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4권 지은이: 제인 오스틴 옮긴이: 홍건식 도서출판 육문사 35 이튿날 아침 엘리자베드가 잠에서 깨어나자 간밤의 상념들이 떠올랐다. 간밤에 일어난 일에 대한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인가 다른 일을 생각하려 했으나 불가능했고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아침이 끝난 뒤에 곧 야외로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즐겨 다니던 산책길로 곧장 가다가 다아시 씨가 가끔 그곳으로 왔던 생각이 떠오르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저택 쪽으로 들어서지 않고 작은 길로 접어들어, 큰길에서 뚝 떨어져서 걸어나갔다. 저택의 말뚝박은 울이 한쪽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어서 그녀는 곧 저택으로 통하는 한 문 앞을 통과해 갔다. 작은 길을 두세 번 걷고 나서 아침의 상쾌함에 끌려들어 문 잇는 데서 멈추고 저택 안을 들여다보았다. 켄트에 온 지가 5주가 지났는데도 전원의 기분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나날이 뭇 나무의 신록은 더해 가기만 했다. 그녀가 산책을 계속하려는 찰나 저택 끝에 있는 작은 숲 같은 곳에 신사 한 사람의 모습이 살짝 보였다. 그 사람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혹시 다아시 씨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서 그녀는 곧 되돌아섰다. 그러나 이쪽을 향해 오던 사람은 이제는 그녀의 자태가 보일 정도로 가까와지자 열심히 그녀 쪽으로 걸어와서는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외면해 버렸지만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게 다아시 씨의 목소리인 줄 알면서도 다시 문 있는 쪽으로 걸어나갔다. 이때쯤은 그쪽에서도 벌써 문에 당도해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아 들자 그는 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을 만날까 하는 생각으로 숲 속을 잠시 걸었었지요. 내 편지 좀 읽어 주실 수 없을까요?" 그리고 나서 가볍게 절을 한 후에 다시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보이지 않았다. 즐겁고 좋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다시없이 강한 호기심에서 엘리자베드가 그것을 개봉해 보니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써 놓은 두 장의 편지지가 봉투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은 더해 가기만 했다. 겉봉에도 역시 가득 적혀 있었다. 작은 길을 걸어가며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오전 여덟 시 로징즈에서 라는 날짜로 되어 있었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편지를 받으시고 간밤 당신에게 그토록 불쾌감을 자아내게 한 그와 같은 감정의 반복이라든가 또는 청혼을 다시 하는 내용이 써 있지 않나 하고 근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되도록 빨리 잊어야 하는 소원 같은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음으로써 당신을 괴롭히거나 나를 상대방에게 낮추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올시다. 내가 쓰는 괴로움이나 또 당신이 읽는 노력도 없애는 것이 상책이겠으나 내 성격 때문에 이 편지를 쓰고 당신이 읽어 주실 것을 바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당신에게 한 번 정도 읽게끔 요구하는 내 생각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의 감정은 그러한 노고를 마지못해 베풀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당신의 정의감에 호소하여 요구하는 바입니다. 성질이 매우 다른, 더우기 그 중요성 역시 결코 같지 않은 두 가지 죄를 당신은 지난밤 나의 것이라 질책하셨습니다. 처음에 말씀하신 죄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내가 빙리 군을 당신의 언니에게서 떼어놓았다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내가 여라 가지 권리를 무시하고 신의와 인정마저 무시해 가면서까지 위컴 군의 눈앞의 번영을 파괴해 놓고 전도를 암담하게 만들어 버렸다고 하셨지요. 나의 어렸을 때의 친구요, 우리 아버지의 마음에 들었었고 우리의 보호를 받는 길밖에는 거의 힘이 없는, 그리고 그 보호의 손길만을 기대하고 자라 온 젊은이를 다분히 고의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저버렸다는 것은 사악한 일이나, 그것에 비해 볼 때 겨우 2, 3주 동안에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던 두 사람의 젊은이 사이를 떼어놓은 일은 비교도 안될 일이겠지요. 그러나 나의 행위와 그 동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을 읽게 되시면 각기 두 가지 일에 대해서 그렇도록 속시원히 나에게 퍼부었던 신랄한 비난에는, 이 다음에라도 내가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바입니다. 나로선 당연히 해야 할 그러한 설명을 하면서 당신의 기분을 해칠 만한 감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에 놓인 것을 그저 안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니 이 이상의 사과는 어리석을 것입니다. 내가 허어퍼드셔에 온 지 얼마 안되어서 빙리 군이 그 근처의 젊은 여자들보다 언니에게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을 나도 다른 사람과 함께 알게 됐지요. 그러나 빙리 군이 진지한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네더필드에서 있었던 무도회의 밤부터였지요. 그 친구가 사랑에 빠진 것은 그 저에도 자주 본 적이 있었죠. 그 무도회에서 당신과 춤추는 영광을 갖는 동안 난 루커스 경한테서 언뜻 들은 얘기로 언니에 대한 빙리 군의 관심은 누구나가 두 사람의 결혼을 기대할 정도로 고조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어요. 시기는 아직 안정해졌지만 결혼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루커스 경은 말씀하셨지요. 그때부터 나는 친구의 태도를 주의 깊게 관찰했는데 곧 베네트 양에 대한 그 친구의 열렬함은 지금까지의 그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란 걸 알게 됐어요. 언니의 태도도 난 지켜봤지요. 표정이나 태도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명랑하고 쾌활하고 매력에 넘치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 친구에게 마음 쏟고 있다는 흔적이 보이질 않더군요. 그래서 난 그날 밤의 검토에서 언니는 그 사람의 애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똑같은 감정에 불타서 그것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당신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내가 잘못 보았던 게 틀림없습니다. 언니에 대해선 당신이 훨씬 잘 알고 계실 테니까 후자 쪽이 맞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러한 잘못으로 언니에게 고통이 있게 된다면 당신의 분한 행동은 조금도 무리가 아닌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슴지 않고 말씀드려 두지만, 언니의 조용한 표정과 태도는 매우 예리한 관찰자에게도 그분의 기질이 다시없이 상냥스럽긴 하지만 그분의 심정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기에 족했단 말입니다. 난 언니가 무관심하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차라리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려 두지만 나의 검토나 판정이 일반적으로 내 자신의 희망이나 염려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언니가 무관심 하기를 바랐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이성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또 공평한 확신에 입각해 그렇게 믿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그 결혼에 대해서 가진 반대의 거론은 더욱 격렬한 정열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었다고 내가 간밤에 고백했던 내 경우에 있어서의 바로 그 거론하고는 다름 것입니다. 좋은 인척이 없다는 것이 친구에 대해서도 내 경우만큼 그렇게 큰 장애는 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나 결혼에 반발하는 원인은 그 밖에도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으며 그 경우나 내 경우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나 자신으로서는 그것이 직접 내 눈앞에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리고 말겠다고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비록 간단하게나마 이 원인에 대해서 말해 두어야 되겠습니다. 당신 어머니 친정의 신분도 별로 좋은 편은 못됩니다만, 그것도 어머님이나 당신의 세 동생이 그리고 때로는 당신의 아버지조차 그렇게 빈번히 또 그렇게 한결같이 드러내는 전반적인 예절의 결여에 비할 때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도 저 역시 괴롭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자기 자신의 육친들의 결점을 걱정하시고 그것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조차 불유쾌하게 생각하시겠지만, 당신과 언니가 그와 같은 비난을 본성에 대한 명예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고 마음을 달래 주시기 바랍니다. 나아가, 이 사실만은 말씀드려 두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날 밤에 일어났던 일로 해서 여러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확인되었고 아무리 보아도 불행하게 여겨지는 연분에서 친구를 구해 낼까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기분이 강해져 가기만 했습니다. 틀림없이 당신은 기억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그 친구는 곧 돌아올 생각으로 이튿날 런던을 행해 네더필드를 떠났습니다. 내가 연출했던 역할은 지금부터 설명 드리기로 하죠. 그 친구 자매들의 불안 역시 나에 못잖을 정도로 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기분이 일치된 사실이 곧 발견되어, 일각의 유예도 없이 그를 떼어놓을 필요성을 깨닫고서 곧 런던에서 서로 합치기로 결정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출발한 겁니다. 나는 런던에서 그러한 선택이 가져다 줄 명백한 폐가 되는 나쁜 일을 친구에게 지적해 주는 일에 곧 착수했던 것입니다. 나는 진지하게 그것들을 설명해 주고 강조했습니다. 이 충고가 그의 결의를 얼마만큼 흔들어 놓고 지체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내가 주저하지 않고 당신 언니의 무관심을 보증함으로써 들러리로 내세우지 않았던들 결혼을 끝까지 저지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친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언니가 같은 정도로 생각을 못해 줄망정 성실한 애정으로 자기에게 보답해 오리라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빙리 군은 매우 유순한 사람이므로 자기 판단보다도 내 판단을 더 믿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판단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못되었습니다. 그렇게 믿게 했으므로 허더퍼드셔에 돌아가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했다 해서 내가 매우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내 행위 중에서 꼭 한가지 만족하지 못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언니가 런던에 와 계시다는 사실을 그 친구에게 의식적으로 감춘 모책을 내가 썼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빙리 양이 벌써 알고 있어서 나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당사자인 그녀의 오빠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나쁜 결과가 되지야 않겠지만, 그 친구의 애정의 불같이 언니를 만나서도 위험이 없을 만큼 식어 있다고는 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 감춤질이나 숨김질을 한 것은 나의 품격을 떨어뜨린 결과가 되고 말았지요. 이제는 끝난 일이고 더우기 최선의 목적을 위해 이뤄지고 만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거나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언니 되시는 분의 마음을 상하게 해드렸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한 짓이겠지요. 날 지배했던 동기가 당신 눈에는 당연히 불충분한 것으로 보여질지 모르나 난 아직 그것을 꾸짖어서 마땅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위컴 씨에게 해를 끼쳤다고 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그 사람과 나의 가족과의 관계를 몽땅 당신에게 털어놓아야 겨우 반론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나의 어떤 부분을 비난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난 알 방도가 없습니다만,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고 하는 것이 과연 진실이냐 아니냐에 대해선 그 정직함을 의심할 수 없는 증인 한 사람을 불러들일 수가 있습니다. 위컴 씨는 매우 존경해 마지않는 분의 자제로서, 그의 부친은 다년간 펨벌리의 토지 관리를 맡아봄으로써 훌륭하게 임무를 다했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 보답을 하셔야겠다고 느끼시고 대자였던 조지 위컴 군에게 있는 대로의 친절을 다하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을 학교에 보내 주셨고 나중에는 케임브리지에 보내 주시게 된 겁니다. 정작 그 사람의 친아버지는 부인이 사치를 일삼아서 항상 빈곤한 상태라 그 사람에게 신사로서의 교육을 베풀어 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조가 된 겁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언제나 애교 있는 태도를 지닌 이 청년을 옆에 두시기를 좋아하셨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다시없이 높이 평가해서 끝내는 그를 성직자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셔서 그것에 필요한 준비를 시킬 의향을 가지고 계셨던 겁니다. 나 자신으로서는 그 사람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한 것은 여러 해가 경과하고 나서였지요. 사악한 성향, 무절제, 그런 것들을 그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까지 알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경계했지만 그와 거의 동년배이며, 따라서 방심한 상태의 그를 관찰할 기회가 많았던 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기회들은 나의 아버지로서는 가질 수가 없었지요. 여기에서 다시 난 당신을 괴롭히게 됩니다.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는 당신만이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위컴 씨가 당신에게 어떠한 감정을 자아내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감정의 속성을 내가 눈치챘다고 해서 그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을 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거기엔 또 하나의 이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훌륭하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약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만, 위컴 군에 대한 그분의 애정은 끝까지 변할 줄 몰랐으며, 유언 중에는 그 사람의 직업이 허용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그의 출세를 위해서 특별히 저에게 부탁한 바 있지만, 그가 성직자가 되는 즉시 큼직한 성직의 자리가 바는 대로 그 사람에게 주도록 분부였습니다. 그 위에다 1천 파운드의 유산도 물려 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친아버지께서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 살지도 못하셨고, 그러한 일이 있은 지 반 년이 채 못돼서 위컴 군은 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결국 성직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 그가 포기한 혜택의 대가로서 좀더 직접적인 돈의 이익을 희망하더라도 바른길을 벗어난다고는 생각지 말아 달라고 썼습니다. 법률 공부를 해볼 작정이라고 덧붙이면서 1천 파운드의 이자만으로는 충분한 학자금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 말이 진실이기를 믿었다기보다는 그러기를 바랐지만, 아뭏든 그의 제안에 응해 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위컴 씨가 목사가 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아주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단 그 사람이 성직에 오르게 되어 원조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더라도 그 권리를 포기하기로 하고 그 대신 3천 파운드의 돈을 받았습니다. 우리들 관계는 이제는 완전히 해소된 듯이 보였습니다. 난 그 사람을 아주 나쁘게만 생각했기 때문에 펨벌리로 초대도 하지 않았으며 런던의 저택 출입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로 런던에서 살고 있었다고 믿었습니다만 법률을 공부한다는 건 단순한 구실에 불과했으며, 이제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되어 그의 생활은 태만과 방탕의 그것이 되고 말았지요. 그후로 3년 정도 그 사람 소식을 거의 듣지 못하다가 본래 그 사람에게 줄 예정이던 성직록의 재직자가 죽게 되자 그는 또다시 편지를 보내서 추천을 의뢰해 왔습니다. 생활이 매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쉽게 믿어지더군요. 그는 법률이라는 것이 전혀 이익이 안되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만약 문제의 목사직을 추천만 해준다면 이번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직의 자리에 오르고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겁니다. 나에게는 달리 추천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을 잊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자기로서는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추천에 대해서만큼은 눈곱만큼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걸로 믿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간청에 응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또 그것이 되풀이될 적마다 거절했다고 해서 당신은 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나에 대한 그의 원한은 생활 상태가 나빠짐에 따라 더욱 커 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욕을 심하게 했듯이 남에게도 내 욕을 심하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 후로는 형식적인 교제마저 끊어 버렸고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유감스럽게도 자주 내 눈에 그 자태가 끼여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어떤 상황에 대해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나 자신한테도 잊고 싶은 일로서, 지금과 같이 부득이한 입장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이만큼 말씀드리면 당신이 비밀을 지켜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 누이동생은 나보다도 나이가 열 살 정도 아래인데 어머니의 조카뻘이 되는 피츠윌리엄 대령과 내가 그녀의 후견을 맡기로 되어 있습니다. 1년 전쯤에 누이는 학교를 그만두고서 런던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에 누이는 집을 지키는 부인하고 램즈게이트에 갔습니다. 거리로 위컴 군도 간 모양인데 이것은 명백히 계획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과 영부인은 전부터 교제가 있어 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지만, 이 부인 성격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불행하게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인의 묵인과 도움으로 그 사람은 조지아나에게 교묘하게 접근해 갔는데, 그녀의 상냥스런 마음은 어렸을 적에 그 사람이 친절하게 해주었다는 강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녀는 자기가 사랑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때의 그녀의 나이가 아직 열 다섯 살 정도였으니 그 연령이 그녀에겐 하나의 핑계가 되겠지요. 이제까지 그녀의 경솔함에 대해 언급했지만 직접 그녀 입에서 도망치려던 사실을 듣게 되었다고 덧붙일 수 있는 것은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계획대로 도망치기 하루 내지 이틀 전에 우연히 그들한테 갔었습니다. 그때 조지아나는 거의 아버지 마냥 우러러보던 오빠를 슬프게 하고 노엽게 하리라는 생각에 견딜 길이 없어 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게 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느꼈고 어떻게 행동했던가는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누이의 명예와 감정을 감안해서 표면적으로 밝히기를 꺼렸고 위컴 군에게 편지를 써서 그 사람은 즉시 그곳을 떠나고, 영부인도 물론 해고시켜 버렸습니다. 위컴 군의 주목적은 의심할 여지 없이 누이의 재산 3만 파운드였지요. 그러나 나에게 복수하겠다는 소망도 강한 동기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복수는 하마터면 완전히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두 사람에 관련된 모든 사건에 대한 충실한 내용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것을 절대적인 허위라고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앞으로는 내가 위컴 씨에게 가혹하게 행동했었다는 혐의는 일단 풀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어떤 거짓말로 당신을 속였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 사람의 성공은 그리 놀랄 것이 못됩니다. 두 사람에 관한 전말을 당신은 잘 모르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간파하신다는 것은 당신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일 테고 남을 의심한다는 것도 당신의 기질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간밤에 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의아해 하시겠지요. 그러나 간밤에 너무도 내 자신을 가눌 수 없어서 무엇부터 얘기해야 하는가 또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몰랐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모든 것들이 진실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피츠윌리엄 대령의 증언에 호소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근친자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가깝게 지내며, 더군다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 집행인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말씀드린 교섭의 상세한 내용까지 어쩔 수 없이 알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날 싫어하시는 때문에 내 주장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신다면 같은 이유로 내 사촌 동생마저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하고 상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것과 동시에 이 편지를 아침 나절에 당신 쪽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길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 피츠윌리엄 다아시 @ff 36 다아시 씨가 편지를 건네주었을 때 엘리자베드는 결혼의 제안이 되풀이 되는 줄은 생각지 않았지만 이런 내용이 될 줄은 미처 예상을 못했다. 그러나 정작 내용이 이러했기 때문에 어떻게 열심히 그녀가 통독했으며 결과적으로 그 얼마나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던가는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읽어 가는 중의 그녀의 마음은 이렇다 하게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그녀가 놀라면서 알아차린 사실은 그 남자가 어떤 변명이라도 할 수 있는 걸로 믿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는 올바른 사람 같으면 감출 수 없을 거라고 그녀는 항상 믿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일의 하나 하나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갖고서 그녀는 네더필드에서 일어났었던 일들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읽으면서 다음 문장에 무엇이 씌어 있는가 알고 싶어서 눈앞의 문자의 의미를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녀의 언니가 무관심한 걸로 맏었다는 그의 말은 당장 거짓말이라고 정해 버렸다. 언니의 결혼을 가로막은 현실적으로 아주 잘못된 점에 대한 그의 설명을 읽고는 몹시 화가 치밀어 그에 대해 공평해 보리라는 심정은 도저히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행동거지에 대해서 그녀가 만족할 만큼의 유감의 뜻을 나타내지 않았다. 편지 내용에는 반성하는 빛이 엿보이지 않았으며 거만하기만 했다. 그것은 오만하고 무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 다음에 위컴 씨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었을 때 먼저보다는 다소 더 확실해진 주의력을 가지고 읽어 갔지만, 만약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사실일 것 같으면 위컴 씨의 가치에 대해 품어 왔던 모든 생각은 뒤집혀질 것이 틀림없고 더우기 그러한 것이 그 사람 자신의 신상 이야기와 너무나 닮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의 심정은 더욱 심한 통증을 느꼈고 형용하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놀라움과 불안, 나아가 공포의 심리까지도 들었다. 그녀는 전적으로 그것을 불신하면서 계속 소리질렀다. "그건 거짓말이야! 이럴 수가 없어! 이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거짓말이야!" 그리고 마지막 한두 장은 정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편지를 다 읽어 버림으로써 별안간 내동댕이치며 편지에 마음쓰지 않기로 하고 두 번 다시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산란한 마음으로 그녀는 무작정 걸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30초도 못돼 다시 편지를 펼쳤다. 그리고는 위컴에 관련된 내용을 분한 마음으로 차근차근 다시 읽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의 문장의 의미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와 펨벌리 일가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그 자신이 말했던 그대로였으며 돌아가신 다아시 씨의 친절도 이렇게 컸었는지 전에는 몰랐던 일이었으나, 그것 역시 자신의 말과 잘 일치 되고 있었다. 여기까지의 내용과 그의 말이 맞아떨어졌으나 유언의 내용에 이르자 큰 차이가 생겨났다. 성직록에 관해서 위컴 씨가 했던 말은 그녀의 기억에도 새로왔다. 확실히 그가 했던 말을 회상해 볼 때 어느 쪽 한 편에 커다란 이율배반이 있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잠시 동안 그녀는 자신이 믿었던 바가 과히 잘못이 아니기를 빌었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여서 다시 읽어 나갔을 때 바로 그 다음에 계속된 위컴 씨가 성직록을 받을 권리를 깨끗이 단념했다든가 그 대신 3천 파운드라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수령했다는 자세한 내용에 있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읽던 편지를 손에서 떼고서는 공평한 태도를 가지겠다고 애쓰면서 사정을 빼놓지 않고 숙고해 보았다. 쌍방간의 진술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았다. 그러나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쌍방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데 불과했다. 다시 한 번 그녀는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대목 한 대목씩 읽어 갈수록 더 분명한 사실은 어떤 계략을 써도 다아시 씨의 행위를 파렴치하지 않게 만들 수는 없다고 믿었던 그 사건이 이제는 사건 전체를 보고 그에게는 비난할 점이 없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그가 서슴지 않고 위컴 씨의 책임으로 돌린 낭비와 방탕이라는 말이 유달리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그것이 중상모략이라는 증거를 잡을 수가 없어 더욱 안타까왔다. ㅇㅇ주 의용군에 입대하기 이전의 그에 대해서는 그녀로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군에 입대하게 된 것도 런던에서 우연히 어떤 청년을 만나게 되어 약간의 친교를 맺고 난 후 그 사람의 권유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 이전의 생활상에 대해서는 허어퍼드셔에서 자기가 말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라곤 없었다. 그 사람의 진실된 성격에 대해서는 그녀가 설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의 용모, 목소리, 태도 따위가 그 사람을 모든 미덕을 갖춘 사람으로 그 자리에서 믿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아시 씨의 공격으로부터 그를 구해 낼 수 있을 선량한 예라든가 성실과 자애의 확실한 흔적 같은 것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또는 적어도 그 미덕의 힘으로 그의 우발적인 과실들을 보상해 보려고 했다. 그녀는 다년간 계속된 나태와 악행이라고 다아시 씨가 말한 것을 우발적인 과실들의 범주에 넣어 보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어도 도움은 되지가 못했다. 태도나 용모에서 매력이란 매력은 죄다 갖춘 그의 자태를 곧바로 자기 눈앞에 볼 수가 있었지만, 이웃 일반에게 평판이 좋다든가 그의 사교 능력에 의해 군인 동료들한테 인정받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무엇인가 실체성 있는 선량함 같은 것은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읽어 나갔다. 그러나 아! 그 다음에 이어지는 다아시 양에 대한 책략의 내용은 바로 어제 아침 피츠윌리엄 대령과 나눈 대화에서도 얼마간 확증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끝으로 사실 하나 하나의 소상한 내용이 진실이냐 아니냐는 피츠윌리엄에게 알아 보라고 씌어 있지 않은가.... 피츠윌리엄으로부터 그녀는 그가 자기의 사촌형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말을 전에 이미 들은 바 있거니와 또 그녀로서는 그의 인격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한 번은 그에게 알아보리라고 거의 작심까지 해보았으나, 정작 그 일의 어색함이 그 생각을 가로막는 데다가 나중에는 다아시 씨가 자기 사촌 동생의 확실한 증언을 충분히 자신하지 않았다면 위험을 무릅 쓰고 그런 제안을 했을 리가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그 생각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그녀는 필립스 가에서 처음으로 위컴을 만났던 날 밤에 그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샅샅이 생각해 낼 수가 있었다. 그의 많은 말들이 아직도 그녀의 기억에 새로왔다. 지금 와서 생각할 때 처음 대하는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한 부당성에 새삼 놀라면서 그 전에 그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이상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자기를 내세우는 상스러운 행동과 언행의 불일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가 다아시 씨를 만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뽐내면서 다아시 씨가 이곳을 떠날지는 모르지만 자기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를 않겠다고 말해 놓고서는 바로 다음 주에 있었던 네더필드의 무도회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던 일이 생각났다. 그녀에게 또 생각났던 일로서는 네더필드의 가족이 그것을 떠날 때까지는 그녀에게만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했지만 그들이 떠나가자 장소를 안가리고 말을 퍼뜨리던 일과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 아들을 폭로하지 못하겠다고 분명히 말해 놓고 조금도 삼가거나 거리끼는 빛이 없이 다아시 씨의 인격을 깎아 내리던 일이었다. 그와 관계되는 모든 일이 이제 와서는 얼마나 다르게 보여지는가! 그가 킹 양에게 마음을 가졌던 것도 지금에 와서 보면 철두철미하고 가증스러울 만큼 돈을 목표로 한 결과였다. 그녀의 재산이 그저 그런 정도라는 사실도 이제 와서는 그의 소망이 온건해졌다는 입증이 못되고, 그저 아무것이나 잡고 늘어지려는 그의 열의를 입증할 뿐이었다. 자기에 대한 그의 태도도 지금 와서 보면 용서 못할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녀의 재산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녀가 부주의하게도 드러내 보였던 호의를 조장함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있었던가 둘 중의 어느 것이었을 것이다. 그를 잘 보려 드는 미련 많은 노력이 점차 약해져 갔고 다아시 씨를 정당하다고 보는 마음이 더해 감에 따라서 그녀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던 일은 빙리 씨가 제인에게서 질문 받았던 진작 그때에, 그 문제는 그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다아시의 태도는 거만하고 불쾌하긴 했지만 그녀 입장에서는 그와 계속 알고 지내는 동안...최근에 와서는 서로 함께 있어 본 일도 자주 있어서 그의 생활 방식에 익숙해질 정도의 사이였지만... 파렴치하다거나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면을 그가 드러내는 것을 본적이 없으며, 그의 경건하지 못한 습관이나 부도덕한 습관을 증명할 만한 일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친척들 사이에서도 존경받고 높이 평가되며, 위컴까지도 그를 오빠로서는 훌륭하다고 인정했고 그녀 자신도 그가 누이에 대해 너무도 깊은 애정으로 말하는 것을 가끔 들은 것을 생각하면 그도 상냥스러운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만약 그의 행위가 위컴이 말한 대로라면 그토록 난폭하게 정의를 짓밟아 놓고서는 세상의 문을 피할 길이 없으며, 또 그러한 짓을 해치우는 인간하고 빙리 씨와 같은 상냥한 사람 사이에 우정이 맺어졌다는 사실은 납득이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다아시와 위컴 어느 쪽으로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분별없고 불공평하고 편견에 지배되었으며 그리고 바보스러웠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난 너무나 비열한 짓을 했어!" 그녀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내 자신의 견식을 그토록 자랑했던 바로 나 자신이! 그리고 자기 능력을 뽐내던 내가! 언니의 관대한 공평성을 곧잘 경멸했었고 아무 소용도 없는(비난받아 마땅한) 불신의 마음에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있던 내가! 지금 와서 뉘우치니 이 무슨 수치란 말이냐! 그러나 그 얼마나 당연한 수치이랴! 내가 만일 사랑에 빠졌더라도 이토록 비참하게 맹목적이진 않았을 거야. 그러나 내가 바보짓을 했다면 그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허영심 때문이다. 알게 된 당초부터 한 사람에게서 귀여움을 받아 좋아하고 또 한사람에게 등한시 당해서 화를 냈고 두 사람이 관련되는 일에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른 나머지 이성을 쫓아내고 말았던 거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 자신을 몰랐었어." 자기 자신에서 제인에게로, 제인에게서 빙리에게로 그녀의 상념은 하나의 흐름이 되어 갔었고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문제에 대한 다아시 씨의 설명이 매우 불충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에 또 한 번 그 대목을 읽어보았다. 두 번째 정독한 결과는 아까 하고는 아주 달랐다. 위컴의 일에 대한 그의 주장을 어쩔 수 없이 믿게 된 터에, 이번 경우에서도 어찌 그의 주장을 부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는 언니의 애정을 전혀 눈치챌 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샬로트의 의견이 향상 어떠했던가를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우기 제인에 대한 그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제인의 감정은 열렬하긴 했지만 겉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아서 그녀의 용모나 태도에는 언제나 변함없이 격한 감수성 하고는 인연이 먼 아주 흡족하다는 그러한 기색만이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분하기는 했어도 합당한 비난의 말로써 자기 가족에 대해 언급해 놓은 편지의 대목에 이르게 되자, 그녀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한 비난의 타당성이 너무도 세차게 그녀에게 충격을 주어 부정할 수조차 없다. 그가 특히 언급한 사건은 네더필드의 무도회에서 일어났던 것으로서 그의 애초의 탐탁지 않은 기분을 더욱 확인시켜 주었다고 했는데, 그 일은 그녀 자신에게도 그에 못지 않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자신과 언니에 대한 칭찬에도 전혀 둔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으로 그녀의 마음은 위로가 되었으나 나머지 가족 스스로가 초래했던 모욕을 생각할 때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제인이 실연 당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녀의 육친들이 저질러 놓은 짓이며, 자기네 두 사람의 신용이 그러한 부적당한 행위에 의해 그 얼마나 손상을 입었는가 생각할수록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한 이상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별의별 일들을 다 생각하며... 여러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 보기도 하고 이렇듯 돌발적이고 중대한 변화에 되도록 자신을 적응하려 애쓰며 두 시간 정도 작은 길을 헤매고 난 뒤에 지치기도 했거니와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운 것 같아서 마침내 귀가 길에 올랐다. 여느 때처럼 쾌활해 보이려고 애쓰면서 또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 자기를 어색하게 만들 상념들을 억누르기로 다짐해 가면서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가 부재중에 로징즈의 두 신사가 찾아 왔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아시 씨는 작별을 고하기 위해 불과 2, 3분 정도였으나, 피츠윌리엄 대령은 적어도 한 시간은 그들과 함께 자리하고서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랐으며 그녀를 찾으려 가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그와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체했지만 사실은 그것을 듣고서 기뻐하고 있었다. 피츠윌리엄 대령은 이제는 그녀의 대상이 못되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온통 편지만이 가득 들어 있었다. @ff 37 두 신사는 이튿날 아침 로징즈를 떠났다. 콜린즈 씨는 그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오두막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윽고 두 사람이 매우 건강해 보이더라는 이야기와 최근에 로징즈에서 있었던 쓸쓸한 이별의 장면이 있은 후로서는 바랄 수 있었던 만큼은 기분이 유쾌하더라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그리고 나서 로징즈로 캐더린 부인과 영애를 위로해 주기 위해 급하게 떠났다가 되돌아와서는 부인의 그 말을 매우 만족스럽게 전했다. 부인이 너무나 외로운 나머지 모두를 식사에 초대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캐더린 부인을 보자, 만약 자신이 택하기만 했었더라면 지금쯤은 이 부인의 조카딸로 소개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부인은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분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 어떻게 행동하실까?' 그녀는 그렇게 질문하고 혼자서 즐겼다. 첫번째 화제는 로징즈의 식구 수가 줄어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나는 뼛속까지 느껴지는 일이지만" 캐더린 부인이 말했다. "친구들이 떠난 후의 쓸쓸한 생각을 나만큼 맛본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난 그 청년들에게 특히 애착을 느끼고 있었고 그 사람들 역시 나한테 애착을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떠나는 것을 매우 서운해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항상 그런 거지요. 친애하는 우리 대령은 끝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힘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다아시란 사람은 몹시 괴로운 것같이 보이더군요.... 작년보다도 더한 것같이 보였어요. 그 사람은 로징즈에게 애착을 더욱 더 느끼고 있는 모양이지요." 콜린즈 씨가 잽싸게 인사말과 암시 비슷한 말을 하게 되자 모녀는 다같이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캐더린 부인은 베네트 양이 풀기가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마 얼마 안되어 곧 집으로 돌아가는 게 싫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혼자서 재빨리 짐작하고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정 사정이 그렇다면 어머님께 편지를 내서 좀더 체류하고 싶다고 부탁을 해보는 것이 어떠우. 콜린즈 씨 부인도 당신이 같이 있는 것을 매우 기뻐할 테니까 말이지요, 틀림없이" "친절하시게도 더 좀 체류하라고 하신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영부인님"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그러나 뜻을 받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번 토요일에는 런던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6주밖에 머물지 못한 결과가 되는 것 아니오. 두 달은 체재하는 줄 알았었는데,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콜린즈 부인에게 그렇게 말했었어요. 그렇게 빨리 안가도 좋을 텐데 말이에요. 어머님께서도 한 2주일 정도면 용서해 주실 텐데" "그렇지만 아버님께서 못 기다리시는 거예요. 지난 주에도 빨리 돌아오라는 편지를 보내오셨거든요." "아니! 어머님만 괜찮으시다면 아버님인들 허락 못하실라구. 딸 자식이란 아버지에겐 그리 중요하지가 못한 법이지요. 당신네들이 한 달만 더 머물 수 있다면 두 사람 중의 누군가를 런던까지 데리고 갈 수가 있을 텐데. 유월 초순에는 내가 한 주일 정도 머물려고 런던으로 떠날 예정으로 있어요. 도오슨이 마차에 앉는 걸 마다하지 않을 테니 한 사람 분의 좌석은 충분히 날 것이에요.... 더우기 날씨만 신선하다면 두 사람 다 데리고 가도 좋을 거예요. 어차피 두 사람은 몸집들이 크지 못하니까." "친절은 정말 고맙습니다, 영부인님. 그렇지만 원래의 계획대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캐더린 부인은 체념한 것 같았다. "콜린즈 부인은 하인을 딸려 보내도록 해야 하오. 알다시피 난 언제고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지만, 젊은 여성 두 사람만이 역마차로 여행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이오. 정말 잘못된 일이지요. 누군가를 딸려 보내도록 생각해 봐요. 세상에서 난 그런 일이 제일 싫으니까요. 젊은 여성들은 제각기 신부에 따라 언제고 적절하게 보호하고 시중을 들어주어야 하는 법이고. 조카딸 조지아나가 작년 여름 램즈게이트에 갔을 때로 하인 두 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단단히 일러두었지요. 펨벨리의 다아시 가의 따님인 다아시 양이나 앤 부인도 그렇지 않았더라면 예절에 맞는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난 원래 이런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몹시 쓰는 편이지요. 이 젊은 여성들에겐 존을 딸려 보내도록 하오, 콜린즈 부인. 그런 말을 할 생각이 떠올라서 매우 기쁘오. 두 분끼리만 보내드린다면 그야말로 당신에게는 불명예가 되고 말 거예요." "숙부님께서 하인을 보내 주시게 될 것입니다." "아! 숙부님께서! 그분께선 하인을 두고 계신가요? 그런 일까지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니 난 정말 기쁘오. 말은 어디서 바꾸게 되지요? 아! 물론 브롬리에서 하게 되겠죠. 벨에서 내 말을 하게 되면 돌봐 줄 거예요." 캐더린 부인은 그녀들의 여행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해놓고서는 자작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쪽에서 그만한 주의를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게 된 것이 엘리자베드로서는 오히려 다행하게 여겨졌다. 그렇지가 않았던들 마음 속에 들어찬 일들이 매우 많아서 자신이 현재 어디에 있는가를 잊고 말 지경이었다. 회상이란 혼자 있을 때를 위해 간직해야 할 일이다.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최대의 기쁨에 잠길 수 있는 단지 혼자만의 산책을 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다아시 씨의 편지는 그 전에도 거의 암기해 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녀는 문장이란 문장은 다 검토했다.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감정은 때로는 크게 차이가 나기도 했다. 그 글의 스타일을 생각할 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고 꾸짖었던 자신이 얼마나 부당했던가를 생각이 미치게 되자 이번에는 노여움의 화살이 자신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그의 낙담한 심정은 짐짓 연민의 대상이 되기로 했다. 그의 애정은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성격 전반에 대해서는 존경의 마음이 솟아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나아가 그를 거절했던 것은 한시도 후회스럽지가 않았으며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보겠다는 기분도 전혀 들지 않았다. 지난날의 그녀의 행동은 언제고 회한의 불씨가 되었고 가족들의 불행스런 결점들은 더욱 무거운 분노거리가 되었다. 그런 것들은 고칠 가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딸들을 보고 그저 만족해서 웃을 뿐이었고 딸들의 어처구니없는 경솔함을 제지해 보려는 노력의 빛은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정작 자신의 예의범절이 너무나 올바름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러한 흉한 점이 눈에 뜨일 리 만무였다. 엘리자베드는 항상 제인하고 힘을 합해서 캐더린이나 리디어의 무분별한 행동을 제지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정작 어머니 쪽에서 제멋대로 하게끔 내버려두는데 어떻게 개선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원래 마음이 약한데다 신경질적인 면을 가졌으며 꼼짝없이 리디어의 지도를 받다시피 하는 캐더린은 언니들한테 충고를 받게 되면 언제나 그것을 모욕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제멋대로며 신중 성이 모자라는 리디어는 그들이 하는 말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막내딸들은 무지스럽고 태만 한데다가 허영심이 강했다. 메리튼에 장교 한 사람이 있는 한은 그들은 함께 시시덕거릴 테고 메리튼이 롱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면 그녀들은 늘 그곳으로 갈 것이 너무나 뻔했다. 제인에 관한 불안도 점점 크게 마음에 걸리게 되었다. 다아시 씨의 설명으로 그녀는 빙리를 다시 한 번 옛날처럼 높이 평가하게 되었으므로 더욱 제인이 잃은 것이 크다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빙리의 애정은 성실한 것이었다고 증명되었으며, 그의 행동은 친구를 철두철미하게 믿는다는 점만을 제외해서 생각할 때 그 어느 곳에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족들의 바보스런 행동이나 범절에 어긋난 행동 때문에 제인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바람직하며 이점도 많으며 그토록 행복을 약속할 수 있는 지위를 놓치고 말았다고 생각할 때 슬픔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러한 회상과 더불어 위컴의 정체가 더욱 확실해졌으니 그 전에는 더욱 침울해 할 줄을 몰랐던 밝은 성품이었더라도, 이제는 너무도 상심한 나머지 웬만큼 쾌활해 보이기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해도 쉽게 이해가 갔다. 로징즈에 초대는 체재의 마지막 주에 가서는 첫주 못지 않게 빈번해졌다. 마침내 맨 마지막 밤도 거기서 보내게 되었다. 부인은 또다시 그녀들의 여행의 상세한 점까지 자세히 조사하고 최상의 짐을 꾸리는 방법에 마리아는 돌아가면 애써 오전 중에 꾸린 짐을 풀어서 여행 가방을 새로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캐더린 부인은 작별할 대 겸손한 태도로 편안한 여행을 빈다는 인사말과 내년에 다시 헌스퍼드로 오도록 권유했다. 드 버그 양도 두 사람에게 인사를 나누자고 손을 내밀기까지 했다. @ff 38 토요일 아침 엘리자베드와 콜린즈 씨는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전에 아침 식탁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기회를 포착해서, 자기로서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작별의 인사말을 정중하게 꺼냈다. "난 잘 모르겠습니다만, 엘리자베드 양" "벌써 우리 집사람이 여기까지 와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렸는지요. 그러나 집사람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듣지 않으시고 이 집을 떠나실리는 만무하시겠지요만, 방문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양식이라든가 방들이 작은 점, 하인이 또한 많지 못한 점, 나아가 세상일에 매우 아둔하다는 점 등 그 어느 것이고 당신과 같은 젊은 숙녀에게는 헌스퍼드란 곳을 사뭇 따분하게 만들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당신이 친절하시게도 와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고 아울러 당신이 불유쾌한 시간을 보내시지 않도록 하는 데까지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감사했으며 즐거웠었다고 말했다. 매우 기분 좋게 6주일을 보냈으며 샬로트와 함께 있는 있었던 일이 즐거웠고 게다가 친절한 배려까지 받게 되어서 자기 쪽에서 더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콜린즈 씨는 흡족해 했으며, 더욱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자못 엄숙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기분 나쁘지 않게 시간을 보내셨다는 말을 듣게 되니 나는 더없이 기쁘게 생각합니다. 확실히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다행스럽게도 당신을 상류 사회에 소개할 수 있었던 우리의 능력과 그리고 로징즈와의 관계로 해서 누추한 우리 집 분위기에 자주 변화를 불어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헌스퍼드 방문은 전적으로 지루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좋을 성싶습니다. 캐더린 영부인 일가와 우리 집 하고의 관계는 정말 놀랄 만한 유익과 축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으며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자랑거리라 할 수 있지요. 우리들이 어떠한 관계에 놓여 있는가를 당신도 잘 아시겠지요. 우리가 끊임없이 거기로 초대된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지요. 사실 나 자신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일이지만, 이 보잘것없는 목사관에 이런저런 불편이야 있겠지만, 여기에 머무시는 분은 우리들과 함께 로징즈로 접근할 수 있는 한은 어떤 동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말로는 부족했던지, 엘리자베드가 몇 마디 짧은 말로 예의 같기도 하고 진실 같기도 한 의미를 애써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방 안을 걸어다니지 않고서는 견디질 못했다. "확실히 우리들에 관한 매우 좋은 보고를 허어퍼드셔에 가지고 가시겠지요, 엘리자베드 양. 그렇게 해주시기만 한다면 나는 기쁘기 한량 없겠어요. 우리 집사람에게 캐더린 영부인께서 친절히 해주신 것은 매일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요만. 그래서 결국 난 믿고 있습니다만 당신의 친구분이 뽑은 것은 그렇게 나쁜 심지만은... 아니, 이 점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낫겠지요. 사랑하는 엘리자베드양, 나는 진심으로 당신도 행복한 결혼을 했으면 하고 빌고 있을 뿐이지요. 사랑하는 샬로트와 나는 마음도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 둘이는 성격과 생각이 서로 매우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맺어지게끔 된 천생연분인 셈이죠" 엘리자베드는 상황이 그렇다면 최대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며, 꼭 같은 정도의 성의를 가지고서 그의 가정의 즐거움도 굳게 믿고 있다고 덧붙여 말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의 장본인인 부인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사연을 그로부터 소상하게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과히 섭섭하지는 않았다. 가엾은 샬로트! 그녀를 이런 남자의 상대로 내버려두다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녀 자신이 눈을 크게 뜬 채로 이 사람을 골랐던 것이다. 손님들이 떠나는 것을 애석해 하는 것은 명백했지만 그렇다고 동정 같은 것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가정과 가사 처리, 그녀의 교구와 가금, 나아가 자질구레한 일상사가 아직 그들의 매력을 잃지 않았다. 이윽고 마차가 당도하여 여행 가방을 묶어 달고 소하물을 안으로 들여 넣자 곧 준비가 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친지 사이의 애정 어린 작별 인사가 있은 후에 엘리자베드를 콜린즈 씨가 마차 있는 곳까지 수행해 주었다. 두 사람이 정원을 걸어 내려오고 있을 때 그는 가족 여러분께 안부를 잘 전해 달라고 했으며 지난 지난 겨울에 롱본에서는 친절한 초대를 받아 감사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으며 아직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디너 부부에서도 안부 전해 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손을 내밀어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마리아가 뒤따랐으며 문을 막 닫으려는 찰나에 그는 별안간 사뭇 당황해 하며 그들이 아까부터 로징즈의 부인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것을 잊었다고 주의했다. "그러나" 그가 덧붙여 말했다. "이곳에 머무신 동안 그분들이 베푼 친절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조촐한 경의를 그분들에게 전해 주기를 물론 원하고 계시겠지요." 엘리자베드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자 문을 닫아도 좋다고 그가 말하자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마리아가 잠자코 있다가 외쳤다. "처음 온 지 2, 3일밖에 안된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생겼지요!" "정말 너무나 많았어요." 그녀의 상대가 한숨 지으며 말했다. "우린 로징즈에서 아홉 번이나 식사를 했지요. 게다가 거기서 차 대접을 두번씩이나 받고 말예요! 할 말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엘리자베드는 마음 속으로 덧붙였다. "더우기 감춰 둘 일도 많이 있구요!" 그녀들의 여행은 이야기 나눌 일도 많지 않았지만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없이 이루어졌다. 헌스퍼드를 떠나서 네 시간이 채 되기 전에 가디너 씨 댁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2, 3일 체류하기로 했다. 제인은 보기에 매우 원기가 있어 보였으며, 엘리자베드는 외숙모가 친절하게 자기들을 위해 마련해 준 여러 가지 초대를 받게 되어 미처 제인의 기분을 따져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와 함께 귀가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롱본에서 관찰할 여가가 충분히 있을 것 같았다. 다아시 씨가 청혼해 온 사실을 언니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적어도 롱본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데는 적잖이 힘이 들었다. 제인을 몹시 놀라게 해줄 것이며 동시에 이성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던 자기의 허영심의 많은 부분을 크게 만족시켜 놓고 말 일을 자기는 피력해 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 무엇에도 억압받지 않을 만큼 털어놓고 싶었으나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옳을 것인지 좀처럼 가늠하기 힘든 심정인 데다가 막상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빙리의 일도 저절로 몇 번씩 이야기하게 됨으로써 언니를 더욱 더 슬프게만 해줄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ff 39 세 사람의 젊은 여자들이 함께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허어퍼드셔의 ㅇㅇ시를 향해 출발한 것은 5월의 둘째 주였다. 베네트 씨의 마차가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 있는 지정된 여관이 가까워지자 마부의 시간관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그 증거로 키티와 리디어가 2층 식당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이 두 여자들은 거기에 온 지가 벌써 한 시간 이상이 되었는데도 맞은편 부인 모자 상점에 들르기도 하고 당직 중인 위병을 지켜보기도 하고 또 오이가 든 샐러드 양념을 만들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언니들을 영접하고 나서 여관 식료품 가게에서 내놓는 그런 냉육이 얹힌 식탁을 보여 주면서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거 좋지 않아요? 놀랄 만큼 맛이 괜찮을 거예요?" "우리가 한턱 쓸께요." 리디어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돈은 빌려 주셔야 해요, 왜냐하면 바로 저 가게에서 다 써 버렸으니까요." 그리고는 사 온 물건들을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 보세요, 이 모자를 샀거든요. 그리 예쁘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사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집에 가서 즉시 풀어 해쳐서는 얼마만큼이라도 낫게 고칠 수 있을까 시험해 봐야겠어요." 그러자 언니들이 보기 흉하다고 트집을 잡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덧붙여 말했다. "그 가게엔 그것보다 더 못생긴 것도 두세 개 있었어요. 좀더 색깔이 예쁜 수실을 사서 새 장식이라도 하게 되면 이럭저럭 쓸 수 있게 될 거예요. 더우기 이번 여름은 뭣을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ㅇㅇ주 연대가 베리튼을 떠나게 될 거예요. 한 2주일만 더 있으면" "그거 정말이야?" 엘리자베드는 사뭇 만족스러운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브라이튼 근처에서 야영하기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 이번 여름엔 아빠가 우리들을 다 데리고 가 줬으면 얼마나 좋겠어! 이건 다시없이 좋은 계획인데다 돈은 한 푼도 안 들거든요. 엄마는 꼭 가시고 싶어 하실 거예요, 만사를 제쳐놓고서라도! 그런 일이라도 없게 된다면 얼마나 따분한 여름이 될 것인지 생각이나 해보세요!" "정말야." 엘리자베드는 생각했다. "그건 정말 즐거운 계획이야, 우리 모두한테 말야. 맙소사! 보잘것없는 의용군의 1연대하고 메리톤에서 매달 있는 무도회 같은 것으로 벌써 주체 못할 정도로 많은데 브라이튼이나 야영하는 전체 군인까지 합친다니!"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어요." 그녀들이 식탁에 앉았을 때 리디어가 입을 열었다. "뭐라고 생각하우? 이건 정말 좋은 뉴스죠.... 중대한 것이란 말예요....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일이란 말예요." 제인과 엘리자베드는 서로 마주보고 급사에게는 더 이상 있지 않아도 좋다고 일렀다. 리디어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머, 언니들은 너무 딱딱하시고 분별이 지나치시단 말예요. 급사가 엿들어선 안된다 이거죠. 마치 급사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은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말보다는 더한 것들도 들었을 텐데요 그건 그렇고 못생긴 남자네요! 그 사람이 가 버리니까 기분이 너무나 좋아요. 그렇게 긴 턱은 정말 보지 못했어요. 그건 그렇고 뉴스를 말해야지. 위컴 씨 얘기죠. 급사가 듣기엔 너무나도 귀중하죠, 안 그래요? 위컴이 메어리 킹하고 결혼할 위험성은 우선 없어요. 자 어때요! 메어리는 리버푸울의 백부 댁에 가 있지 뭐예요. 그래서 위컴은 안전하지요." "그렇다면 메어리 킹도 안전한 거야!" 엘리자베드가 덧붙여 말했다. "재산이 축나는 연분에서 우선 안전해진 거야." "위컴을 좋아한다면 이 곳을 떠나다니 좀 바보 같군요." "그렇지만 서로간에 애정이 없어서 그랬겠지." 제인은 그렇게 말했다. "틀림없이 남자 쪽에서 애정이 없었던 거야. 보장해도 좋지만 그 여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야 주근깨 투성이의 불결하고 작은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냐 말야?" 엘리자베드는 자기로서는 그러한 조잡스런 표현은 할 수 없을지라도 그 감정의 조잡함에 있어서는 일찌기 자신의 가슴속에 간직했었고, 그것을 또한 자유라고까지 자부했던 것하고 별다름이 없는 것이라 생각했을 때 그녀는 섬뜩해졌다. 모두들 식사를 끝내고 낮, 곧 마차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상자와 재봉 도구통과 소하물과 그리고 키티와 리디어가 구입했던 그리 달갑지 않은 추가 하물까지도 마차 안에 실었다. "잘도 쑤셔 넣었군요." 리디어가 소리질렀다. "보네트를 사 와서 다행이군요. 설령 모자 상자 하나가 더 불어나는 즐거움뿐이라도 말예요! 자아, 지금부터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기분 좋게 사뭇 얘기하고 웃고 해가면서 가요. 딴 것은 제쳐놓고 우선 언니가 그곳에 간 후에 어떤 일이 생겼었는가 그 일부터 들려 줘요. 멋있는 남자라도 만나셨었우? 바람 피웠어요? 난 말예요, 언니들이 돌아오기 전에 한 사람쯤은 신랑감을 정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어요. 큰언니는 얼마 안가 올드 미스가 되고 말 거니까. 조금만 있으면 스물 셋이 되니까 말예요! 맙소사! 스물 셋까지 결혼 안하고 있다면 전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필립스 이모가 언니의 신랑을 구해 주려고 얼마나 안달하시는지 모를 거예요. 리지는 콜린즈 씨의 청혼을 받았더라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죠. 그렇지만 농담으로 그러시는 것 같지는 않아 보여요. 아! 난 언니들보다 그 얼마나 먼저 결혼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되기만 하면 무도회에서는 샤프롱 구실을 해 드릴 수 있어요. 아, 정말 먼저번엔 포스터 대령 댁에서 유쾌한 일이 있었지요! 키티 하고 나하고 둘이서 주간에 그곳을 방문했더니 포스터 대령 부인이 밤에는 조촐한 무도회를 개최하겠다고 약속하셨지요. (내친김에 말하지만, 포스터 부인하고는 매우 친한 사이죠!) 그래서 부인께선 해리톤 댁의 두 사람을 불렀지만, 그때 마침 나쁘게 해리에트가 병이 나서 편한 사람만 올 수밖에 없게 됐어요. 그리고 나서 우리가 뭘 했는지 아우? 체임벌린에게 여자 복장을 입혀서 귀부인 행세를 할 참이었었죠.... 얼마나 유쾌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포스터 대령 내외분과 키티와 나 이외에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예요. 하기야 이모님의 가운 하나를 빌어야만 했기 때문에 이모께선 예외로 아시게 됐지만. 체임버릴은 어떻게 멋지게 보였는지 언니들은 상상조차 못할 거예요 데니와 위컴 그리고 프래트, 그 밖에 두 세 사람의 남자들이 들어왔었지만 체임벌린은 아무도 몰랐다니까요. 아주 재밌어! 난 한참 웃었다니까! 포스터 부인도 그랬구요. 난 웃다가 죽지나 않나 하고 걱정했죠. 그게 어쩐지 수상쩍다고 남자들이 말을 끄집어내기 시작하자 이내 내용이 드러나고 말았지요." 자기네가 겪었던 그러한 파티 이야기나 유쾌한 농담을 함으로써 리디어는 키티의 암시나 조언을 받아 가며 롱본까지 사뭇 일행을 즐겁게 해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엘리자베드는 될 수 있는 대로 듣지 않으려 했으나 위컴의 이름이 줄곧 튀어나왔기 때문에 안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집에서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베네트 부인은 제인의 아름다움이 줄어들지 않은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더우기 베네트 씨는 식사 중에 여러 번 자진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돌아와 줘서 고맙구나, 리지야." 식당에 모여든 사람의 수효는 꽤 많았다. 왜냐하면 루커스 가의 식구들이 마리아를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으러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끌 화제는 여러 가지였다. 루커스 부인은 식탁 건너편에 앉은 마리아에게 맏딸의 행복에 관한 일이나 닭과 오리에 대해 묻기도 하고 베네트 부인은 한편으로는 약간 아래쪽에 자리잡은 제인한테서 최근의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루커스 가의 막내딸들에게 말하느라고 이중으로 바빴다. 리디어는 그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오전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재미있던 일을 들어 주는 사람만 있으면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아, 메어리 언니" 그녀가 말했다. "언니도 함께 왔었더라면 좋을 뻔했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가는 도중에 키티 언니하고 둘이서 차일을 전부 잡아 내려서 마차 안엔 아무도 없는 것같이 보이게 했었죠. 키티만 멀미를 하지 않았으면 난 그대로 가려고 했지요. 조지 여관에 도착해서는 우린 매우 기분 좋게 행동했다고 생각해요. 나머지 세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좋은 냉육 점심을 대접해 줬으니까 말예요. 언니도 같이 갔더라면 그런 대접을 받았을 거예요. 그리고 돌아올 때도 정말 아주 재미있었죠! 마차를 안 탔으면 좋을 뻔했다고 생각했죠. 어떻게나 웃었는지 죽을 지경이었지요. 그리고 집으로 올 때까지도 아주 재미있었어요! 어떻게나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는지 10마일 앞에서도 들렸을 거예요!" 이 말을 듣자 메어리는 자못 진지하게 말했다. "난 말야, 그런 즐거움을 경멸할 사람은 못돼요, 리디어. 일반적인 여성의 심리로서는 확실히 그것은 쾌적한 일이겠지. 그러나 난 고백해 두지만 그런 일은 나에겐 별로 매력이 없어. 난 차라리 책을 더 좋아하지." 그러나 리디어는 이 대답을 한마디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의 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메어리의 말은 조금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가 되자 리디어는 메리튼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가 보자고 성화 했지만 엘리자베든는 그 계획에 대해서 굳이 반대하고 나섰다. 베네트 가문의 규수들이 집에 돌아온 지 반 나절도 채 안되는 데 장교들은 뒤쫓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되겠기에. 그녀의 반대에도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또다시 위컴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으며 되도록 피해 보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연대의 이동이 가까와졌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다시없는 위로거리였다. 두 주일이 지나면 그들은 떠나가 버릴 것이며 일단 떠나면 그 사람으로 해서 괴로움을 당할 일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서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여관에서 리디어가 암시하던 브라이튼 행 계획이 양친 사이에서 빈번히 야기되고 있는 사실을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이내 아버지에게는 승낙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나, 아버지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애매하게 해석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자주 실망을 해가면서도 아직까지는 단념하지 않았다. @ff 40 자기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을 제인에게 말하고 싶은 엘리자베드의 안달은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마침내 엘리자베드는 언니에게 관계되는 일들은 하나같이 은폐하기로 결정하고 또 깜짝 놀랄 것을 미리 계산해 넣고서는, 다음날 아침 다아시 씨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장면의 골자를 말해 주었다. 베네트 양의 놀라움은 언니로서의 지극한 편애의 감정 때문에 곧 진정되었는데, 그 편애의 눈으로 볼 때 엘리자베드가 누구의 사모를 받는다 해도 극히 자연스런 일로 보였다. 그리고 순간적 놀라움은 곧 다른 감정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이시가 자기의 감정을 고백하는 데 있어서 어쩌자고 그렇게도 부적당한 방법을 취했을까 그 점이 유감스러웠으나, 그보다도 동생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나서 얼마나 슬픈 심정에 젖었을 것인가에 생각이 미치게 되자 그것을 더욱 가엾게 여기게 되었다. "그분은 틀림없이 성공하리라고 확신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감정을 내색 않느니보다 못했단 말야. 그만큼 낙담도 더 컸을 게 아냐" "정말 그래요."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나도 진정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우. 그러나 그분은 그 밖에 생각해야 할 일들이 있게 되면 나를 곧 생각하지 않게 될 거니까요. 그건 그렇고, 내가 거절했던 일을 꾸짖지 말아 줘요." "널 나무라다니! 원 천만에" "그렇지만 내가 위컴의 일을 너무 흥분해서 말한 것을 나무라겠지요." "아냐.... 그렇게 말한 네가 틀렸다고 생각지는 않아" "그렇지만, 곧 다음날 일어났던 얘기를 들려 주면 언닌 내 잘못을 알 거예요."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편지 이야기를 말해 주었고 내용 속에서 조지 위컴과 관계 있는 부분을 전부 되풀이해 주었다. 가엾게도 제인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큰 타격이 될 줄이야! 그녀는 방금 들은 한 인간 속에 내포돼 있는 사악함이 전 인류에게 존재한다는 사실마저 믿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살아 나가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아시의 자기 변명도 그녀의 기분을 밝게 해주는 것이기는 했지만, 위컴에 대한 이 발견의 슬픔을 위로해 주는 것은 못되었다. 그녀는 짐짓 진지하게 어떤 오해에서 빚어진 결과이리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어느 한족을 손상시키지 않고서 다른 한쪽의 결백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건 소용없는 짓이예요." 엘지자베드는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을 다 선인으로 만들자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한쪽을 정해 가지고 만족해야 하는 거예요. 두 사람 사이엔 꼭 한 사람 몫의 장점밖에 없으니까요. 그것마저 요즘에 와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고 있어요. 내 생각으로는 다아시 씨 쪽에 있는 걸로 믿고 싶은데 언니는 좋을 대로 정하시면 돼요."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자, 제인은 겨우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렇게 쇼크 받긴 이번이 처음이야." "위컴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 가엾은 다아시 씨! 이봐, 리지, 얼마나 괴로왔을까 생각이라도 해줘야지. 실망이 얼마나 컸을까! 게다가 네가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야! 누이동생의 그런 일까지 말해야 됐으니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야. 너도 꼭 그렇게 생각하겠지." "야! 아녜요, 언니가 유감스러워 하고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내가 그런 기분에 젖어 있을 수 없게 돼버렸어요. 언니가 그분을 그토록 공평한 눈으로 봐주신다는 걸 알고 나선, 난 어쩐지 태연해지고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기분이 자주자주 생기게 돼요. 언니의 풍성함이 나를 깍쟁이로 만들어요. 언니가 그분 일을 더 이상 한탄에 주신다면 내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질 거예요." "가엾은 위컴! 얼굴에는 그렇도록 선량한 표정이 깃들여 있는데! 태도도 그토록 밝고 상냥스럽기만 한데" "틀림없이 그 두 청년의 교육에는 뭔가 관리상의 문제가 있었을 거야. 한족은 선인의 내용 덩어리인데 또 한쪽은 선인의 외관 덩어리이니까 말예요." "난 네 생각하고는 달라, 다아시 씨에겐 그 외관이 없다고는 보지 않아" "그런데도 난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그분을 그토록 싫어했었고 내 딴엔 아주 현명하다고 여기고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자기 재능에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고 재치 있는 슬기를 닦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요. 항상 사람을 중상 모략하고 있으면 올바른 일은 아무것도 말 못하게 되지만, 항상 사람을 비웃고만 있으면 때로는 재치 있는 말이 싫어도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거든요." "리지, 넌 그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틀림없이 이 문제를 지금처럼 해석 할 수는 없었을 거야." "정말 못했죠. 적잖이 동요했어요. 비참할이만큼 동요했어요. 더우기 자신의 감정을 호소할 상대도 없었어요. 제인 언니가 없었던들 위로 받지 못했을 것이고 또 내가 생각했었던 만큼 약하지도 않으며 허술한 사람도 아니고 바보스럽지도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 줄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아, 언니가 있어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내가 위컴 얘기를 다아시 씨에게 말했을 때 그렇게 강한 표현을 하게 된 것은 정말 유감이란다. 지금 와서 생각할 때 그렇게 안해도 좋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야." "정말 그래요.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렇게 지독스럽게 말한 것은 내가 평소 마음에 품어 왔던 편견의 극히 당연한 결과인 거예요. 언니의 충고를 받고 싶은 점이 꼭 한 가지 있어요. 위컴의 성격을 친지 여러분에게 알려야 할 것인지 안 알려야 할 것인지 그 점을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베네트 양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대답했다. "그토록 심하게 폭로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 의견은 어떠냐" "그런 짓을 해선 안되죠. 다아시 씨는 자기가 전한 말을 발표해도 좋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반면에 누이에 관한 얘기는 전부다 내 가슴속에 간직해 두란 부탁이었어요. 더우기 그분의 모든 행위에 관해 모든 사람에게 그 진실을 알리려 힘쓴들 그 누가 내 말을 믿어 주기라도 하겠어요? 다아시 씨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편견은 너무나 심한 것이기 때문에 섣불리 그분을 잘 보이게 하려 들다간 메리튼의 선량한 사람들의 절반은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말 거예요. 난 그런 힘은 없어요. 위컴은 곧 가 버릴 사람이니까 그분이 실제 어떠한 인물이든 간에 이곳 사람들에게 큰 관계는 없는 일이지요. 앞으로 언젠가는 깡그리 알려질 테니까 그때 가선 그전에 그걸 몰랐던 모든 사람의 어둔했던 사실을 비웃기만 하면 되니까요. 지금으로선 난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네 말이 꼭 맞았다. 그분의 과오를 알리기만 하면 그분은 영원히 파멸 속에 빠져들고 말 테니까. 지금쯤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후회도 하고 명예회복도 하고 싶을 테지. 그분은 절망 상태로 몰아넣어서는 안되는 거야." 엘리자베드는 산란한 마음은 대화로 진정되었다. 두 주일 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비밀 중의 두 가지를 제거했으니, 그 둘 중의 어느 편이든 다시 말하고 싶을 때는 제인이 쾌히 들어 줄 게 확실했다. 그러나 아직도 감추고 있는 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조심성 있게 그것을 털어놓지를 않았다. 그녀로서는 다아시 씨 편지의 나머지 부분을 이야기를 할 용기가 없었으며, 또 언니를 빙리 씨가 얼마나 성심성의로 아꼈는지를 설명할 용기도 없었다. 그 속에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 부담스런 마지막 비밀을 털어놓는다 하더라도 당사자간의 이해만이 그것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혹시 실제로 생긴다면 빙리 자신이 자기 입으로 더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을 그런 일을 굳이 내가 나서서 말할 것까지는 없는 거야. 널리 발표할 자유를 내가 갖게 될 때면 말할 가치는 없어지고 말 때겠지!" 그녀는 집에 와 있었으므로 언니의 올바른 자태를 여유 있게 관찰할 수가 있었다. 제인은 행복한 편은 못되었다. 지금까지도 빙리에 대한 깊고 애절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이전의 그녀는 애정에는 첫사랑의 정열이 다 깃들여 있는데다가 그녀의 나이나 재주로 봐서는 첫사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상의 불편함이 있었다. 그에 대한 추억을 너무도 소중히 간직하고 그 사람 이외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상태여서, 그녀의 건강을 해치고 주위 사람들의 평온을 혼란시키기 십상인 번민에 휘말려 들지 않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의 양식과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는 마음이 꼭 있어야 했다. 어느 날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그렇지만, 리지야. 너의 언니의 그 슬픈 문제에 대한 너의 의견은 어떠냐? 나로서는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는 이 문제에 대한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다. 내 일전에도 필립스에게 말했다만, 그렇지만 제인은 런던에서 그 사람하고는 잠시도 만나 보지 못한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사람은 정말 상대가 안되는 청년인가 봐.... 내 생각으로는 지금 와선 그애가 그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없어지고 만 거야. 난 알 만한 사람들에겐 죄다 물어 보았다만 이번 여름에는 네더필드로 돌아오기는 다 틀렸나 보더라." "그분은 이제 네더필드에서는 안 살게 될 것 같아요." "그래 좋다! 좋을 대로 하라지 뭐. 아무도 그 사람을 와 달라고 원치 않고 있단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내 딸에게는 너무했다고 언제나 말할 테다. 게다가 내가 그애 입장이라면 잠자코 참고만 있지 않겠다. 아무렴, 제인은 꼭 상심해서 죽어 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도 자기가 한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까 한결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구나"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기대에서 어떤 위안을 얻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리지야." 곧 그녀의 어머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콜린즈 부부는 잘 살고 있더냐? 그래, 그래 언제까지고 그런 상태가 계속됐으면 좋겠구나. 그래 어떤 음식을 먹고 있더냐? 샬로트는 가정 경제를 잘 보살피는 애니까. 친정 엄마 반만이라도 모질면 꽤나 모으게 될 테니까. 그 집 가계엔 사치스런 짓이라고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예, 정말 없어요." "살림 솜씨는 대개 거기에 달려 있지. 암, 그렇고말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수입보다 조금 덜 쓰려고 애를 쓸 거다. 돈 문제로 곤란을 받지는 않을 거야. 참 잘하는 일이지! 그리고 너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게 되면 롱본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겠지. 그렇게 되는 날이면 롱본은 자기네 손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겠지." "그런 문제는 내 앞에서는 꺼내지도 않았어요." "암 그래야지. 꺼냈다면 이상한 일이지.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선 가끔 그런 말이 오간 것이 틀림없어. 하긴 법률상으로 자기네 소유가 아닌 재산을 태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면 더욱 좋은 일이 되겠지. 나 같으면 겨우 한사상속으로나 물려받을 재산이라면 부끄러워할 거다." @ff 41 집에 돌아온 후 첫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말았다. 이내 두 주일 째로 접어들었다. 연대의 메리튼 주둔의 최후의 주로서 근처의 젊은 여자들은 급속하게 침울해져 갔다. 거의 모두가 낙담 상태였다. 베네트 가의 두 큰딸들만이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잠을 잤고 여느 때처럼 일을 해 나갈 수가 있었다. 이 무감각 상태를 끊임없이 키티와 리디어가 나무랐는데, 이 두 사람의 비참함은 비할 데가 없었으며, 가족 안에 이토록 무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느님! 저희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하면 좋단 말입니까?" 살을 에는 듯한 슬픔 속에서 그녀들은 자주 외쳐 보았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싱글벙글하고 있을 수가 있어요. 리지 언니?" 애정 깊은 어머니마저 그녀들과 슬픔을 함께 했다. 그녀는 25 년 전에 자기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정말" 그녀가 말했다. "밀러 대령의 연대가 떠나가 버렸을 땐 난 이틀 동안이나 사뭇 울며 지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어." "정말 내 가슴도 찢어질 것 같아요." 리디어가 받아 말했다. "브라이튼으로 갈 수만 있다면!"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아, 그렇구말구요!. 브라이튼으로 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아빠가 덜 좋아하시고 계시니까 말예요." "해수욕을 조금만 하면 난 건강해질 수가 있겠는데" "필립스 이모는 해수욕은 저에게도 매우 좋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키티가 말했다. 이러한 한탄의 소리가 롱본 집에는 끊임없이 울려 나갔다. 엘리자베드는 그것들로 해서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으나 즐거운 기분은 온통 수치심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흉본 것이 옳았다고 새삼 알게 되었으며 친구의 계획에 그가 간섭한 사실을 이토록 용서해 주고 싶은 심정을 전에도 전혀 느껴 보지 못했다. 그러나 리디어의 전도의 어두운 그림자는 곧 걷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연대의 포스터 대령 부인한테서 브라이튼으로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없이 귀중한 이 친구는 아직 젊은 부인으로 최근에 결혼한 사람이었다. 명랑하고 생기발랄한 점이 서로 흡사해서 그녀와 리디어는 서로가 좋아하게 되었으며, 교제한 지 3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이때의 리디어의 기뻐 날뛰는 것과 포스터 부인에 대한 그녀의 찬사, 베네트 부인의 만족, 그리고 키티의 원통해 하는 꼴들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 못할 것들이었다. 언니들의 기분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리디어는 침착성을 잃은 무아 상태로 집 안을 뛰어다녔으며 닥치는 대로 축하를 요구하며 보통 때 이상으로 웃고 지껄여 댔다. 반면 불운한 키티는 응접실에 처박혀서는 칭얼거리는 어조만큼이나 조리에 안 맞는 투로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포스터 부인은 왜 리디어만이 아니고 나까지 오라는 말을 안했는지 모르겠어." "난 그분하고는 각별한 사이는 아니지만 나도 초대받을 권리는 리이어만큼은 있다고 봐요. 더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두 살이나 위니까 말예요." 엘리자베드는 이치를 따져서 납득시키려 하고 제인이 체념시키려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엘리자베드 자신으로서는 이 초대를 해서 리디어나 어머니와 같은 기분에 젖어 들기 전에 거리가 너무 멀었으며, 리디어의 상식에 대한 사형집행 명령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 탈로가 나면 그런 수단을 쓴 것으로 해서 미움받을 것이 뻔했는데도 동생을 보내지 말도록 아버지에게 살짝 권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리디어의 품행이 과히 좋지 못하다는 점, 포스터 부인과 같은 여자와 교제해서 별로 얻는 것이 없을 것이며, 집에 있을 때보다는 유혹이 많을 브라이튼 같은 곳에서 그런 상대와 함께 있으면 더 경솔해질는지도 모른다는 점등을 아버지에게 말해 주었다. 아버지는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리디어란 애는 어딘가 사람 많은 곳에 몸을 내맡기기 전에는 조용해질 수 없는 애야. 더우기 이번 경우처럼 돈도 안들것다, 제 식구들한테 폐끼치는 일도 별로 없는 터에 그애더러 얌전히 참고 있기를 기대할 수야 업지 않겠니" "아버지께서 만일"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리디어의 부주의하고 경솔한 태도가 남의 눈에 뜨임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매우 막대한 손해를 끼칠 거라는 사실을 아니 이미 끼쳤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시기라도 하신다면 틀림없이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판단하시게 될 거예요." "이미 끼쳤다구!" 베네트 씨가 되뇌었다. "뭐라구! 그래 네 애인 몇 사람을 놀라게 해서 쫓았다는 거냐? 가엾은 리지야! 그러나 그리 낙심할 필요까진 없다. 다소 불합리한 사람하고 인연이 맺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까다로운 청년 같으면 애석해 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서 리디어의 바보스런 행동으로 해서 멀어진 불쌍한 녀석들의 명부를 어디 한 번 대봐라." "그건 잘못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전 그렇게 분할 만큼 피해는 안 입었어요. 제가 지금 불평을 털어놓고 있는 것은 어떠한 특정 재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일이에요. 세상에서의 우리 집안의 가치라든가 체면 같은 것들이 행여 리디어의 성격의 특징으로 돼 버린 야성적인 경솔함이라든지 아니면 뻔뻔스런 점 또는 일체의 구속을 경멸하는 따위로 해서 해를 입을 것이 너무나 뻔하거든요 죄송해요.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드려서. 아버지, 만약 리디어의 걷잡을 수 없는 기질을 막지 않으신다든가 지금 한창 쫓고 있는 것이 인생의 참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다가는 그애는 정녕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거예요. 성격이 굳어져 버리고 열 여섯에 벌써 자신이나 가족을 우스갯감으로 만들고 마는 보기 드문 바람둥이가 되고 마는 거예요. 그 바람둥이라는 것도 얼마 안가서 제일 고약한 저질이 돼버려서 그저 젊고 쓸 만하다는 이외엔 아무런 매력도 없어지고 정신이 또한 어리석고 공허해져서 칭찬 받고 없어지는 거예요. 키티도 궁극엔 이러한 위험 속에 말려들게 마련이지요. 리디어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따라가려고 하니까요. 허영심이 있고, 무지스럽고, 게으르고, 또 완전히 제멋대로란 말예요. 그리고 아버지께선 그애들이 어디엘 가든 비난도 경멸도 안 받게 된다거나 또는 손위의 저희들이 자주 불명에 속에 휘말려 드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베네트 씨는 그녀의 마음 전체가 이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되었다. 이윽고 다정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서 대답했다.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애야. 너나 네 언니는 어디에 가든 존경받고 위함 받을 수가 있다. 두 사람의... 아니 세 사람이라도 좋을 거다만... 몹시 아둔한 동생들을 가졌다고 해서 너희 둘의 값어치가 줄어들지는 않을 거야. 리디어가 브라이튼으로 가지 않을 것 같으면 이곳 롱본에는 평화가 없을 거다. 그러니까 가도록 하자는 거다. 포스터 대령은 분별이 있는 남자니까 그애에게 뭔가 중대한 과오를 범하게 할 리가 없을 거다. 더우기 그앤 불행 중 다행으로 못사는 처지니까 누구에게도 희생물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브라이튼에서는 경박한 바람둥이로서도 여기보다는 인기가 덜할 테니까 말이다. 장교들도 좀더 눈요기가 될 만 한 여성들을 찾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그애가 그곳에 가더라도 자기가 아주 보잘것없다는 걸 배우기만 기대해 보자꾸나. 아뭏든 더 이상 더 나빠질 수는 없을 게다. 그렇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가둬 두는 걸 우리에게 허용하는 셈이 되니까 말이다." 이 대답에 엘리자베드는 하는 수 없이 만족해야 했지만, 정작 자신의 의견은 조금도 변하지를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낙심한 채 유감스러운 기분으로 아버지 곁을 떠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번민을 더하는 것은 그녀의 성질로서는 못할 일이었다. 자기의 의무는 일단 다 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피치 못할 재난을 마음 속으로 걱정하거나 불안에 의해 재난을 더 크게 하는 그런 것은 그녀의 기질 속엔 없었다. 리디어와 어머니가 그녀와 아버지 사이에 오고간 내용을 알기나 하는 날이면, 그녀들의 분노는 그 두 사람의 심한 수다로도 표현을 다 못할 정도일 것이다. 리디어가 상상하는 바로는, 브라이튼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행복의 가능성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창작적인 환상의 눈으로 화려한 해수욕장의 거리가 온통 장교들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을 그려내었다. 지금은 아직 알지 못하는 그들의 시선에 자기가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야영의 모든 장관도 볼 수가 있었다. 텐트들이 아름다운 선으로 줄지어 있고 젊고 쾌활한 사람들이 넘쳐흐르며 심홍색으로 눈이 시릴 정도라고나 할까, 이 광경을 완벽한 것으로 만들기나 하듯이 텐트 아래에 자리잡고 앉아서 한꺼번에 적어도 여섯 명의 장교들을 희롱하고 있는 자기의 자태를 상상해 보았다. 만약 그녀가 이러한 희망, 이러한 현실에서 언니가 자기를 떼어 놓으려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같은 심정이었을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침 남편이 브라이튼으로 갈 의향이 전혀 없다는 우울한 확인을 하고 난 후라서 리디어가 그곳에 가는 일만이 그녀의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리디어가 집을 떠나는 그날까지 거의 끊임없이 그녀들의 기쁜 상태가 계속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이제 위컴 하고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다. 돌아오고 난 후 자주 그와 어울렸기 때문에 마음의 동요는 꽤 가라앉고 그 전에 좋아했을 당시와 같은 설레임도 이제는 다 사라지고 말았다. 한때는 자기를 황홀하게 했던 그 부드러움 속에서 허식과 단조로움을 발견해 냄으로써 이제는 혐오감과 싫증마저 들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자기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새로운 불쾌감의 원천이 될 만한 것도 있었다. 그들이 서로 처음 알았을 때 눈에 띄게 보여 주곤 했던 그 친밀감을 새롭게 해보려는 그의 호의도 이제는 그 후의 일도 있고 해서 오히려 그녀를 짜증나게 할 뿐이었다. 자기가 이와 같이 헛되고 하찮은 정사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그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어지고 말았다. 그의 친절이 끊어진 지 얼마나 오래 되었든 그리고 그 동기가 뭣이든 간에 그가 자기의 친절을 새로 보이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녀의 허영심이 충족될 것이며 그녀의 호의도 회복될 것으로 그가 믿고 있다는 사실에는 그녀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느낌을 그녀는 한사코 억누르려고 해보았지만, 그런 느낌을 안 느낄래 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는 연대의 메리튼 주재의 마지막 날 다른 장교들과 함께 롱본에서 식사를 했다. 엘리자베드는 그와 기분 좋게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어서, 헌스퍼드에서 어떻게 지냈느냐고 그가 물어 왔을 때 피츠윌리엄 대령과 다아시 씨가 로징즈에서 3주 동안 체재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혹시 대령하고는 안면이 있는 사이가 아니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매우 놀라고 불쾌해 하며 또한 낭패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머금으면서 전에는 그를 자주 만났다고 대답했다. 그는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고 나서, 얼마나 마음에 드느냐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에는 대령에 대한 호의가 은근히 담겨 있었다. "그 사람이 로징즈에는 얼마나 있었다고 했죠?" "이럭저럭 3주일 되죠" "그 사람을 자주 만나셨던가요?" "예, 거의 매일 같이오" "그 사람의 태도는 사촌하고는 아주 달랐을 테지요." "매우 달랐어요. 그러나 다아시 씨도 사귈수록 점점 좋아지는 분이신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엘리자베드는 그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렇다면 물어보겠습니다만" 자기를 억제해 가며 쾌활한 어조로 덧붙여 말했다. "좋아지다니요, 그 사람의 인사말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그래 흔히 그가 하는 방식에다 또 무슨 정중함이라도 보태던가요? 설마하니" 그는 더욱 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람이 본질적으로 좋아질 리가 있겠어요." "아, 아녜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제 생각으론 그분께선 본질적으로는 전혀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말하고 있는 동안에 위컴으로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기뻐해야 옳을지 아니면 그 뜻에 일말의 의혹을 품어야 옳은 것인지 전혀 분간을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을 때 그녀의 표정에는 어딘가 모르게 그를 불안한 심정과 그리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귀기울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사귈수록 좋아졌다고 해서 그분의 마음이나 태도가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분을 좀더 잘 알게 됨으로써 성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그러자 위컴의 안색과 흐트러진 표정이 역력히 나타났다. 2,3분 동안 잠자코 있다가 이내 당혹감을 떨쳐 버리고는 다시 그녀 쪽을 향해 다시없이 부드러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다아시 군에 대한 나의 기분을 잘 알고 있는 터이라, 그 사람이 정당한 체할 만큼이나 현명해진 것을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가를 곧 아시겠지요. 그 사람의 거만도 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간다면 자신에게는 도움이 안될지 모르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고통받아 왔던 만큼이나 지독한 일은 이제는 더 하지 않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당신이 잠깐 암시했던 그 신중성이란 것도 이모님을 찾아갈 때만 있는 일시적인 것 같군요. 이모님의 평가를 잘 받으려고 그 사람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그 사람은 항상 이모님을 두려워했는데, 그것은 효과가 충분했었죠. 그것도 따지자면 드 버그 양과의 혼담을 어떻게 잘해 보자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겠지요. 그 사람이 마음 속으로 그것을 그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니까요." 그 말을 듣자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억누를 수 없었지만 고개를 약간 끄떡여 보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을 뿐이다. 그가 늘 자신의 해묵은 불평거리로 그녀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날 저녁의 나머지 시간을 여느 때처럼 쾌활한 체하면서 보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엘리자베드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정중하게 작별했는데, 다시는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서로가 마찬가지였으리라. 파티가 끝나자 리디어는 포스터 부인과 함께 메리튼으로 돌아가 버리고 그곳에서 다음날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와 가족 사이의 작별은 슬프기는커녕 오히려 소란스런 것이 되어 버렸다. 키티가 운 것은 어디까지나 속상하고 시샘이 나서였다. 베네트 부인은 딸의 행복을 기원하는 말을 잔뜩 늘어놓았으며 모처럼 즐길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인상적인 지시를 했는데, 이 충고를 귀담아 듣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리디어는 신이 나서 언니들의 한결 차분한 인사말을 잘 들리지도 않았다. @ff 42 만약 엘리자베드의 견해가 모두 다 자신의 가정에서 끌어낸 것이라면 부부 생활의 행복이나 가정의 단란함에 있어서는 그리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어느 여성의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러한 젊음과 아름다움이 흔히 보여 주는 선량한 성품의 외양에 끌린 나머지 결혼하고 말았지만, 정작 그녀의 힘은 약하고 정신은 마냥 좁기만 해서 결혼 초기에 이미 그녀에 대한 진실된 애정은 끝이 난 것이다. 존경이라든가 높은 평가라든가 신뢰 같은 것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가정의 행복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베네트 씨는 자기 자신의 경박함에서 비롯된 환멸의 위로를 세상의 가엾은 사람들이 자신의 우행이나 악덕을 달래 볼 양으로 흔히 탐닉하기 쉬운 쾌락 같은 데서 찾을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전원이나 책들을 좋아했고, 그런 취미에서 주된 즐거움을 찾게끔 되었다. 부인한테 덕을 본 것이라고는 그녀의 무지와 어둔함이 가져다 주는 즐거움 이외에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편이 부인한테서 얻고자 하는 그런 행복은 못되지만, 달리 즐거움을 취할 힘이 없을 때는 진정한 현인이라면 그와 같이 주어진 것에서 이익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한 남편으로서의 아버지의 태도가 온당하지 못한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 그것을 보고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능력을 존경했고, 자기를 애정 깊게 대해 준 데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간과할 수 없는 일까지도 잊으려고 애썼으며, 항상 남편으로서의 의무와 예의에 어긋나게 부인을 자식들로 하여금 경멸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몹시 못마땅하다는 생각을 지우려고 힘썼다. 그러나 그녀는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결혼에 의해 생겨난 자식들에 따르게 마련인 불리함을 지금만큼 느껴 본 적도 없었으며, 적절하게 이용만 했으면 자기 부인의 정신을 넓히진 못해도 자기 딸들의 품격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을 재능을 그토록 그릇된 방향으로 몰고 감으로써 생겨난 불행을 이렇게 인식해 본 적도 없었다. 위컴이 떠나간 것을 기뻐하고 나자 엘리자베드에게는 연대가 없어진 것에 만족할 만한 이유는 없었다. 바깥에서 갖는 파티도 전보다 변화가 없었고 집에서는 어머니와 동생이 주변의 모든 일이 지루하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여서, 어쩐지 가족들의 모임에는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게 마련이었다. 키티에게 더 이상 마음을 산란하게 할 사람도 없어졌으니 이럭저럭 타고난 분별심을 돌이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리디어 쪽은 아무래도 그 기질로 해서 더욱 나쁜 일이 생길까 염려스러운데다 해수욕장과 야영이라는 이중의 위험한 상황 때문에 어둔함과 뻔뻔스러움이 더 심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엘리자베드는 전에도 가끔 경험했지만, 조바심 나게 간절히 기대하던 사건이 일단 일어났을 때는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전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실상의 행복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어떤 다른 시기를 기약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뭔가 다른 일에다 소원과 희망을 걸어 보고 다시 한 번 즐거움을 느낌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나아가 장래의 실망에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호반 지방의 여행이 가장 즐거운 상념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나 키티의 불만으로 자칫 불유쾌해지게 마련인 시간에는 다시없는 위안거리가 되었다. 제인을 이 계획에다 끌어넣을 수만 있었다면 금상첨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행스러운 거야. 바라는 것이 있으니까. 모든 일이 뜻대로만 된대서야, 실망이 꼭 따르게 마련인 거야.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는 언니가 함께 있지 않아 유감이라고 항상 느껴지며 여행을 하기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실현을 당연히 기대할 수 있을 거야. 시작에서 끝까지 즐거움이 약속된 계획이란 결국 별수 없게 되고 말아. 전체적으로 실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뭔가 조 조금은 번민하는 일이 있어서 막아 주어야 좋을 성 싶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리디어는 떠나면서 어머니와 키티에게는 매우 자주 그리고 자상하게 편지를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에는 그녀의 편지는 언제는 오래 기다리게 했다. 게다가 퍽 짧은 글이 고작이었다. 어머니에게 보내 오는 편지 속에는 자기는 지금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이고 이러이러한 장교들을 만나 보았으며 완전히 정신을 나가게 할 만한 아름다운 장식물들을 보았다든가, 새 가운과 새 파라솔을 샀는데 그런 일을 좀더 자세하게 쓰고 싶지만 포스터 부인이 부르고 있어서 지금부터 야영지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황망 중에 붓을 놓게 되었다는 그런 일밖에 씌어 있지 않았다. 더욱 언니 키티에게 보내 온 내용에서는 알 만한 일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로 온 편지는 다소 긴 내용이긴 했으나 줄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공표할 수가 없었다. 리디어가 집을 떠난 지 2,3주일 정도 지나자 롱본에서는 건강, 쾌활, 활기 같은 것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더욱 즐거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겨울 동안 런던에 올라갔던 가족들도 돌아오고 여름 옷단장과 초대의 화제가 풍성해졌다. 베네트 부인은 예전처럼 투정 어린 명랑함으로 되돌아갔다. 유월 중순쯤 해서는 키티도 제법 원기를 되찾아,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 메리튼으로 들락거릴 수 있게 되었다. 육군성이 잔인하고 심술궂은 배치에 의해서 또다른 연대를 메리튼에 주둔시키지 않는 한은 키티도 꽤 분별이 생겨서 오는 크리스마스까지는 하루에 한 번 이상 장교들 얘기를 입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만큼, 엘리자베드로서는 그 전망이 여간 다행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북쪽 여행을 시작하기로 정해진 시기가 바야흐로 점점 가까와져서 겨우 두 주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에, 출발이 연기되고 일정도 단축하기로 됐다는 편지가 가디너 부인한테서 왔다. 가디너 씨는 용무 때문에 7월 들어 2주일이 지나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며 또 한 달 이내에 런던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짧은 기간으로 당초의 계획대로 멀리 가서 많은 것들을 볼 수도 없게 되며 적어도 계획했던 것처럼 천천히 즐겁게 구경할 수도 없게 된 판국이라 호반 지방은 어쩔 수 없이 단념해 버리고 더욱 짧은 여행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 여행 계획으로서는 더비셔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 지방에도 볼 것은 충분히 있어서 거의 3주 정도는 걸릴 것이므로 가디너 부인은 그곳에 특히 강한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가 일찌기 몇 해를 지낸 일이 있고 이번에는 2,3일 체재하기로 되어 있는 이 도시가 매트러크(더비셔의 온천 도시)나 체츠워드(데본셔 공작의 저택이 있는 곳)나 더브데일 계곡이나 산정지대 등의 명승지에 못지 않게 그녀의 커다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엘리자베드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꼭 호반 지방을 구경할 시간은 충분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었다. 더비셔의 언급과 더불어 그곳에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녀로서는 그 말을 보고 펨벌리와 그 소유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틀림없이. 그분의 고장에 들어가더라도 별로 탓할 것도 없고 그 분 모르게 섬광석 두세 개를 기지고 올 수도 있는 거야.' 이제는 기다리는 기간이 배로 늘어났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도착하려면 아직 4주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날들이 겨우 지나가서 가디너 부부는 네 아이들을 데리고 마침내 롱본에 왔다. 여섯 살과 여덟 살 짜리 두 계집아이들과 어린 두 남동생들은 그들의 사촌 제인이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맡겨졌다. 많은 어린아이들은 제인을 좋아했고 정확한 분별과 상냥스런 기질로 해서 어느 모로나(그들을 가르치는 데나 함께 노는 데나 귀여워 해주는 데 있어서나) 그들을 돌보는 데는 안성마춤이었다. 가디너 부부는 하룻밤을 롱본에서 지냈을 뿐 다음날 아침 엘리자베드와 함께 구경과 행락의 여행을 떠났다. 한 가지 즐거움만은 분명했다. 호적한 여행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불편에 견디어 낼 건강과 침착성을 포함한 호적함이 있으며(모든 기쁨을 더해 주는 쾌활함이 있었고) 더우기 여행길에서 여러 모로 실망되는 일이 있더라도 자기들에게 쾌활함을 불어넣어 줄 날카로운 지혜가 있었다. 더비셔에 대한 일이나 거기로 가는 길의 명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이 소설의 목적은 아니다. 옥스퍼드, 블레닌, 워릭, 케닐워드, 버밍검 등은 잘 알려진 곳이다. 더비셔의 한 작은 부분만이 현재 관심 있는 곳이다. 이 지방의 주요한 명승지를 두루 살피고 난 후에 가디너 부인이 한때 살았었고 아직도 몇몇 지기가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된 램튼이라는 작은 도시로 발걸음을 돌렸다. 엘리자베드는 램튼에서 5마일도 안되는 곳에 펨벌리가 있다는 것을 외숙모한테서 들어 알 수 있었다. 직행하는 길목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에서 1,2마일 이상 벗어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전날 밤의 경로에 대해 상의하면서 가디너 부인은 그곳을 재차 보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었다. 가디너 씨가 괜찮은 일이라 말하고 엘리자베드는 동의를 하도록 부탁 받았다. 외숙모가 말했다. "얘, 넌 그렇게 말을 많이 듣던 곳을 보고 싶지도 않으냐? 그곳에서 말하면 또 너의 친지들 중 많은 사람들하고 인연이 있는 곳이잖니, 위컴도 어렸을 땐 사뭇 그곳에서 지냈었다." 엘리자베드는 궁지에 몰렸다. 자기는 펨벌리 같은 곳에서 아무런 용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곳은 보고 싶지 않은 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대저택에는 싫증이 났으며,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에 훌륭한 양탄자나 견수자 커튼 같은 걸 봐도 조금도 즐겁지가 않다고 털어놓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디너 부인은 그녀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값진 가구가 들어 있는 훌륭한 저택 같으면. 나도 보고 싶지가 않지만 그곳의 정원은 일품이다. 그 지방에서 제일 아름다운 숲이 있단다." 엘리자베드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곳을 구경하다가 혹시 다아시 씨하고 마주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에 떠올랐다.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이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차라리 외숙모에게 솔직이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반론도 나올 법했다. 그래서 마침내, 만약 그 가족의 부재 여부를 몰래 수소문해서 뜻하지 않은 회답이 있게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외숙모에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밤에 자기 방으로 돌아갔을 때 객실 담당에게 펨벌리라는 곳이 매우 좋은 곳인가, 그 소유자의 성명이 무엇인가 묻고 나서 적잖이 불안한 심정으로 가족들이 이번 여름에 그곳에 와 있는지 물어 보았다.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는 매우 기쁜 부정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러자 이젠 그녀의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므로 자기도 그 저택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하여 다음날 아침 그 문제가 재론되어 의사를 묻게 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관심을 꾸미면서 그 계획은 그다지 싫지 않다고 대답했다. 드디어 그들은 펨벌리로 가기로 결정을 보게 되었다. @ff 43 마차를 타고 가면서 엘리자베드는 다소 마음의 동요를 느끼며 펨벌리의 숲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막상 마차가 오두막집 있는 데서 꺾어 들자 가슴은 매우 설레고 있었다. 저택은 매우 넓었고 그 속의 지면 형태도 다양했다. 마차는 제일 낮은 한 지점으로 들어서서 널찍하게 뻗어 있는 아름다운 숲속을 한참 동안 달리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대화를 하기에는 너무 벅차 있었으나 멋진 장소나 전망이 좋은 지점 하나 하나를 대할 때마다 감탄을 연발했다. 반 마일 정도 점차 언덕배기를 올라가자 곧 상당히 높은 곳에 닿게 되었는데, 숲은 거기서 사라지고 골짜기의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는 펨벌리 저택이 갑자기 시선에 들어섰다. 길은 골짜기를 향해 다소 경사져 있었다. 저택은 커다랗고 아름다운 석조 건물로 비탈진 곳에 잘 위치하고 있었으며 뒷면에는 울창한 수목이 연이어져 있었다. 건물 앞에는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얼마만큼 지닌 냇물이 더욱 불어나 있었지만 인공을 가미한 흔적은 조금도 없었다. 양쪽 둑은 형식을 갖추지도 않았고 꾸며져 있지도 않았다. 엘리자베드의 기분은 상쾌해졌다. 그토록 자연의 묘가 살려져 있으며, 또 이토록 자연의 미가 서투른 취미로 손상되지 않은 곳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모두들 열심히 칭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펨벌리의 주인이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차는 다리를 건너서 현관에 닿았다. 더욱 가까운 위치에서 그 집을 살펴보면서 그 집 소유자와 얼굴을 마주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객실 담당 하녀가 잘못 알았던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지기도 했다. 집 구경을 시켜 달라고 부탁했더니 현관의 홀로 안내되었다. 그들이 가정부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엘리자베드에게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 의아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가정부가 나타났다. 매우 의젓한 느낌의 중년 부인으로 짐작했던 바와 달리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정중한 편이었다. 세 사람은 그녀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섰다. 커다랗고 균형 잡힌 방에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방 안을 잠깐 훑어보고 나서 풍경을 보기 위해 창문 쪽으로 갔다. 언덕은 그녀들이 내려왔던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먼 거리에서 보게 되자 더욱 가파르게 보였으며 아름다왔다. 토지의 배열은 두루 잘되어 있었다. 그녀는 강이며 양쪽 둑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들이며 골짜기의 굴곡을 눈길이 닿는 데까지 즐거운 기분으로 바라다보았다. 다른 방으로 들어감에 따라 그러한 풍경의 각도는 변해 갔지만 어느 창에서 보나 경치는 저마다 아름다왔다. 방마다 고상하고 훌륭했다. 그리고 그 가구들은 소유자의 재산에 어울리는 것들이었으나 엘리자베드는 그것들이 지속할이만큼 번지르르하지도 않고 쓸모 없이 아름답지도 않으며, 로징즈의 가구보다 화려한 편은 못되었으나 진정한 우아함이 있는 것을 알자 그의 취미에 감탄했다. '내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집 주부가 될 뻔했잖아! 이 방들하고는 지금쯤은 깊이 친숙해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남의 입장에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것으로서 즐기고 외삼촌이나 외숙모를 손님으로 환영하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어. 아냐, 그렇지 않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외삼촌이나 외숙모는 나하고 관계가 끊어졌을 거야. 그들을 초대하도록 허락 받지는 못했을 테니까.' 이것은 다행스러운 회상이었다. 그 결과로 후회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이 정말 안 계신가에 대해 그녀는 가정부에게 묻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으나 차마 그럴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외삼촌이 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녀가 겁이 나서 외면하고 있으려니까 가정부인 레이놀즈 부인은 주인이 안 계신다는 말을 하고 나서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내일이면 많은 친구분들을 대동하시고 돌아오시게 될 것입니다." 자기들의 여행이 어떤 사정으로 해서 하루 더 연기되지 않은 것을 엘리자베드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바로 그때 외숙모가 그림을 보라고 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벽난로 위에 놓여 있는 몇 폭의 다른 작은 초상화들 사이에 위컴 씨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외숙모는 싱글벙글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가정부가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것은 지금은 작고하고 안 계시는 주인님의 집사 아드님이신 젊은 신사 분의 초상화인데, 그 사람을 주인님 자신의 비용으로 가르셨다고 말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섭섭하게도 성질이 나빠졌다는 얘기올시다." 가디너 부인은 미소를 머금으며 조카를 바라보았으나 엘리자베드로서는 되받을 틈이 없었다. "그리고 저것은" 작은 초상화 중의 하나를 가리키면서 레이놀즈 부인이 말했다. "저의 주인님이세요. 본인과 꼭 닮으셨지요. 아까 것하고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이올시다. 한 8년 전쯤 됩니다." "주인님이 매우 훌륭하시다는 건 여러 번 들은 바 있습니다." 그 그림을 바라보면서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단정하신 얼굴이시네요. 그러나 리지야, 넌 닮았는지 아닌지를 알고 있겠지." 자신의 주인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자 레이놀즈 부인의 엘리자베드에 대한 경의는 더욱 더해 가는 것 같았다. "이 아가씨께선 다아시 씨를 알고 계시는가요?" 엘리자베드는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약간" "정말 멋진 신사분이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예, 정말 멋지시군요." "이렇게 멋진 분은 아직 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2층 화랑에는 이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큰 주인님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이 방은 돌아가신 주인님의 마음에 드셨던 방으로 이러한 작은 초상화들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이런 그림을 매우 좋아하셨답니다." 위컴 씨의 그림이 끼여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레이놀즈 부인은 그리고 나서 그녀들의 주의를 다아시 양의 초상화로 향하게 했다. 그녀가 여덟 살 때 그려진 것이었다. "다아시 양도 오빠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분이신가요?" 가디너 씨가 물었다. "아, 아름답구말구요. 그렇게 예쁜 아가씨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말예요. 게다가 훌륭한 재능도 갖추고 계세요. 하루 종일 연주하시고 노래하곤 하시죠. 옆방에는 아가씨를 위해 런던에서 막 부쳐 온 새 악기가 있읍죠. 주인님께서 보내 오신 선물이지요, 아가씨께선 내일 주인님하고 함께 오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디너 씨는 부드럽고 명랑한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질문도 하고 의견도 말함으로써 레이놀즈 부인의 수다를 더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자랑에서인지 아니면 애정에서인지 자기 주인과 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주인께선 1년 중 펨벌리에 머무시는 일이 많으신가요?" "제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세요. 그러나 1년의 반쯤은 여기서 지내시게 되지요. 그리고 아가씨께선 여름 동안은 언제나 이곳에 계시게 됩니다." "다만" 엘리자베드는 생각했다. "램즈게이트로 갈 때는 별도로 하고" "만일 주인님께서 결혼하시게 되면 더 자주 뵐 수가 있게 되겠네요." "예,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인님과 어울리는 분이 어디 계셔야죠" 가디너 부부는 싱긋이 웃었다.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보면 훌륭한 분임에 틀림없겠네요." "전 원래 사실 얘기만 합니다. 그리고 저의 주인님을 아시는 분이면 누구나 하시는 그런 말밖에 하지 않는 답니다." 엘리자베드는 엄청난 칭찬이라 생각했다. 상대방이 이렇게 덧붙여 말했을 때는 더욱 놀라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전 지금까지 주인님한테서 기분 나쁜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네살 되시던 때부터 사뭇 알고 지냈읍지요." 이토록 터무니없는 칭찬은 그녀의 생각하고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가 결코 상냥스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만은 그녀의 움직일 수 없는 의견이었다. 그녀에게는 더욱 강한 관심이 일어서 좀더 물어 보고 싶어졌다. 외삼촌이 마침 이렇게 말해 주셔서 고마왔다. "그럴 정도로 칭찬 받는 사람은 퍽 드물지요. 그런 주인을 모시게 되어 행복하시겠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딜 가나 이 이상의 분을 만나 뵙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전 입버릇처럼 말합니다만 어릴 때 상냥한 분은 커서도 역시 상냥하시다구요. 저의 집 주인님께선 언제나 이 세상에서 제일 마음씨 고우시고 넓으신 분이시랍니다." 엘리자베드는 눈이 휘둥그래질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이 다아시 씨일 수가 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그분의 부친께선 훌륭하셨던가 봐요."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예, 정말 그러셨습니다. 부전자전인 게죠. 못사는 사람들에게도 한결같이 친절하셨답니다." 엘리자베드는 귀를 기울이고 의아해 하며 좀더 듣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레이놀즈 부인이 다른 일을 말해도 그녀는 흥미를 느껴 보지 못했다. 그녀가 그림이며 방의 크기며 가구의 값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나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디너 씨는 그녀가 주인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결국 가족적인 편애에서 비롯된 터라 생각되어 매우 재미가 나서 곧 이어 다시 그 화제로 옮겨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같이 커다란 계단을 올라갔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주인의 많은 장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지주님이시고 좋은 주인님은 정말 없을 거예요. 자기 밖에 모르는 요즘 젊은 주인들하고는 다르시답니다. 소작인이나 하인들 치고 그분을 좋게 말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어떤 사람은 간혹 그분을 거만하다고도 하지만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점을 찾아 낼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 같아선 우리 집 주인님께선 다만 다른 젊은 분들처럼 말수가 많지 못하신 데서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결과일 것입니다." '어머, 그렇게 되면 대단히 상냥스런 분이 되고 말게요' 엘리자베드는 생각했다. "이렇게 훌륭한 평판은" 외숙모가 다시 걸어가면서 속삭였다. "우리들의 가엾은 친구 위컴 씨에 대한 그분의 태도와는 전혀 일치하지가 않으시네" "아마 우리가 속았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럴 리야 없겠지. 우리의 소식통도 매우 선량했으니까." 위층의 넓은 복도에 이르자, 그들은 매우 아름다운 거실로 안내되었다. 아래층 방들보다는 훨씬 우아하고 밝았다. 다아시 양이 최근에 펨벌리에 왔을 때 이 방이 매우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이제 막 손본 곳이라고 했다. "그분은 정말 좋은 오빠군요." 창문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레이놀즈 부인은 다아시 양이 이 방에 들어설 때의 기쁨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이런 식으로 주인님께선 하시는 거예요. 아가씨가 좋아하시는 일이라면 뭐든지 곧바로 해치우시게 되죠. 아가씨를 위해선 안하시는 일이 없으시답니다." 화랑과 두셋의 중요한 침실들이 모두 주인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랑에는 꽤 좋은 그림이 많이 있었으나 엘리자베드는 미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곧 눈길을 돌려서 다아시 양이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들을 보았는데 그러한 그림의 제목이 대체적으로 흥미 있고 또 알기 쉬웠다. 화랑에는 이 집안의 초상화들이 많이 있었는데 외인의 시선을 끌 만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자기에게 익숙한 얼굴만 찾아 걸어다녔다. 마침 그것이 그녀를 사로잡아 놓았다. 그리고 다아시 씨 하고 너무도 닮은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를 볼 때 때때로 보이곤 하던 낯익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들여다보며 그 그림 앞에 몇 분 서 있다가 일행이 화랑을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되돌아보았다. 레이놀즈 부인이 그것은 선친 생전에 그리게 한 그림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때 확실히 엘리자베드의 마음에는 그 그림의 장본인에 대해 서로 가장 가깝게 지내던 적보다는 훨씬 좋은 감정이 일어났다. 레이놀즈 부인이 들려 준 그에 대한 칭찬의 말은 결코 부질없는 성질의 것만은 아니었다. 총명한 하인의 칭찬만큼 가치 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빠로서 지주로서 나아가 주인으로서의 그의 보호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행복이 달려 있는가를 그녀는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많은 기쁨이나 고통을 줄 수 있는 힘을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선악이 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의견은 그의 인격을 더 높일 뿐이었다. 그의 자태가 그려져 있으며 그의 양 눈이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는 캔버스 앞에 서 있으면서 그녀는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깊은 감사의 기분으로, 자기에 대한 그의 호감을 생각해 보았다. 그 감정의 따뜻함을 되새겨 보았으며, 그 표현의 부적당함을 부드럽게 이해했다. 집안에서 일반에게 참관을 개방하는 곳은 빠짐없이 보고 나서 그들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가정부에게 작별을 한 후, 그 다음은 현관에서 정원사의 안내를 받았다. 강 쪽을 향해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다가 엘리자베드는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바라보자 외숙모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엘리자베드가 그 건물이 언제쯤 세워졌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노라니까, 집 주인이 건물 뒤쪽에서 마구간으로 통하는 길에서 별안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간의 거리는 20 야드가 채 못되었고, 더우기 그의 출현이 너무나도 뜻밖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시선이 마주치자 두 사람의 뺨에는 새빨간 빛이 타올랐다. 그도 몹시 놀랐던지 한참 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제정신으로 돌아가 일행 쪽으로 가까이 왔는데 완전히 침착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내심 정중한 말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걸어 왔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외면했으나 그가 가까이 오자 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그의 인사말을 받았다.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그의 자태를 처음 본 것만으로는 다시 말해서 여태까지 뜯어본 초상화와 그가 닮았다는 점만으로는 자기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다아시 씨라고 단정하진 못했더라도 주인을 보고 놀라는 정원사의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그가 조카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 동안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지만, 매우 놀라 멍하니 얼이 빠져 있는 그녀는 눈을 치켜 떠서 그의 얼굴을 볼 용기조차 없었으며 가족의 안부를 묻는 그의 공손한 질문에 대해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지난번 헤어지고 난 후로 변해 버린 그의 태도에 자못 놀랐으나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또 그녀의 마음을 당황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곳에서 눈에 띈 것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느껴질수록 이렇게 그와 대하고 있는 몇 분 동안은 그녀의 생애에서 가장 불편한 때이기도 했다. 그 역시 그녀보다 썩 침착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말하고 있는 동안도 그의 말투에서는 평소의 안정감 같은 것을 찾기란 어려웠다. 언제 롱본을 떠나왔는가 또 언제까지 더비셔에 머물게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몇 번이고 매우 성급히 되풀이하는 것 을 보더라도 그것은 곧 그의 마음의 혼란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이윽고 그는 무엇 하나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했음인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로 잠시 서 있기만 하다가 돌연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외삼촌과 외숙모가 그녀에게로 와서는 그의 용감한 자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에게는 한마디도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혼자서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기면서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마음은 수치와 분개의 두 갈래로 뒤흔들리고 있었다. 자기가 여기에 온 것부터가 이 세상에서도 제일 가는 불행이며 분별없는 일이었다! 그의 눈에 얼마나 기이하게 비쳤을 것일까!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그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보였을 것일까! 자기가 일부러 다시 그 사람 앞에 몸을 내던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아! 내가 왜 왔단 말인가! 그런데 그 사람은 또 왜 예정했던 것보다 하루 빨리 왔단 말인가! 그들이 20분만 더 빨랐더라면 그의 눈길이 안 닿는 곳에 가 버리고 말았을 것을. 왜냐하면 그가 바로 그 순간에 도착해서 말이나 마차에서 내린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심술궂은 조우를 생각하면서 여러 차례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이상할이만큼 변해 버린 그의 태도(이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녀에게 말을 걸어 온 것부터가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그토록 정중한 말로 가족들의 안부를 묻다니! 지금껏 그토록 위엄을 저버린 그의 태도를 본 적이 없었으며, 이 뜻밖의 만남 때만큼이나 그가 상냥스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마 전 로징즈 저택에서 편지를 전해 주었을 때의 그의 말하고는 그 얼마나 다르단 말인가! 마침내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고 이렇게 설명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그들은 바야흐로 아름다운 강변의 보도로 접어들었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더욱 그 수려함을 더해 가는 비탈을 내려가서 이윽고 더 울창한 숲의 넓은 지역에 닿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 동안 엘리자베드는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계속 말을 해 왔으나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두 사람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듯했으나 그 풍경의 어느 부분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생각은 다아시 씨가 몸담고 있을지도 모를 펨벌리 저택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로서는 바로 이 순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또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기가 그의 마음에 있는 사람일까 하는 일들을 알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그가 정중했다는 것은 그저 마음의 평정을 그가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그의 목소리에는 평정이라고만 할 수 없는 어떠한 것이 있었다. 자기를 보고 그가 고통을 느꼈을까, 아니면 기쁨을 더 많이 느꼈을까 그녀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침착하지 못한 마음으로 자기를 바라다보았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드디어 그녀의 방심을 지적하는 동행인들의 말이 그녀를 일깨웠으므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숲속으로 들어서서 잠시 동안 강하고는 작별을 나누면서 몇 군데의 높은 지역을 올라갔다. 거기에서는 군데군데 숲 사이의 공지가 있어서,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는데, 길게 뻗어 있는 숲이 잔뜩 뒤덮고 간간이 냇물 줄기가 보이는 건너편 언덕들과 골짜기의 매혹적인 전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가디너 씨는 저택 전체를 일주하고 싶지만 도저히 걸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기양양한 웃음을 보이면서 정원사는 둘레가 10마일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문제는 해결되었으며 그들은 가던 길을 그냥 걸어나갔다. 한참 동안 경사진 숲 사이를 내려가서 다시 강 기슭의 폭이 더욱 좁아진 곳까지 나갔다. 그들은 주위 풍경에 어울리는 작은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곳은 지금까지 보아 온 어느 곳보다도 소박하게 꾸며진 장소였다. 골짜기는 여기서 협곡을 이루어, 냇물과 그리고 냇물 가에 있는 억센 잡목 사이의 좁은 산책길만이 겨우 들어앉을 자리밖에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냇물의 굴곡을 탐험하고 싶었으나, 다리를 건너면서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워낙 튼튼한 다리가 못되는 가디너 부인은 그 이상은 갈 수가 없어서 되도록 빨리 마차 있는 데까지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카도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그들은 지름길을 택해서 강의 건너편 언덕에 있는 저택 쪽으로 향했으나 그들의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이유인즉 가디너 씨는 낚시 취미에 빠질 만한 여유가 별로 없었지만 너무 좋아하는 편이어서 물 속에서 때로 송어가 얼굴을 내밀면 그것을 지켜보면 정원사와 그 얘기를 하는 데 너무 열중해서 걷는 속도가 자연히 느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다아시 씨가 그들을 향해,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온 것을 보고 그들은 또다시 놀라게 되었는데, 엘리자베드의 놀라움은 처음 때에 못잖게 강한 것이었다. 이쪽 산책길은 맞은편 길보다는 숲이 덜 우거졌기 때문에 그녀의 일행은 서로 마주치기 전에 벌써 그를 볼 수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놀라긴 했지만 저어도 먼저번 보다는 대면할 각오가 서 있었기 때문에 그 가 진정 자기들을 만나고 싶다면 이번에는 침착한 태도로 이야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시 동안 그녀는 그가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급은 산책길로 그의 자태가 눈에 띄지 않는 동안은 그런 생각이 계속되었으나 막상 그 굽은 모퉁이를 통과하자, 그는 이미 그녀들 앞에 당도해 있었다. 힐끗 바라다보기만 해도 그가 조금 전에 지났던 정중함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도 그와 얼굴을 맞대게 되자 그의 예절을 본떠서 경치가 좋다는 점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저 "훌륭해요." "아름답군요." 정도의 말밖에 못하고 있을 때 불현듯 이것저것 상서롭지 못한 회상들이 머리에 떠오르면서 자기 입으로 펨벌리를 칭찬하다가는 혹시 악의로 해석되지나 않을까 생각되자 그녀의 안색은 금방 변하고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가디너 부인은 조금 뒤쪽에 서 있었다. 엘리자베드가 머뭇거리자 다아시 씨는 그녀의 일행을 소개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이것은 그녀로서는 미처 짐작도 못한 예절이었다. 자기에게 결혼을 청해 왔을 때만 해도 그의 자존심으로 말미암아 혐오하던 바로 그 대상에 속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이었다. '얼마나 놀라게 될 것인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그가 알게 될 때! 혹시 상류 사회의 사람들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소개는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말해 주면서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 가 확인하려고 힐끔 쳐다보았는데, 그가 이러한 불명예스런 상대에게서 한시라도 빨리 도망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그가 이 관계를 듣고 깜짝 놀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그는 완강하게 버텨 가며 도망은커녕 그들과 어울려 길을 되돌아가서 가디너 씨와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의기양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쪽에도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는 집안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아 준 것이 위안거리가 되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에 매우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으며 외삼촌의 총명함, 취미, 예절 바름을 나타내는 태도 하나 하나, 용어 하나 하나를 자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새 낚시질로 이야기는 옮겨가고 있었다. 다아시 씨가 다시없이 은근하게, 외삼촌이 이 근처에 머무는 동안 괜찮으시다면 언제든지 낚시에 초대하겠으며 동시에 낚시 도구는 언제든지 제공해 주겠다고 하면서, 언제나 잘 잡히는 냇물 언저리를 가리키는 말을 그녀는 들었다.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 하고 팔짱을 끼고 걷고 있었는데 사뭇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다시없이 기뻤다. 지금까지 자기에게 준 호의는 죄다 자기를 위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놀라움은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왜 그이가 이렇게 변했을까? 어떤 연유로 그렇게나 변했단 말인가? 그이의 태도가 이렇게 누그러진 것은 나 때문일 리 만무하고 날 위해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니야. 헌스퍼드에서 내가 그를 책망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생각지 않아. 더우기 그이가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을 리 만무한 거야." 이런 색으로 두 사람의 여성이 앞장서고 두 사람의 남성이 뒤따르면서 한참 동안 걸어가다가 어떤 신기한 수초를 좀더 잘 보려고 강 기슭까지 걸어 내려간 연후에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을 때쯤 해서 자그마한 변경이 이루어졌다. 일의 발단은 오전 중의 운동으로 녹초가 된 가디너 부인이, 엘리자베드의 팔로는 자신을 부축하기에 힘겹다 싶어 남편의 팔을 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아시 씨가 조카의 옆쪽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가 어울려서 계속 걸어나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여자 쪽에서 먼저 입을 뗐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에 그의 부재를 확인해 두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먼저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귀가가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고 말문을 열고, "왜냐하면 댁의 가정부 되시는 분이"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분명히 내일까지는 돌아오지 않으신다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정말 우리들이 베이크웰을 떠날 때까지는 선생님이 별안간 이곳에 나타나시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고, 집사에게 용무가 있어서 함께 여행하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시간 먼저 떠나왔다고 말했다. "나머지 분들은 내일 아침 일찍 여기로 오시게 됩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분들 중에는 당신과 안면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빙리 군과 그 사람의 자매들이죠'" 엘리자베드는 그것에 대한 대답 때문에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자 그녀의 생각은 곧바로 둘 사이에 빙리 씨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언급되었던 때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의 안색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의 마음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을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일행 중에는 또 한 분이 끼여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했다. "그분은 특히 당신하고 지냈으면 하고 있어요. 당신이 램턴에 머물고 계시는 동안 서로가 알고 지낼 수 있게끔 내 누이동생을 소개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아니 내 요구가 너무 지나쳤을까요?" 그와 같은 간청을 받게 되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었다.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어서 어떤 식으로 동의해야 좋은지 알 도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다아시 양이 어떤 마음에서 자기와 알고 지내려 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빠의 선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다고 그녀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친 것만으로도 흡족했다. 또한 그가 일방 분한 감정이 들면서도 마음 속 깊이 자기를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기뻤다. 두 사람은 이제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고 저마다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엘리자베드의 마음은 안정되기가 않았다. 그러한 일은 불가능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우쭐해지기도 했고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그가 누이동생을 자기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베풀 수 있는 인사치고는 최고의 것이었다. 그들은 곧 앞서 간 두 사람을 앞질러 갔다. 마침내 그들이 마차 있는 데까지 당도했을 무렵엔 가디너 부부는 팔 분의 일 마일 만큼이나 뒤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청했다. 그러나 그녀 쪽에서 피로하지 않다고 하자 두 사람은 함께 잔디밭에 서 있게 되었다. 그럴 때일수록 마구 지껄여 대는 편이 낫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녀로선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느 화제도 하나같이 입 밖에 내서는 안될 것같이 여겨졌다. 이윽고 자기가 여행 중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자연 그들은 매트러크나 더브데일의 일에 관해서 참을성 있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시간과 외숙모가 걸음걸이도 다같이 느린 편이었다.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인내력도 착상도 거의 지쳐 있게 마련이었다. 가디너 부부가 도착하자 모두를 집 안으로 초청해서 다과 대접을 하겠다는 제안이 나왔으나 거절했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다아시 씨는 두 숙녀를 마차에 태워 주었다. 마차가 떠나자 엘리자베드는 그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드디어 외삼촌과 외숙모는 한결같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비교가 안될 만큼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행동거지가 좋고 예의바르고 조금도 거만스럽지가 않더라." "확실히 그 사람은 어딘가 좀 엄격한 데가 있어 보여요. 그러나 그건 그 사람은 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아 왔지만, 가정부의 말과 같이 그런 데는 조금도 보이지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들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만큼 놀라운 일은 또 없을 거야. 정중함도 정도가 지나칠 정도였으니까 말야. 진심이 깃들인 마음씨였어.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을 텐데. 엘리자베드와의 친분도 극히 우연스런 일이었을 테니 말요." "정말 그래 리지야. 위컴 만큼은 미남자가 아냐. 아니 위컴의 용모가 나무랄 데가 없어서 그 사람만 못하다는 거지. 그런데 넌 왜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됐니?" 엘리자베드는 되도록 잘 변명을 했다. 즉 켄트에서 만났을 때는 전보다는 그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만큼 기분 좋게 그를 본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중한 것은 다소 변덕에서 나온 일일는지는 몰라." 외삼촌이 대답했다. "잘난 사람이란 대개 그런 법이거든. 그러니까 난 낚시에 관한 얘기는 곧이 듣지 않기로 했어요. 나중에 가서 마음이 변해서 날 자기들 장소에 들어서지 못하게 할지도 모를 테니까." 엘리자베드는 그들이 다아시의 성격에 대한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리가 본 바로는" 가디너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분이 불쌍한 위컴에게 한 것 같은 엄청난 일을 남에게 하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아요. 심술궂은 용모는 아예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 반면에 얘기를 할 때엔 입 언저리가 어딘가 모르게 기분 좋기까지 했잖겠어요. 더우기 얼굴에는 위엄 같은 것이 엿보였고 도저히 마음씨가 곱지 못한 사람이란 그런 인상을 남에게 주지를 않을 거예요.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집 안을 보여 주었던 그 선량한 그 부인은 그분의 성격을 과장해서 말했을 거예요. 나는 이따금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말예요. 그러나 그분은 너그러운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실만으로도 하인 측에서 볼 땐 모든 미덕을 죄다 내포하고 있는 셈이죠" 바로 이때 엘리자베드는 위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변호해서 한마다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해가면서 자기가 켄트에서 그의 친척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그의 행위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릴 수도 있으며 허어퍼드셔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의 성격이 결함 있는 것은 절대 아니며 나아가 위컴의 성격은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된다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것의 확증으로서, 두 사람 사이에 관계되었던 금전상의 모든 거래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주고 어느 소식통에서 들은 것이라고는 밝히지 않고서 그저 신뢰할 수 있다고만 해두었다. 가디너 부인은 놀라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그때는 이미 그녀의 즐거웠던 옛 시절을 보냈던 장소에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념들은 회상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그녀는 자기 남편에게 주위의 경치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적해 주느라고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 밖의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전 중의 걸었던 탓으로 지쳐 있었으나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해서 옛날의 자기를 찾게 되었고, 밤에는 오랜 세월 끊어졌던 옛정을 되살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생긴 일들로 너무 마음이 끌려 있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해서 생긴 새 친구들의 누구에게도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다아시 씨의 정중했던 일과 특히 자신을 그의 누이동생과 사귀기를 바랐던 일만이었으며 또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정에 젖어 들었다. @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