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3권 지은이: 제인 오스틴 옮긴이: 홍건식 도서출판 육문사 23 엘리자베드가 어머니와 자매들과 함께 앉아서 자기가 들은 이야기에 대해 생각에 잠겨서 그 이야기를 해야 될까 망설이고 있을 무렵, 윌리엄 루커스 경이 딸의 부탁을 받고 결혼 약속을 알리러 직접 들어섰다. 집안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인사를 나누면서 양가가 멀지 않아 연고 관계를 맺게 될 것에 대해서 만족의 뜻을 표하면서 그는 그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듣는 쪽에서는 놀라는 반면 그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베네트 부인은 예의가 바르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집 세게, 뭔가 대단히 오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주장했으며, 항상 경솔하고 때로는 버릇없는 리디어는 소란스럽게 소리쳤다. "어머나! 윌리엄 선생님, 어찌 그런 말씀을 다 하세요? 콜린즈 씨가 리지 언니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실을 모르시고 계세요?" 궁정에서 일하는 사람의 공손함이 없었던들 이러한 대접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고 참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윌리엄 경은 워낙 교양이 있는 터라 끝까지 참아 낼 수가 있었다. 자신의 통고의 진실성을 제발 믿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들의 무례한 말을 인내성 깊고 정중하게 듣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불유쾌한 입장에서 그를 구해 내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느껴, 샬로트 양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진해서 그의 이야기를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나 동생들이 고함치지 못하게 막아 볼 양으로 열심히 윌리엄 경에게 축하의 말을 하게 되자 제인도 이에 합세하고, 이번 결혼에서 예견되는 행복이라든가 콜린즈 씨의 뛰어난 성품이라든가 헌스퍼드가 런던에서는 편리하고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는 등 여러 사실에 대해서 말했다. 사실 베네트 부인은 그동안 너무나 억눌려 있었기 대문에 윌리엄 경이 남아 있는 동안은 마음놓고 편하게 말할 수가 없었지만,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그녀의 감정은 급격스럽게 배출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이 말을 전혀 믿을 수가 없다고 그녀는 계속해서 주장했다. 두 번째로 콜린즈 씨는 속임수를 당한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그 두 사람이 합쳐진다 해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 확실하며, 네 번째로는 이 혼담이 깨어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전체에서 명확히 두 개의 결론을 끌어낼 수가 있었다. 하나는 엘리자베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만들어 냈다는 것,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이 죄다 자기를 학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하루 종일 그 일만을 되뇌고 있었다. 그녀를 위로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날만은 그녀의 분개가 줄어들지 않았다. 엘리자베드의 얼굴을 보고 화를 내지 않기까지는 한 주일이 걸렸고 윌리엄 경이나 그의 부인과 말할 때 실례된 말을 하지 않기까지는 한달, 그 딸을 얼마간 용서할 때까지는 몇 달이 걸렸다. 이때의 베네트 씨의 감정은 매우 평정을 유지했고, 지금껏 경험한 감정은 다시없이 유쾌한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평소 상당한 분별심을 가진 걸로 알고 있던 샬로트 루커스가 자기 아내만큼이나 바보스럽고 또 자기 딸보다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어찌 만족스럽지 않겠느냐고 했다. 제인은 이 연분에 대해서 다소 놀라기는 했다고 고백했지만 자기가 놀랐다는 것보다는 두 사람의 행복을 지심으로 기원하는 기분으로 말할 때가 많아졌으며, 엘리자베드가 그렇게 될 리가 없다고 설득하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키티와 리디어는 루커스 양을 부러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콜린즈 씨는 일개 목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 일은 메리튼에서 퍼뜨릴 소문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루커스 부인은 딸한테 좋은 혼처 자리가 생기게 된 기쁨을 베네트 부인한테 이것 보아라는 듯이 갚을 수 있는 승리감에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여느 때보다 자주 롱본을 방문해서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말했다. 실은 베네트 부인의 부루퉁한 얼굴과 심술궂은 대꾸가 그녀의 행복을 쫓아내기에 충분했지만.... 엘리자베드와 샬로트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기분이 감돌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가 입을 다무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엘리자베드는 두 사람 사이가 두 번 다시는 믿을 처지가 못될 것이라고 느꼈다. 샬로트에 대한 그녀의 실망은 자기 언니에 대한 더 한층 깊은 애정을 갖게끔 만들었다. 언니의 정직함과 우아함에 대한 자기 의견은 흔들릴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빙리 씨가 떠난 지 벌써 한 주일이 되었는데도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혀 없어서 언니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제인은 캐롤라인에게 곧 회답을 써 보냈고, 다시 소식이 올 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콜린즈 씨가 아버지에게 약속했던 감사 편지는 화요일에 도착했는데 일 년이나 체재 않고서는 쓰지 못할 만큼이나 장중함을 다한 감사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해 자기 회포를 풀고 나서, 그들의 상냥스러운 이웃 루커스 양의 사랑을 받게 된 자신의 행복을 글로 알리면서 롱본에 다시 와 달라는 댁내의 바람에 기꺼이 응한 것은 다만 루커스 양과의 교제를 즐길 목적이었으며 2주일 후인 월요일에는 다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사연인 즉, 캐더린 영부인도 이 결혼에 찬성해서 되도록 빨리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것은 한시바삐 자기를 남성 중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날을 정해 버리는 데 있어서 귀여운 샬로트 양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콜린즈 씨가 다시 허어퍼드셔에 오게 된다는 사실은 베네트 부인에게는 더 이상 즐거운 일이 못되었다. 반면에 그녀는 자기 남편 못지 않게 불평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가 루커스 가로 오지 않고 롱본으로 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더우기 불편할 뿐더러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건강이 좋지 못할 대 손님을 맞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며 연애하고 있는 남녀만큼이나 비위 거슬리는 일도 없다. 대충 이러한 일들이 베네트 부인의 군색한 불평거리였는데, 그것들은 빙리 씨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큰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인도 엘리자베드도 이 문제만은 불안한 심정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또 지나도 그 사람은 올 겨울에는 네더필드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얼마 안가 메리튼에 쫙 퍼져 버린 소문 외에는 그에 대한 소식을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이 소문에 베네트 부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허위가 또 어디 있는가고 부정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까지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빙리가 냉담해지지나 않았는가 하는 걱정은 아니었지만... 혹시 자매가 그를 묶어 놓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하고. 제인의 행복이 깨어지고 그 연인의 견실함을 부끄럽게 할 만한 추측을 내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주 그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의 무정한 두 자매나 그 압도적인 친구 다아시가 힘을 합치고 그것에 다아시 양의 매력과 런던의 포근함까지 거들게 되면 그의 애정의 힘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몹시 마음에 걸렸다. 제인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그녀의 고뇌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이 엘리자베드의 그것보다도 훨씬 고통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재인은 아무 일이든 자신이 느끼는 일은 감추려 했기에 그녀와 엘리자베드 사이에는 이 문제가 화제로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러한 다소곳한 데가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러한 다소곳한 데가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 멀다고 빙리 이야기를 하고, 그가 돌아오는 것이 몹시 초조해진다고 했고,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이 안 돌아오는 걸 보니 이쪽이 골탕먹은 걸로 여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제인의 입을 빌어 시키려 드는 기세였다. 제인에게는 몸에 밴 온화한 성품이 있어서 이러한 일에도 제법 평정하게 견디어 낼 수가 있었다. 콜린즈 씨는 정확하게 두 주일 후 월요일에 되돌아왔는데, 롱본에서 대접은 처음 때만큼 따뜻한 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행복했기에 그다지 많은 환대가 필요치 않았다. 한참 연애에 몰두해 있는 참이라 고맙게도 주위 사람들하고 어울릴 필요가 없었다. 매일같이 루커스 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가족들이 자기 전에 롱본으로 돌아오는 형편이었다. 베네트 부인은 가엾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혼담에 관한 말이 조금이라도 비치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서 매우 불쾌하게 되어 버리기 일쑤였는데,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그 말을 듣게 되었다. 이제는 루커스 양을 보기조차 싫어했다. 자기 뒤를 이어 이 집 주부가 된다고 생각만 해도 질투 어린 혐오의 눈으로 그녀를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샬로트가 그들을 만나러 올 때마다 그녀가 이 집을 소유하게 될 날을 가슴속에서 기대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것이었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콜린즈 씨와 이야기할 때도 언제나 두 사람은 롱본의 토지에 관한 말을 하게 돼 있으며 베네트 씨가 세상을 떠나는 즉시 자가와 딸들을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일에 대해서 남편에게 심한 불평을 하게 되었다. "정말 여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샬로트 루커스인가 하는 애가 이 집 주부가 되고 그래 그 애에게 자리를 물려 줘서 그 애가 이 집에서 내 자리를 대신하여 들어서는 꼴을 보게 될 생각을 하니 얼마나 기막힌지." "여보, 그런 침울한 생각에 젖어서는 못 쓰오. 좀더 나은 일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살아남는 사람은 바로 이 몸이라고 낙관하고 삽시다." 이 말도 베네트 부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큰 힘이 되지 않았던지 그녀는 대꾸도 않고서 혼잣말로 말을 이었다. "이 재산이 깡그리 그 사람한테 넘어간다니 생각만 해도 미치겠어요. 한사상속인가 하는 것만 없어도 전 괜찮을 텐데요." "뭣이면 괜찮겠오?" "뭐든지 괜찮아요." "당신이 그러한 무감각 상태에 빠져들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기로 합시다." "그렇지만 여보, 날더러 한사상속을 고맙게 생각하라니 안될 말씀이에요. 한사상속을 가지고 남의 딸들에게서 재산을 뺏어 가다니 양심 있는 사람을 못할 짓이에요.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요. 그것마저 콜린즈 씨를 위해서... 숱한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 사람이 재산을 가지게 된단 말예요?" "당신 스스로가 결론을 내리도록 하시오" 베네트 씨가 말했다. @ff 24 빙리 양의 편지가 도착함으로써 일이 명백해졌다. 편지의 첫 귀절에서 그들이 올 겨울을 런던에서 정착하게 되는 사실이 확실해지고 그리고 끝맺음의 귀절에서는 오빠가 시골을 떠나오기 전에 허어퍼드셔의 친지들에게 인사할 겨를이 없었던 점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제인은 가까스로 나머지 부분에 눈을 돌렸으나 거기에는 편지 쓴 사람의 애정적 표현 이외에는 그녀를 위로해 줄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다아시 양을 칭찬하는 것이 그 편지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녀의 여러 가지 매력을 아주 소상히 말하면 캐롤라인은 그녀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을 기쁨 자랑으로 말하고, 전번 편지에서 살짝 비친 소원이 성취될 것 같다고 예고를 사양하지 않았다. 그녀는 또 오빠가 다아시 집에 동거하고 있는 것을 자못 기쁜 듯이 말하고, 바로 그 다아시 씨가 새 가구를 마련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황홀하게 적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제인으로부터 그 자리에서 이런 사연을 전달받으면서 듣고 있으려니 화가 치밀어서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언니를 걱정하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분개하는 것이었다. 오빠의 마음이 다아시 양에게 기울어졌다는 캐롤라인의 단언이 그녀에게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정말 제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에게 적잖이 호의를 가져 왔지만, 바로 그 사람이 친구들의 음모의 노예가 되어서 그들의 손에서 놀아난 나머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고 있는 그 안이한 기질과 올바른 결단력의 결여를 생각할 때 분노를 느껴서, 경멸하고 싶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사람 자신의 행복만 희생되는 것이라면 그가 자기 좋을 대로 그 행복을 가지고 논다고 해도 상관이야 없겠지만, 언니의 행복이 그 속에 휘말려 들고 있음을 그가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국 이 문제는 생각하면 끝이 없는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생각한들 무슨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밖의 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빙리 쪽의 애정이 정말 사라지고 말았는지, 주위 사람들이 간섭에 의해 억제 당하고 말았는지, 또는 제인의 애정을 알아차렸든 그것을 모르고 지나쳐 버렸든가, 그 어느 경우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그 차이에 의해 두드러지게 변할 것이 뻔하지만, 언니 입장은 그 어느 경우라도 여전히 똑같을 것이며, 마음의 평화는 한결같이 상처를 입을 것이 아니겠는가. 제인이 용기를 내어 엘리자베드에게 자기의 기분을 말하기까지에는 하루 이틀이 더 걸렸다. 그러나 마침내 베네트 부인이 네더필드와 그곳의 주인 문제로 평소보다 오랫동안 초조한 끝에 두 사람을 두고 나가 버리자 이윽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어머니는 좀더 자신을 억제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끊임없이 그분에 대한 일만 생각하고 계시니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신단 말이야. 그렇다고 불평하지는 않겠어. 그다지 오래 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분 일은 잊어버리고 원래의 우리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 말이야." 엘리자베드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지 수심에 차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날 의심하고 있나"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제인이 말했다. "의심할 필요까진 없어. 그분은 내가 알고 지낸 중에서 제일 마음이 상냥스런 분으로 내 기억에 살고 있겠지만 그저 그뿐이야. 나로선 바라는 것도 없고 두려워할 아무것도 없고 또 그분을 책망할 아무것도 없단 말야. 고맙게도 그런 고민은 나에게는 없어. 그러니까 좀더 시간이 흐르게 되면... 틀림없이 다 잊어버리려는 힘이 솟아날 거야." 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난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마음의 흐트러짐이지 나 외의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평화스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어." "어머 언니! 언닌 사람이 너무 선량해요. 언니의 상냥함과 공정함은 정말로 찬사에 버금가는 거야. 난 언니한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수. 나는 꼭 언니의 훌륭함을 몰랐던가 아니면 그렇게 훌륭한 언니에 대해 사랑이 부족했던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언닌 세상 사람들을 다 훌륭하다고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령 누구를 덜 좋게라도 말하면 금방 기분이 나빠지거든요. 난 말야, 언니를 완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면 언닌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죠. 내가 극단적인 말을 한다 해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한결같이 선으로만 대하는 언니의 특권을 내가 나무란다 해서 날 두려워할 것까진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는 그리 흔치 않고, 선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더욱 그 수가 적은 것 같아요. 세상을 알면 알수록 세상에 싫증이 나는 법예요. 사람들의 성격은 죄다 모순된 것들뿐이고 또 미덕이나 총명 같은 외적인 것에 신뢰를 둘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가 못하다는 내 신념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 가기만 해요. 나는 최근 두 개의 일에 부딪치고 말았어요. 한 가지는 말하고 싶지 않고, 또 한가지는 샬로트의 결혼이에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요!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아요!" "얘 리자, 그런 감정에 휩쓸려 버려서는 못 쓴다. 그렇게 되면 너는 불행하게 되고 마는 거야. 넌 지금 입장이라든가 기질이라든가 하는 것의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는 거야. 콜린즈 씨의 명성과 인망이 샬로트 양의 신중하고 착실한 성격을 생각해 보렴. 그녀는 첫째 대가족의 한 사람이고 재산이란 점에서도 천생연분이란 걸 잊지 말도록 해. 그리고 그녀가 우리 친척을 높게 평가하고 존중하고 있는 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사람들을 위해 믿어 다오" "언니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믿고 싶지만 그런 것을 믿는대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거든요. 왜냐하면 샬로트가 그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내가 믿어야 한다면, 지금 내가 그녀의 애정을 의심하고 있는 이상으로 이번엔 그녀의 지식을 더욱 의심하게 되거든요. 언니, 콜린즈 씨는 자만심이 강하고 잘난 체하며 마음이 좁고 아둔한 사람이에요. 언니도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을 게 아녜요. 나와 꼭 같이 느끼고 있는 일이겠지만 그런 남자와 결혼하는 여성은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일 거예요. 그 사람이 바로 샬로트 루커스라 해서 변호해서는 안돼요. 한 개인을 위해서 지조와 성실의 뜻을 변경해서는 안되는 일이며, 이기주의가 곧 신중성이라든가, 위험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한다든가 하는 것을 자기뿐만 아니라 나에게까지 억지로 믿게 해서는 못 쓰는 거예요." "넌 두 사람 일을 말하는 데 너무 강한 말을 지나치게 쓰고 있다고 생각해야 될 것 같아" 제인이 그렇게 대답했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될 때 그것을 깨우쳤으면 좋겠어. 이젠 이 일은 그만해 뒀으면 해. 너 아까 뭔가 딴 것을 비친 것 같더니. 두 개의 예라고 말했었지. 난 널 오해할 수야 없지만 제발 부탁이니 리자, 그분이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네가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날 괴롭히지 말아줘. 우리들은 남에게서 고의로 상처를 입게 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해선 안되는 거야. 쾌활한 청년에게 언제나 조심성 있고 경제적인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한 일이야. 우리들은 자기의 허영심 때문에 기만당하는 수가 너무나 많거든. 여자란 높이 평가받게 되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야." "그리고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의도하는 거예요."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이 못돼는 거야. 그러나 난 이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만큼의 음모로 가득 차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내 생각엔 빙리 씨의 행동 어디에도 계획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그러나 고의가 아니라도 잘못을 저질렀거나 남을 불행하게 했을 때도 잘못은 일어날 수 있으며 슬픔도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사려의 결핍, 타인의 기분에 대한 주의 부족과 결단력의 결여로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넌 그 둘 중의 어느 하나의 탓으로 돌릴 작정이냐?" "그래요, 나중의 것으로 말예요. 그러나 이대로 내가 계속해 나간다면 언니가 존경하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말함으로써 언닐 불유쾌하게 만들어 버리게 되는 거죠. 할 수 있을 때 나를 중지시켜 주세요." "그렇다면 넌 끝까지 두 분 자매들의 힘이 그분을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래요, 그분의 친구하고 합세해서 말예요." "난 믿을 수 없구나. 왜 그 사람들이 그분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누? 그들도 그분의 행복을 바랄 뿐일 텐데. 만약에 그분이 날 사랑하고 계시다면 달리 그분의 행복을 굳혀 줄 여자는 없을 테지." "언니의 제일 명제가 틀렸어요. 그 사람들은 그분의 행복 외에 다른 많은 것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예요. 재산이 불어나고 지위가 높아지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돈 그리고 훌륭한 연고 관계와 자부심 같은 그런 것들을 고루 갖춘 규수하고 그분을 결혼시키고 싶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물론 그 사람들은 다아시 양을 고르고 싶은 거야." 제인은 대답했다. "그러나 이것은 네가 상상하고 있는 이상으로 더 좋은 생각에서 나왔을 지도 몰라. 그 사람들은 나보다도 다아시 양을 훨씬 전부터 알고 있는 것이니까 다아시 양을 더 좋아한다 해서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냐. 그 사람들로서 어떠한 것을 바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빙리 씨의 소원에 반대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아. 정말 반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라면 자기들 마음대로 해야 좋다고 생각하는 자매들이 어디 있겠니? 그분께서 날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들은 굳이 우리들을 떼어놓으며 들지 않을 거야. 만일 애정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네 생각엔 그런 애정이 있다고 가정해서 그 사람들이 죄다 부자연스런 일을 했으며, 잘못을 저질러 놓고 있다고 정해 버림으로써 날 이렇게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만 거야. 그런 생각으로 날 괴롭히지 마. 난 그분을 잘못 봤다 해서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아. 아니, 적어도 내가 그분이나 자매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감정에 비한다면야 비교도 안되는 일이지. 그러니까 이 문제를 제일 좋은 견지에서, 다시 말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견지에서 생각하는 것을 용서해 줘" 엘리자베드는 이러한 소원에 반대할 수도 없어, 이때부터 두 자매 사이에는 빙리 씨의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베네트 부인은 여전히 그가 안 돌아오는 것을 의아해 하고 그것을 계속 불평했으며 엘리자베드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지만, 부인이 그것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날은 별로 없었다. 딸은 자기를 믿지 않고 있었다는 점, 즉 제인에게 접근했던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잠시 좋아진 그런 결과에 불과하며, 제인의 얼굴을 안 보게 되면 곧 소멸되고 마는 그런 성질의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이 말하는 것을 그도 그럴 것이라고 그 당장에는 인정하고서도, 엘리자베드는 매일같이 그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베네트 부인에게 다시없이 좋은 위안거리는 빙리 씨가 여름에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뿐이었다. 베네트 씨는 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좀 달랐다. "그렇다면 리지." 어느 날 하루 그가 말했다. "너의 언닌 실연한 거다. 난 차라리 낫다고 본다. 여자란 한 번쯤은 실연해 보는 것도 결혼하기 전 좋은 경험이다. 이따금 생각할 거리가 생기기도 하고 동료들 사이에서 좀 두드러지기도 하는 게야. 네 차례는 언제 온담? 항상 언니에게 지고만 있어서도 곤란하지. 이젠 네 차례가 온 거다. 메리튼에는 이 지방의 젊은 여성들을 실연시킬 만한 많은 장교들이 있다. 위컴을 네 사람으로 만들어 보련. 그 사람 쾌활하니까 너한테는 잘 어울릴 거니까." "고마와요, 아버지. 전 그분만큼 쾌활하지 않아도 만족이에요. 우린 언니만큼 행운을 다 기대할 수 없으니까 말예요." "그건 그래" 베네트 씨가 말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언제고 그것에 힘 닿는 대로 소란 피우는 애정 넘친 너의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즐거운 일이다." 위컴 씨와의 교제는 최근 불유쾌한 사건들이 롱본의 많은 사람들에게 던져 주고 있는 우울한 그림자를 쫓는 데 크게 소용이 되었다. 그녀는 자주 그를 만났다. 그는 숱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주지하지 않는 장점이 또 추가로 발견되었다. 엘리자베드가 들어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다아시 씨에 대해 그가 요구해야 할 권리라든가 그로 말미암아 고통 당해 왔던 여러 가지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인식되고 거침없이 논의되곤 했다. 가족 전원이 이런 사정을 알 때까지도 다아시 씨를 항시 덜 좋아했던 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쁜 일이었다. 제인 베네트 양만은 이 문제 속에 허어퍼드셔의 사교계 사람들이 모르는 어떤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온순하고 착실하고 솔직한 마음은 언제나 그 나름의 입장을 참작하려 들며 어떤 실수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 밖의 누구도 다아시 씨는 최악의 인간이라 선언하는 것이었다. @ff 25 애정의 고백과 행복의 계획으로 한 주일을 보내고 나서 토요일이 되자 콜린즈 씨는 상냥스런 샬로트와 작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별에서 오는 고통도 그의 입장에서는 신부 맞을 채비에 의해 완화시킬 수가 있었다. 이 다음 허어퍼드셔에 오는 즉시 자신이 남성 중에서는 가장 행복하게 되는 날짜를 정한다고 생각해서도 좋을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전과 다름없이 근엄하게 롱본의 친척들과 작별을 나누고 어여쁜 친척 딸들ㄹ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아버지에게는 다시 감사 편지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월요일에 베네트 부인은 남동생 부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전례대로 롱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온 것이다, 가디너 씨는 매우 분별 있고 퍽 신사적인 사람으로 교육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타고난 성품에서도 자기 누이보다 월등한 인물이었다. 네더필드에 살고 있는 여성들 눈에는 상업에 종사하며 자기의 창고가 빤히 보이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 교양이 있으며 상냥스러운지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가디너 부인은 베네트 부인이나 필립스 부인보다 몇 해 손아래로 붙임성 있으며 머리도 좋고 고상한 여성이어서 롱본의 조카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특히 위로 두 딸과 그녀 자신 사이에 서로 각별한 호의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자주 런던에 있는 그녀에게 가서 체재했다. 가디너 부인이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선물을 나누어 주고 최근 유행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일이 끝나자 그의 역할은 그다지 적극적인 것이 못되었다. 이번에는 자기가 이야기를 듣는 편이였다. 베네트 부인은 적잖이 슬픈 소리만 늘어 놓았고 불평도 말했다. 전번에 마지막 만난 이후 집안 사람들한테 무시당했던 것이다. 두 딸이 결혼 일보 직전까지 다가섰다가 결국 그것이 무산되어 버렸다. "난 제인을 나무랄 생각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앤 할 수만 있었다면 빙리 씨하고 결혼할 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리지는 말이야! 만일 그 애가 고집을 내세우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콜린즈 씨의 배우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정말 괴로와지는구료. 바로 이 방에서 구혼을 했는데 글쎄 그 애가 거절하고 말았다니까. 그 결과로 루커스 부인이 나보다 한 걸음 앞서서 딸을 치우게 돼서 롱본의 토지는 그 전과 같이 한사상속으로 돼버렸지 뭐야. 루커스 가의 사람들은 정말 교활한 사람들이란 말야. 가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갖고 말겠다는 심보들이거든. 이런 말을 해선 뭣하지만 사실인걸 뭐. 자기 집안에선 딸에게 훼방을 당하고 이웃 사람들은 또 내 일만 알고 남이야 무슨 상관이냐 식의 사람들이 있어서야 어디 마음이 조급해져서 병이라고 날 것 같단 말야. 그러나 새댁이 마침 때를 맞춰 잘와 줬으니 내 마음이 한결 든든해지는구먼. 긴 소매 이야긴 정말 기뻤어." 가디너 부인은 제인과 엘리자베드의 편지로 이미 이야기를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네트 부인에게 대답을 약간 하고 나서 조카들의 심정을 동정해서 화제를 바꾸어 버렸다. 나중에 엘리자베드와 단 둘만 남자 그녀는 이 문제를 다시 거론했다. "제인에겐 정말 바람직한 혼처인데 그래" 그녀가 말했다. "잘 되지 않아서 유감이구먼. 그러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법야! 네 말을 들어보면, 빙리 씨와 같이 그렇게 쉽사리 2, 3주 동안에 예쁜 처녀하고 연애를 하고서는 우연히 헤어지게 되면 금세 잊어버리게 되니까 이렇게 일관성 없는 사람은 자주 볼 수가 있어." "이건 확실히 훌륭한 위안의 말씀이세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우린 우연한 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남에게 신세질 필요가 없을 만큼의 재산을 가진 젊은 사람이 주위 사람들의 간섭을 받고 나서 2, 3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를 잊어버리고 마는 일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 거예요." "그렇지만 바로 열렬하게 사랑했다라고 하는 표현은 너무 진부하고 애매하며 부정확한 느낌이 들어서 나로선 그 뜻을 잘 모르겠구나. 그것은 진실하여 강한 애정에도 적용되고 30분간의 교제에서 일어나는 감정에도 적용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 빙리 씨의 애정이 얼마나 열렬했던가 어디 한 번 얘기해 보아라." "그분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아랑곳 않고 그저 언니에게만 빠져버렸다니까요. 두 사람이 만날 적마다 더욱 확실해졌어요. 자기네 무도회에서 춤 상대로 청하지 않았다 해서 두세 명의 젊은 여성들의 기분을 망치고 말았어요. 제 자신도 두 번쯤 말을 걸어 보았지만 대답도 않던데요. 이만한 조짐이 또 어디 있으려구요? 주위 사람에게 무례한 것은 결국에 사랑의 본질이 아니겠어요?" "아, 아무렴... 그 사람이 느꼈다고 내가 상상하는 사랑은 아마 그럴 테지. 가엾은 제인! 그애 기질로선 쉽게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 아주 안됐구나. 차라리 너에게 그 일이 일어났으면 좋을 뻔했구나. 너 같으면 곧 웃어넘기고 말 테니까 말이다, 리지아. 그런데 그애에게 우리가 권하면 우리하고 함께 런던으로 갈 것 같으냐? 장소를 바꾸면 혹시 무슨 소용이 될까 해서 그런다.... 게다가 집을 잠깐 떠나면 꽤 도움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엘리자베드는 이 제안을 아주 반갑게 받아들이고 언니도 마다 않고 승낙해 줄 것으로 확신했다. "난 말야." 그렇게 가디너 부인이 덧붙여 말했다. "그 젊은 사람 생각 때문에 그애가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우린 런던에서도 전연 다른 구역에 살고 있고, 연고 관계 역시 전혀 다르고 또 너도 알다시피 우린 외출이라곤 안하니까, 만일 그 사람 쪽에서 찾아오는 일이라도 없으면 두 사람은 꿈에도 만날 일이 없게 되는 거야." "그것은 전혀 불가능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 친구분한테 감금 당하고 있고, 그리고 다아시 씨란 사람은 런던의 그런 구역에까지 제인을 방문케 하지도 않을 것이니까요. 외숙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아시 씨 자신도 그레이스처치(시내의 상업지구)란 지명을 듣기는 했겠지만, 그 사람이 발걸음을 한 번이라도 그곳으로 옮겼다가는 그곳의 더러움을 씻어 버리는 데에 한 달이 걸려도 모자라는 형편일 테고요, 더우기 틀림없이 빙리 씨도 다아시 씨와 함께가 아니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더욱 잘됐구나. 두 사람이 통 안 만났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제인은 그 사람의 누이와 편지 연락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그 사람 누이동생은 안 찾고는 못 배길 것 아냐?" "언닌 그런 사람하고의 교제는 딱 끊고 싶은 거예요." 빙리가 제인을 만나는 것을 저지 당하고 있다는 흥미 잇는 점과 마찬가지로 엘리자베드는 이 점에 대해서도 확신이 있는 체했으나, 자기에게 그런 확신을 준 그 문제를 곰곰 생각해 보니 전연 희망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열망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의 애정이 되살아나고 또 친구의 영향도 제인의 매력이라는 자연스러운 영향력에 의해 보기 좋게 지게 될 것이 가능한 일이며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그녀는 때때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베네트 양은 외숙모의 초대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캐롤라인이 오빠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닌 만큼 이따금 그녀와 함께 아침나절을 지내더라도 그와 얼굴을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정도밖에는 빙리 가의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가디너 부부는 롱본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지만 필립스 부부라든가 루커스 가의 사람들, 나아가서는 장교들로부터 초대 없는 날이란 거의 없었다. 베네트 부인은 동생 부부를 대접하느라 너무나 애를 썼기에 그들은 한 번도 가족들만 식탁에 함께 앉아 보질 못했다. 자택에서 대접을 하게 될 때는 언제나 몇 사람의 장교가 눈에 띄었고 그 안에는 위컴 씨가 정해 놓고 한 몫 끼여들었다. 가디너 부인은 전에 엘리자베드가 열을 올려 그를 칭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경우에는 세심하게 두 사람을 관찰했다. 겉으로 보아서 매우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으나 서로가 좋아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기에 다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허어퍼드셔를 떠나기 전 그 문제에 대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해서 그러한 애정 관계를 조장하는 것은 무분별한 일이라 깨닫게 하려고 결심했다. 위컴이 가디너 부인을 기쁘게 해주는 한 수단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매력과는 다른 데가 있었다. 이럭저럭 한 10년이나 12년쯤 전에 결혼하기 앞서 그녀는 더비셔에서 꽤 오래 산 적이 있었는데 때마침 그가 그 주변 사람이어서 두 사람에게는 공통된 친지가 많이 있었다. 위컴은 5년 전에 다아시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곳에 가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옛친구들에 대한 듣지 못했던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가 있었다. 가디너 부인은 펨벌리를 본 적도 있었고, 고 다아시 씨의 일도 평판에서 들어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런 결과로 화제가 그칠 줄 몰랐다. 펨벌리에 관한 자기의 기억을 위컴이 말해 주는 것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선인의 인품을 찬양해 가며 그녀는 그를 즐겁게 해주고 또한 자기도 즐겼다. 문제의 다아시 씨가 위컴 씨에게 행한 박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자, 그 신사가 아직 어렸을 적에 평판이 났었던 성질과 그 이야기와 일치되는 점이 없는가 기억을 더듬다가 거만스럽고 짓궂은 소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ff 26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에 대한 주의는 두 사람만이 남아 말할 최초의 기회가 주어지자 알뜰하고 친절하게 행해졌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정직하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넌 머리가 좋은 애니까, 리지야, 그저 안된다고 말을 들으면 우겨가며 연애를 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솔직이 말해서 걱정은 없겠지. 진지하게 말해 둔다만 넌 경계하는 게 좋을 게다. 재산도 없는데 무분별하다는 말을 듣기 일쑤인 애정에 네가 끌려들어서도 안되겠지마는 또 사람을 끌어넣어도 안된다. 내가 그 사람을 마다 할 이유야 없다. 그 사람은 정말 흥미를 갖게 하는 면청년이었다. 그 사람이 당연히 가져야 할 재산을 가졌다면 다시없이 어울리는 좋은 연분이겠다만. 그러나 그렇지가 못하니까 너의 꿈에 끌려가서는 못 쓴다. 넌 양식을 가진 애니까 우린 모두가 그걸 사용하길 바라고 있다. 너의 아버지께서도 너의 강한 의지와 훌륭한 행동을 기대하시고 계시다, 틀림없이. 아버지에게 실망을 드려서는 안된다." "외숙모, 얘기가 자못 진지해졌군요." "그래, 너도 나같이 진지해 달라는 거다." "그러시다면 안심하셔도 돼요. 제 자신도 조심하겠지만 위컴 씨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어요. 그분에게 연애를 못하게 할께요, 저에게 만일 그걸 막을 힘이 있다면 말예요." "엘리자베드, 넌 지금 진지하지가 못하다." "죄송해요, 한 번 더 노력할께요. 전 현재 위컴 씨와 연애하고 있지 않아요. 그건 틀림없어요. 그렇지만 그분은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제가 만나 뵌 사람 중에서 그렇게 기분 좋은 사람도 없을 거예요.(그리고 그분이 만약 절 사랑하게 된다면) 그분께선 그런 생각 안하시는 게 좋겠지만, 그 속에서 무분별을 찾아낼 수가 있어요. 아, 그러나 그 다아시 씨인가 하는 사람 정말 미워요. 아버지께선 절 높이 평가해 주시는 데 그건 다시없는 영광이므로 그 평가를 잃게 된다면 전 비참해지고 말아요. 그러나 아버지는 위컴 씨에게 호감을 갖고 계세요. 그러니까 외숙모, 저로서는 여러분 중의 누군가를 슬프게 해줄 수는 없어요. 그러나 저는 매일 같이 보고 있지만, 애정이 있을 경우 젊은이들은 지금 재산이 없다고 해서 결혼을 머뭇거리는 일은 별로 없는 판인데, 제가 어떻게 유혹 받을 때 제 또래의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약속할 수 있겠어요? 하물며 거절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니까 제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급히 서둘지 않는다는 것뿐이죠. 전 제 스스로가 서둘러서 그분의 의중의 인물이라고 믿지 않기로 하겠어요. 제가 그분하고 같이 있을 때도 희망을 안 갖기로 하겠어요. 요컨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어요." "그 사람에게 너무 자주 여기에 오려는 생각을 말리는 것이 좋을 거야. 적어도 그 사람을 초대하는 일을 어머니 머리에 떠오르지 않게 하는 것이 좋아" "사실은 일전에 그런 생각을 나게 했지 뭐예요." 엘리자베드는 그 일을 의식하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정말 그런 일을 안하는 게 현명해요. 그러나 그분이 항시 여기에 온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이번 주에 그렇게 자주 초대했던 것은 오직 외숙모를 위한 거지요. 손님에게는 언제고 상대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 생각을 외숙모도 알고 계실 테죠. 그렇지만 정말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지만 전 가장 현명하다고 인정받는 일을 하고 말겠어요. 이젠 이만하면 만족하시겠어요." 외숙모는 만족하다고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외숙모의 친절한 조언에 감사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러한 점에 대해 충고를 하고서도 원한을 사지 않은 드문 예였다. 콜린즈 씨는 가디너 부부와 제인이 떠난 직후 허어퍼드셔에 다시 나타났지만 루커스 가에다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그가 왔어도 베네트 부인에게는 그다지 큰 불편이 없었다. 그의 결혼 날짜가 급작스레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도 마침내 할 수 없는 일로 생각해서 짓궂은 투로 말했다.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빌어요." 몇 차례 되뇌어 보일 정도로 체념하고 말았다. 목요일이 결혼식이어서 수요일에는 루커스 양이 롱본으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작별하려고 했을 때 엘리자베드는 마지못해서 무뚝뚝하게 하는 어머니의 인사가 부끄러워, 진정한 호의에서 그녀의 뒤를 따라 방을 나섰다. 함께 계단을 내려올 때 샬로트가 말했다. "종종 소식을 들려 주세요, 엘리자" "그 일에 대해선 걱정 마세요." "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놀러와 주시겠어요?" "허어퍼드셔에서 자주 만나기로 해요." "난 잠시 동안 켄트를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헌스퍼드에 오시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방문해 봤자 별로 기쁠 것 같지 않다는 것은 사전에 알고 있었지만 엘리자베드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버님과 마리아가 3월에 오기로 되어 있거든요." 샬로트가 덧붙여 말했다. "당신이 그들과 어울려 주시길 동의해 줬으면 해요. 정말 엘리자, 아버님이나 마리아 못잖게 환영해 드릴께요."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신부는 교회 문 앞에서 켄트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한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누구나 할 말과 들을 이야기가 풍성했다. 엘리자베드는 곧 친구한테 소식을 받고, 그들의 서신 왕래는 전례 없을 만큼 규칙적으로 빈번해졌다. 다만 서로가 숨김없이 되기란 불가능했다. 엘리자베드는 그녀에게 편지를 띄울 때는 반드시 다정한 친밀감이 끝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편지를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라기보다는 과거를 위한 일이 되어 버렸다. 샬로트의 처음 편지는 꽤나 기다려지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자신의 새 가정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며 캐더린 부인이 마음에 들게 되었을까, 또 자신의 행복이 어느 정도라 말할 것인가, 그러한 것들의 호기심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편지를 읽고 나자 엘리자베드는 샬로트가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꼭 이쪽에서 예견하고 있던 대로를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즐겁게 사연을 써 나가면서 여러 가지 즐거운 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고 어떤 일에 대해 쓸 때도 반드시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집도 가구도 이웃도 도로도 전부다 그녀의 마음에 들고 캐더린 부인 태도는 아주 우호적이며 친절하다 했다. 그것은 콜린즈 씨가 묘사하는 헌스퍼드와 로징즈의 화면을 합리적으로 누그러뜨려 놓은 것이라 하겠다. 엘리자베드는 그 밖의 일을 알고 싶을 때는 자기 스스로가 그곳에 가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인은 이미 런던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생에게 짧은 소식을 전해 왔다. 이 다음에 언니가 편지를 보내올 때는 빙리 집 안의 사람들에 대해 다소나마 씌어져 있었으면 하고 엘리자베드는 은근히 바랐다. 그녀는 두 번째 편지를 무척 기대했지만 대체적으로 이럴 때 오는 회답의 내용은 별것이 아닌 법이다. 제인은 런던에 도착해서 한 주일이 되었는데도 캐롤라인을 만나지도 않았고 편지도 받지를 못했다. 그녀는 롱본에서 마지막 띄운 편지가 어떤 실수로 해서 분실되고 만 것이 아니냐고 상상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이유를 붙여 보았다. "외숙모께서 내일 그쪽으로 갈 예정이라니 나도 그 기회에 그로스브너가에 들어가 볼까 한다." 방문이 끝나자 제인은 다음 편지를 보내 왔고 빙리 양을 만났다는 것을 알려 왔다. "캐롤라인은 원기가 없어 뵈던데" 이것이 제인의 말이었다. "그러나 날 보더니 무척 기뻐했고 왜 런던에 올라온다는 말을 사전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나를 책망했어. 그걸 보니까 내 생각이 옳았지. 내가 보낸 마지막 편지가 닿지 않았다는 거야. 물론 오빠도 잘 계시냐고 물었어. 잘 지내기는 하지만 다아시 씨와 단짝이라서 남매가 얼굴을 맞대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거야. 다아시 양을 식사 초대한 것을 알게 됐어. 나도 만나 봤으면 좋겠어. 그러나 캐롤라인과 허어스트 부인이 외출하기로 돼 있어서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어. 멀지 않아 그들이 이곳을 찾아 주게 될 거야." 엘리자베드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머리를 저었다. 어떤 우연한 일이 없는 한은 제인이 런던에 와 있다는 것을 빙리 씨가 알 리가 없다고 믿었다. 4주일이 지나도록 제인은 빙리 씨를 전혀 만날 수가 없었다. 만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고 스스로 타일렀다. 그러나 빙리 양의 냉담함에는 더 이상 맹목적일 수는 없었다. 2주일 동안이나 매일 아침 집에서 기다렸고 밤이 되면 그녀를 위해 새로운 구실을 고안해 낸 끝에 그 방문자는 마침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지체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고 게다가 태도에도 변화가 보여 제인도 이제는 그 이상 자신을 기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동생에게 쓴 편지에 그녀의 감정이 잘 묘사돼 있었다. 내 사랑하는 동생 리지는 빙리 양의 나에 대해 감정을 내가 전적으로 오해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해도 자기의 판단이 옳았다고 설마 우쭐대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사랑스런 아우여, 이번 일로 해서 네가 옳았던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의 빙리 양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내 신뢰감 역시 너의 의혹감에 못지 않게 자연스런 것이라 주장한다 해도 날 완고하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다오. 그 사람이 왜 나하고 친숙해지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만, 만일 같은 사태가 또 생겨날 경우 난 어김없이 또 오해하고 말 거야. 어제 처음으로 캐롤라인이 내 방문에 대한 예방을 한 거지만, 그 간에 단 한번이라도 편지 한 통, 편지 한 줄도 난 받지 못했던 거야. 방문해 왔음에도 조금도 기쁜 기색이 안보인 사실은 명확했었어. 좀더 일찍 찾아왔어야 할 텐데 하고 가볍게 형식적으로 사과했으나 다시 만나자고 하는 말은 한마디 없었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고 났을 때 난 교제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어. 그 사람이 날 그런 식의 친구로 선택했던 것은 잘못이야. 친숙해지려고 접근해 온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 쪽이었으니까 말야. 그러나 그 사람을 가엾게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자기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끼고 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자기 오빠에 대한 걱정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돼. 이 이상 내 입장을 명백히 할 필요가 없게 됐어. 우리들 족에서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람 쪽에서 여전히 걱정한다고 하면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를 쉽사리 설명이 될 줄 알아. 오빠란 누이동생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매우 중요한 존재이니까 그 사람이 오빠를 위해 어떠한 걱정을 하게 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이며 상냥스런 일이 되는 거야. 그 사람이 지금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게 나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지는구먼. 왜냐하면 만약 빙리 씨가 날 조금이라도 좋아했더라면 우리들은 훨씬 전에 만났음에 틀림없기 때문이지. 캐롤라인이 한 말로 미루어 봐서 빙리 씨는 내가 런던에 와 있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으리라 믿어.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말투를 보게 될 때, 마치 빙리 씨는 진정 다아시 양을 사랑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드는 것같이 보인단 말야. 난 그걸 잘 모르겠어. 만일 내가 서투른 판단을 거침없이 한다면 모든 일에는 어딘가 모르게 이중성이 있는 것이라 말하고 싶어져. 그렇지만 난 슬픈 것은 몰아내고 날 행복하게 해주는 것, 즉 너의 애정이나 외삼촌 내외분 친절함만 생각하도록 노력할래. 곧 답장 보내 줘. 빙리 양 말로는 그 분은 다시 네더필드엔 안 돌아가시고 집도 처분해 버린다고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아냐. 우린 그런 걸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가 헌스퍼드에 있는 우리 친구들로부터 유쾌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해. 제발 윌리엄 경이나 마리아와 함께 만나러 가도록 해. 틀림없이 즐거운 일이 거기에 있을 테니까... 이만 줄인다. 이 편지는 엘리자베드에게 어느 정도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제인으로서는 적어도 그 사람의 누이에게 더는 속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그녀는 원기를 되찾게 되었다. 오빠한테 기대해 보았자 이젠 아무 소용이 안되었다. 그 사람의 애정이 두 번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은 바랄 수가 없었다. 그의 인격을 되새길수록 처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인에게는 이로운 일이 될지 모르나 그 사람에게는 벌로서 그가 곧 다아시 씨의 누이와 결혼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위컴 씨의 말에 의하면 다아시 양은 빙리 씨에게 자기가 저버린 여성을 몹시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이다. 요즘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드에게 이 신사 일로 해서 서로가 했던 약속을 잊지 말라고 했고 소식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엘리자베드는 자기 자신보다는 외숙모를 만족시키는 내용을 써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위컴이라는 사람의 외양만의 애정은 숙어들었고 친절도 사라져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충분한 관찰력을 가지고 그러한 사실을 꿰뚫었으나, 그것을 보고 또 그것을 쓸 때도 강렬한 고통을 받지는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재산 문제만 허용했던들 그가 선택할 대상은 바로 자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녀의 허영심은 만족되었다. 별안간 1만 파운드의 돈이 생긴다는 것이 그가 새삼스럽게 접근하려고 하는 그 여성의 큰 매력이었지만, 이런 문제에서는 샬로트보다도 눈이 어두운 엘리자베드는 독립된 생활력을 갖고 싶어하는 그의 의지에 대해 그와 입씨름하지는 않았다. 그와 반대로 이처럼 자연스런 일도 없었다. 그래서 자기를 체념하자면 그에게도 약간의 고통은 뒤따른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편,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현명하고 바람직한 조치라고 인정하고 진정으로 그의 행복을 빌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을 엘리자베드는 가디너 부인에게 고백했다. 그리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 그녀는 이렇게 써 나갔다. 친애하는 외숙모님, 저는 그리 많은 사랑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만일 제가 순수하고 마음을 고양시키는 정열을 정말 경험했더라면 저로서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조차 싫어지고 그에게 모든 재앙이 함께 하기를 빌었을 테죠. 그러나 저의 감정은 그분에 대해서도 따뜻할 뿐 아니라 킹 양에 대해서도 편견은 갖고 있지 않아요. 그 여자를 조금이라도 미워한다든가, 또 그 여자를 선량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든가 하는 그런 일은 없어요. 이런 것을 연애라고는 할 수 없겠죠. 경계했던 보람은 있었나 보죠. 그분에게 미친 듯이 연애를 했더라면 저는 친지분들에게 꽤나 흥미 있는 사람이 됐을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비교적 무의미한 존재가 됐다고 해서 조금도 후회스럽지는 않아요. 중요한 인물이 되자면 때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되는 법이죠. 키티와 리디어는 그의 배신을 저 이상으로 깊이 원망하고 있어요. 그애들은 아직 세상 물정이 어두워서 잘생긴 남자 역시 못생긴 남자나 다름없이 먹고 살아가야 한다는 한탄스런 사상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거죠. @ff 27 롱본의 가족에겐 더 이상 큰 사건도 없이 때로는 길이 나쁘거나 추운데도 메리튼까지 걸어가야만 하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이 1월과 2월이 지나가고 말았다. 3월에 엘리자베드는 헌스퍼드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으로 갈 생각을 진지하게 하질 않았으나, 샬로트가 그 계획을 꽤 기대 하고 잇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도 차츰 전보다는 확고하고 더욱 기꺼이 생각하게 되었다. 떨어져 있으려니 다시 샬로트를 만나고 싶은 기분이 더해 갔고 콜린즈 씨에 대한 혐오감도 약화되어 갔다. 그 계획에는 신기함도 깃들여 있는데다가, 집에 있어 보았자 어머니도 그렇고 동생들하고도 별로 말이 안 통하는 처지에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약간 장소를 바꾸어 보는 것도 그 자체로서 과히 싫지는 않았다. 그 뿐이랴, 이번 여행에서 제인의 얼굴도 잠깐 볼 수 있게 된다. 요컨대 그 시기가 가까와짐에 따라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것은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마침내 샬로트의 계획대로 낙착되었다. 엘리자베드는 윌리엄 경과 그의 작은 딸과 같이 동행하기로 되었다. 그 간에 런던에서 1박 한다는 수정안이 첨가됨으로써 계획은 정확히 완전한 것이 되었다. 다만 단 한가지 고통은 아버지와 헤어지는 일이었다. 어버지는 그녀가 없게 되면 틀림없이 쓸쓸해 할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막상 그 시기가 오자 그녀가 떠나가는 것이 싫어서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면서 자기도 딸 편지에 답장을 보내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그녀와 위컴 씨 사이의 이별은 매우 화기애애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남자 쪽이 더욱 그러했다. 지금은 딴 여성의 애정을 추구하고는 있지만, 엘리자베드는 그의 마음을 불태우고 그를 끌기에 알맞은 여성이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동정해 주었던 첫번째의 여성이기도 했고, 그가 동경해 마지 않던 첫번째 여성이었던 사실을 그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이별의 말을 나누고 여행이 더욱 즐거운 것이 되길 빌고 캐더린 드 버그 부인에게 어떤 기대를 했으면 좋을 것인가 주의해 주고, 부인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 모든 사람들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은 항상 일치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는 그 태도에는 적정과 초조가 엿보였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그녀로 하여금 가장 진실한 호의로써 그에게 애착을 느끼게 한 점이라고 그녀는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결혼을 하든 독신으로 있든 간에 언제고 자기에게는 상냥스럽고 기분 좋은 사람의 정형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면서 그와 헤어졌다. 다음날 그녀의 여행 상대들은 위컴 씨에 대한 호감을 덜하게 만들 만한 상대들은 못되었다. 윌리엄 루커스 경과 쾌활하기는 하나 아버지와 다름없이 머리가 텅 비어 있는 딸 마리아 두 사람한테서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는 하나도 없어서 흘려 버렸다. 엘리자베드는 어리석은 이야기가 좋았지만 윌리엄 경의 그것에는 싫증이 난 지 이미 오래다. 그는 배알과 수작의 경이에 대해서 하등 새로운 것을 말하지 못했고 그의 예절도 이야기나 다름없이 낡은 것이었다. 불과 24마일의 여행으로 그것마저 일찍 떠났기 때문에 정오에는 그레이스처치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가디너 씨 댁 문 앞에 마차를 갖다 대었을 때 제인은 응접실 창가에서 그들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 들어서자 그녀는 거기까지 와서 영접했다. 엘리자베드는 언니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여전히 건강해 보이고 아름다운 것을 보자 매우 기뻤다. 극성스러운 나머지 사촌이 오는 것을 응접실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계단으로 줄지어 몰려온 어린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은 열두 달 만에 만나는 수줍음 때문에 더 이상 내려오질 못했다. 모든 일이 기쁘고 친절한 일로 가득 찼었다. 낮 동안은 더 말할 나위없이 즐겁게 보냈고 아침이면 한 바탕 소란을 피우고 쇼핑을 다니고 야간에는 극장에서 보냈다. 엘리자베드는 그때서야 겨우 외숙모 옆에 앉는 데 성공했다. 처음의 화제는 제인에 관한 일이었다. 이것저것 세밀한 질문 끝에 제인이 언제나 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주기적으로 우울한 때가 있다는 대답에는 놀라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졌다. 그러나 그 우울한 기간이란 그렇게 오래 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가디너 부인은 또 빙리 양이 그레이스처치 가를 방문했던 정경을 자세히 말해 주었고, 가끔 제인과 자신 사이에 이루어졌던 대화를 되뇌어 보였으나, 그 이야기 내용에서 제인은 진심으로 교제를 단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디너 부인은 그리고 나서 자기 조카가 위컴 한테 딱지 맞았다고 놀려대고 또 용케 그것을 참아낸 데 대해 칭찬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예 엘리자베드야, 킹 양은 어떤 여자냐? 우리 친구를 돈만 아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싫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외숙모, 혼담이 있을 경우 돈을 앞세우는 것과 조심성 있는 동기가 어떻게 틀리는 거예요? 조심성은 어디서 끝나고 탐욕은 어디서 시작되는 거죠? 작년 크리스마스 땐 무분별하시다면서 그분이 저하고 합치는 것을 두려워하셨지만, 지금 와선 그분이 단 1만 파운드 재산을 가진 아가씨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것을 돈만 안다고 하시네요." "킹 양이 어떤 아가씨인가 말만 해주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난 알게 된다." "정말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 여자에겐 별로 나쁜 점이라곤 없어 보여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그 여자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그 여자가 그 재산의 소유자가 될 때까지의 일을 조금도 눈여겨 보지 못한 거야." "아니... 그래서 안되나요? 저에게 돈이 없다고 해서 그분이 저의 애정을 얻지 못한다면 그분이 조금도 좋아하지 않고 저만큼이나 빈곤한 여자하고 연애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번 일이 있은 직후에 그 여자에게 호의를 표시하다니 점잖지가 못한 것 같다." "곤란한 처지에 처해 있는 사람은 딴 사람들이 지키는 점잖은 예의 같은 건 지킬 겨를이 없는 거예요. 그 여자가 반대 않는데 우리가 무슨 말을 해요?" "그 여자가 반대 않는다고 그가 정당한 건 아니다. 그건 그 여자에게 뭔가... 상식이나 정서 같은 그런 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야." "좋아요, 좋으실 대로 생각하세요." 엘리자베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돈에 눈이 멀었고 그 여자는 멍청이로 해 두세요." "아니 리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더비셔에 오래도록 살아온 청년을 나쁘게 생각하진 싫어." "아, 그런 이유 만이라면 난 더비셔에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좋은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허어퍼드셔에 살고 있는 그들의 친구들도 더 잘난 데가 없구요. 그 사람들에겐 이젠 신물이 나요. 정말 감사하게도! 난 내일 상냥스런 데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태도도 그렇거니와 머리도 머리도 그렇고 칭찬할 데라곤 하나도 없는 남자에게 가기로 돼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알고 지낼 만한 사람은 바보 같은 남자뿐인가 보죠" "말조심, 리지. 그 말 속엔 어쩐지 상심의 내음이 짙게 들었구나" 연극이 끝나 뿔뿔이 헤어지기 전에 그녀는 외삼촌 내외한테 이번 여름에 떠나기로 되어 있는 유람 여행에 동행하자는 예기치 않은 행복한 권유를 받았다. "어느 정도로 멀리까지 가게 될지 아직 결정은 안했지만, 아마 호반 지방까지는 가게 될 거야."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엘리자베드에게는 이만큼 기쁜 계획이 없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외숙모. 외숙모. 이런 기쁜 일이, 또 이런 행운이 어디 있겠어요!" 그녀는 기쁨에 넘쳐 소리질렀다. "외숙모는 저에게 새로운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거예요. 상심과 우울이여, 안녕. 바위와 산들에 비할 때 인간이란 뭐겠어요? 우리는 그 얼마나 황홀한 시간을 갖게 되겠어요! 우리는 그 얼마나 황홀한 시간을 갖게 되겠어요! 그리고 일단 돌아올 땐 여느 여행자들처럼 뭣 하나 정확하게 말 못 한대서야 되겠어요. 우리가 어디에 갔던가를 잘 알아야 하며, 무엇을 보고 왔는지를 잘 기억하기로 해요. 호수와 산고 강이 우리들 상송 속에서 혼잡을 이루어 놓지 않도록 하구요. 그리고 또 어떤 풍경에 대해 말하려 할 때 그곳이 어디서 어느 만큼의 거리였던가를 입씨름을 않도록 말이에요. 우리들이 먼저 한바탕 늘어놓는 일이 여느 여행자들처럼 상대방을 어안이벙벙하게 만들어서는 안되게 말예요." @ff 28 이튿날 여행에서 눈에 띄는 모든 것들이 엘리자베드에게는 새롭고 흥미 있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즐거움으로 흥청거렸다. 왜냐하면 언니를 만나 보니 건강에 대한 걱정도 싹 가실 정도로 활기에 차 있었고 북부 지방 여행에 대한 기대가 끊임없는 기쁨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차가 본가도를 벗어나서 헌스퍼드로 통하는 작은 길로 들어서자 시선은 일제히 목사관으로 쏠렸고 길이 굽어들 때마다 그곳이 보이지나 않을까 하고 마음 죄었다. 로징즈 저택의 울타리가 한편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그곳 주민들에 대해서 들었던 일을 상기해 가며 미소지었다. 마침내 목사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로 쪽으로 비스듬히 경사진 정원, 그 안에 서 있는 집, 녹색담과 월계수 울타리,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의 도착을 알려주고 있었다. 콜린즈 씨와 샬로트가 문간에 나타났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미소를 짓고 있는 동안에 마차는 짧은 자갈길이 집까지 계속되어 있는 작은 문 있는 데까지 도착했다. 그들은 곧 마차에서 내려 서로의 재회를 기뻐했다. 콜린즈 부인은 생기에 넘치는 즐거움으로 친구를 맞아들였으며 엘리자베드는 자기가 이렇게 환영받는 것을 보고 오길 잘했다고 더욱 만족해했다. 그리고 그들은 입구가 깨끗하지 않느냐 하고 그가 지적했기에 약간 지체되기는 했지만 곧 집 안으로 안내되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다시 한 번 허식에 찬 격식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되었다고 말했고, 그의 부인더러 다과를 가져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의기양양하리라고는 각오했던 바였다. 균형이 잘 잡힌 방이라든가 방의 향, 가구 등을 자랑하고 있는 그를 볼 때, 마치 그녀 쪽에서 그의 구혼을 거절함으로써 얼마나 손해 보았던가를 그녀로 하여금 느끼게 하려는 듯이, 그가 자기에게 특별히 자랑하고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어느 것 하나 항상 깨끗하고 기분 좋게 보였으나 그녀는 후회의 한숨을 쉬어 가며 그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 친구가 이러한 배우자를 가지고서는 사뭇 즐거워하는 것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자기 처가 당연히 부끄러워할 만한 얘기를 콜린즈 씨가 입에 올린 것은 분명히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런 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샬로트 쪽으로 시선을 보냈던 것이다. 그녀가 한두 번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았지만, 대부분 듣지를 못했었다. 손님들이 방 안의 가구를 찬장 쪽에서 벽난로 앞쪽 망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칭찬하고 그 다음 여행에서의 일이며 런던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앉아 있다가 콜린즈 씨는 모두에게 정원으로 산책하자고 권유했는데, 그곳은 널찍하고 잘 설계되어 있었고 손질은 자신이 맡아보고 있었다. 이 정원에서 일하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고상한 취미였다. 샬로트도 이 운동이 건강에 좋으며 자기로서도 되도록 그것을 권하고 있다면서 자못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도 엘리자베드도 감탄했다. 정원에서 콜린즈는 보도나 십자형 보도를 빼놓지 않고 안내했으며, 자기 쪽에서 찬사를 요구해 놓고서는 입을 벌릴 여유를 주지 않고서 전망이란 전망은 모조리 지적해 가며 아름다움 같은 것은 제쳐놓고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쪽에 밭이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제일 먼 거리에 있는 숲에는 나무가 몇 그루 있는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원, 아니 이 지방이나 이 왕국이 자랑삼고 있는 모든 전망 중에서 그의 집 정면의 거의 맞은 편에 있는 장원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숲 사이로 보이는 로징즈의 전망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그것은 높은 지대 위의 으뜸가는 장소에 세워진 아름다운 근대풍의 건물이었다. 정원에서 콜린즈 씨는 자기의 두 목초지까지 일행을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여자들이 아직 남아 있는 서리를 밟을 만한 신을 신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되돌아왔다. 윌리엄 경이 콜린즈를 동반하고 있는 동안에 샬로트는 동생과 친구에게 집안 구경을 시켜 주면서, 남편의 도움 없이 안내할 기회를 얻었음인지 매우 기뻐했다. 그것은 규모는 작으나 건축이 잘되어 있고 편리한 구조의 집이었다. 모든 것들이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모두 샬로트의 덕분이라고 엘리자베드는 인정했다. 콜린즈 씨를 잊게 되자 확실히 주변에는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고 샬로트가 그것을 좋아하고 있는 것이 명백한 것으로 미루어, 엘리자베드에게는 콜린즈가 어쩌다 잊혀지는 일이 있는 일이라고 미루어 살필 수가 있었다. 캐더린 부인이 아직 이 지방에 있는 것은 엘리자베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식사 도중에 다시 그 이야기가 나오자 콜린즈 씨는 끼여들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엘리자베드 양, 당신은 이번 일요일에 캐더린 드 버그 영부인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내가 말씀드릴 필요조차 없겠지만 부인을 만나시는 일은 당신에겐 크나큰 기쁨이 될 줄로 압니다. 워낙 사근사근하신데다 겸손하신 분이시라 예배가 끝난 후에 틀림없이 일부나마 총애를 받으시게 될 겁니다, 나 주저 않고 말씀드립니다만 당신이 체류하고 있는 동안, 부인께서 우리들을 초대해 주실 때는 언제나 당신과 내 처제 마리아를 빼놓으시지를 않으실 겁니다. 내 처에 대해선 정말 잘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매주 두 번 로징즈에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만 절대로 걸려서 돌려보내신 일이 없으니까요. 부인의 마차가 정해 놓고 우릴 위해 준비되죠. 부인의 마차 중 한 대라고나 할까, 부인께선 몇 대를 소유하고 계시니까요." "캐더린 영부인은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시고 분별 있으신 분이세요. 그리고 이웃으로서는 다시없이 친절하시고" 샬로트가 덧붙여 말했다. "여보 당신 말이 옳아.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아무리 존경해도 다 못할 그런 부인이시지요." 그날 밤은 주로 허스퍼드셔의 소식에 대해 말했고 이미 편지에 썼던 일들을 되뇌어 가며 시간을 냈다. 그리고 밤이 지나자 자기 방에서 혼자 있게 된 엘리자베드는 샬로트가 만족해하는 정도에 대해 생각했고 남편을 이끌어 가는 그녀의 방식, 남편에게 참아 가는 자세 같은 것을 이해하고 그리고 모든 일을 제법 솜씨 있게 처리해 나간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이 방문 인정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예측해 가면서 부부간의 평상시 일에 있어서의 조용한 진행, 콜린즈 씨의 귀찮은 입방아, 그리고 로징즈 가족과의 흥겨운 교제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곧 생생한 상상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다. 다음날 정오쯤 방 안에서 산책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까, 별안간 아래층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와 그것이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을 알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잠시 귀를 기울이자 누군가가 몹시 다급해서 2층으로 뛰어오르며 큰 소리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문을 열자 층계에서 마주친 마리아가 흥분해서 크게 소리질렀다. "아, 엘리자! 어서 서둘러서 식당으로 들어오도록 해요, 매우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게 뭔지 알리진 않겠어요. 지금 당장 급히 내려오도록 해요." 엘리자베드는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마리아는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했고, 두 사람은 그 경이를 찾아볼 양으로 골목길을 향한 식당으로 뛰어내려갔다. 그것은 정원의 문 옆에서 나직한 두 마리가 끄는 사륜 마차를 타고 들어선 두 사람의 부인이었다. "이걸 가지고 그래?" 엘리자베드가 소리질렀다. "난 또 돼지 떼라도 정원으로 들이닥친 줄 알았지, 캐더린 부인과 따님 뿐이잖아!" "아, 아녜요!" 엘리자베드의 착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마리아가 말했다. "그분은 캐더린 부인이 아니세요. 저 나이 많은 부인은 그분하고 함께 살고 계시는 젠킨슨 부인이시고 또 한 사람은 드 버그 양이에요. 저분 좀 보셔요. 정말 작은 분이시네요. 저렇게 마르고 작은 사람이 또 있으려구요!" "이렇게 바람 센 날 샬로트를 밖에다 세워 두다니 아주 실례되는 분이시군. 왜 집 안으로 안 들어온다지?" "아, 언니 말에 의하면 좀처럼 안 들어오신대요. 드 버그 양이 들어오기만 한다면 그건 대단한 호의가 되는 거죠" "난 저분의 용모가 맘에 드는데" 엘리자베드는 다른 일을 마음 속에 그려보며 말했다. "저 여잔 몸이 불편한 데다가 험상궂어 보이는군. 그렇지. 저 여잔 그분에겐 안성마춤이야. 썩 잘 어울리는 부인이 될 거야." 콜린즈 씨와 샬로트 두 사람은 문간에서 서서 그 부인들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의 시선을 유달리 끈 것은 윌리엄 경이 현관 있는 데 서서 눈앞에 있는 높으신 분을 눈여겨 보며 드 버그 양이 자기 쪽을 볼 때마다 연신 조아리는 모습이었다. 그 이상 말한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부인들은 마차를 타고 갔고 남은 사람들은 집 안으로 돌아왔다. 콜린즈 씨는 두 처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행운을 축하했는데 그것에 대해 샬로트가 설명을 붙이고 전부 로징즈로 식사 초대를 받았다고 통보했다. @ff 29 콜린즈 씨의 승리의 기쁨은 이 초대의 결과 완전히 것이 되어 버렸다. 눈이 휘둥그래진 손님들에게 자기의 후원자의 위엄을 돋보이게 해주고 자신과 자기의 부인에 대해 그분의 정중한 태도를 보게 하는 것만이 짐짓 그가 원했던 바였다. 그렇게 하기 위한 좋은 기회가 이렇게 빨리 오게 된 것도 캐더린 부인이 평민적이라는 한 예이며, 그것을 어떻게 칭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직하게 말해서" 그가 그렇게 말했다. "영부인께서 우리들을 일요일에 로징즈에서 차와 저녁을 함께 하자고 초청하셨다 해서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고우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친절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께서 도착하신 즉시 그곳에서 식사 초대를 해 오실지(더우기 한 사람 빼놓지 않고 말입니다) 누가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러한 일에는 난 그다지 놀라지 않고 있지." 윌리엄 경이 대답했다. "높은 분들의 예법이라는 것이 실제 어떤 것인지 내 신분으로서 이미 알 수가 있었거든. 궁전 주변에서는 그러한 품위와 교양이란 것이 드문 편도 아니란 말씀이야." 그날은 하루 종일 아니 다음날 아침까지 화제라고는 거의 로징즈 방문에 관한 일뿐이었다. 콜린즈 씨는 방 안의 광경이라든가 하인이 몇 명이나 되고 훌륭한 식사 등으로 해서 모두가 위압을 당해서는 안되며 어떤 일을 예상하고 가는가를 그들에게 일러주었다. 그는 여자들이 각기 화장을 하기 위해 흩어지려 했을 때 엘리자베드에게 말했다. "당신은 복장에 관해서 신경 안 써도 돼요. 캐더린 부인은 자신이나 따님들에 어울릴 그러한 의상을 우리들에게는 바라실 분이 아니시지요. 그저 권하고 싶은 것은 당신 옷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을 골라 입으면 되지, 그 이상의 것은 할 필요가 없어요. 캐더린 부인께서는 신분의 한계가 명백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여자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두세 번 각지의 방을 찾아 가서 캐더린 부인은 만찬에서 기다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니까 빨리 서두르라고 충고했다. 영부인과 그녀의 생활양식에 대해 여러 가지 엄청난 설명을 듣고서 그리 남 앞에 나서 보지 못한 마리아 루커스는 로징즈에서 있을 자기 소개에 관해 마치 그녀의 아버지가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서 높으신 분을 만날 때와 같이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날씨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그들은 저택을 횡단해서 반 마일 정도를 즐겁게 걸어갔다. 장원이라는 것은 원래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멋있는 광경을 지니고 있는 법이라 엘리자베드는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콜린즈 씨가 그렇게 되리라 예상했던 것만큼은 그 경치를 보고 그리 기뻐하지 않았고, 그 집 정면의 창문 수를 일일이 헤아렸어도, 그리고 유리창 전체에 일찌기 루이스 드 버그가 얼마만한 금액을 들였던가 설명해도 그다지 감동하지를 않았다. 현관 계단을 올라가면서 마리아의 가슴은 시시각각으로 두근거림이 더해 갔고 윌리엄 경까지도 전혀 평정한 표정을 유지하기 못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캐더린 부인에 대해서는 그녀가 무엇인가 비범한 재능, 나아가 기적적인 미덕 같은 것으로 해서 공경하고 두려워할 만한 인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 없었다. 그저 돈과 지위로 말미암은 위엄이라면 당당히 대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콜린즈 씨가 황홀해지면서 아름다운 조화와 완벽한 장식이라고 지적했던 현관에서 그들은 객실을 통과해 캐더린 부인과 딸을 젠킨슨 부인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영부인은 정중히 일어서서 그들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콜린즈 부인은 소개하는 일은 자기가 맡겠다고 남편과 이야기했기 때문에 남편 같으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직한 사과의 말이나 감사의 말들을 생략해 버리고 적절히 소개해 나갔다.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서 기다린 일이 있었던 윌리엄 경이었지만, 주위의 장엄함에 위압당해서 고개를 나직이 떨구고서 한마디 말도 없이 자리에 참석할 뿐이었다. 딸도 거의 얼이 빠질 정도로 당황해서 어느 쪽을 향해야 좋을지를 모른 채 의자 끝에 자리잡고 앉았다. 엘리자베드는 자기가 이러한 장면에 매우 태연하게 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눈앞에 있는 세 사람의 부인을 침착하게 관찰해 낼 수가 있었다. 캐더린 부인은 키가 크고 몸집이 큰 편이며 한때는 예뻤으리라고 믿어지는 선이 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태도에는 사람하고 잘 화합하려는 데가 없어 보였고 그들을 맞는 태도에도 손님들에게 자신들의 낮은 신분을 잊게 해주지를 않았다. 침묵으로 공경하고 두려워할 감을 주는 그런 힘은 없었고, 그저 입에 담는 것은 뭐든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는데, 거기에 그녀의 자존심이 강하게 나타나 있었다. 엘리자베드에게는 그 즉시로 위컴 씨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하루만의 관찰에서 캐더린 부인은 위컴 씨가 묘사해 주었던 바로 그대로의 그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머니를 눈여겨보고, 그 얼굴 모양이나 태도에는 어딘지 모르게 다아시 씨와 닮은 데가 있는 것을 곧 발견하고 나서 딸 쪽으로 눈을 돌리자 그 여위고 작음 몸집에는 마리아와 거의 똑같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녀간은 자세며 얼굴이 전혀 닮은 곳이라곤 없었다. 드 버그 양은 창백하고 병약해 보였다. 얼굴 모양은 못생긴 편은 아니었으나 보잘것없는 편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젠킨슨 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 외에는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그 부인의 풍채에도 이렇다 하게 시선을 끄는 곳은 없었고, 그저 드 버그 양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여 그녀의 문앞 적당한 방향에다 장막을 가리는 데에 열중했다. 얼마간 앉아 있다가 손님들은 죄다 멋있는 광경을 보기 위해 창문 앞으로 갔다. 콜린즈 씨가 거기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설명하기 위해 뒤따랐고, 캐더린 부인은 여름철 광경은 한층 더 좋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만찬은 다시없이 호화로운 것으로 콜린즈 씨가 약속한 대로 하인도 많았고 접시도 많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미리 이야기한 대로 그는 부인의 소망에 따라 식탁의 끝에 자리잡고 마치 인생에서 더 이상 위대한 일은 없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기를 썰어 먹으면서 칭찬과 말을 재빨리 해댔다. 상 위에 나오는 요리는 그가 먼저 칭찬하면 다음에는 윌리엄 경이 칭찬했다. 윌리엄은 이제는 마음이 가라앉아 사위가 하는 말을 되뇌었는데 캐더린 부인이 과연 그것을 용케 참아 내는지 엘리자베드에게는 의아스러웠다. 그러나 캐더린 부인은 그들의 터무니없는 칭찬에 만족해했고, 특히 식탁 위의 어떠한 요리가 그들에게 신기한가를 알게 되었을 때는 자못 만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에서는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기회만 있으면 자진해서 이야기할 참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샬로트와 드 버그 양 사이에 끼여 앉게 되었다. 샬로트는 캐더린 부인의 이야기를 듣느라고 한창이었고, 드 버그 양은 식사 도중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젠킨슨 부인은 주로 드 버그 양이 식사하고 있는 일에만 신경을 썼고, 억지로 다른 요리를 권하기도 하고 또는 기분이 나쁘지나 않나 걱정도 했다. 마리아는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했고 남자들은 식사와 찬양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부인들은 응접실에 돌아오자 캐더린 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녀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계속 말을 해 나가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으나 그 단정적인 태도는 자기 판단을 반박 당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 샬로트에게 가사에 관한 일들을 매우 자상하게 물었으며, 그러한 모든 관리에 대해 적잖은 충고를 했고, 그와 같은 적은 가족을 질서정연하게 운영하는데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일일이 말하고, 소와 닭을 돌보는 일에도 지시를 했다. 엘리자베드는 이 지체 높은 부인이 남에게 지시하는 경우에는 어떤 하찮은 일도 빠뜨리지를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콜린즈 부인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녀는 마리아와 엘리자베드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으나, 특히 엘리자베드에게 질문을 했다. 부인은 특히 그녀의 집안 관계를 잘 몰랐지만, 매우 점잖고 말쑥한 처녀 같다고 콜린즈 부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매는 몇 명이며 당신보다 손위인가 아니면 손아래인가, 그 중의 누구에게 혼담이 생기고 있는가, 모두들 예쁜가,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가, 아버지의 마차는 어떤 종류이며 어머니의 성은 무엇이냐는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질문이 실례되는 것들이라 생각하면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캐더린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의 재산은 콜린즈 씨가 상속하기로 되어 있는 줄 알고 있어요." 그는 샬로트를 향하여 "당신을 위해선 그거 잘됐군요.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여자 쪽에서 재산 상속할 근거는 하나도 없다고 봐요.... 루이스 드 버그 가에선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가요, 베네트 양?" "조금은요." "아, 그렇다면 조만간에 한 번 들려 주세요. 우리 집 악기는 아마 괜찮을 거예요.... 언제고 한 번 연주 해보도록 하세요. 형제들도 연주와 노래를 하시던가요?" "그 중의 한 사람만" "왜 모두 함께 배우지 않구서? 함께 배웠으면 좋았을 걸. 웨브 양 자매들은 모두 연주를 할 줄 아는데도 아버지의 수입은 댁 아버지보다 못하단 말예요. 그림은 그리시나?" "아뇨, 못합니다." "아니, 자매 중에 누구도?" "예, 한 사람도" "거 참 이상한 일이네요. 그러나 그런 기회가 없었나 보죠. 어머니께선 매년 봄이면 자녀들을 런던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선생님에게 붙여 줬어야 했어요." "어머님은 그렇게 하지는 데 이의가 없으셨겠지만, 아버지께선 런던을 덜 좋아하셔서" "가정교사는 그만두셨던가요?" "저희들은 가정교사를 둬 본 일이 없었습니다." "가정교사가 없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가정교사 없이 딸 다섯을 기르다니! 난생 처음 듣는 얘기요. 어머니께선 당신네들 교육을 위해 노예가 되셨겠구먼" 엘리자베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보증하면서도 미소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누가 당신네들을 가르쳤던가요? 누가 또 뒷바라지를 했지요? 가정교사 없이는 등한시됐음이 분명하지." "어떤 가정에 비교하면 저희들이 그랬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저의들 중에서 배우고 싶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방법이 있었을 거예요. 저희들은 항상 독서하라고 격려 받았고 필요한 만큼의 명작은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게으름 피우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 그랬을 거예요. 그렇지만 가정교사가 있었으면 게으름 피우지 못하게 했을 거예요. 내가 만일 당신 어머님을 알았던들 가정교사를 두도록 권했을 거예요. 난 항상 말하지만 착실하게 규칙적으로 교육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가정교사이지요. 내가 얼마나 많은 가정에 이런 식으로 가정교사를 보냈는지 들으면 놀라겠지. 난 언제나 젊은 사람을 좋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죠. 젠킨슨 부인의 네 조카들도 내 소개로 좋은 위치를 얻게 됐지요. 요 얼마 전만 해도 우연히 화제에 오른 젊은 사람을 추천해 주었더니 그 가정에서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지 뭡니까. 콜린즈 부인, 어제 메트카프 부인이 인사차 찾아 왔더라는 말을 했던가요? 부인은 포프 양을 아주 소중한 교사라고 말했어요. 캐더린 영부인님, 저에게 소중한 분을 보내 주셨습니다 라고 했어요. 동생들 중에서 사교계에 나간 사람이 있나요, 베네트 양?" "예, 전부 다올시다." "전부라뇨? 그래 다섯 사람이 전부 한꺼번에? 별난 일이네! 그리고 당신은 둘째 딸이 아니오. 언니들이 결혼하기 전에 동생들이 사교계에 나가다니! 손아래 동생들은 아직 어릴 텐데요." "예, 막내동생은 아직 열 여섯이 못됐습니다. 그앤 사교계에 자주 나가기엔 너무 어린 것 같아요. 그러나 실제로는 언니들이 일찍 결혼할 만한 자금이 없다든가 아니면 그럴 의사가 없다고 해서 동생들이 사교의 즐거움을 못 같는대서야 불쌍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막내로 태어났건 맏이로 태어났건 청춘의 기쁨을 누릴 권리는 있는 법이겠지요. 더우기 그러한 동기 때문에 처지게 된다니 말입니다! 그렇게 되는 날엔 자매간의 애정도 고운 마음도 일으키지 못하게 되고 말 것이 아닙니까." "정말이요, 당신은 아직 젊은 사람치고는 자신의 의견을 자세히 털어놓았소. 그래 올해 몇 살이오?"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다 큰 동생이 셋이나 있는 저에게 나이를 털어놓으라고 하실 수는 없을 줄로 아는데요."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캐더린 부인은 대답을 얻지 못한 데 대해 적이 놀라운 듯이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이렇게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을 반놀림감으로 받아넘긴 것은 자기가 처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이 넘지는 않았을 테고, 틀림없이.... 그러니까 나이를 감출 필요가 없을 텐데" "아직 스물 하나는 안됐습니다." 남자들이 그들과 합치게 되었고 차가 끝나자 카드 놀이 테이블이 놓여졌다. 캐더린 부인과 윌리엄 경과 그리고 콜린즈 부부가 쿼드릴 게임을 시작했다. 버그 양이 카지노 게임이 좋겠다고 말하자 두 여자가 젠킨슨 부인과 함께 승부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그들의 테이블은 다시없이 시시한 것이 되었다. 그저 젠킨슨 부인은 드 버그 양에게 너무 덥지 않느냐 춥지 않느냐 너무 밝지 않느냐 어둡지 않는가 하는 등의 걱정하는 말만 계속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훨씬 화제가 많았다. 캐더린 부인이 주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 세 사람에게 잘못을 일러주기도 하고 자신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다. 콜린즈 씨는 부인 말에 일일이 동의했고 상아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패를 딸 적마다 부인에게 사의를 표하고 계속 이기게 되면 사과하느라 바빴다. 윌리엄 경은 말수가 많지 않았다. 일화라든가 귀족의 이름을 외우느라고 바빴다. 캐더린 부인과 그 따님이 만족할이만큼의 게임을 하고 나자 카드 놀이가 끝나고 콜린즈 부인에게 마차가 권해지고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이자 곧 준비하도록 명령이 내려졌다. 모두들 난로 주변에 모여 앉아 캐더린 부인이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듣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마차가 와서 그들은 불려 나갔다. 콜린즈 씨는 수없이 고맙다는 인사말을 했고 윌리엄 경은 그만큼 많이 굽실거리면서 작별을 나눴다. 문간에서 마차가 떠났을 때 곧 엘리자베드는 콜린즈 씨로부터 로징즈에서 본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을 들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엘리자베드는 샬로트를 위해 실제보다 더욱 좋게 말했다. 그만큼이나 칭찬하는 데도 적잖이 힘이 들었는데, 콜린즈 씨는 조금도 만족해하지 않았다. @ff 30 윌리엄 경이 헌스퍼드에 체류한 것은 불과 한 주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 방문은 딸이 가장 안락하고 안정되게 살고 있었고 그리 흔치 않은 남편과 이웃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신하기에 충분했다. 윌리엄 경의 체류 중에는 콜린즈 씨는 아침에 곧잘 그를 이륜마차에 태워서는 들녘을 보여 주곤 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나자 가족들은 모두 평상시의 일로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엘리자베드는 사정이 변했기 때문에 콜린즈 씨의 얼굴을 전보다 덜 보게 됨으로써 매우 기뻤다. 왜냐하면 이젠 그가 아침과 저녁 식사 사이의 시간을 정원에서 일을 하든가, 독서를 하든가 무엇을 쓰든가, 그리고 서재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데 보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함께 앉은 방은 뒤쪽에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처음에 왜 샬로트가 식당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의아해 했다. 그곳은 크기가 큰 편이며 방향도 쾌적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얼마 안가 자기 친구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령 콜린즈 씨의 방 만큼이나 좋은 전망이 있는 방에 있었더라면 그가 자기 방에 있는 시간이 훨씬 줄어들기 십중팔구였기 때문이다. 이 처리에 대해서는 샬로트를 인정해야만 했다. 응접실에서는 골목길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분간해 낼 수가 없었으며, 다만 콜린즈 씨 덕분으로 어떤 마차가 통과했다든가 특히 드 버그 양이 이륜마차를 몇 번 지나갔다든가 하는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거의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가 알리러 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드 버그 양은 목사관에서 마차를 멈추고 샬로트와 2, 3분 정도 이야기 나누는 일은 자주 있었으나 제아무리 권해도 마차에서 내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콜린즈 씨가 로징즈로 걸어서 가지 않는 날이란 아주 드물었으며 그 부인 역시 안가도 좋다고 생각되는 날은 많지 못했다. 그 밖에 드 버그 가에서 처분할 수 있는 성직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칠 때까지는 엘리자베드는 부부가 그만큼 많은 시간을 희생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따금 영부인의 방문을 받는 날도 있었지만 이러한 방문 중에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무엇 하나 그녀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조사하고, 일하는 것을 훑어보며 다른 방법으로 해보라고 충고하곤 했다. 가구의 배열 방법을 꾸짖고 가정부의 게으름을 알아내기도 했다. 간단한 식사를 제공받는 일이 있다 해도 그것은 다만 콜린즈 부인의 고깃점이 식구에 비해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같이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곧 알게 되었지만, 이 귀부인은 이 주의 치안재판권을 위임받지는 못했어도 교구내에서는 매우 활동적인 치안판사나 다름없어서 교구내의 사건은 제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콜린즈 씨의 손에 의해 그녀에게로 들어오게 되었고 소작인의 누군가가 싸움질을 했다든가 불만을 품고 있다든가, 또는 너무 빈곤하다든가 할 때면 그녀는 그 길로 마을로 달려 가서 이견을 조정해 주고 불평을 달래고 그들을 나무라서 화해와 풍요를 부여하곤 했다. 로징즈에서의 만찬은 한 주에 두 번 꼴이 되었다. 윌리엄 경이 부재하고 밤에 카드 놀이 테이블이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 것만 제외한다면 밤마다의 환대는 첫날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집안으로 초대되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그것은 근처 주민들의 일반 생활양식이 콜린즈 가의 손이 미치지 못한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에게 기쁜 일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보아서 그녀는 충분히 안락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때때로 반 시간쯤 샬로트와 즐거운 대화가 있었고 그 계절치고는 일기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자주 집 바깥에서 즐거운 시간을 맛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캐더린 부인을 방문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가 즐겨 가는 산책은 저택 가장자리에 잇는 수목이 드문 숲을 따라 걷는 것으로서 그곳에는 유쾌할 만큼 한적한 좁은 길이 있는데, 그 길은 그녀를 빼놓고는 아무도 애용하지 않는 것 같았으며 그곳까지는 캐더린 부인의 호기심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식으로 평온한 가운데 그녀의 체류 두 주일은 어느 새 흘러가고 말았다. 부활절도 가까와지고 그 전 주일에 로징즈에서는 가족이 한 사람 더 늘었는데 그런 일은 이렇게 작은 사회에서는 중대한 일임에 틀림없다. 엘리자베드는 도착 직후에 다아시 씨가 수주일 내에 그곳에 오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의 잘 아는 사람 중에서 다아시 씨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드물었으나 그가 오게 되면 로징즈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인물 한 사람을 더하게 될 것이다. 더우기 다아시 씨의 사촌에 대한 태도로 미루어 빙리 양의 그에 대한 계획이 얼마나 가망 없는 것인가를 직접 본다는 것은 재미있는 것 같았다. 캐더린 부인에 의해 그가 사촌하고 운명 지워질 것이 명백하고, 부인은 그가 오게 되는 것을 기쁘게 만족해했고 최대한으로 칭찬하면서 루커스 양과 엘리자베드가 이미 그를 자주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거의 노여움을 나타낸 정도였다. 그가 도착한 사실은 목사관에서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콜린즈 씨가 그의 도착을 누구보다 제일 먼저 확인하려고 헌스퍼드의 작은 길목을 향해 서 있는 몇 채의 오두막집 언저리에 아침부터 사뭇 서성대다가 마차가 저택으로 굽어 들었을 대 절을 꾸벅하고 나자마자 그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급히 집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경의를 표하기 위해 로징즈로 급히 달려갔다. 그러한 인사를 해야 할 캐더린 부인의 조카는 두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다아시 씨는 외삼촌 백부의 작은 아들 피츠윌리엄 대령인가 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모두 놀란 사실은 콜린즈 씨가 돌아왔을 때 신사들이 그와 동반해 왔기 때문이다. 샬로트는 그들이 길을 건너는 것을 남편 방에서 보고 곧바로 다른 방으로 뛰어들면서 처녀들에게 그 얼마나 영광된 일이냐고 말하고 나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해야겠어요. 엘리자, 이토록 친절을 베풀어 주셨으니까 말예요. 다아시 씨는 날 방문하신다 해도 이렇게 빨리 오시질 않는 분이시니까요."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칭찬의 말을 전부 들을 권리가 없다고 말하기 전에 현관의 초인종은 그들이 왔음을 알리고 그 길로 세 신사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선두에 선 피츠윌리엄 대령은 서른 정도로 미남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의 인품과 말솜씨는 신사다왔다. 다아시 씨는 허어퍼드셔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았고, 여느 때나 다름없이 과묵한 가운데 콜린즈 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엘리자베드에 대한 그의 감정은 어떠했는지간에 언제나 신중한 태도로 대면했다. 엘리자베드도 한마디 말도 없이 인사만 할 뿐이었다. 피츠윌리엄 대령은 교양 있게 자라난 사람의 순수함과 더불어 손쉽게 말을 건네 왔고 그리고 대단히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사촌은 집과 정원에 대해 콜린즈 부인에게 약간 평을 하고 나서 잠시 동안 아무에게도 입을 떼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끝내는 엘리자베드에게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 올 정도로 그의 예절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평범하게 대답했고 잠시 후에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언닌 3개월 정도 런던에 가 있어요. 혹시 그곳에서 못 만나셨던가요?" 그가 못만났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빙리 남매와 제인 사이에 일어났던 어떤 감정을 자칫 누설시키지나 않을까 알고 답했을 때 그의 표정이 약간 혼란해 보였다. 그 화제는 그 이상 진전되지 않았고 그리고 얼마 안가서 신사들이 자리를 비웠다. @ff 31 목사관에서는 피츠윌리엄의 예절을 매우 칭찬했으며 숙녀들은 모두가 그가 틀림없이 로징즈의 초대에 상냥한 즐거움을 더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으로 초대받은 것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왜냐하면 그곳에 손님이 있는 동안은 이편은 필요한 사람들이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배려를 받게 된 것은 신사들이 도착해서 이럭저럭 한 주일이 지난 부활절의 일로서 그나마 교회를 떠나려는 찰나 저녁에 로징즈로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들은 지난 한 주일 동안 캐더린 부인과 영애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간에 피츠윌리엄 대령은 여러 차례 목사관에 찾아왔지만 다아시 씨를 만난 것은 교회에서 뿐이었다. 물론 그 초대에 응해서 적당한 시각에 일동은 캐더린 부인의 응접실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영부인은 그들을 정중하게 맞아들였으나 달리 누군가 상대가 없을 때 만큼은 반갑게 맞는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조카들에게 정신 팔렸고 특히 다아시에게는 방 안에 있는 누구보다도 말을 많이 건넸다. 피츠윌림엄 대령은 모두를 만나게 된 것이 매우 기뻐 보였다. 로징즈에서는 어떠한 것도 그에게 고마운 상태가 되었고, 더우기 콜린즈 부인의 예쁜 친구가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제 그 옆에 자리잡고서는 켄트나 허어퍼드셔에 대한 것이라든가 여행 때나 집에 있을 때의 일, 새로 나온 책이나 음악에 대한 일들을 너무나 유쾌하게 말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지금까지 이 방에서는 그 반 정도도 재미있는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나 다정한 이야기 꽃을 피웠기 때문에 다아시 씨뿐만 아니라 캐더린 부인의 주의까지 끌었다. 그의 눈은 몇 번이고 호기심 있게 두 사람 쪽을 향했다. 더우기 얼마 후 부인도 같은 기분에 젖어든 것이 더욱 확실해졌었다. 왜냐하면 주저하지 않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는 거지, 피츠윌리엄? 뭐에 관한 얘기들이냐? 베네트 양에게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나도 좀 들어보자" "저희들은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 대답을 피할 수가 없어서 그가 말했다. "음악에 대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큰 소리로 말하도록 해. 그건 내가 뭣보다도 좋아하는 것이니까. 음악 얘기를 하고 있다면 어디 나도 한몫 끼여야겠어. 나 보다 더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며 천부적인 음악 소질을 타고난 사람은 영국 안에선 없을 거야. 내가 만일 공부를 했더라면 훌륭한 명인이 됐을 텐데. 훌륭히 해냈을 것이 틀림없어. 조지아나는 얼마큼 숙달이 됐지 다아시?" 다아시는 누이의 숙달이 이야기를 애정을 쏟아 가며 말했다. "그애에 관한 그런 좋은 얘기를 듣게 되니 정말 기쁘군" 캐더린 부인이 말했다. "그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충분히 연습을 쌓지 않으면 뛰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야." "감히 말씀드려 두겠습니다만...." 그가 대답했다. "누이에겐 그런 충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항상 연습하고 있으니까요." "더욱 좋지. 연습이 지나치다는 법은 없으니까. 내가 다음에 편지를 낼 때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태만해서는 안된다고 써 보내겠어. 난 젊은 숙녀들에게 곧잘 말하지만 쉴새없이 연습하지 않을 것 같으면 뛰어나지 못하는 거야. 베네트 양에게도 몇 번씩이나 얘기 했지만 더욱 연습 않고 서는 연주 잘 해낼 수가 없어요. 콜린즈 부인은 악기를 안 가졌지만 내가 자주 말한 대로 매일 로징즈로 와서 젠킨슨 부인 방에서 피아노를 쳐도 좋단 말야. 저택의 그 언저리 같으면 누구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까." 다아시 씨는 이모의 본때 없는 수다가 다소 부끄럽다는 그런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커피가 끝나자 피츠윌리엄 대령은 그에게 들려 주겠다고 약속한 일을 엘리자베드에게 상기시키자 그녀는 즉시 피아노 쪽으로 향해 앉았다. 그는 그녀 옆으로 의자를 당겼다. 캐더린 부인은 노래를 반쯤 듣고 있다가 그 전처럼 또 조카에게 말을 건네자 곧바로 그 사람은 그녀에게서 달아나 여느 때의 신중함을 잃지 않고 피아노 쪽으로 걸어가서는 아름다운 연주자의 얼굴이 잘 보이는 곳에 섰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편리한 휴지를 이용해서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띠면서 그를 향해 말했다. "저를 놀라게 하시려구요, 다아시 씨. 그런 엄숙한 상태로 들으실 참이세요? 그렇지만 누님이 정말 연주를 잘하신다 하셔도 전 조금도 안 놀랄걸요. 저에게는 고집이란 게 있어서 타인의 의사대로 위협 당하는 것은 정말 못 견디거든요. 저는 위압 받을 때면 언제나 용기가 나곤 하지요." "당신이 뭔가 오해하고 있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내가 설마하니 당신을 놀라게 해주려는 그런 계획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이젠 이렇게 오래 알고 지내는 터이니까, 당신이 이따금 마음에도 없는 의견을 말하기 좋아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지요." 엘리자베드는 자기가 그런 식으로 묘사된 데 대해 마음껏 웃어대면서 피츠윌리엄 대령을 향해 말했다. "사촌이 저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한마디도 믿지 말라고 선생님에게 일러주고 있는 거예요. 조금은 자기가 신용 있는 사람으로 통했으면 하는 차에 저의 정체를 이렇게 근사하게 폭로하는 분을 만나게 되다니 저도 정말 운이 나쁜 여자죠. 정말 다아시 씨. 선생님이 허어퍼드셔에서 아시게 된 저의 불리한 점을 샅샅이 말씀해 버리시다니 너무하세요(그러나 실례된 말씀이지만 서투른 것이지요.) 저도 보복하고 싶어져서 친척 여러분들께서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일이 제 입에서 나오게 될는지 모르니까요." "난 당신을 두렵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어떤 점에서 다아시 군을 책망하게 될지 들려 주십시오" 피츠윌리엄이 소리질렀다. "그 사람이 초면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군요." "그럼 알려 드리지요.... 그러나 정말 지독한 일이라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해요. 허어퍼드셔에서 처음 뵌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도회 때라고 기억하는데요.... 그 무도회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아세요? 꼭 네 번 춤췄을 뿐이에요! 들으시기 거북하시겠지만 사실인 걸요. 남자분들이 별로 없었는데 꼭 네 번만 추셨어요. 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만 상대가 없어서 앉아 있는 여자는 한 사람뿐 아니었거든요. 다아시 씨, 그 사실을 부인 못하시겠지요." "그때 그 모임에는 나하고 함께 간 일행 이외엔 알고 있는 여자분이 없었으니까." "사실예요. 무도회에선 상호간 소개해서는 안되게 돼 있는 거지요. 자, 피츠윌리엄 대령님, 다음엔 뭘 연주할까요? 저의 손가락은 당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럴 테죠" 다아시가 말했다. "그런 경우 소개받도록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었을 거지요. 그러나 난 모르는 분들에게 나 자신을 자천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사촌에게 그 이유를 알아볼까요?" 여전히 피츠윌리엄에게 말을 건네면서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양식도 교육도 그리고 사회도 잘 아시는 분이 어째서 미지의 사람들에게 자천할 자격이 없으시다는지 그걸 알고 싶은데요?" "당신의 질문에 난 답을 할 수가 있어요." 피츠윌리엄이 거들었다. "그 사람에게 묻지 않더라도 알 수 있지요. 귀찮은 일은 하기 싫어서였겠지요." "난 확실히 남들이 가지고 있는 재간을 갖고 있지를 못해요." 다아시가 말했다. "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하고는 쉽사리 얘길 못합니다. 가끔 보아서 알겠지만, 남들 말의 어조를 포착하고 남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처럼 보일 수가 없어요." "저의 손가락도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많은 여성분들이 할 수 있는 것처럼 훌륭하게 악기 위를 달릴 수가 없어요. 그러한 힘의 속도도 없거니와 그러한 표현력도 나오지가 않거든요. 그렇지만 그걸 내 잘못이려니 생각해 왔어요. 애써서 연습할 생각을 안했으니까요. 저의 손가락이 딴 여자분과 같이 훌륭한 연주를 할 힘이 없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이시는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절대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당신 편에서 훨씬 시간을 잘 써 온 겁니다. 당신 연주를 듣게끔 허용 받은 사람 치고 뭔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린 모르는 사람을 위해선 연주를 하지 않으니까요." 바로 이때 캐더린 부인이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알고 싶어 큰 소리로 말을 걸어 왔기 때문에 중단되었다. 엘리자베드는 곧바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캐더린 부인은 접근해 와서는 몇 분 동안 귀를 기울였다가 다아시에게 말했다. "베네트 양은 좀더 연습하고 더우기 런던의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면 조금도 서투르지 않게 칠 수가 있을 거야. 손가락 쓰는 법을 잘 알고 있거든. 그러나 앤의 취미엔 못 미칠 것 같아. 앤도 건강해서 공부만 했다면 정말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을 텐데" 엘리자베드는 다아시의 얼굴을 보고서 친사촌 누이에 대한 찬사를 그가 얼마나 열심히 동의하는가를 알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리고 다른 때에도 애정의 징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드 버그 양에 대한 그의 태도 전체로 미루어 빙리 양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즉 그녀가 그의 친척이라면 그가 그녀와 결혼한다는 것도 똑같이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캐더린 부인은 엘리자베드의 연주에 대해서 이것저것 의견을 계속해 말했고, 기술과 취미에 대한 많은 교훈도 곁들였다. 엘리자베드는 예의상 참을 대로 참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캐더린 부인의 마차가 그들 집으로 돌려 보낼 준비가 될 때까지 신사들의 부탁으로 피아노 옆을 떠날 줄을 몰랐다. @ff 32 이튿날 아침, 콜린즈 부인과 마리아가 볼일 보러 마을로 떠나간 사이에 엘리자베드가 혼자 앉아 제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을 때 어떤 손님이 왔는지 초인종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다. 마차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에 캐더린 부인일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에서 실례되는 질문을 피하려는 심산으로 반쯤 써 가던 편지를 중단하고 있었을 때, 문이 열리더니 다아시 씨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너무나도 놀랐다. 그 역시 혼자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과의 말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로징즈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했을 때 그들은 전적으로 침묵에 빠져들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아무래도 무엇인가 이야기할 거리를 생각해 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허어퍼드셔에서 마지막 만났을 때 일을 상기해 내고, 그들이 허둥지둥 떠나갔던 일에 대해 그가 어떻게 말할까 궁금해져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 11월에 여러분들께선 훌쩍 네더필드를 떠나셨던 거예요, 다아시 씨! 그렇게 모두들 곧 뒤를 따라가신 것을 보고 빙리 씨께선 정말 기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을 거예요. 만일 저의 기억이 옳다면 빙리 씨께서 떠나신 바로 이튿날이었나 봐요. 선생님께서 런던에서 떠나셨을 때 그분과 자매 여러분께선 편안하셨겠지요?" "정말 편안하셨겠지요?" 그녀는 달리 대답을 얻지 못할 것을 알게 되자 잠시 후에 다시 덧붙였다. "빙리 씨께선 네더필드로 다시 돌아오실 생각은 없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사람이 그런 말하는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거기에서는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친구도 많아질 테고 초대 같은 것도 계속 늘어나기만 할 때니까 말입니다." "네더필드에 자주 오시지 않으시려면 그분의 댁을 완전히 포기하시는 게 이웃을 위해서도 좋을 성싶어요. 왜냐하면 그곳에 다른 가족이 살 수가 있기 때문이죠. 물론 빙리 씨께선 이웃 편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해서 그 집을 입수하신 거니까 그 집에서 손을 뗀다든가 갖는다든가 하는 문제도 그와 같은 원칙에 의해서 하셔야 될 줄로 알고 있어요." "난 조금도 놀라지 않을 겁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적당한 작가가 생기는 대로 그 사람이 그 집을 팔아 없앤다 해도 말입니다." 엘리자베드는 대답을 안했다. 그의 친구에 관한 일을 더 이상 말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하고 달리할 말도 없고 해서 화제 찾는 번거로움을 그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해서 계속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집은 살기에 무척 편안한 곳인가 봅니다. 콜린즈 씨가 처음 헌스퍼드로 왔을 때 캐더린 부인께서 많이 손보신 것 같군요."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도 부인께선 자기의 은혜를 그 이상 고맙게 여기는 사람에게 베풀 수는 없었을 거예요." "콜린즈 군은 좋은 부인을 선택해서 행복하게 보이네요." "예, 정말 그래요. 그분은 자기를 받아 줄 사람, 그리고 받아들였다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적은 수의 현명한 부인 중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라고 그분의 친구분들이 기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예요. 저의 친구 샬로트는 뛰어난 분별심을 갖춘 여자죠. 콜린즈 씨와 결혼한 것이 과연 그 사람으로서 현명했던가 아닌가는 저로선 확실히 모르겠지만. 그러나 정말 행복해 보여요. 그리고 신중하게 따져 볼 때 그 사람에겐 좋은 혼처인 거예요." "자기 친정이나 친구들에게서 가까운 거리에 살게 된 것도 기뻤을 겁니다." "가깝다니요? 거의 50마일은 되는 거리인데요." "길이 좋은 50마일이 뭐 문제겠습니까? 반 나절 조금 더 걸리는 여행길인 걸요. 난 가까운 거리라고 부르고 싶군요." "저로선 그 거리란 게 이번 혼인의 이점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콜린즈 부인이 자기 친정 쪽에 가까이 살게 되었다는 말은 저로선 안할 거예요." "그건 당신 자신이 허어퍼드셔에 애착을 갖고 있는 증거입니다. 롱본 근처가 아니면 다 멀다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는 엷은 미소를 띠었는데 엘리자베드는 그것을 알 듯했다. 틀림없이 이 사람은 자기가 제인과 네더필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전요, 여자가 시집 갈 때 자기 친정 집에서 아무리 가까와도 지나치게 가깝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멀고 가까운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서, 여러 가지 사정에 따르는 법이에요. 재산이 있어서 여행의 비용 같은 것이 문제가 안된다면 멀다 해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콜린즈 부부는 안정된 일정한 수입이 있지만, 자주 여행할 정도는 못되거든요.... 그리고 샬로트는 지금의 거리의 반 이하가 아니라면 자기 친정 가까이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으리라 전 믿어요." 다아시 씨는 그녀 쪽으로 의자를 약간 당기면서 말했다. "댁에선 그렇게 강하게 토지에 애착을 가질 권리가 없어요. 댁에선 항상 롱본에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말예요." 엘리자베드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 찼다. 상대방 신사는 그녀의 감정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의자를 뒤로 끌고 신문을 손에 잡고서는 눈으로 훑으면서 전보다 냉정한 소리로 말했다. "켄트가 맘에 드십니까?" 그리고 나서 그 지방을 화제로 해서 짧은 대화가 계속되었으나 쌍방 모두가 침착해 있고 간결해져서, 그리고 곧 외출에서 방금 돌아온 샬로트와 동생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야기는 끝이 나버렸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고 그녀들은 놀랐다. 다아시 씨는 잘못으로 베네트 양 혼자만 있는 곳에 찾아오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그 후 2, 3분 더 머물면서 누구하고도 말을 않고 앉아 있다가 떠나가 버렸다. "이건 또 뭐지?" 그가 곧 가 버리자 샬로트가 말했다. "엘리자, 틀림없이 그분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이런 식으로 우리를 찾아온 일이 없었으니까 말예요." 그러나 엘리자베드가 그가 침묵만 지키더라고 말하자, 샬로트의 소원이야 어떻든 그렇게 될 성싶지가 않았다. 마침내 그녀들은 여러 가지 추측 끝에 그가 찾아온 연유는 결국 별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계절적으로 보아 더욱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야외의 스포츠는 다 끝장이 난 때였다. 실내엔 캐더린 부인도 있고 책도 있으며 당구대도 있지만 신사들은 언제나 실내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목사관은 가깝고 거기로 가는 산책길도 쾌적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좋은 사ㅏㄻ들이라 두 사람의 종형제는 이 때부터 매일같이 그곳으로 찾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개별적으로 또 때로는 함께 그리고 드물게는 이모를 동반해서 찾아왔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찾아오는 것은 그녀들과 교제하는 것이 즐거워서라는 것은 누구나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확신은 물론 그를 더욱 호감 가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명백히 자기에게 마음이 끌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을 때 자기 마음도 즐거워지는 것으로 봐서 한때 자기가 좋아했던 조지 위컴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비교해 볼 때 피츠윌리엄 대령의 태도에는 마음을 빼앗아 가는 부드러움이 적어 보였지만 둘도 없는 박식가같이 보였다. 그러나 다아시 씨가 왜 이렇게 자주 목사관에 찾아오는지 그것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는 종종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 10분 동안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교제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더우기 입을 여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것같이 보였다.... 자기 자신을 위해 즐기는 것이 아니라 예절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는 꼴이었다. 쾌활한 기분으로 있는 그를 보기가 힘들었다. 콜린즈 부인은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때때로 그가 멍청해 있다고 웃어대는 걸 보면 평상시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의 그에 대한 그녀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변화가 사랑의 결과이며 그 사랑의 그 상대가 친구 엘리자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캐내는 일을 진정에서 착수했다. 로징즈에 초대받을 때나 그가 헌스퍼드에 올 때면 언제나 그를 지켜보았으나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과연 그는 그녀의 친구 쪽을 많이 바라보기는 하나 그의 눈빛은 토론의 빛이 있었다. 진지하고 꾸준히 바라보기는 하지만 동경이 서려 있는지 아닌지를 자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때로는 그것이 단순한 방심의 상태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한두 번 엘리자베드에게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지만 엘리자베드는 언제나 그 말을 웃으며 상대해 주지 않았다. 콜린즈 부인은 모처럼 기대를 걸었다가 끝내는 실망으로 끝나고 말 것이 두려워서 그 문제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의견으로는 엘리자베드마저도 그 사람이 자기 손아귀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을 싫어하던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를 위해 이것저것 친절한 계획을 세우는 가운데 그녀는 때때로 피츠윌리엄 대령과 결혼시킬 계획을 했다. 그는 유쾌한 인물이다. 그녀를 찬미하고 있는 데는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위치로 보아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유리한 점을 상쇄하는 점은, 다아시 씨에게는 목사를 임명할 수 있는 큰 권한이 있는 데 반해 피츠윌리엄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ff 33 엘리자베드가 저택 안을 배회하다 예기치 않게 다아시 씨를 만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없는 데서 그가 나타나게 되면 그녀는 기분 나쁜 불운이라 느꼈다. 그리하여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곳은 자기가 좋아하는 산책 장소라고 알려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째서 두 번째 만나게 되었는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또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으로 세 번째다. 심술궂은 고의성 같기도 하고 또는 자발적인 고행 같은 느낌도 들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에 그는 짤막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어색하게 멈추었다가는 그만 가 버리는 그런 식 뿐이 아니라 발걸음을 되돌려 와서는 그녀와 함께 걷지 않으면 안된다고 실제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수가 많지 않았으며 그녀 역시 애써 말하거나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에 만났을 때는 놀랍게도 그는 이상하게 앞뒤가 잘 안 맞는 질문 헌스퍼드에 온 것이 즐거운가, 혼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콜린즈 부부의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체적으로 그런 유의 질문을 하고 나서, 로징즈의 일이며 그녀 쪽에서 그 가정을 완전히 이해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가며 이번에 다시 한 번 켄트에 올 때는 그녀가 거기서 머물게 되는 것을 예기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듯이 느꼈다. 피츠윌리엄의 생각이 과연 그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일까? 만일 그가 그런 의도를 품고 있다면 그러한 방향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이 다소 괴로왔다가 목사관 맞은편 쪽 철책문 있는 데 이르렀을 때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느 날 그녀는 걸으면서 최근에 온 제인의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몇 군데 언니의 필적에 힘이 없는 것같이 보여지는 대목에 이르러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불현듯 얼굴을 치켜들자 이번엔 놀라게 하는 사람은 다아시 씨가 아니라 피츠윌리엄 대령이 자기 쪽을 향해 오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즉시 편지를 치우고서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이쪽으로 산책 오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저택을 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매년 정해 놓고 합니다만 목사관을 찾아가서 일주를 끝낼 참이었습니다. 더 멀리 가실 작정이신가요?" "아녜요, 곧 돌아갈까 생각 중이었어요." 그리하여 그녀도 방향을 바꾸어 두 사람은 함께 목사관 쪽으로 걸어나갔다. "이번 토요일에 정말 켄트를 떠나세요?" 그녀가 물었다. "예. 다아시가 다시 연기만 안하게 된다면. 그러나 난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일을 처리해 나가니까 말입니다." "그분은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을 즐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선택의 권리만은 제대로 즐기시고 있는 거예요. 다아시 씨만큼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 권리를 즐기는 분도 보지를 못했어요." "그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하기를 무척 좋아하지요." 피츠윌리엄 대령이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모두가 그런 것입니다. 다만 그 사람이 남들보다 그럴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친구들은 빈곤하기 때문이죠. 난 지금 실감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남들은 자제를 해가며 남에게 의지하게끔 훈련을 받는 법이겠죠" "제 생각 같아선 백작의 차남으로서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잘 알 수가 없을 텐데요. 그런데 진지하게 말해서 선생님은 자제하고 남에게 의지하신다지만 어떤 경험을 하신 거예요? 돈이 없어서 가고 싶은 곳에도 못간다든가 하는 일이 언제 있었나요?" "이건 정말 급소 찌르는 질문이신데요.... 아마 나로선 그런 성질의 고통은 많이 경험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로서는 돈이 없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차남은 결혼도 제멋대로 못할 판이지요." "재산 있는 부인이라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면 별 문제이겠죠만, 그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지요." "우리들은 돈 쓰는 관습 때문에 지나치게 남에게 의지하려 드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들 신분으로선 돈 걱정을 많이 하지 않고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못하죠" "이건 날 두고 하는 말일까?" 엘리자베드가 생각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얼굴이 빨개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원기 있는 투로 말했다. "저어요, 백작님 차남의 값은 보통 얼마나 되죠? 맏이가 심히 병약하지 않는 한은 5만 파운드 이상은 요구하지 않겠지요." 그 역시 같은 식으로 대답하고 그 이야기는 그대로 끝났다. 잠자코 있으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마음이 동요되고 있다고 생각할까봐, 그녀는 침묵을 깨고 곧 이어 이렇게 말했다. "사촌께서 선생님을 데리고 온 것은 주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런 편의를 위해서라면 평생 그렇게 할 수 있는 결혼을 왜 안하신다지요. 그러나 당장은 누님으로도 족하시겠죠만. 누님 뒤를 봐주시는 분은 그분 뿐이실 테니까 그분께선 자기 좋아하시는 대로 뭐든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닙니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말했다. "나도 그 사람하고 함께 그 일을 나누어 가져야 하지요. 나도 그 사람하고 다아시 양의 후견을 맡아보고 있습니다." "어머, 그러세요? 그래 어떤 후견인이신데요, 말씀해 주시겠어요? 후견인의 일은 여러 가지로 힘드실 텐데요. 그만한 나이의 여자들이란 다루기 힘들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녀에게 다아시 가혼이 있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제 고집대로 하려들 텐데요." 그녀는 말하면서 그가 자기 쪽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당신 생각에 다아시 양이 우리들에게 걱정을 끼친다고 생각하느냐고 그가 곧바로 물어 오는 그 태도에서 그녀는 자기가 말한 것이 어딘가 진실에 가까운 것이리라는 확신을 얻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놀라실 필요는 없어요. 그분에 대해 어떤 나쁜 얘기를 들은 적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유순한 사람 중의 한 분이실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 숙녀들 중에 허어스트 부인께서나 빙리 양도 그분을 몹시 좋아하시거든요. 선생께서도 그분들을 잘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 같아요." "조금은 알고 있지요. 그분들의 오빠 되는 분은 괜찮은 사람으로 다아시의 친한 친구지요." "아, 그래요!" 엘리자베드는 냉담하게 말했다. "다아시 씨는 빙리 씨에게는 보통 이상으로 친절하시고 꽤 많이 뒤를 돌보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돌본다구요! 그렇습니다, 확실히 다아시는 돌볼 필요가 있는 일로 해서 빙리를 돌보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여행 중에 들은 바로는 빙리란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많은 덕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먼저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말한 대상이 빙리였다고 생각할 권리는 나에겐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추측입니다." "그건 또 무슨 뜻이죠?" "물론 다아시로서는 일반에게 알려지기를 꺼리는 사정인데요, 그 일이 만약에 그 여자의 집에까지 전해지는 날이면 불쾌한 문제가 될 테니까요." "걱정 마세요, 전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그것이 반드시 빙리라고 상상할 이유는 나에겐 없습니다. 다아시가 말한 것은 이러한 내용뿐이었거든요. 최근 어떤 친구 한 사람이 매우 경솔한 결혼을 하려는 것을 구해 주어서 기쁘다는 내용이었지요. 상대방 이름이나 그리고 그밖의 소상한 내용은 말 안했지요. 그저 내 생각으론 빙리가 아닌가 추측해 본 것뿐입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그 두 사람은 지난 여름 내내 함께 지냈거든요." "다아시 씨는 그 간섭의 이유를 말씀하시던가요?" "그 여자에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을 어떤 방법이라도 썼던가요?" "자기가 쓴 방법은 말하지 않더군요." 피츠윌리엄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지금 한 얘기를 말했을 뿐이지요." 엘리자베드는 대답하지 않고 노여움이 가득 찬 채 걸어나갔다. 잠시 동안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가 어째서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가 하고 피츠윌리엄은 그녀에게 물었다. "전 선생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의 사촌 되시는 그분의 한 짓이 제 맘에 들지가 않아서요. 왜 그분은 심판자가 되셔야만 했을까요?" "당신은 그의 권고를 참견하기 좋아하는 간섭이라고 보고 싶으신가요?' "다아시 씨에게 과연 친구분의 애정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권리가 있으신지, 그리고 자기 혼자만의 판단으로 친구분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이유로 해서 결정하고 지시하시는지 저로선 이해 못하겠어요. 그러나...." 그녀는 자제를 해가면서 계속해 나갔다. "우리들은 상세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분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일예요. 하지만 이번 경우엔 너무 많은 애정이 있었다고는 보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조금도 부자연스런 추측은 아닙니다." 피츠윌리엄이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다면 득의 양양한 제 사촌의 면목도 몹시 슬픈 결과로 감소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말이 어김없는 다아시 씨의 자태마냥 되어 버려서 털어놓을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화제를 별안간 바꾸고서 목사관에 다다를 때까지 관계없는 말만 지껄였다. 목사관에서는 손님이 돌아가 버리자, 그녀는 곧 자기 방으로 틀어박히게 되어 아까 들었던 일들을 남의 간섭 없이 생각해 볼 수가 있었다. 자기와의 관계 있는 사람들 이외의 일로 생각되지 않았다. 다아시 씨가 그 무한한 힘을 발휘해 낼 수 있는 남성은 이 세상에서 찾기 어려운 일이다. 빙리 씨와 제인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취해진 일에 그가 관계 있다는 것을 그녀로선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주로 계획하고 조종한 것은 다름 아닌 빙리 양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자신이 허영심에 의해 잘못된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그 원인의 장본인이며, 당시 말해 지금껏 제인이 괴로워 했고 앞으로도 괴로움을 지속해 나가게 되는 것은 그의 거만함과 제멋대로의 행동이 그 원인이 된다. 그는 한동안 이 세상에서 가장 애정이 깊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의 모든 행복의 희망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사람이 준 화근이 얼마나 오래도록 계속될 것인지 누구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 여자에겐 잘못된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피츠윌리엄 대령이 말했다. 그 잘못된 점이란 아마도 외숙부 중의 한 사람이 시골에서 서기를 하고 있고 또 한 사람의 외숙부가 런던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제인 자신에겐' 그녀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잘못된 점 같은 건 없을 거야. 사랑스럽기만 하고 선량하기만 하니까 말야! 지식은 뛰어나고 정신은 잘 닦여져 있고 예절은 남을 끌어들이고 말지. 아버지로서도 남의 말을 들을 만한 일도 없고, 약간 괴팍스런 데가 있긴 해도 다아시 자신일지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능력과 아마도 그의 손이 미치지 못할 품격도 갖추고 계시단 말야." 그녀의 생각이 어머니한테 미치자 다소 자신이 없어지긴 했어도 거기에 있는 잘못된 점이 다아시 씨에게 결정적으로 중대하다고는 그녀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의 자만심은 친구의 처가가 될 사람들에게 상식이 없어서보다는 그 처가 쪽의 신분이 낮은 일로 해서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그가 한편으로는 이런 식의 가장 돼먹지 않은 자만심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빙리 씨를 자신의 누이를 위해 보류시켜 두겠다는 심산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결정했다. 이 문제 때문에 두통이 생기고 저녁나절로 접어들면서 더욱 심해진데다가 다아시 씨의 얼굴을 보는 것만도 싫어져서 그녀는 차 초대를 받은 로징즈로 함께 가는 일을 그만두었다. 콜린즈 부인은 그녀가 정말 기분 나빠하는 것을 알고서는 무리하게 권하지 않고 되도록 남편으로 하여금 강권하지 않게 하려 했으나, 콜린즈 씨는 그녀가 집에 남아 있게 되면 혹시 캐더린 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ff 34 콜린즈 부부가 가 버리자, 엘리자베드는 마치 다아시 씨에 대해 잔뜩 분노를 터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자기가 켄트에 온 후로 제인에게서 온 편지를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편지 속에는 확실한 불평 같은 것은 씌어 있지 않았으며 지나간 일을 되새기거나 현재의 고뇌에 대한 사연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연 속에는 아니 그 편지 한 줄 한 줄에는 바로 그녀 문체 특유한 그 쾌활함이 없었다.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언제나 흐릴 줄을 모르던 그 쾌활함이, 엘리자베드는 처음 읽었을 때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주의해서 읽을 수록 하나 하나가 불안한 감정을 전해 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자기는 어떠한 불행도 남에게 주는 것을 불사한다는 뻔뻔스런 다아시의 자만심이 그녀로 하여금 언니의 고뇌를 더 한층 예리하게 느끼게 했다. 내일 모레면 그의 로징즈 체재도 끝날 것이라 생각하니 얼마간 마음의 위로도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 두 주일 채 안 남았지만 자기는 다시 제인과 만나게 되고 형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서 언니가 원기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위로되는 것 같았다. 다아시 씨가 켄트를 떠날 무렵이면 그의 사촌도 함께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츠윌리엄 대령은 결혼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을 확실히 했으며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와 헤어지는 것을 슬퍼할 생각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동안에 돌연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고, 행여 피츠윌리엄이 아닐까 하고 생각 하니 약간 가슴이 설랬다. 그는 전에 한 번 밤늦게 자기를 찾아온 일도 있어서 지금 특히 자기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랍게도 다아시 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자 지금까지 생각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그녀의 마음은 전혀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성급하게 그녀의 건강이 어떠냐고 물었고 이렇게 방문하게 된 것도 조금 건강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녀는 예의상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는 잠시 앉아 있다가 곧 일어나서 방 안을 돌아다녔다. 엘리자베드는 어안이벙벙해져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그는 흥분된 몸짓으로 그녀 쪽을 향해 접근해 와서 입을 열었다. "난 싸워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렬히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엘리자베드의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얼굴을 붉혔다가 또 의아해 하다가 끝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는 그것을 충분히 희망이 있는 걸로 생각했던지 자기가 그녀를 얼마나 오랫동안 사모해 왔던가 하는 고백을 뒤늦게 말했다. 그는 말은 잘했지만 연인의 감정 말고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 복합적인 감정들이 있어서 애정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자존심의 문제만큼 그렇게 능란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약점, 그 낮은 신분, 가족의 장애를 아무리 판단해도 늘 그의 애정과는 대립되더라는 그의 감정을 열띤 어조로 자세히 설명했는데, 그 열띤 어조는 그가 상처를 입었다고 하는 높은 신분에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청혼을 마음에 들게 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혐오감은 뿌리 깊은 것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남성의 애정의 찬사를 받고서 무감각할 수 만은 없었다. 그녀의 의사가 그 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 상대방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계속했던 그의 말에 화가 나서 이 분노 때문에 동정심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상대방 말이 끝낼 때를 맞추어 그에게 대답하기 위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는 마지막 말로서 아무리 싸웠어도 정복할 수가 없었던 연정의 힘을 말하고 자기가 뻗은 손길을 받아들여 그 정에 보답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을 전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호의적인 대답은 따 놓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게 보였다. 말로는 근심과 걱정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 표정은 정말 안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은 더욱 그녀의 분노를 더했을 뿐으로 그의 말이 끝날 무렵에 얼굴을 붉히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경우 고백한 감정에 대해서 어떤 의무감을 표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관습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그 대답이 아무리 불공평한 것이라도 말예요. 의무감이 느껴진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만일 제가 감사하다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어요. 그러나 저로선 할 수가 없어요. 전 선생님에게서 좋은 점수를 딸 생각을 한 적도 없거니와 선생님께선 마지못해 절 봐주신 거구요. 제가 어느 분에게든 고통을 드렸다는 것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고통은 전적으로 제가 모르는 중에 생긴 결과였고 또 그 고통을 이겨내는 데 별로 힘이 안 드실 거예요." 시선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시킨 채로 벽난로에 기대 있던 다아시 씨는 놀라움에 못지 않은 분노의 심정으로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창백해졌고 마음이 흐트러져 있는 것은 얼굴의 어느 부분에서도 잘 알아볼 수가 있었다. 침착한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될 때까지는 입을 떼려 들지를 않았다. 이 침묵의 간격이 엘리자베드의 감정에는 무섭기만 했다. 끝내 차분한 목소리로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가 바라던 회답의 영광은 바로 이것뿐이란 말입니까! 예의를 다해 보겠다는 한 가닥의 노력도 없이 이런 식으로 거절당하게 되는 이유가 뭔지 꼭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일은 못됩니다만" "저로서도 묻고 싶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선생님은 또 왜 저를 화나게 하고 모욕하는 마음을 그렇게 분명히 드러내 가면서까지, 더우기 자신의 의사에 반하며, 이성에게도 반하고 성격에까지 반해 가면서 저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던가요? 제가 만일 무례했다면 이것 역시 무례한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저에겐 분개할 만한 또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건 선생님께서도 아실 거예요. 설사 제 자신의 감정이 선생님을 싫어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저 그런 감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아니 그보다 더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언니의 행복을 아마도 영원히 파괴하는 데 힘이 되었던 분을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는다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 나겠어요?" 말이 여기에 미치자 다아시 씨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잠시 후에 가라앉고 그녀가 말을 계속해 나가는 동안 방해하지 않은 채 듣고만 있었다. "선생님을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 일로 해서 선생님이 연출하신 부당하고 편협한 역할은 어떠한 동기로 하셨더라도 변명은 안됩니다. 선생님은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아, 한쪽은 변덕스럽고 지조 없다는 세상 사람의 비난을 면치 못하게 하고 또 한쪽 사람은 실연했다는 조소를 해서 두 사람 다 견디어 내기 어려운 비참한 밑바닥으로 밀어 던지 유일한 장본인은 아니더라 주동자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녀는 말을 멈추고, 그가 조금도 후회스런 모습이 보이지 않은 채 너무도 태연한 자세로 듣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것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짓은 안했다고 부정할 수 있으세요?" 그녀는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평정을 꾸미며 곧 대답했다. "내 친구를 당신 언니한테서 떼어놓으려는 일을 할 대로는 다 했고 또 그 성공을 대단히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 친구에 대해서는 차라리 나 자신에 대해서보다도 더 친절히 해왔습니다." 엘리자베드는 은근히 비꼬인 말을 알아듣는 체하는 것만도 힘든 일이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내용을 알게 된 터라 그것으로 해서 마음이 위로 될 리도 만무했다. "그러나 이 문제뿐만이" 그녀가 말을 잇는다. "선생님을 안 좋게 보는 이유가 아닙니다. 그 일이 있기 훨씬 전에 선생님에 대한 저의 의견은 정해져 있었어요. 몇 달 전에 위컴 씨한테 들은 상세한 얘기로 선생님의 성격이 명백해져 있었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가공적인 우정 행위 같은 것을 만들어 내더라도 자신을 변호해 내실 수 있으세요? 또는 어떠한 거짓말을 꾸민다 해서 남을 속여넘길 수 있으시겠어요?" "그 사람 문제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가 보죠" 상기된 얼굴에 다소 평정을 잃은 투로 다아시가 말했다. "그분의 불행이 어떠했던가를 아는 사람은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의 불행이라뇨!" 다아시는 모멸적으로 되받았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의 불행은 정말 큰 것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 선생님의 덕분이죠"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말했다. "선생님이 그분을 지금처럼 빈곤하게... 비교적 빈곤하게 만들어 놓으신 거예요. 그분에게 할당된 이익을 안 주시려 했던 거예요. 그분 인생의 가장 적합한 시기의 연령 때에 당연히 받을 값어치가 있고 또 당연히 받을 권리도 있는 생활의 독립성을 박탈하고 만 거예요. 선생님은 그렇게 까지 하셨어요! 그럼에도 선생님은 그분의 불행을 경멸하고 비웃고 계신 거예요." "이것이" 그는 방 안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다니면서 외쳤다. "나에 대한 당신의 의견이란 말입니까! 이것이 나에 대해 지녔던 당신의 평가였던가요! 설명을 충분히 해주셔서 고맙소이다. 이 평가에 의하면 내 허물은 너무나 무거운 것으로 나타나 있네요. 그러나 아마도" 그녀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그가 덧붙였다. "내가 중대한 결의를 하는 것을 장기간 방해해 왔던 여러 가지 거리낌을 당신에게 솔직이 고백함으로써 당신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았던들 그러한 허물들은 모르고 지나갈 뻔했군요. 만일 내가 좀더 책략적이 돼서 자신의 갈등을 감추고서, 다만 어울리지 않게 순수한 애정에 의해 내가 꼼짝 못하게 되어, 이성으로나 반성으로나 또는 그 어느 것으로나 어쩔 수 없이 되었다고 알랑거려 그렇게 믿게끔 유도했다면 이렇게 가지 가혹한 비난도 미리 막아낼 수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난 속임수라는 것은 어느 것이든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내 생각을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극히 자연스럽고 올바른 것들이었습니다. 내가 당신네 가족의 낮은 신분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시는가요? 자기보다 확실히 낮은 신분의 사람들하고 친척이 되겠다는 희망으로 내가 기뻐 뛸 것 같습니까?" 엘리자베드는 시시각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예사롭게 말을 하려고 극도로 자제해 가면서 말했다. "다아시 씨, 당신의 고백 방법 때문에 제 마음이 달라졌다고 상상하신다면 그건 오산이에요. 선생님이 좀더 신사다운 태도로 행동하셨다면 제가 거절하면서 느꼈을지도 모를 그 미안함을 그 고백 방법이 덜어 준 것밖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으니까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그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으나,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말을 계속해 나갔다. "선생님이 어떤 방법으로 청혼을 하셨더라도 저로 하여금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실 수는 없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경악의 빛이 뚜렷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과 굴욕감이 뒤범벅이 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선생님과 알게 된 시초부터, 처음 본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선생님의 태도에서 그 거만 그 자부심, 타인의 감정에 대한 제멋대로의 경시 따위에 대한 인상이 불만의 근거를 이룰 정도로 철저히 굳어져서, 그 후에 잇따른 사건들이 요지부동한 혐오감을 형성한 거예요. 그래서 선생님을 안지 한 달이 채 못돼서 선생님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제가 도저히 결혼에 응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느꼈지요."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엘리자베드 양. 당신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했으니까, 이제는 지금까지의 내 감정을 부끄럽게 여기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이렇게 빼앗은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전정으로 기원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엘리자베드는 다음 순간 그가 현관문을 열고서 집을 떠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의 동요는 이제 절실하게 커졌다. 자신을 어떻게 가누어야 할 바를 몰랐으며 실제로 병약해 있었기 때문에 앉은 채로 30분 정도 울었다. 좀전에 일어났던 일을 돌이켜볼 때에 그 일을 하나하나 씹어 볼수록 그녀의 충격은 더해 가기만 했다. 다아시 씨한테 청혼을 받다니! 몇 달 동안이나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자기 친구가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막아 버리는 이유가 된 모든 잘못된 점은 또 그 자신의 경우에도 최소한 같은 힘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와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강하게 사랑하고 있었다니 거의 믿어지지 않는 일이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토록 강한 애정을 일으키게 한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자만심, 그 얄미운 자만심, 제인에게 저질렀던 일을 뻔뻔스럽게 공언하던 일, 그 정당성은 주장 못하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는 용서할 수 없는 자신, 위컴 씨에 대한 잔혹한 조치도 그것을 주정하려 들지 않고 바로 그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아 말할 때의 몰인정했던 그 태도 등이 그의 애정을 생각하면서 잠시 동안 일어났던 연민의 정을 곧 압도하고 마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설레는 마음을 거듭 회상하고 있었으나, 곧 캐더린 부인 전용의 마차 소리를 듣게 되자 이런 상태로서는 샬로트와 얼굴을 맞댈 수 없을 것이라 느끼고서 서둘러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