘둘렀고, 그리고 필립스 부인은 허가도 얻지 않고서 메리튼 주변 사람들에게 똑같은 짓을 감행해 놓고 말았던 것이다. 베네트 집안은 불과 2, 3주 전에 리디어가 줄행랑을 쳤을 당시만 해도 불운한 가족이라고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나 지금에 와서는 별안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스런 가족이라고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ff 56 빙리와 제인의 약혼이 정해지고 나서 한 주일쯤 지난 어느날 아침에 그와 이곳 가족 중의 여자들과 함께 식당에 앉아 있으려니까 돌연 마차 소리가 들려 와서 모두의 시선이 창가로 쏠리게 되었다. 네 마리가 끄는 사두 마차가 잔디밭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방문객이 찾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렀으며 더우기 마차 장비 또한 이웃 누구 것하고도 합치되지 않는 것이었다. 말은 역마였고 차대며 선두에 서 있는 하인의 옷도 눈에 익은 것이 아니었다. 아뭏든 누가 찾아온 것만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빙리는 그러한 갑작스런 방문객을 상대나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관목 숲으로 산책이나 하자고 곧 베네트 양을 설득했다. 두 사람은 떠나 버렸고 나중에 남게 된 세 사람은 누구일까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지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은 채로 였었는데 별안간 문이 활짝 열리고서 방문객이 들어섰다. 바로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게 되리라고 얘기는 했었지만, 이 경악은 전혀 허를 찔린 그런 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엘리자베드의 놀라움은 전혀 초면인 베네트 부인이나 키티의 경우보다 더욱 컸었다. 부인은 어느 때보다 불손한 태도로 방 안에 들어섰으며 엘리자베드의 인사에 답하며 고개를 약간 숙여 보였을 뿐, 말 한마디 없이 자리에 앉았다. 엘리자베드는 소개를 부탁 받은 일도 없었지만 부인이 들어섰을 때 어머니에게 통성명을 했다. 베네트 부인은 이토록 지체가 높은 손님을 맞게 된 데 대해 득의만면했었지만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다시없이 정중한 태도로 그녀를 영접했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다가 부인은 아주 딱딱한 투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잘 있었겠지요, 베네트 양. 그 편에 계신 부인께선 귀양의 모친 되시나요?" 엘리자베드는 매우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저쪽이 자매 중의 한 분이시겠구요?" 베네트 부인은 캐더린 부인하고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그러하옵니다, 영부인. 끝에서 둘째 되는 딸이옵니다. 막내 딸은 최근 결혼해 버렸사옵고 그리고 맏딸은 정원 어딘가에서 어떤 젊은 남자분하고 거닐고 있사옵니다만 그분은 얼마 안 있어 저희 가족 한 사람이 될 것이옵니다." "정원은 퍽 작은 편이 되시겠지요." 잠시 동안 침묵을 지ㅋ고 난 뒤에 캐더린 부인이 말을 되받았다. "로징즈하고는 비교가 되질 않겠지요, 영부인. 그러나 윌리엄 루커스경 댁보다는 훨씬 큰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 방은 여름 한철 저녁에는 불편한 거실이겠네요. 창문이 정서향이 돼 있으니까요." 베네트 부인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로는 이 방에 남아 있게 되질 않는다고 시인하고 나서 덧붙여 했다. "떠나오실 때 콜린즈 내외께선 안녕하셨겠지요?" "예, 잘들 있지요. 그저께 저녁에 두 사람을 만났었지요." 엘리자베드는 이제 부인이 샬로트에게서 온 편지를 끄집어낼 줄 알고 있었다. 부인이 찾아온 동기로서는 그 밖에는 있을 성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는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당황해지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은 매우 예절바르게 무엇인가 가벼운 것을 들지 않겠는가 뜻을 물어 보았더니 부인은 사뭇 단호하게 아무것도 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나서 그 길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베네트 양, 댁의 잔디밭 한귀퉁이에 사뭇 보기 좋은 야생림 같은 곳이 보이더군요. 당신이 나하고 같이 갈 마음이 있거든 잠깐 거기로 산책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외쳤다. "얘, 모시고 가 보아라. 그리고 영부인께 이곳 저곳 산책길을 안내해 드리도록 해라. 그리고 제 생각으로 그 암자는 마음에 드시리라 생각합니다." 엘리자베드는 시키는 대로 했으며, 파라솔을 가지러 자기 방으로 뛰어 갔다가 아래층에 있는 고귀한 손님한테로 내려갔다. 현관의 홀을 통과하면서 캐더린 부인은 식당과 응접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잠시 살피고 나서 품위 있는 방이라고 말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가 타고 온 마차가 현관 앞에 멈추어 있었고 엘리자베드는 그 속에 하녀가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잡목 숲을 통하는 자갈길을 조용히 걸어나갔다. 엘리자베드는 오늘따라 평소보다 훨씬 거만하며 불유쾌한 부인에게 말을 건네보려는 노력을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조카 되는 그분하고 똑같이 생각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고 그녀는 부인의 얼굴을 바라다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들이 잡목 숲으로 들어서게 되자, 곧 캐더린 부인은 다음과 같이 서두를 떼는 것이었다. "베네트 양, 당신은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본인의 마음이, 아니 당신 자신의 양심이 어째서 내가 왔는지를 가르쳐 줄 것이 틀림없을 거구요." 엘리자베드는 꾸밈없이 놀라움을 내보이면서 바라다보았다. "저어, 그건 잘못 생각하시고 계신 것이올시다, 영부인. 여기까지 오시게 된 이유를 저로서는 얼핏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부인은 매우 화난 투로 말했다. "베네트 양, 알아둬야 할 일이지만 날 우롱해서는 안되는 일이에요. 당신 쪽에서 제아무리 불성실한 태도로 취해도 내 쪽은 그렇지가 않아요. 원래 내 성격은 성급한 점과 솔직한 점에서 남들의 상찬을 받고 사는 사람이오. 현재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서도 거기에서 한 걸음도 물러설 생각은 않고 있는 거예요. 불과 며칠 전에 정말 놀랍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려 왔어요. 당신의 언니는 매우 유리한 결혼을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당신 엘리자베드 양도 그와 너무도 비슷하게 바로 내 조카, 어김없는 내 조카인 다아시 하고 곧 결혼하리라는 소문이 있다고 듣고 있었고, 그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그 사람을 욕되게 하고 싶지가 않지만, 내 기분이 어떤가를 알려주고 싶어서 곧 여기로 올 결심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 일이 정말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고 계시다면." 짐짓 경악과 경멸로 얼굴을 붉히면서 엘리자베드는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오셨는지요? 또 어떻게 하실 의향으로 계시는지요?" "그러한 풍문은 전적으로 사실을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왔을 뿐예요." "저나 저의 가족을 만나시려고 롱본까지 찾아오신 것은." 엘리자베드는 사뭇 냉정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러한 뜬소문이 사실이라면." "만일이라뇨!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모른 체라도 할 참인가요? 자신이 애써 가며 퍼뜨린 결과가 아닌가 말예요? 그래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그런 풍문을 모른다고 말하기요?" "그런 일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런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도 있겠소?" "전 영부인만큼이나 솔직하다고는 말해 치울 수가 없어요. 영부인께서 아무리 질문을 하신다 해도 저에게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 견딜 수가 없는 일이오. 베네트 양, 납득이 가도록 말해 주시오. 그래 내 조카가 그대에게 청혼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영부인께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 사람에게 이성을 가진 한에서는 마땅히 그래야지요. 그러나 그대의 기교나 유혹 때문에 한때 정신이 나가 버려서 자신이나 일족에 대해 과연 어떤 의무가 있는가를 잊고 는지도 모를 일이죠. 당신이 그 사람을 꾀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저로선 절대로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에요." "베네트 양,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요? 난 그런 식의 말버릇에는 익숙해 있지 않을 사람이요. 난 이 세상에선 그에게는 제일 가까운 친척이므로 그에 대한 중요한 문제는 죄다 알 권리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저에 대한 것을 아실 권리는 안 가졌을 것으로 전 알고 있어요. 더우기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저로 하여금 명백히 말하게 만들 수도 없을 거예요."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도록 하오. 그대가 자기 신분에 넘치게 바라고 있는 이번 혼담은 절대로 성립이 안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아니, 절대로. 다아시 씨는 내 딸하고 약혼을 하고 있는 거니까. 자아, 이래도 할 말이 있소?" "이 말씀만 해두겠어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분께서 저에게 청혼하리라고 생각하실 이유가 없으실 게 아니에요." 캐더린 부인은 일순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의 약혼은 특별한 경우지요. 어릴 적부터 짝지우기로 했던 거예요. 그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어머니께서도 바라셨던 일이었구요. 그애들이 아직 요람 신세를 지고 있을 때부터 우린 이런 식으로 연분을 맺어 주기로 생각했었죠.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이런 식으로 연분을 맺어 주기로 생각했었죠. 그랬던 것이 지금에 와서 우리 자매의 염원이 성취될 때쯤 해서 집안도 우리보다 못하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없고 우리 일족하고는 동떨어진 그런 한 젊은 여성에게 방해를 당하고 말다니! 그래 당신은 그 사람의 집안끼리의 소망이라든가 나아가 드 버그 양과 그 사람 사이에 맺어진 묵계 같은 것은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는 건가요? 절도 있는 태도라든가 아량 같은 감정은 전혀 안 가졌다는 건가요? 어릴 적부터 그 사람이 종매와 결혼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 당신 귀에는 안 들리던가요?" "예, 들었어요. 그 전에도 들은 적이 있구요. 그런데 그것이 저에게 어쨌다는 거지요? 제가 조카하고 결혼하는 데 이의가 없다면 설령 그분의 자당과 영부인, 사이에 드 버그 양과 혼인시킬 희망을 가졌었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저에게 방해될 일은 없는 거예요. 두 분께서는 그 결혼 계획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셨을 줄 믿고 있어요. 다만 그 완성은 전혀 딴 사람이 맡게 되는 일이지요. 만약 왜 그 밖의 사람을 선택해선 안된다는 건지요? 그리고 그분이 만약 절 선택하셨다면 전들 받아들이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명예, 예의, 사려 분별 아냐, 이익이 그걸 금하니까 그렇지. 그래요, 베네트 양, 이익이 문제죠. 만약 당신이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되는 사람들의 의향에 반해 가며 제멋대로 하다간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의를 받기란 기대하기 어렵죠. 그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경시와 멸시를 받게 마련이오. 이 연분은 수치스런 것이 될 것이며 당신의 이름은 이후엔 우리 입에 오르지도 않을 거요." "이건 정말 큰 불행이에요." 엘리자베드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다아시 씨의 부인이 되는 날이면 그 입장에 따르게 마련인 굉장한 행복을 소유할 게 틀림없으므로 전체적으로 후회할 일은 별로 없을 걸로 알아요." "이 얼마나 완고하고 완강한 여자일까! 오히려 이쪽이 부끄러워지는군! 그래 이게 바로 지난 봄에 친절을 베푼 데 대한 감사하다는 표시인가? 그 당시 일에 대해선 아무런 의리도 안 느낀다는 건가? 어서 앉기나 해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일은 베네트 양,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어떤 일이 목적을 달성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온 것이며, 난 또 어떤 일이 있어도 단념은 안하는 성미죠. 실망을 참고 견디는 습관은 나에겐 없어요." "그렇다면 영부인의 현재 입장은 더욱 딱한 것이 되고 말 거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전 제 마음을 바꾸어 먹을 수는 없거든요." "남의 말을 방해하지 말아요! 잠자코 내 말을 들어 보기나 해요. 우리 딸과 조카 두 사람은 천생연분인 거요. 외가 쪽은 다같이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았고 친가 쪽은 설사 작위는 없어도 존경받을 만하고 명예스러운 오랜 집안 출신이라오. 재산은 쌍방간 말할 필요도 없구요. 두 사람은 저마다 집안간 여러 사람들의 뜻으로 결합되어야 할 운명인 거예요. 그 사이를 무엇이 갈라놓겠다는 것일까? 기세도 인척간도 재산도 제대로 못 가진 젊은 여성이 건방지게 권리를 주장하다니! 이걸 어떻게 참으라는 것이지? 이런 일을 하게 내버려둬선 안되는 거요! 만약 그대가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 분별이 있다면 자기 자신이 자라났던 세계 밖으로 나오고 싶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요." "조카님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전 제 자신이 그 세계 밖으로 나갔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그분은 신사이시고 저도 또한 신사의 딸입니다. 그점에 있어서는 평등한 거예요." "사실이오. 그대는 분명 신사의 딸이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는 어떤가요? 그대의 이모부와 이모는 과연 어떠하지요? 어떠한 지위의 사람들이란 걸 우리들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저의 집안이 어떻든간에."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영부인의 조카님께서 이의가 없으시다면 부인껜 상관 없으실 줄 알아요." "정확하게 말해 줘요, 그 사람하고 약혼했는지 아닌지를?" 엘리자베드는 단지 캐더린 부인에게 만족을 줄 심산이었더라면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겠지만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그녀는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직 안했어요." 그 말을 듣자 캐더린 부인은 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나아가 그러한 약혼 같은 건 앞으로도 절대로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을까요?" "그런 식의 약속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베네트 양, 난 지금 너무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겠소. 난 그대를 좀더 사리에 분명한 젊은 사람으로 생각해 왔어요. 그렇다고 나란 사람이 뒷걸음을 치리라고 잘못 생각하지는 말아 줘요. 내가 원하는 약속은 나에게 해줄 때까지는 난 이곳을 떠나지 않을 작정이오" "그런 약속은 전 절대로 안하겠습니다. 위협 당한다고 해서 깡그리 이치에 닿지 않는 짓을 할 사람이 아니올시다. 영부인께선 다아시 씨와 댁의 따님과의 결혼을 바라고 계시겠지만 만약 원하신 대로 제가 약속을 한다고 해서 두 분의 결혼이 더욱 쉽게 이뤄질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령 그분이 절 사랑하고 계실 경우, 제가 그분의 손길을 거절했다고 하면 그분은 그 손길을 그분의 종매에게로 넘겨 주게 될 것 같은 가요? 말씀드려 두겠습니다만, 캐더린 부인, 이번 부탁 그 자체가 원래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그런 터무니없는 부탁을 뒷받침하는 그 논리가 시시하게 여겨집니다. 그리고 저런 사람이 그런 식의 설득으로 움직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저의 성격을 대단히 잘 모르시고 계시는 거예요. 조카님께서 자신의 문제에 영부인께서 간섭하시는 것을 어느 정도로 인정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영부인께서 저의 문제에 관여하실 만한 권리는 못 가지고 계시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이 문제로 해서 절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어요. 절대로 끝났다고 생각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내세웠던 이의에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일이 있어요. 난 댁의 막내동생이 수치스럽게 줄행랑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지요. 그 청년이 동생하고 결혼하게 된 것은 댁의 아버님과 외숙부가 돈을 들여가며 이럭저럭 주물럭거린 결과란 것까지 다 알고 있어요. 그래 그런 여자가 내 조카의 처제가 될 수 있는 걸까요? 그 여자의 남편, 즉 작고 하신 아버지의 집사 아들이 조카의 손 아래 동서가 될 수 있다는 건가요? 천만의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펨벌리의 청아하고 한가한 취향을 이토록 더럽혀 놓아야 한단 말인가요?" "이젠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겠죠" 그녀는 분개해서 대답했다. "부인께선 절 모욕하신 거예요. 이제는 집에 돌려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일어섰다. 캐더린 부인도 따라 일어나서 두 사람은 되돌아갔다. 부인은 노기충천해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내 조카의 명예도 신용도 아무렇게 돼도 좋다 그 말인가요! 무정하고 이기적인 여자이구먼! 당신하고 결혼하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 사람들 앞에다 수치를 드러내 놓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캐더린 부인, 전 이젠 더 드릴 말씀이라곤 없습니다. 저의 기분은 그만하면 아시겠지요." "그래 끝내 그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건가요?" "그런 말씀은 안드렸습니다. 전 제 생각으로 부인이나 혹시 저하고는 전연 관계가 없는 아무나 상관할 것 없이 저의 행복이 될 수 있다면 행동하기로 결심했을 뿐입니다." "좋아요. 그래 끝까지 내 원을 안 들어 주겠다 그 말이지요. 의무, 명예, 감사 같은 것들이 요구하는 것에는 승복 않겠다 그 말이지요. 집안을 통틀어서 그의 평판을 밑바닥까지 내려뜨리고 그 사람을 세상 전체의 경멸의 표적으로 만들고 말겠다는 결심인가 보죠" "의무고 명예고 그리고 감사고간에" 엘리자베드는 대답했다. "현재 입장으로는 저에게 대해서는 아무것도 주장할 권리가 없습니다. 제가 다아시 씨와 결혼한다 해도 그 어느 원칙이고 위배되는 건 아니니까요. 더 나아가서 그분 집안의 유한이라든가 세간의 분개라든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설령 집안의 유한을 그분과의 결혼으로 해서 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저로선 조금도 상관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한 덩어리가 돼서 절 경멸할 만큼 상식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게 당신의 진정한 생각이구료! 최후의 결의인 거지요! 대단히 훌륭하오. 이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게 됐어. 베네트 양, 자기의 양심이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못 써요. 난 시험해 보려고 왔을 따름이니까. 어째 사리가 통하는 줄 알고서 찾아왔었는데. 그렇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내 생각대로 해 보여 주고 말 테니까." 이런 식으로 캐더린 부인은 말을 계속해 나갔으나 이윽고 두 사람이 마차 문 있는 데까지 왔을 때 갑자기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난 작별 인사를 안하겠소, 베네트 양. 어머니에게 안부도 안 드리기로 하구요. 당신네는 그럴 만한 값어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말요. 난 심히 불쾌하오" 엘리자베드는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부인한테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권해 볼 생각조차 않고서 자기 혼자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2층으로 올라왔을 때 마차가 떠나가는 소리가 들려 왔다. 화장실 입구에서 어머니가 초조해 하며 그녀를 맞아들였고 캐더린 부인이 왜 안으로 들어와서 쉬지 않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그렇게 하시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딸이 그렇게 말했다. "꼭 가야 하신대" "정말 보기에도 너무 훌륭하셨어! 여기까지 찾아 주시다니 너무너무 정중하신 거야! 그런데 콜린즈 내외가 잘 있다고 안부 정도 전하러 오셨던 걸까. 어디엔가 가시는 도중 같아 보였는데. 메리튼을 지나가시다가 갑자기 널 만나 보고 싶어지신 거겠지. 너에게 특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야, 리지야?"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엘리자베드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 이야기는 도저히 입 밖에 낼 성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ff 57 이 뜻밖의 방문이 엘리자베드를 빠뜨린 혼란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힐 수가 없었으며, 몇 시간 동안 쉴새없이 이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캐더린 부인은 다아시와 그녀가 약혼해 버릴 거라 추측하고 그것을 만류시키기 위해 노고를 돌보지 않고 로징즈에서 우정 이곳까지 왔던 것 같았다. 하긴 이치에 맞는 계획인 것이다! 그러나 약혼의 풍문이 어디에서 나오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엘리자베드로선 알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그가 빙리의 친구며 그녀 자신이 제인의 동생이므로 혼담 하나가 정해지면 모두들 다른 하나가 더 있었으면 하고 원하고 있을 무렵이어서 자연 그러한 생각도 나옴직하다고 그녀는 생각을 돌려보았다. 언니가 결혼하게 되면 자기가 그와 둘이서 더욱 자주 만나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이웃 루커스 집안의 사람들이(그들로부터 콜린즈 부인에게로 보내 온 편지 내왕으로 그 풍문이 캐더린 부인한테까지 가 닿게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었지만) 자기가 언제쯤인가 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는 사실은 거의 확정적이며, 곧 그렇게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고 판단한 것에 불과한 일이다. 그러나 캐더린 부인이 했던 말을 여러 모로 궁리해 본 결과, 간섭을 끝까지 해내고 말겠다는 끈질긴 집념이 어떤 중대한 결과를 몰고 오게 될는지 적잖이 불안한 심정이 들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을 방해해 버리겠다는 결심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이 자기 조카에게 어떤 신청을 꾀하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엘리자베드는 생각했고, 그리고 자기와의 결혼에 따르게 마련인 여러 가지 해악을 먼저번과 같이 설명하면 그가 과연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지 그녀로서는 잘라 말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가 이모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또 이모의 판단에 얼마만큼이나 복종하는 것인지 그것을 명백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기보다는 그 사람 쪽에서 부인을 더 높이 평가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며, 나아가 그 이모라는 사람이 그 사람의 일족과는 동떨어지게 불균형한 근친을 가진 사람하고 결혼하게 되는 경우의 불행을 낱낱이 늘어놓음으로써 으뜸가는 그의 약점을 찌르고 말 것이 또한 확실했다. 위엄이란 점에 그토록 중점을 두는 구로서는 엘리자베드의 눈에는 박약하며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말들 속에는 역시 선량한 양식과 확고한 분별이 내포돼 있다고 느낄 법도 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보여 주었던 것처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망설이고 있다면 그처럼 가까운 집안 사람한테서 충고 받거나 간청 받게 되기만 하면 의문은 송두리째로 해결되고, 그로 하여금 당장 위엄이 추락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결의를 굳혀 줄 게 아니겠는가. 그렇게 되는 날이면 그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 것이다. 캐더린 부인은 귀로에 런던에 들렀다가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네더필드에 오리라는, 빙리와의 약속은 무너질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변명이 만약 며칠 사이에 친구분에게 전달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은가를 명백한 거야. 그때가 되면 그분의 절조에 대한 기대나 희망은 다 단념하고 말 거야. 나의 애정과 손길을 얻을 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때에 나에 대한 애석한 생각만으로써 만족하고 있다면 나 역시 그분을 아쉬워하는 생각을 말아야지.' 방문객이 누구였던가를 들었을 때의 가족의 딴 사람들의 놀라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들 역시 베네트 부인의 호기심을 가라앉힌 정도의 추측만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일로 해서 그 이상의 성가신 질문을 받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편지를 손에 쥐고 서재에서 나오는 아버지와 마주치고 말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리지야 마침 널 찾으로 가는 참이었다. 내 방으로 좀 와 주도록 해라."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화제일까 알고 싶어지는 호기심은 그것이 아버지가 손에 쥐고 있는 편지와 무슨 관계라도 있지 않나 생각하니 더 한층 궁금해져 갔다. 캐더린 부인한테서 온 편지일지도 모른다고 불현듯 생각이 떠올랐고, 앞으로 듣게 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예상되자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난로 있는 데로 가서 두 사람은 자리잡았다. 이윽고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날 깜짝 놀라게 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주로 너에 관한 일이어서 너에게는 꼭 그 내용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난 지금까지 딸이 둘씩이나 결혼 직전에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구나. 우선 너의 매우 중대한 정복에 대해서 축하 인사를 해두 마." 그 편지가 이모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조카에게서 온 것이라고 일순 확신하게 되자, 엘리자베드의 뺨은 갑자기 달아올랐다. 그가 자신의 의중을 명백히 한 점을 기뻐해야 할 것인지 또는 그 편지의 수신인이 자기가 아니라는 점에 화를 내어야 할 것인가를 채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을 때 아버지가 계속해서 말했다. "너도 느끼고 있는 모양이구나. 젊은 여성들은 이러한 것들을 꿰뚫는 힘이 대단한 줄 알고는 있다만 네가 제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널 숭배하고 있는 인물의 이름은 맞히지 못할 거다. 이 편지는 콜린즈 씨한테서 온 것이다." "콜린즈 씨라뇨! 그분이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건가요." "물론 대단히 정곡을 찌른 말이다. 사람이 본래 좋고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루커스 집안 사람들한테서 들은 것 같은데, 먼저 내 큰딸의 혼례가 가까와진 데 대해서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 뭐라 말하고 있는가를 읽음으로써 내가 초조해 하는 것을 보고 즐길 애비는 아니다. 너에게 관계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이번 귀댁의 경사에 대해서는 저의 처와 더불어 소생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축의를 이와 같이 드리는 동시에 또 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말씀 암시 정도의 말씀을 덧붙여 드리는 바 올시다만, 이 역시 동일한 소식통에서 나온 사실이옵니다. 영애 엘리자베드 양께선 추측되는 바로는 언니의 바로 뒤를 이어서 곧 베네트란 성을 더 지니지 않게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의중의 반려자야말로 이 나라에서 최고 가는 귀현의 인사로 간주하며 너무나도 당연한 분이올시다.'" "누굴 지목하는 말인지 넌 알겠구나, 리지야?" "이 젊은 신사는 독특한 축복을 받은 분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것, 크나큰 재산, 고귀한 친척 그리고 거대한 성직수여권 등의 혜택을 두루 지니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유혹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드와 귀하께 경고의 말씀을 올리고자 하는 바는 이 신사의 신청에 무턱대고 응함으로써 자초할 재난에 대해서인데, 물론 귀댁에서는 목전의 이익을 놓치고 싶지는 않을 줄로 아옵니다." "그래 리지야, 이 신사란 사람이 누구겠는지 너 혹시 알겠느냐? 그러나 이제 곧 나오게 된다."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고 싶은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그분의 이모 되시는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이 이 연분을 과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근거를 저희들은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아시 씨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자아, 리지야. 이만하면 널 놀라게 해주었을 것 같은데. 콜린즈 씨나 루커스 집안 사람들은 하필이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이름만 들어도 거짓말이란 게 더욱 뻔해질 이름을 쳐들 게 뭐람? 여자를 보기만 하면 늘 헐뜯기 일쑤고 지금까지 한 번도 너한테 눈길을 돌려본 적이 없었던 다아시 씨 아니냐? 그럴수록 멋진 일이지!" 엘리자베드는 아버지와 함께 농담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마지못해 억지로 미소를 짓는 것이 고작이었다. 더우기 아버지의 재치가 이토록 흥을 깨면서 자기를 향했던 일은 전혀 없었다. "너 재미없느냐?" "재미있어요. 제발 더 읽어 주세요." "'지난 밤에 이 결혼이 아무래도 사실인 듯하다고 영부인께 말씀을 아뢰더니 그 자리에서 여느 때처럼 황송하옵게도 이 문제에 대한 감상을 들려 주셨습니다. 부인께서는 엘리자베드의 집안에 몇 가지 난점이 있다는 이유로 그와 같이 치욕스런 연분에는 찬동을 하실 의향이 절대로 없으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소생은 이 사실을 조속히 엘리자베드에게 알려주어서, 그녀와 그녀의 고귀한 숭배자가 바야흐로 하려 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시키고 정식으로 허가 받지 못한 결혼에 경솔하게 뛰어드는 일이 없게끔 노력하는 것을 저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콜린즈 씨는 나아가 이렇게 추가해 두고 있다. '소생은 친척 리디어의 슬픈 사연이 무난히 무마된 점을 충심으로 기뻐하고 있으며, 다만 마음 아픈 사실은 결혼 전에 두 사람이 동서했었다는 것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소생의 입장으로서는 두 사람이 결혼하자마자 귀하께서 그들을 귀댁으로 맞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부터는 소생의 지위에 수반되는 의무를 잊을 길이 없으며 또한 이것은 어안이 벙벙해지는 감정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덕을 장려하는 거나 다를 바 없는 일이어서 만약 소생이 롱본 교구의 목사일 것 같으면 전력을 다해 가며 반대했을 것입니다. 귀하께서는 틀림없이 그리스도교도로서 두 사람을 용서해 주셔야겠지만, 두 사람과의 상면은 거부해서 마땅했을 것이며, 아니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것 자체부터 기피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사내의 그리스도교적 용서의 사고방식인거다! 편지의 나머지 부분은 귀여운 샬로트의 근황이라든가 아들을 낳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씌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리지야, 넌 어쩐지 재미없는 표정이구나. 넌 새침을 떼면서 부질없는 소문에 대해 화내고 있는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은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나서 다음엔 이편에서 웃어 주는 것밖에 더 있겠느냐?" "아! 전 정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하지만 너무나 이상한 것 같아요!" "그렇다.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지.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을 택했다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전혀 무관심하고 넌 지독히 싫어하니 일이 즐거울 정도로 우습다는 거다! 붓을 들기가 죽도록 싫다만 이렇게 되고 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콜린즈 씨와의 편지 내왕을 끊을 수가 없구나. 아냐, 그 사람의 편지를 읽게 되면 위컴 이상으로 좋아지는 것을 어떡허니. 내 사위의 후안무치한 점과 위선을 난 퍽 높이 평가하고 있긴 하지만. 그리고 리지야, 이 소문에 대해서 캐더린 부인은 뭐라 말씀하시더냐? 동의 안하겠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찾아오셨더냐?" 이 질문에 딸은 웃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눈곱만큼의 의심도 품지 않은 채 한 질문이기에 아버지가 이 문제를 되풀이해도 그녀는 조금도 당황한 빛을 보이지 않았었다. 엘리자베드는 자신의 감정을 실제의 경우하고는 동떨어진 것으로 꾸며야 할 퍽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실은 울고 싶은데 웃고 있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그 나름으로 다아시 씨가 무관심했다고 말함으로써 더할나위없이 그녀를 슬프게 해놓고 말았다. 그녀 쪽에서는 아버지가 왜 이다지도 사리를 뚫어 보는 힘이 없는 것일까. 의아하기도 했으며, 또는 자칫하다가는 아버지가 너무나 적게 관찰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 쪽에서 너무 지나칠 만큼 많이 상상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ff 58 빙리 씨는 엘리자베드가 조금은 기대한 사과 편지를 친구한테 받은 대신, 캐더린 부인의 방문이 있은 며칠이 경과되지 않아서 다아시 씨를 롱본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찾아왔다. 베네트 부인이 그의 이모를 이미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할까 봐 엘리자베드는 순간적인 조바심 속에 앉아 있었는데, 그 얘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빙리는 벌써 제인하고 둘이만 있고 싶어했기 때문에 모두 함께 밖으로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가 그 제안에 동의했다. 베네트 부인은 산책하는 습관이 몸에 익어 있지 못했고, 메어리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지만 나머지 다섯이서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러나 빙리와 제인 두 사람은 곧 딴 사람들을 먼저 보냈다. 그들이 뒤로 처졌기 때문에 엘리자베드와 키티 그리고 다아시 셋이서 서로 상대가 되어 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세 사람 다 별로 입을 열지 않았다. 키티는 그 사람을 너무 어려워해서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말해 보려고 결의를 남몰래 굳히고 있었는데, 미상불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키티가 마리아를 찾아가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루커스 가 쪽으로 발걸음이 옮겨져 갔는데, 엘리자베드는 모두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보여서 키티가 두 사람을 앞서게 되자 큰 마음 먹고 그와 단 둘이서 걸어갔다. 이제야말로 그녀의 결의를 실행할 때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던 것이다. "다아시 선생님, 전 너무 제멋대로만 하는 사람이어서 저의 감정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기분을 상하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전 이젠 가엾은 동생에 대한 선생님의 다시없는 친절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 일을 알고 난 후부터는 사뭇 전 얼마나 고맙게 생가하고 있었던가를 꼭 말씀드리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어요. 저의 가족의 딴 사람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단지 저만이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서는 안될 일이겠지만"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다아시가 놀라움과 감동이 넘쳐흐르는 어조로 대답했다.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걱정거리도 될 수 있는 일이 당신 귀에까지 들리게 됐군요. 가디너 부인이 그렇게 믿지 못할 분인 줄은 몰랐는데요." "외숙모님을 책망하지 마세요. 선생님께서 그 일에 대해서 개입하셨다는 걸 리디어가 먼저 경솔하게도 저희들한테 누설한 거예요. 물론 저로서도 상세한 내용을 알기까진 마음이 편하질 못했지만요. 가족 일동의 이름으로 몇 번이고 감사 말씀을 드려요. 두 사람을 찾아내시느라고 그토록 애를 쓰셨고 그 많은 굴욕까지 잘 참아 주셨던 선생님의 넓으신 동정심에 대해서 말예요." "저에게 진정 감사하시려면, 혼자서만 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힘쓰겠다는 마음이 절 움직인 다른 동기에다 더욱 힘을 불어넣어 주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댁의 가족 여러분들께서는 저에게 아무런 부담을 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매우 존경하긴 합니다만 전 당신밖엔 생각한 일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는 매우 당황한 나머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상대방은 침묵을 했다가 한참만에 다시 시작했다. "당신은 너그러우신 분이시라 절 놀림감으로 만들지는 않으시겠죠. 그쪽의 기분이 지난 4월과 여전하시다면 그렇다고 곧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지닌 애정이나 소망은 한결같습니다만, 당신의 그 한마디로 이 문제에 대해선 전 끝까지 침묵을 지키겠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그의 입장이 예사롭지 않게 어색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당장 뭐라고 말을 해야만 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때를 놓치지 않고, 유창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언급했던 그 시기 이래로 자기 감정은 결정적인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그가 확실한 사실을 감사와 기쁨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를 이해시켰다. 이 대답이 가져다 준 그러한 행복감을 아마도 그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곧바로 그는 격렬한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가장 조리 있고 열의를 불어 넣어 가며 자기의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엘리자베드가 그의 눈길을 마주볼 수 있었다면 얼굴에 가득 넘쳐흐르는 진정한 기쁨의 표정이 그를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게 했는가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눈으로는 볼 수 없었을망정 귀로 들을 수는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증명해 주려고 자신의 감정을 펼쳐 보임에 따라 그의 애정의 정도는 시시각각 고귀한 것이 되기만 했다. 두 삶은 어느 쪽으로 걸어나가고 있는지 방향조차 잃은 상태였다. 생각하고 느끼고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아서 딴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곧 두 사람이 이와 같이 서로가 이해하게 된 것은 그의 이모의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의 이모는 집으로 가는 길에 런던을 통과하면서 어김없이 그를 찾아서 롱본에 들렀었다는 이야기며 그렇게 했던 동기, 나아가 엘리자베드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부인은 자기가 보기에 엘리자베드의 옹고집과 뻔뻔스러움을 특별히 드러낼 것으로 여겨지는 갖가지 표현들을 유달리 헐뜯어 가면서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엘리자베드가 거절했던 약속을 자기 조카한테서 따내려는 노력에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인에게는 불행하게도 바랐던 효과가 정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다아시는 말했다. "그것이 나에게는 희망을 가지라고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가져 볼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거든요. 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당신의 기질로서는 절대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저하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정해 버렸다면 그 사실을 캐더린 부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고백했을 게 아니겠습니까." 엘리자베드는 얼굴을 붉히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선생님은 저의 솔직한 심정을 잘 알고 계실 테니까 그런 짓을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직접 면전에 대놓고서 선생님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일도 있었으니까, 친척 되시는 분 앞에서 선생님 욕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니었을 거예요." "저한테 하셨던 말은 전부 당연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비난은 근거가 없고 잘못된 전제에 입각한 것이었더라도 그 당시에 당신에 대한 저의 태도는 제아무리 심한 꾸지람을 들어도 괜찮은 편이었으니까요.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지요. 그때 일을 생각할 땐 으례 혐오의 정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날 밤에 어느 쪽이 더 나빴던가를 책하는 경쟁은 그만뒀으면 해요. 엄밀히 따져 보면 어느 편이고 그 행동에 있어 실책이 없었던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로 저희들 둘은 서로가 예의바르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전 그렇게 쉽사리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말과 그날 저녁을 통한 저의 행위, 태도, 말버릇 같은 것을 회상한다는 것은 저에게 현재도 그렇지만 지난 몇 달 동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정말 적절했던 당신은 비난을 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좀더 신사답게 행동하셨던들' 하고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절 얼마나 괴롭혔는지 당신은 거의 상상조차 못할 겁니다. 바로 말해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그 말의 정당성을 인정할 정도로 이성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확실히 전 그 말이 그토록 강한 인상을 주리라고는 정말로 상상도 못했어요." "저로선 쉽게 믿어집니다. 그때 당신은 절 정상적인 감정이 전혀 결여되어 있는 남자라고 틀림없이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다른 방법으로 구혼했더라면 당신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것을 받아들이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당신이 말했을 때의 그 안색의 변화를 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 그 당시에 제가 했던 말을 되풀이하시지 마세요. 그런 회상은 아무런 소용이 되질 않으니까요. 확실히 해두지만 전 그 후 사뭇 그 일을 부끄럽게 여겨 왔던 거예요." 다아시는 그 편지에 대해 말했다. "그 편지로 해서... 그것을 읽고 나신 후부터 곧 절 좋게 생각하시게 된 것이었던가요? 그 편지를 읽으시고 내용을 얼마간이라도 믿으시게 되셨던가요?" 그녀는 그 편지가 자기에게 얼마만큼 효과를 줄 수 있었던가, 그때까지 마음에 품고 있던 편견이 점차 어떤 식으로 제거되어 갔던가를 말했다. 그가 말을 했다. "제가 쓴 편지가 당신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편지는 찢어 없애 버렸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두 번 다시는 읽고 싶은 심정이 나지 않을 대목이 꼭 한 군데, 특히 편지 첫머리에 씌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미움을 사도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한 대목을 전 몇 군데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의 애정을 지속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편지는 어김없이 불에 태워 버려야 하겠지만 저의 생각이 전혀 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는 볼 수 없는 이유가 저희들 사이에 있더라도 불에 태워 버렸기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할 만큼 쉽사리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 생각해요."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 편지를 썼을 당시 전 완전할이만큼 침착하고 냉정했다고 생각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화가 난 기분으로 썼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 그 편지는 화난 상태에서 쓰셨겠지만 끝 부분에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어요. 작별 인사 부분에 가서는 자애로운 마음씨 바로 그대로였구요. 그러나 편지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 마세요. 보내 오신 분과 받은 사람의 기분이 지금으로선 그 당시하고는 판이하다는 것이 되고 말았으니까, 그 편지에 따르는 불유쾌한 일은 깡그리 잊어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저의 철학을 얼마간 배우셔야 되겠어요. 과거는 즐거운 일만 생각하자는 게 저의 철학이지요." "그런 종류의 철학이라면 신용을 못하겠는데요. 당신의 추억은 전혀 비난할 만한 일이 없는 것이니까 그 추억에 의해 생겨나는 만족감은 철학에서 빚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더욱 좋은 일이 되겠습니다만 아무것도 후회할 일을 모르는 데서 온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의 경우는 그렇지가 못하거든요. 쫓아 버릴 수도 없으며 쫓아 버려서도 안되는 고통에 찬 추억이 쇄도해 오기 때문입니다. 전 지금까지 사뭇 이론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았지만 실천에 있어서 이기적인 인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라는 교육은 받았지만 저의 기질을 고치라고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높은 경지의 도의는 배웠습니다만 거만과 자부심만으로써 그것을 추구하게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불행히도 독자여서(오랜 세월을 동생 없이 혼자 지냈으니까요) 부모님이 절 너무 제멋대로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부모님께선 두 분이 다 좋은 분들이었지만(특히 아버지는 자비로왔으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셨지만) 절 이기적인데다 거만스럽도록 내버려두고 북돋아 주고 거의 가르쳐 주시기까지 했어요. 제 친척 일가를 빼놓고는 누구한테든지 아랑곳하지도 않고 그 나머지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업신여기고, 적어도 그들의 양식이나 가치를 내 자신의 것과 비교해서 경시하도록 말입니다. 여덟 살 때부터 전 그러한 사람이었고, 만약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엘리자베드가 나타나지 않았던들 사뭇 지금까지 그런 인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모든 것이 모두 다 당신 덕분입니다. 처음에는 몹시 괴로왔으나 다시없이 유익한 교훈을 당신이 저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당신 덕분으로 전 겸손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즐겁게 해주는 데 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시다면 선생님께선 제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물론 그랬었지요. 저의 허영심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전 당신이 저의 구혼을 바라고 또한 기대하고 계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태도가 혹시 실례일는지는 몰라도 제가 고의로 한 짓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의 마음을 혼란하게 해드리려는 생각은 아예 없었지만, 기분 내키는 대로 엉뚱한 일을 저지르게 되는 때가 가끔 저에겐 있는 것 같아요. 그날 밤 이후로 꽤나 절 미워하셨지요." "미워하다니요! 하긴 처음 한참 동안은 화났지만 저의 노여움은 바로 풀어졌습니다." "저희들이 펨벌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셨을까를 지금 생각해도 겁이 나요. 제가 거길 가서 절 많이 욕하셨겠지요?" "아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놀랐을 따름이지요." "그렇지만 따뜻한 마음씨에 접했던 저의 경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제가 그토록 굉장하게 정중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제 양심이 말했어요. 정직하게 말해서, 전 제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으리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아시가 대답했다. "그 당시의 저의 목적은 될 수 있는 대로 정중히 함으로써 제가 지나간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할 만큼 야비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비난을 귀담아들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당신의 용서를 구하고 저에 대한 오해도 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밖의 소망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뒤미처 따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당신을 만나고 나서 반 시간쯤 지나서였나 봅니다." 그리고 나서 조지아나가 그녀와 알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더라는 이야기와 돌연 그것이 중단되어 실망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리디어를 찾기 취해 더비셔에서 자기의 뒤를 따라오기로 결심했던 것은 그가 아직 여관을 떠나기 이전의 일이었으며, 거기서 그가 진지하게 생각에 잠기곤 했던 것도 결국 그러한 목적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노고를 계산해 넣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하고 그것은 서로간에 너무나도 뼈아픈 화제가 되기 때문에 그 이상 소상히 말하지 않기로 했다. 몇 마일을 천천히 걷고 난 끝에 이야기가 빠르게 돌아가는 바람에 깨닫지를 못했지만 이윽고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미 집에 돌아가 있어야 할 시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빙리 씨와 제인은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깜짝 놀라면서 이야기는 이내 그 두 사람에 대한 일로 옮아갔던 것이다. 다아시는 두 사람의 약혼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가 벌써 그에게 그 일에 대한 보고를 일찌감치 끝냈던 것이다. "놀라셨는지 아닌지 꼭 물어봐야겠는데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전혀. 제가 여길 떠나면서 곧 그렇게 될 걸로 알고 있었어요." "말하자면 허가를 내려 주신 게로군요. 그런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허가라는 말을 듣자 그가 큰 소리로 질렀지만 대충 사정이 그 정도였으리라고 그녀에게는 짐작이 갔다. "제가 런던으로 떠나던 전날 밤 그에게 한 가지 고백을 했는데요, 그것은 이미 옛날에 했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일어났던 자초지종을 다 그에게 말해 줌으로써, 전에 그의 문제에 간섭한 것이 터무니 없이 주제넘은 짓이었음을 주지시켰습니다. 그는 대단히 놀라더군요. 그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제가 평소에 당신 언니가 그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제 자신의 계산 착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언니에 대한 그의 애정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을 전 금방 알 수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드는 친구를 좌지우지하는 그의 소박한 태도에 웃음이 저절로 나오게 되었다. "선생님 자신의 관찰에서 하신 말씀이셨던가. 선생님께서 언니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말이에요, 아니면 혹시 지난 봄에 저한테서 들으신 것을 단지 알려 드린 것에 불과한 건가요?" "전자의 경우입니다. 최근에 두 번 댁을 방문했었는데 그 동안 전 언니를 자세히 관찰했습니다. 그분의 애정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보증하셨기 때문에 그분께서 곧 확신하신 게로군요." "그렇습니다. 빙리는 본래 꾸밈없고 겸허한 사람입니다. 워낙 걱정스런 일에 있어서는 소심한 나머지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지 못하고 그저 저에게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꼭 한가지 일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때문에 한참 동안 그를 화나게 해주었지만 그것도 무리가 아닌 일이었습니다. 언니께서 지난 겨울에 3개월 가량 런던에 가 계셨는데 제가 그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계획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사실을 더 이상 감추어 둘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정말 화를 내더군요. 그 노여움도 언니의 감정에 대한 의구심이 싹 가시게 되자, 그 이상 지속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절 용서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는 빙리 씨가 매우 유쾌한 친구이며, 남에게 쉽사리 이끌리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고 평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억제했다. 다아시 씨야말로 앞으로 남의 웃음을 사는 일을 배워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 그렇게 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물론 자기 몫보다는 못할 빙리의 행복을 기대하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얘기를 계속했다. 현관에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59 "얘 리지야, 너 어디까지 걸어갔다 왔니?" 엘리자베드가 방안으로 들어서자 곧 제인에게서 받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식탁에 자리잡자 모든 사람들로부터 받은 질문이었다. 둘이서 걷다가 보니 어느 틈에 어딘가도 모르는 곳까지 가 버렸다고 대답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녀는 말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기는 했지만 그 일로 해서 또 다른 일로서도 진실을 추측해 내기란 어려웠다. 그날 밤은 별일 없이 조용히 보낼 수가 있었다. 인정받은 연인들은 끊일 사이 없이 이야기를 나눴고, 반면 인정받지 못한 연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아시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행복이 넘쳐흐르는 기질이 아니었으며, 엘리자베드는 마음이 혼란해 있었지만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그러하다는 상태임을 알 뿐이었다. 왜냐하면 당장의 당혹함도 문제지만 그녀 앞에는 다른 어려운 일이 가로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사실이 알려지고 말 경우에 가족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지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제인을 제쳐놓고 그에게 호감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한 그들에게는 그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것으로서도 제거해 낼 수 없는 혐오의 정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밤에야 제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남을 의심하지 않지만, 대체로 제인은 좀처럼 이런 경우는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너 지금 농담하고 있구나, 리지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다아시 씨와 약혼하다니! 안돼, 안돼, 난 안 넘어간다. 안된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다." "시작부터 이건 정말 너무해요! 언니만 잔뜩 믿었었는데, 언니마저 안 믿어 준다면 누가 믿어 주겠수. 언니, 나 정말 진지한 거예요. 사실만을 얘기하고 있는 거니까요. 그분은 날 사랑하고 계시고 우리들은 약혼했어요." 제인은 의아스럽게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아, 리지! 이럴 수가 없다! 난 네가 그분을 얼마나 싫어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단다." "언닌 이번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계세요. 그 일은 완전히 잊어 버려야 해요. 나도 지금처럼 그분을 사뭇 사랑해 왔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이런 경우에 기억이 좋다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에요. 이번을 끝으로 난 지난 일은 회상하지 않기로 했어요." 베네트 양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더욱 더 진지하게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시켰다. 제인이 외쳤다. "놀랐어!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렇지만 이젠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구나. 얘 리지야, 난 축하해 주고 싶은 거야. 아냐. 정식으로 축하한다. 그렇지만 확실하냐? 이런 질문하는 걸 용서해 줘. 그래 그분 하고 같이 살면 너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으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 가는 부부가 되겠다고 벌써 우리 사이에선 정해 버린 걸요. 그런데 언닌 마음에 드셨나 몰라? 그런 친척을 맞게 되니 좋으시겠죠?" "너무너무 좋다. 빙리나 나에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니. 우린 생각은 해봤다만 쉽게 될 일 같지가 않다고 말해 왔어. 그래 너 진정으로 그분을 죽도록 사랑하고 있는 거냐? 얘, 리지야, 애정 없는 결혼은 신중해야 하는 법이다. 네가 마땅히 느껴야 할 만큼의 애정을 갖고 있다고 확신할 수가 있냐?" "아, 있구말구요! 자초지종을 말해 버리면 당연 이상의 애정을 내가 느끼고 있다고 언니는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무슨 뜻이냐?" "그런데 난 빙리 씨보다는 그분을 더 사랑하고 있다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언니가 화내 실까 두렵지만" "얘, 너 제발 좀 진지했으면 한다. 난 지금 너하고 매우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거야. 빠짐없이 내가 몰랐던 일을 다 얘기해 주려무나. 너 언제부터 그분을 좋아하게 됐는지 들려 줄래?" "너무나 서서히 그렇게 돼버리고 말아서 언제 시작된 것인지를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펨벌리의 아름다운 저택을 처음 봤을 때부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진지해지라고 다시 한 번 부탁을 하자 이윽고 그녀는 엄숙하게 애정을 보증함으로써 제인을 납득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점이 확인되고 나자 베네트 양은 그 이상 아무것도 바랄 수가 없었다. 제인이 말했다. "자아, 이젠 난 정말 행복한 거야. 네가 나나 다름없이 행복하게 되었으니까. 난 늘 그분을 존경했던 거야. 그분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라도 늘 그분을 높이 평가했을 거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빙리의 친구로서 너의 남편이지만 내게 더욱 중요한 사람은 빙리와 너뿐이다. 하지만 리지야, 넌 사람이 너무 엄큼했어, 나에게까지 감추고 있다니. 펨벌리나 램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말해 주질 않았잖니! 그것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은 딴 사람을 통해서였지 네 입을 통해서가 아니란 말야." 엘리자베드는 비밀로 한 동기를 털어놓았다. 전에는 빙리의 이름을 들추기가 싫었었고 그녀 자신의 감정이 결정된 상태도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에 다아시의 이름도 피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쯤 되고 보면 그가 리디어의 결혼에 한 몫 끼여들었었다는 사실을 언니에게 감추어 두고 싶지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음으로써 그날 밤의 나머지 대화도 이어나가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창가에 서서 베네트 부인이 외쳤다. "아니 이럴 수가! 저 불쾌한 다아시 씨가 어쩌자고 우리 빙리하고 이리로 오는 거지! 그래 사시장철 우릴 못 살게 구니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 사냥을 간다든가 딴 일을 할 것이지 어쩌자고 우릴 찾아와서 방해하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을 어떡하면 좋을까? 리지야, 너 또 그 사람하고 산책이라도 가서 빙리 씨의 방해가 안되도록 해 다오" 엘리자베드로서는 이토록 편리한 제안을 받고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어머니 쪽에서 그에게 항시 그런 형용사를 붙이는 데 대해서는 몹시 불쾌했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이내 빙리는 의미심장하게 그녀 쪽을 바라다보고 온정 어린 악수를 청해 왔기 때문에, 그가 좋은 소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베네트 부인, 리지가 오늘 미아가 될 만한 사잇길이 이 근방에 이젠 없겠습니까?" 베네트 부인이 받았다. "다아시 씨와 리지 그리고 키티에게 권하고 싶은데요. 오늘 아침에는 오컴 산으로 산책 가도록 해요. 쾌적한 산책이 될 것이고 다아시 씨는 그쪽 경치를 아직 못 보셨을 테니까요." 빙리 씨가 대답했다. "딴 분들에게도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나 키티에게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안 그럴까, 키티?" 키티는 차라리 집에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다아시는 산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몹시 보고 싶다고 호기심을 드러냈고 엘리자베드는 잠자코 동의했다. 준비를 하려고 2층으로 올라갔더니 베네트 부인이 뒤따라와서 말했다. "리지야, 너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 되고 말았구나. 네가 싫어하는 남자를 떠맡아 버렸으니. 그렇지만 넌 괜찮겠지. 이 모두가 네 언니를 위해서 그러는 거다. 더우기 그 사람한테 말을 가끔씩만 건네도록 하고 그 이상은 필요치 않으니 무리해 가면서까지 불편한 생각은 하지 말도록 하여라." 산책하는 동안에 그날 저녁으로 베네트 씨의 승낙을 얻기로 결정을 보았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의 동의는 자기가 도맡기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그녀로서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그만한 재산과 지위 같으면 그 인물에 대한 어머니의 혐오의 정을 깨뜨릴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가끔 떠오르기도 했다. 정작 어머니가 이 연분에 대해 대단히 반대하고 나서든, 아니면 맹렬히 기뻐 날뛰는 양단간이겠지만, 어머니의 태도는 미상불 양식이 있다고 칭찬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녀로서는 어머니가 강하게 반감을 폭발시키는 것에 못지 않게 기쁨에 들뜬 그런 말도 다아시 씨에게는 들려 주고 싶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베네트 씨가 서재로 물러나자 다아시 씨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의 뒤를 쫓는 것을 그녀가 보았을 때의 그녀의 마음의 갈등은 더욱 격렬해 갔다. 아버지의 반대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불행하게 될 것이며, 그것마저 자기 때문인 것이며 아버지에게 가장 귀여운 자식인 자기가 결혼 상대 선택 방법으로 하여 아버지를 괴롭혀 드리고, 자신의 결혼 때문에 아버지께 눈물과 유한을 남길 것이라고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비참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다아시 씨가 재차 나타나서 그를 보았을 때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기분이 홀가분해지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그는 그녀가 키티와 함께 앉아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서면서 뜨개질하는 그녀를 칭찬하는 체하면서 속삭였다. "아버님에게 곧 가 보도록 하시오.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녀는 그 길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자못 엄숙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방안을 거닐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리지야, 넌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런 남자를 받아들이다니 너 정신 나간 게 아니냐? 넌 평소에 그 사람을 미워해 왔던 게 아니냐?" 바로 그때 그녀는 이전의 자기의 생각이 더욱 이성적이었고 그 표현이 좀더 온건한 것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생각에 잠겨 보는 것이었다. 만약 그랬었던들 지금 와서 몹시 어색한 변명이나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될 게 아니겠는가. 그러나 지금 당장 그 짓이 필요하므로 그녀는 적잖이 혼란해지면서 다아시 씨를 사랑하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분명히 말했다. "말을 바꿔 하자면 넌 그 사람을 네 남편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단 말이지. 확실히 그 사람은 부유한 처지니까 넌 제인보다도 더 훌륭한 옷이나 마차를 가질 수가 있겠지. 그러나 그것만으로 네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엘리자베드가 물었다. "또 다른 반대 조건이 있으세요?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계시는 일 외에 말씀이에요?" "전혀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지나치게 거만을 떨고 불쾌한 사람이란 걸 우리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터다. 하긴 네가 진정 그를 좋아하고 있다면야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 눈에는 눈물이 괴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전,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해요. 전 그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사실은 그분은 도리에 벗어나는 그런 자부심 같을 것을 갖고 있지 않아요. 매우 부드러운 분이에요. 그분의 사람됨을 아버지께선 모르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분 말씀을 그런 식으로 하셔서 절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 아버지가 말했다. "리지야, 난 일단 승낙을 해두었다. 그와 같은 사람이 고개를 숙여 가며 청을 해오게 되면 나로선 무엇 하나 거절할 용기가 없어지고 마는구나. 네가 그 사람을 남편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면 지금 너에게도 승낙을 해주마. 그러나 충고해 두겠다만,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면 어떻겠니. 난 너를 잘 알고 있다. 리지야. 난 네가 남편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거나 남편을 너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우러러보지 않을 때는 행복해질 수도 없고 존경받을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의 발랄한 재간이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했다가는 너를 최대의 위험 속에 몰아넣고 말 것이다. 불명예나 불행을 면할 길이 거의 없을 게야. 리지야, 네가 생애의 반려자를 존경 못하는 꼴을 이 아버지가 보지 않도록 해 다오. 넌 네가 하려는 일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엘리자베드는 한층 더 감동해서 열심히 그리고 숙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다아시 씨만이 진정 자신의 평가가 점차 변해져 왔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그이 애정이 또한 하루에 생겨난 게 아니라 수개월을 두고 위험의 시련에 견디어 온 것임을 알리고, 그 사람의 장점을 샅샅이 늘어놓음으로써, 끝내는 아버지의 불신을 극복해 버리고 그 혼담을 승복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가 말을 다 마치고 나자 말했다. "그렇다면 난 이젠 더 할 말이 없구나. 사정이 정 그렇다면 그 사람은 너에게는 천생연분인 거다. 그만큼 가치가 큰 인물이 아니라면 난 널 넘겨 줄 수가 없느니라. 리지야." 더욱 인상을 좋게 하려고 그녀는 다아시 씨가 자진해서 리디어에게 베풀어 준 일을 들려 주었다. 그 말을 듣자 아버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말 오늘 밤은 기적의 밤이다! 그래 다아시가 모든 일을 다 해치우고 말았구나. 혼담을 성립시키고 돈을 내주고 그 사내의 빚을 대신 갚아 주고 장교로 임명까지 해주고 말았다는 거냐! 그건 더욱 좋구나. 물심 양면의 걱정거리가 없어지는 셈이로구나 너의 외숙부가 그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갚아 주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연애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그대로 행동하고 마는 것이다. 내가 내일 돈을 갚겠다고 제안해 보겠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너를 사랑한다고 외치며 뛰어다닐 게고 그걸로 그 문제는 끝장이 나고 말겠지." 그리고 그는 2, 3일 전에 콜린즈 씨에게서 온 편지를 읽었을 때 그녀가 당황해 하던 일을 회상해 내면서, 그녀를 보고 한참 동안 웃고 나더니 이윽고 그녀더러 나가도 좋다고 했다. 그녀가 방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그가 말했다. "혹시 어떤 젊은 남자들이 메어리나 키티 일로 해서 찾아오거든 이리로 안내하도록 하여라. 난 지금 한가하니까." 엘리자베드의 마음은 몹시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반 시간쯤 자기 방에서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가 짐짓 침착해진 기분으로 모두 있는 곳으로 나오게 되었다. 모든 일이 지금 끝난 판이라 명랑해질 겨를이 없었으나 그날 밤은 조용히 지나가고 말았다. 이젠 더 걱정해야 할 중대사라고는 없으니까 이럭저럭 평온과 단란한 즐거움을 맛보게 되겠지. 밤이 이슥해서 어머니가 화장실로 올라갔을 때 그녀는 어머니의 뒤를 따라가서 이 중대한 사실을 전해 주었다. 그 결과는 전혀 이상한 상태고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처음 듣자 베네트 부인은 앉은 채로 움직일 줄 모르며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원래 가족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든가 누군가가 연인으로서 딸 중의 하나를 찾게 되면 그것을 믿는 데 있어서 꾸물거릴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러면서도 몇 분이 지나고 또 지나도 귀에 들어온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제정신을 되찾게 되었으며 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로 안절부절 불안하게 몸을 움직였으며,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대경실색하고 나서 자신을 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럴 수가! 어떻게 된 걸까! 말을 못하겠네! 아니 다아시 씨! 그걸 누가 생각했겠어? 사실일까? 아, 귀여운 내 자식 리지야! 너 이젠 부자가 되겠고 지체도 높아지겠구나! 용돈이랑 보석이랑 마차랑 다 갖게 되겠구나! 제인 것은 비교가 안되겠다. 문제가 안돼. 난 너무 행복하다. 너무 행복해! 그렇게 매력 있는 남성! 그렇게 잘 생기고! 그렇게 키도 크고! 아, 귀여운 리지야! 내가 어쩌자고 그런 분을 싫어했던가, 제발 나 대신 사과를 해주려무나. 그분께서도 너그럽게 봐주시겠지만. 귀여운 내 딸 리지! 그래 런던에 저택도 있고! 하나에서 열까지 다 훌륭하고! 딸을 셋을 치웠어! 일 년에 1만 파운드! 아, 하느님!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미칠 것만 같구나" 이 정도면 벌써 어머니가 승인한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와 같은 감정의 발로를 자기 혼자만 들은 것을 기뻐하면서 엘리자베드는 바로 그 장소를 뜨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가 자기 방에 들어가서 3분도 채 못되었는데 어머니가 그녀 뒤를 따라 들어 섰다.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얘야. 난 딴 일은 아무것도 생각 못하겠구나! 일 년에 1만 파운드, 아냐 아마 그 이상이 될 것 같다고 그러더라! 귀족이나 다름없는 처지다! 게다가 특별인가! 그 특별인가에 의해서 결혼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게 만들어야지! 그렇지만 얘야, 다아시 씨는 특히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지 알려 주려므나. 내가 내일 만들어 주려고 그런다." 그것은 그 신사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가 어떠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슬픈 조짐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엘리자베드는 그 사람의 더할나위 없는 뜨거운 애정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고 나아가 친척의 승낙도 있으면서도 아직 무언가 흡족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튿날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잘 되어 갔다. 왜냐하면 다행스럽게도 베네트 부인은 미래의 사위감에 대해 위엄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친절을 베푼다든가 그의 의견에 대해 공손하게 승복하는 것 말고는, 그에게 감히 말 붙일 용기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드는 아버지가 그와 친숙하게 지내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서 기쁘게 생각했다. 베네트 씨는 그동안 그를 존중하고 싶은 기분이 매 시간마다 고조되기만 한다는 것을 그녀에게 확언했다. 베네트 씨가 말했다. "나는 세 사위들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어. 아마 위컴 군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너의 남편될 사람도 제인의 남편에 못지 않게 좋아질 거다." @ff 60 엘리자베드의 기분은 고조되어 다시 장난기가 되살아나서, 다아시 씨더러 어떻게 해서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물었다. "처음에 어떻게 된 거죠? 일단은 개시하시기만 하면 신나게 진행시켜 나간다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로 시작하도록 만들게 된 거지요?" "기초가 된 그 시점, 장소, 용모, 말 같은 것들은 확실치가 않습니다만 워낙 오래된 일이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벌써 중간쯤에 와 있었습니다." "제가 예쁘다는 것은 처음엔 인정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그리고 저의 태도에 대해선, 선생님에 대한 저의 행동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한결같이 무례할 정도였으며 선생님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선생님에게 고통을 드리려고만 생각했었죠. 어서 진정으로 말씀해 주세요. 저의 건방진 점이 마음에 드셨던가요?" "당신의 마음이 발랄했기 때문이죠" "차라리 그것은 건방지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사실 선생님께선 정중한 대접이나 경의나 지나친 친절에는 그만 역겨워지셨던 거예요. 늘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서 말을 하고 체하는 여성들에게 신물이 나셨던 거예요. 전 그런 여자들하고는 전혀 달라서 선생님에게 자극을 주고 흥미를 갖게 했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죠. 선생님께서 상냥스런 분이 아니었던들 그 때문에 절 미워하셨을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러나 자신을 감추려고 애써도 선생님의 기분은 늘 고상하고 정당하셨어요. 이젠 이걸로서 이유를 설명하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됐죠. 진정으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해 볼 때 이것으로써 완전히 이치에 맞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지요. 확실히 선생님께선 저의 좋은 점을 모르시고 계세요. 그렇지만 누구나 연애를 하게 되면 그런 것은 생각 않는 법이죠" "제인이 네더필드에서 앓아 누웠을 때 당신의 애정 어린 그 태도 속에는 당신의 좋은 점이 조금도 없었던 것일까요?" "제인 언니한테 말이죠! 제인 언니를 위해서라면 누군들 그 정도의 일을 안하겠어요? 하지만 어쨌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어 보세요. 선생님은 저의 장점을 지켜 주시고 그리고 그것을 될 수 있는 한 과장하려고 하시는군요. 그 대신에 자주 선생님을 놀려 드리고 말다툼을 할 기회를 찾는 것을 제일로 삼겠어요. 그래서 직선적으로 질문드리겠는데요, 어떻게 해서 최후에 가서 요점을 끄집어내시길 그토록 싫어하셨던가요? 맨 처음 방문하셨을 때나 나중에 식사하러 오셨을 때 왜 그렇게 절 피하기만 하셨던가요? 특히나 방문하셨을 때는 전혀 저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식의 표정을 짓고 계시지 않았어요?" "당신이 언제나 엄숙하고 침묵만 지키고 있어서 조금도 절 격려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입장은 난처했던 거예요."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사하러 오셨을 때만 해도 좀더 얘기해 주실 수 있었잖아요." "감정이 부족한 사람 같았더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죠" "선생님은 이치에 맞는 대답만 하시고 전 이성을 가지고 그것을 인정하게만 되니 꽤나 불운한 일이군요! 그렇지만 선생님을 그대로 혼자 내버려두었더라면 언제까지 그 상태로 계셨을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겠지요! 그리고 이쪽에서 묻지 않았던들 언제 입을 떼실 참이셨던가요! 리디어에게 베푸신 친절에 대해서 감사드리겠다는 저의 결의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혹시 너무 큰 소리를 친 것이 아닐까요. 만약 저희들의 기쁨이 약속을 깨뜨리거나 하는 데서 오게 된다면 도덕은 어떻게 되고 말겠어요? 왜냐하면 전 그 문제를 말하지 않았어야 했던 거예요.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었어요." "괴로와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도덕이란 언제나 완전무결한 것입니다. 우리들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했던 캐더린 부인의 용서받지 못할 노력은 저의 의심을 깨끗이 제거해 버리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재의 저의 행복은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려 드는 당신의 강한 소망 때문이 아닙니다. 전 당신 쪽에서 먼저 말해 오기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모님이 가지고 오신 소식이 희망을 주었기 때문에 전 모든 일을 알아 버리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캐더린 부인께서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용이 되셨는데, 그분 자신께서도 매우 만족하시고 계시겠지요. 남에게 소용되시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그렇지만 말씀해 주세요, 왜 네더필드까지 오셨던가를. 그저 롱본까지 말을 타고 오셔서 당황하려고 오셨던 거예요? 아니면 더욱 중요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였던가요?" "저의 목적은 당신을 만나 보고서 되도록이면 당신의 애정을 과연 기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가 공언했던 목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제 자신에게 공언했다고 할 수 있는 목적은, 언니께서 여전히 빙리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탐지해서는,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통고해 줄 참이었습니다. 당연히 그후에 그것을 해치웠습니다만" "캐더린 부인께 신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를 말씀드려볼 용기가 있으세요?" "저에겐 용기라기보다는 시간이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엘리자베드. 그렇지만 그것을 꼭 해치워야 합니다. 종이 한 장만 주어 보십시오, 간단하게 처리해 버릴 테니까요." "전 제 손으로 편지 쓸 필요가 없다면 어떤 젊은 여자가 그랬던 것처럼 옆에 앉아서 선생님의 글씨를 칭찬해 보겠어요. 그렇지만 저에게도 이 이상 더 등한히 해선 안될 숙모 한 분이 계세요." 엘리자베드는 가디너 부인이 보내 온 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아직 않고 있었는데, 이유인즉 자신과 다아시 씨 사이의 친밀도에 대해서 외숙모가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자진해서 말할 기분이 내키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더할나위없이 환영해 주리라 생각되는 이번 일을 알려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외삼촌과 외숙모 두 분이 사흘 동안씩이나 기쁨을 모르는 채로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다음과 같은 사연을 쓰게 되었다. 외숙모님, 실로 자상스런 편지 받고 좀더 일찍 고맙다는 인사말씀을 드려야 마땅하였사옵니다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조카의 기분이 언짢은 바 있어 도저히 편지를 쓸 수가 없었사옵니다. 외숙모님께서는 사실 이상으로 상상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좋을 대로 상상하셔도 돼요. 마음대로 공상의 활개를 펴셔도 좋으시고 이 주제로서 가능한 한도에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나가셔도 좋아요. 제가 벌써 결혼해 있다고 믿으시는 것 이외엔 별로 잘못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시 한 번 편지를 써 주셔서 저번보다도 더 많이 그분 칭찬을 해주셨으면 해요. 호반 지방으로 가지 않게 되었던 점에 대해서는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곳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다니 그 얼마나 바보였는지 몰라요! 망아지에 관한 일은 외숙모님의 재미있으신 생각이세요. 저희들은 매일 저택을 거닐기로 하겠어요. 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에요. 하기야 전에도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저만큼 정확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제인보다도 전 행복하니까요. 언니는 미소를 짓겠지만 전 큰소리를 내며 웃고 있죠. 다아시 씨가 저한테 베풀지 않아도 될 애정은 다 숙모님께 보내드리고 싶대요. 크리스마스 땐 여러분께서 모두 펨벌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어요. 캐더린 부인 앞으로 보낸 다아시 편지는 그 문제부터가 엘리자베드의 것과는 달랐지만, 그 두 편지 어느 편하고도 다른 것은 콜린즈 씨가 먼저번에 보내 온 서신에 대한 회신으로 베네트 씨가 쓴 바로 그것이었다. 근계 다시 한 번 축하의 일로 귀하께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내 딸 엘리자베드가 얼마 안 있어 다아시 씨의 부인이 되게 되었습니다. 캐더린 부인을 되도록 위로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 입장이라면 오히려 조카 편을 들겠습니다. 그 편에서 증여성직록을 더 많이 따게 될 것이니까요. 경구. 눈앞에 다가오는 오빠의 결혼을 축하하는 빙리 양의 편지는 애정만은 깃들었어도 성의가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녀는 또 제인에게도 이 일에 관해 편지를 내어서 기쁨의 말을 전하고 기왕에 표명했던 대로의 친애의 정을 되풀이했다. 제인은 현혹되지는 않았으나 감동을 받았고, 그녀를 신뢰할 수는 없었으나 상대방이 받을 자격이 없으리라 생각될 만큼 다정한 사연의 회답을 보내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아시 양이 같은 내용 후 표시한 기쁨은, 보고를 보내 왔던 오빠의 그것에 못지 않게 진정한 것이었다. 그녀의 기쁨과 올케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은 진지한 글을 쓰기에는 편지지 넉 장도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콜린즈 씨한테는 회신이 없었고, 그의 아내로부터도 엘리자베드에게 이렇다 할 축하의 편지가 오지 않은 중에 롱본의 사람들은 콜린즈 부부가 루커스 경에 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이 갑작스런 이전의 이유는 곧 명백해졌다. 캐더린 부인이 조카의 편지 내용에 대해 대단히 분노했기 때문에 샬로트는 마음 속으로는 이 혼인을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폭풍이 가라앉을 때까지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침 이럴 때 친구가 오게 된 것이 엘리자베드에게 다시없이 기뻤다. 하기야 몇 차례 만나면서 다아시 씨가 그녀의 남편에게서 드러나게 아첨하는 것을 보자 엘리자베드는 친구를 만나는 기쁨 꽤 비싸게 사들여야 할 물건이라고 생각해야 할 형편이었지만. 그러나 다아시는 찬양할 만큼 침착하게 곧잘 참아 나갔다. 윌리엄 루커스 경이 당신은 이 지방에서 제일 빛나는 보석을 가지고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치르고, 세인트 제임즈 궁정에서 모두 서로가 만나고 싶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을 때도 윌리엄 경의 자태가 보이지 않을 때였다. 필립스 부인의 저속함은 그에 있어서는 또 하나의 그리고 아마도 참기 어려운 인내력의 시련이 되어 버렸다. 필립스 부인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그를 너무나 어려워했기 때문에 빙리의 명랑함에 끌려들었을 때와 같은 친숙한 태도로는 도저히 이야기를 할 수 없었으나 일단 입을 열고 나면 결국은 저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녀는 여느 때에 비해 조용해졌지만 고상해지기를 바라기는 힘들 것 같았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이 두 사람을 눈여겨 보지 못하도록 갖은 애를 다 썼으며 고통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식구나 그녀 자신에게만 그의 주의를 붙잡아 두려고 고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에는 생겨나는 불유쾌한 기분은 약혼 기간에서 많은 기쁨을 잃기는 했지만, 장래에 대한 희망은 더해 가는 것이었다.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달갑지 않은 사람들한테 떨어져서 펨벌리의 가족 파티에서 있을 모든 아늑함과 우아함을 향해 떠나게 될 날을 그녀는 즐거운 심정으로 기대해 보는 것이었다. @ff 61 베네트 부인은 가장 자랑스러운 두 딸을 시집보내는 날 어머니로서의 섭섭한 마음보다는 행복함이 더 앞섰다. 그 후로 그녀가 얼마나 자랑스런 기쁨을 지니고서 빙리 부인을 찾았으며 또 다아시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가는 추측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작가인 나로서는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녀는 그토록 많은 딸들에게 짝지워 주려는 간절한 소원을 성취했으므로 그 후에 있어서는 나날은 한결 현명하며 상냥스럽고 분별 있는 부인이 되는 행복한 결과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토록 현저한 형태로 바뀐 가정의 행복이 구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를 그녀의 남편에게는, 처가 이따금 신경질을 부리고 여전히 바보스럽게 지내는 편이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베네트 씨는 둘째딸이 없어지자 몹시 허전하게 여기게 되었다. 다른 일보다 딸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는 가끔 집을 비우곤 했다. 펨벌리에 가는 것도 그나마 상대방이 거의 예기치 않을 때를 골라서 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빙리와 제인은 네더필드에서는 1년 정도밖에 머물지를 않았다. 어머니가 메리튼의 친척 바로 가까이서 지낸다는 사실은 그의 태평스런 기질에서나 그녀의 애정 어린 마음으로서도 바람직한 일은 못되었다. 그의 자매들의 뜨거운 염원도 그리하여 성취도고 만 것이다. 그는 더비셔 근처 지방에다 땅을 샀다. 제인과 엘리자베드에게는 행복의 원천이 달리 많이 있었겠으나 그것들에 첨가해서 서로가 30마일 이내에서 살게 되었다. 키티가 대부분의 시간을 두 언니들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실질적인 은혜가 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사교계에 나오게 되자 그녀의 향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리디어만큼 겉잡을 수 없는 그런 성질도 아닌데다가 리디어를 본받을 필요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적당히 주의와 감독을 받게 되자 그 전에 비해 덜 조급하고 덜 무지하고 덜 단순해졌다. 리디어와 접촉한다는 불리한 상태에서는 물론 주의 깊게 피하게 만들었다. 위컴 부인은 때때로 젊은 남자들을 불러다가 무도회를 개최한다고 약속도 하고 체류하게끔 초청해도 그녀의 아버지는 절대로 보내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집에 남게 된 딸은 메어리 뿐이었고, 베네트 부인은 혼자만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성미여서 학예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를 곧잘 불러들이곤 했다. 메어리는 전에 비해 세상과 훨씬 많이 접해야 했지만 매일 아침 손님이 오는 데 대해서는 꽤 참을 수가 있었다. 이제는 언니들의 아름다움과 자기를 비교해서 굴욕을 느낄 필요가 없어져서 기꺼이 이러한 변화에 따르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아버지는 추측해 보는 것이었다. 위컴 리디어에 관해서 말하자면 두 사람의 성격은 언니들이 결혼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위컴은 엘리자베드가 이제는 전에 몰랐었던 자기의 은혜를 저버리거나 기만을 다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가면서 그것을 냉정하게 참아 나갔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지만, 다아시를 설득하기만 하면 아직 재산을 한 몫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혀 저버리지는 않았다. 엘리자베드가 결혼했을 때 리디어에게서 받은 축하의 편지는 위컴 장본인은 모를 일이나 적어도 그의 아내는 그러한 희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명백히 했던 것이다. 편지는 다음과 같은 취지였다. 사랑하는 리지 언니에게 행복해지길 바래요. 내가 위컴을 사랑하는 반만큼이라도 언니가 다아시 씨를 사랑한다면 언니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언니가 큰 부자가 되셨다니 마음이 무척 기뻐요. 달리 별로 할 일이 없을 땐 우리들 생각을 해 주세요. 위컴이 무언가 궁중에 자리를 얻게 되었으면 바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에에요. 우리들은 어떤 도움 없이는 살아 나갈 만큼의 돈을 벌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매년 3, 4백 파운드 정도의 일자리면 무엇이든 좋겠군요. 그렇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거든 다아시 씨에겐 이 일을 말하지 말아 주어요. 마침 엘리자베드는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답장을 보내서 그런 따위의 요구나 기대는 일체 버리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자기의 용돈을 이리저리 절약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구원의 돈을 자조 보내 주었다. 그들의 수입만 믿고 무턱대고 허욕만을 부리고 장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않는 그들의 생활 방식에서는 먹고 사는 데도 힘들 것이라는 것을 그녀로서는 이미 알고 있었던 명백한 사실이었다 . 두 사람이 주둔지를 바꾸게 될 때마다 꼭 제인이나 그녀 자신 중의 어느 한쪽에서 계산서를 청산해 주기 위한 다소의 원조를 신청해 오곤 했다. 두 사람의 생활 방식은 평화 회복에 의해 제대하고 나서도 나무나 불안정했다. 두 사람은 값싼 주택을 구하느라 이리저리 이전해 다녔으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분에 넘치는 생활을 했었던 것이다. 리디어에 대한 그의 애정은 얼마 안가 무관심 속에 빠져 버렸다. 그녀의 경우는 좀더 오래 지속되어 나갔다. 젊은 데다가 예절은 말이 아니었지만 남의 처가 된 사람으로서의 필수적인 체면을 손상하는 일만은 절대로 하려 하지 않았다. 다아시는 그 사나이를 펨벌리로 오게 한 적은 결코 없었으나 엘리자베드를 위해서 직장 일로는 그 후에도 원조해 주었던 것이다. 리디어는 남편이 런던이나 바아드로 나들이를 했을 때는 이따금 펨벌리로 찾곤 했다. 빙리 가정에는 두 사람이 찾아와서는 오래도록 머무르게 마련이어서 마음 좋은 빙리까지도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암시하기까지 하는 판이었다. 빙리 양은 다아시의 결혼을 매우 분하게 생각했지만, 펨벌리를 방문하는 권리를 지속시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의 유한을 깡그리 저버리고 말았다. 전에 비해 조지아나가 좋아졌으며 다아시에게는 지금까지와 거의 다름없이 베려 했고 엘리자베드에게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예의를 한꺼번에 갚게 되었다. 펨벌리는 지금은 조지아나의 가정이 되었다. 시누이 올케 사이는 다아시가 원하던 그대로 되었다. 두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가졌던 바와 조금도 다름없이 사랑할 수가 있게 되었다. 조지아나는 세상에서 엘리자베드를 제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긴 처음 한참 동안은 오빠에게 말을 건넬 때의 올케의 발랄하고 장난기 어린 말투를 대할 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자기의 애정을 압도하고 남의 경의를 자기 자신 속에서 불러일으키곤 했던 오빠가 드러내 놓고 농담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지금껏 생각조차 미치지 못했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엘리자베드의 가르침에 따를 것 같으면, 오빠란 열 살씩이나 손아래인 누이동생에게는 함부로 하는 것을 허용치 않으나 남편이 되고 나면 아내에게 그것을 허용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캐더린 부인은 조카의 결혼에 대해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결혼 이야기가 정해졌다는 사실을 써 보냈던 편지의 회답 속에서 자신의 성격을 솔직이 노출시켰으며 꾸짖음이 극을 다했고 특히 엘리자베드에 대해서 그러했기 때문에 한참 동안 교제는 끊어지고 말았다. 마침내 엘리자베드의 설득에 의해 그는 상대방의 바르지 못한 예의를 너그럽게 보게 되고 화해를 구하는 심정이 되었다. 이모 쪽에서는 그보다는 더 완강하게 버텼지만, 그녀의 분노는 그에 대한 애정과 또 그의 아내가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 가를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펨벌리의 숲이 거기에 늘 있는 주부뿐만 아니라 런던에서 자주 방문하는 외삼촌 내외에 의해 더럽혀졌겠지만 그녀는 펨벌리로 그들을 방문하기로 뜻을 굽혔다. 두 사람은 가디너 부부와는 늘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를 더비셔까지 데리고 옴으로써 두 사람을 맺어 준 계기가 되었던 사람들에 대해 두 사람은 가장 갚은 감사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