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2권 지은이: 제인 오스틴 옮긴이: 홍건식 도서출판 육문사 14 식사하는 동안 베네트 씨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하인이 물러서자 손님과 말을 주고받을 때라고 생각해, 상대가 내세울 만한 화제부터 시작하기로 해서 좋은 후원자를 얻게 돼 행운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의 그의 희망에 대한 배려라든지 안락에 대한 고려는 두드러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베네트 씨로서는 이 이상 더 좋은 화제를 고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콜린즈 씨는 부인을 칭찬했다. 문제가 여기에 이르자 그는 여느 때보다 훨씬 엄숙해지고, 자못 의젓해진 표정으로 자기로서는 지금 이날까지 캐더린 부인에게서 경험한 바로는 상류사회 사람치고 그토록 정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자가가 그녀 앞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설교 때도 두 번씩이나 고마운 인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 자기를 두 번이나 로징즈로 식사 초대를 해주었으며, 바로 그 전 토요일에는 쿼드릴(네 사람이 하는 카드 놀이)을 하다가 사람이 부족하다고 사람을 시켜 자기를 불렀다는 것이다. 캐더린 부인은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거만하다고 생각되었으나, 자기로서는 친밀한 사랑의 정만을 느낄 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항상 자기에게 대해서 여느 신사에게 대할 때나 다름없이 말을 건네준다고 했다. 자기가 인접 교구의 사교계에 참석하거나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한두 주쯤 교구를 비게 될 때도 한마디 반대를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신중하게 선택을 한다면 되도록 빨리 결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할이만큼 친절을 베풀어 주기까지 했으며, 한번은 누추한 자기 목사관을 찾아 주어서 마침 자기가 작업 중이던 것을 고쳤더니 아주 좋다고 인정해 주었고, 황공하게도 그녀가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이다. 2층 다락의 선반 등에 제시하기도 했다. "너무나도 친절하시고 적절하신 일이에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말할 것도 없이 퍽 기분 좋은 부인이시군요. 어디 세상 여성들이 다 그럴 수야 있겠어요. 댁 근처에 살고 계신가요?" "저의 집 마당은 부인이 거주하시는 로징즈 장원하고는 길 하나 사이죠" 미망인이라고 말씀하셨던가요? 가족 관계는? "영애 한 사람뿐이지요. 로징즈 장원과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이시죠" "아!" 베네트 부인이 머리를 내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세상 어떤 여성들보다도 유복하시겠죠. 어떤 분이신가요? 예쁘신 분?" "정말 매력 있는 영애이시죠. 캐더린 부인 말을 빌린다면 진정한 미라는 점에서는 루이스 드 버그 양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미인들보다도 예쁘다는 겁니다. 첫째 그녀의 용모에는 고귀한 출생의 젊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체가 병약한 편이라 여러 가지 재능과 솜씨에 숙달할 수가 없었지만, 그렇지가 않았으면 훌륭했으리라고, 교육을 맡아 보았고 지금도 함께 살고 있는 부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뭏든 그녀는 상냥스러운 분이며, 조랑말이 끄는 경사륜마차를 타시고 저의 집 옆을 곧잘 지나시곤 하죠" "벌써 국왕 배알을 마치셨던가요? 궁전에 출입하는 분들 사이에서 아직 그런 분의 이름을 보지 못했어요." "워낙 몸이 허약하셔서 런던엔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부인께 말씀드렸습니다. 영국 궁전은 가장 찬란한 장식을 빼앗기고 말았다구요. 부인께서도 사뭇 이 생각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았어요. 상상이 되시겠지만 전 때를 가리지 않고 부인들이 꼭 기뻐할 자그마한 칭찬의 말을 하기 좋아하죠. 제가 여러 차례 캐더린 부인께 말씀드렸지만, 이 아름다운 영애야말로 공작 부인으로 태어나신 분이시며, 이 최고의 지위마저 영애에게 무게를 더해 줄 수는 없고 오히려 영애에 의해서 빛이 날 정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사소한 일들은 부인께서 좋아하실 일이겠지만, 저로서는 부인에게 특별히 이런 배려를 해 드려야 옳은 일로 생각됩니다." "옳은 판단이시오, 그렇도록 교묘하게 아름다운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올시다. 실례 말씀 같습니다만, 그러한 기분 좋은 배려는 그 당장에서 나오는 충동이신지 아니면 미리 연구해 두신 결과이신지요?" "그건 주로 그때 상황에서 오게 됩니다. 하기야 저도 때로는 흔히 있는 경우에 적합될 수 있는 조촐하고 아담한 미사 같은 걸 생각해 내고 정리해 가며 즐기는 일도 있긴 합니다만, 되도록 계획적인 것이 되지 않게 말하려고 합니다." 베네트 씨의 기대는 흡족히 이루어졌다. 그의 친척은 그가 바랐던 것처럼 어리석은 위인이었다. 그래서 더할나위없이 기쁨을 느끼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절대로 안색을 그대로 유지해 가며, 이따금 엘리자베드를 힐금 바라보는 일 외는 그 즐거움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시간까지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으므로 베네트 씨는 손님을 다시 응접실로 데리고 가서 차를 마신 후 여자들에게 책을 읽은 다음 들려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콜린즈 씨는 쾌히 응하고 책 한 권을 꺼내었다. 그것을 보게 되자(모든 것이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흠칫해서 용서를 구하며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키티가 그를 응시하고, 리디어는 소리를 질렀다. 다른 책이 몇 권 나오게 되자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포다이스(18세기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젊은 여성을 위한 설교집이 있음)의 설교집을 택했다. 그 책을 펼치자, 리디어는 커다랗게 하품을 했고 그가 단조롭고 힘들게 세 페이지도 읽기 전에 가로막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필립스 이모부가 리처드를 내쫓겠다고 하시던 걸 알고 계세요? 그렇게 되면 포스터 대령이 채용하게 될걸요. 토요일에 이모께서 저에게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내일 메리튼까지 걸어가서 그 얘길 마저 들어야지, 그리고 데니 씨가 언제 런던에서 돌아오는지 그것도 여쭤 봐야지." 리디어는 두 언니들한테서 잠자코 있으라는 주의를 받았지만 콜린즈 씨는 몹시 화가 나서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젊은 여성들은 전적으로 자기네를 위해 씌어진 진지한 내용의 책에 흥미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는 정말 어안이벙벙해질 지경입니다. 확실히 젊은 여성들에겐 교훈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리디어에게 더 이상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베네트 씨를 향해, 주사위 놀이의 상대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베네트 씨는 딸들로 하여금 시시한 놀이를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면서 그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베네트 부인과 딸들은 리디어가 방해한 점에 대해 매우 정중하게 사과하고 나서,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을 것을 약속하니 계속해서 책을 읽어 줄 것을 신신 당부했다. 그러나 콜린즈 씨는 리디어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갖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 베네트 씨와 딴 테이블에 자리잡고 주사위 놀이 준비를 시작했다. @ff 15 콜린즈 씨는 똑똑한 사람이 못되었고, 타고난 결함도 교육이나 교제에 의해 고쳐지지도 못한 형편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을 무식하고 인색한 아버지 밑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그는 대학이라고 다니긴 했어도 이렇다 할 유익한 지식을 얻지 못했고 그저 필요한 학기 정도만 채우는 데 그쳤다. 복종이라는 굴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원래 매우 비굴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으나, 세상 세상 사람들 하고는 동떨어져 살아온 박약한 두뇌의 사람이 지닌 자만심과 젊어서 뜻하지 않게 일찍 성공을 거둔 데서 오는 거만함 때문에 적지 않게 반작용을 받았다. 헌스퍼드의 목사 자리가 있었을 때 운좋게도 캐더린 드 버그 부인에게 추천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귀한 지위에 대한 숭배의 마음과 후원자로서의 그녀에 대한 존경심이 목사로서의 자기 자신의 권위와 교구장으로서의 권리 따위와 한데 어울려서 결국 그를 오만과 추종, 자존과 비굴을 혼합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훌륭한 집과 넉넉한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할 생각이었다. 롱본의 가족과 화해를 꾀한 것은 결국 아내를 얻자는 생각에서였다. 만일 이 집 딸들이 세상 소문과 같이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한다면 그 중 한 사람을 고를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게 되는 보상책이요. (일종의 속죄의)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적절함과 타당성이 넘치는 훌륭한 것, 즉 자기 쪽에서 볼 때 지나치게 관대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의 계획은 딸들의 얼굴을 보아도 변하질 않았다. 제인 베네트 양의 귀여운 얼굴을 보자 그러한 그의 생각은 더욱 굳어져 갔고, 재산은 당연히 장녀의 것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의견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첫날밤에 선택된 사람은 제인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는 변경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침 식사 전에 15분간 부인과 마주 앉아 목사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그 목사관의 여주인이 될 사람을 롱본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그의 희망을 표명하자 부인은 은근히 미소를 짓고 격려를 하면서도 그가 이미 점을 찍어 놓은 제인은 안된다는 경고를 했던 것이다. "딸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확고하게 말할 수는 없겠으나) 이렇다 할 선약이 없는 줄은 알지만(맏딸에 대해서는 말하자면) 슬쩍 알리는 것이 내 책임이라 생각하지만 얼마 안가서 약혼하게 되어 있는 줄로 알고 있어요." 콜린즈 씨로서는 제인에게서 엘리자베드로 옮겨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곧 이루어지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이 불을 지피고 있는 동안에 이루어졌다. 엘리자베드는 나이나 아름다움에 있어서 당연히 제인을 이을 수 있는 존재였다. 베네트 부인은 그 암시를 대견스럽게 마음 속에 간직하고 얼마 안가 두 딸을 다 치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전날까지만도 부인이 말도 하기 싫었던 그 남자가 이제 자기의 마음에 꼭 들게 되었다. 메리튼으로 걸어가자는 리디어의 계획은 잊어버려지지 않았다. 메어리를 제외한 자매는 다같이 가는 것을 찬성했다. 콜린즈 씨를 쫓아 버리고 혼자 서재에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용인 즉 아침 식사 후 콜린즈 씨는 그의 뒤를 따라 서재에 들어와서 거기에 눌러앉아서 명목상으로는 책 중에서 제일 큰 이 절판 책 한 권에 마음이 끌린다고 했지만, 사실상은 베네트 씨에게 헌스퍼드의 자기 집과 정원에 대한 것을 쉴 사이 없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베네트 씨로서는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이다. 서재에서는 그 언제나 안락한 시간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그가 엘리자베드에게 말한 바 있듯이, 집 안 어느 곳을 가게 되나 어리석음이나 자만심과 마주치지 일쑤이나 서재에 있는 동안은 그러한 일들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딸들하고 같이 가 달라고 아주 정중하게 콜린즈 씨에게 권했던 것이다. 그러자 사실 독서가라기보다는 산책인이 적격이었던 콜린즈 씨는 대단히 만족해서 책을 덮고 따라나서기로 했다. 그의 편에서는 시시한 내용을 점잔을 빼가며 이야기하면 이 집 딸들은 정중하게 맞장구를 쳐가면서 메리튼에 닿을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손아래 딸들의 주의는 벌써 그의 손에서 멀어졌다. 그들의 시선은 즉시 장교들을 찾느라 거리를 헤매고 있었고, 그리고 상점 진열장 안에 있는 멋있는 모자와 새로 나온 모슬린이라면 몰라도 그 밖의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곧 한 청년한테로 쏠리게 되었는데, 그 청년은 여지껏 보지 못한 사람으로 신사 티가 뚜렷했고, 장교 한 사람과 길 저쪽 편을 걷고 있었다. 그 장교는 런던에서 돌아왔는가를 리디어가 물어 보러 온 당사자인 데니 씨였는데, 그들이 지나갔을 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낯선 사람의 거동에 짐짓 놀라면서 그가 누구인가에 대해 모두 궁금해했다. 키티와 리디어는 되도록 누구인가를 알아낼 마음으로 길 건너 가게에 소용되는 물건이라도 있는 체하면서 길을 건너 마침 보도까지 왔을 때 다행스럽게도 두 신사가 이곳까지 다가왔다. 데니 씨는 곧바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해도 괜찮느냐고 의사를 묻었다. 그 친구 위컴 씨는 그 전날 런던에서 그와 함께 돌아왔고, 다행스럽게도 자기 부대에서 장교 임명을 받게 되어 있다고 했다. 이것은 그럴 법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청년이 군복을 입기만 하면 더 멋을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풍채와 용모가 훌륭하고 자태가 맵시 있고 태도 또한 매우 좋아 모든 미를 한 몸에 지닌 사람이었다. 소개가 끝나자 그는 기꺼이 대화를 하려 들었으며 쉬 대화에 응하는 태도가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극히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모두가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말들이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려 와서 돌아보자 다아시 씨와 빙리 씨가 거리를 내려오고 있었다. 일단 여성들을 보게 되자 두 사람은 곧바로 그들을 향해 다가와서 여느 때나 다름없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주로 빙리가 대변자 노릇을 하고 베네트 양이 주요한 대상자였다. 빙리의 말로는 마침 제인을 문병하기 위해 롱본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다아시 씨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며, 엘리자베드를 안 보려고 마음먹기 시작하자 그의 시선은 돌연 낯선 사람 쪽으로 옮겨갔다. 엘리자베드는 문득 그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대면함으로써 생긴 효과를 보자 크게 놀랐다. 두 사람의 얼굴빛이 똑같이 변했는데, 한 사람은 창백해지고 한 사람은 빨개졌다. 위컴 씨가 한참만에 모자에 손을 대자 그 인사에 다아시 씨는 겨우 건성으로 답례할 정도였다.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반면에 궁금한 생각을 벌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1분쯤 지나자 빙리 씨는 방금 일어난 일을 눈치채지 못했던지 작별 인사를 하고 나서 친구와 함께 말을 타고 가 버렸다. 데니 씨와 위컴 씨는 여자들과 함께 필립스 씨 댁 현관까지 걸어가서 리디어가 간곡하게 들어가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우기 필립스 부인이 거실 창을 열고서 큰 소리로 들어오라고 다시 말했으나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떠나가고 말았다. 필립스 부인은 늘 조카딸들을 만나는 것이 기뻤고, 손위의 두 조카딸들은 요즘 오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환영을 받았다. 부인은 둘이 갑작스럽게 귀가한 데 매우 놀랐다고 말했으며, 자기네 마차가 마중을 간 것이 아니니까 만일 우연히 거리에서 존즈 상점의 점원을 만나게 되어 베네트 댁 따님들이 귀가했으므로 이제는 네더필드까지 물약을 보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던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날 뻔했다고 말했을 무렵에, 제인이 콜린즈 씨를 소개했기 때문에 부인은 그에 대해 수인사를 치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인은 그를 대단히 정중하게 맞아들였으며, 콜린즈 씨 역시 부인 못지 않게 예의를 갖추었다. 일면식도 없는 터에 돌연 실례를 하게 되었다고 사과부터 하고 나서 자기를 소개해 준 젊은 여성들과의 인척 관계를 생각할 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필립스 부인은 그의 깍듯한 예의가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부인의 신참자 한 사람에 대한 명상은, 또 한사람의 신참자에 관해 큰 소리로 질문하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해 부인이 조카딸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서 데니 씨가 그들 런던에서 데리고 왔으며, ㅇㅇ주 연대에서 중위로 임관되게 되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부인은 그가 거리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위컴 씨가 나타났다면 키티와 리디어는 그러한 작업을 계속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공교럽게도 창바깥에는 장교 몇 사람 외에는 통행인이라고는 없었으며, 그들은 신참자인이 사람에 비할 때 '얼빠지고 불유쾌한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그 중 몇 사람은 다음날 필립스 댁에 식사하러 오게 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이모는 만일 롱본의 가족들이 저녁에 와 주기만 한다면 남편에게 위컴 씨를 방문케 하여 그를 꼭 초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에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러자 부인은 복권놀이라도 한바탕 벌이고 나서 따뜻한 저녁 식사나 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즐거움을 예상해 가며 모두가 들뜬 가운데 기분 좋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콜린즈 씨는 방을 나올 때 연신 사과의 말을 되뇌었으나 주인은 그러한 사과의 말이 불필요하다고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엘리자베드는 두 신사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본대로 제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신사들이 잘못된 점이라도 있었더라면 제인은 어느 한쪽이나 아니면 두 사람을 다 변호해 주려 했으나 동생도 그러했듯이 자기로서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콜린즈 씨는 돌아와서 필립스 부인의 예절과 공손함을 찬양함으로써 베네트 부인을 매우 만족시켰다. 캐더린 부인과 그녀의 딸을 제외하고는 그처럼 우아한 여인을 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실 부인은 그를 더할나위없이 정중하게 맞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도 다음날 저녁 초대에 특별히 넣기까지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야 서로간의 인척 관계가 있어서 그러려니 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생애를 통해 그만큼 고마운 배려를 받아 본 일이 없다고 했다. @ff 16 젊은 사람들이 이모와 약속한 일에 대해 반대해 나설 수도 없었고, 콜린즈 씨는 자기가 체재하고 있는 동안 하루 저녁이라도 베네트 부부를 남겨 두고 나가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강경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어 마차는 적절한 시각에 그와 다섯 사람의 친척 딸들을 태워 메리튼으로 갔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달들은 이모부와 초대에 응해서 위컴 씨가 집에 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자 기뻤다. 이 소식이 알려지고 모두 자리에 앉자 콜린즈 씨는 주위를 휘 돌아보고 칭찬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방 크기와 가구에 몹시 감동되었기 때문에 사뭇 로징즈의 자그마한 여름 조반 식당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한 비교는 처음에는 그다지 만족을 주지 못했으나, 필립스 부인은 그의 말을 통해서 로징즈가 어떤 곳이며 그 소유자가 누구인가를 이해하게 되고, 캐더린 부인의 응접실 묘사 하나만 듣고 벽난로만으로는 8백 파운드나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칭찬에 압도되다시피 하여 그 집의 가정부 방과 비교된다 하더라도 그리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콜린즈 씨는 캐더린 부인과 저택의 웅장함을 부인에게 자세히 설명했고, 가금 객쩍은 말로 수수한 자신의 집과 개축공사에 대해 자랑해 가며 남자들이 올 때까지 들려주었다. 그는 필립스 부인이 자기 말을 유심히 듣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며, 그녀는 듣고 있는 동안 사뭇 그를 비범한 사람으로 여겼으며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되도록 빨리 이웃 사람들에게 건네줄 결심이 섰던 것이다. 딸들 입장에서 그들은 친척 콜린즈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가 않았고, 악기도 있었으면 좋겠다느니 하면서 선반 위에 놓여 있는 그들이 손수 만든 도자기의 모조품을 바라다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무한히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지루한 시간도 마침내 끝났다. 남자들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위컴 씨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엘리자베드는 그를 먼저 보았을 때나 그 후에도 사뭇 그를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안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ㅇㅇ주 연대의 장교들은 일반적으로 신용할 수 있는 신사다운 인물들로서 그 중에서도 빼어난 사람들이 이 모임에 나와 있었다. 그러나 위컴 씨는 풍채, 용모, 동작, 등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 있었다. 그것은 얼굴이 넓적하고 포도주 내음이나 풍기는 답답한 필립스 이모부와 비교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이모부는 그들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섰다. 위컴 씨는 거의 모든 여성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행운의 사나이였는데, 엘리자베드는 마침내 그가 옆에 앉게 되는 행복한 여성이 되고 말았다. 그가 곧바로 싹싹한 말투로 말을 건네 왔는데, 상냥한 태도는 설사 오늘 저녁은 비가 올 것이고 얼마안가 장마가 될 것 같다는 정도에 그쳤으나 말하는 사람의 기교에 따라서는 제아무리 평범하며 진부한 내용도 마음을 끌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성들의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는 위컴 씨나 장교들과 같은 적수가 나타나자 콜린즈 씨는 미미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같이 보이고, 특히 젊은 여성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필립스 부인이 친절히 말상대를 해주었으며 자상한 배려로 커피나 머핀(작고 둥근 빵)을 많이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카드 테이블이 놓이자 그는 휘스트(보통 네 사람 정도가 하는 카드 놀이)에 끼여들게 되어 부인에게 보답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이 게임을 잘 모릅니다만 곧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저와 같은 입장에서는...." 필립스 부인은 그가 응해 준 데 대해서 매우 고맙지가 않았으나 그 이유를 물을 수는 없었다. 위컴 씨는 휘스트 놀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드와 리디어가 기꺼이 딴 테이블에서 두 사람 사이로 그를 맞아들였다. 처음에는 리디어가 워낙 수다장이여서 그를 독점할 것만 같은 위험이 감돌았다. 그러나 운수보는 놀이도 그에 못지 않게 좋아했던 터라 얼마 안가 그녀는 그 승부에도 흥미가 끌려 돈을 거는 일과 또 땄을 때는 고함치며 열을 올리느라고 유독 어떤 한 사람에게만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위컴 씨는 보통 놀이가 요구하는 바를 참작하는 여유를 보여 가면서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건넬 수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진심으로 듣고 싶어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일, 즉 그와 다아시 씨와의 교제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의 이름을 감히 입밖에 내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호기심은 뜻밖에 충족되었다. 위컴 씨 스스로가 그 화제를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네더필드가 메리튼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이냐고 묻고 대답을 듣고 나자, 주저하는 태도로 다아시 씨가 그곳에 머무른 지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다. "한 달쯤 됐어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그리고서 그것만으로 화제를 끝내고 싶지가 않아서 덧붙여 말했다. "그분은 더비셔에 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위컴 씨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곳의 토지는 썩 훌륭하지요. 일 년 수입이 꼭 1만 파운드가 되니까요. 거기 관해서는 나만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그 집안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엘리자베드는 놀란 표정을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 우리가 만났을 때의 아주 냉랭한 태도를 보셨을 테니까 이런 말씀드리는 걸 들으신다면 놀라실 것도 무리가 아니죠.... 다아시 군하고는 잘 아시는 사이이십니까?"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말했다. "그분하고 한 집에서 나흘씩이나 지냈어요. 아주 기분 나쁜 분 같았어요." "나에겐 내 의견을 말씀드릴 권리는 없습니다. 그의 인품이 좋고 하찮고 간에" 위컴이 말했다. "그런 판단을 내릴 자격이 나한텐 없습니다. 너무 오래 사귀어 온 관계로 공정한 판정인이 될 수 없으니까요. 공정하기가 나에겐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듣게 되면 대개 놀랄 겁니다.... 더우기 다른 곳에선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시진 않으시겠죠. 여기는 어디까지나 가족들끼리니까요." "잘라 말씀드리지만, 여기서나 근처 어떤 집에서나 네더필드를 빼놓고는 똑같은 말을 하겠어요. 그분은 허어퍼드셔에선 환영을 못 받고 있어요. 그분의 자존심엔 모두 진저리를 내게 되죠. 저만큼 호의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나로선 야속할 처지도 못됩니다. 다아시 군 자신이건 누구이든 간에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해서 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경우만은 그대로 들어맞지가 않는군요. 세상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나 재위 때문에 눈이 어두워졌는지 아니면 도도하고 압도할 것 같은 태도가 두려워서 그런지 그 사람이 바라는 대로 그를 보게 되는구먼요." "전 그분하고는 잠깐 알게 된 것뿐인데도 심술궂은 분같이 느껴져요." 그 말을 듣자 위컴은 고개를 좌우로 저어 보였다. "그 사람이 혹시 이 지방에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다음 말할 기회를 포착하여 말했다. "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네더필드에 있었을 때만도 어디엘 가신다는 말을 듣지 못했어요. 그분이 근처에 계시다고 해서 선생님이 ㅇㅇ연대에 호의를 가지시고 세우신 계획이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천만의 말씀을... 적어도 다아시 군에게 쫓겨날 사람은 아닙니다. 그가 만일 나를 만나기를 피한다면 그 사람이 이곳을 떠나야 마땅한 일이죠. 우린 서로가 좋은 사이가 못되어서 그를 만나는 것이 언제나 나에겐 고통을 주게 되죠. 그러나 나에겐 그를 피할 이유는 온 세상에다 공언할 수 있는 것 외엔 없습니다.... 심히 냉대를 받은 생각, 그리고 현재 그의 사람됨이 몹시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베네트 양, 돌아가신 그 사람의 아버지 다아시 선생께선 지금까지 살아온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신 인격자의 한 분이며 언제나 저에겐 충실한 편이 돼 주셨죠. 그래서 난 그 다아시란 사람하고 함께 있을 때면 지난날의 많은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마음 속 깊이 슬퍼지곤 합니다. 나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는 언어도단이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 사람 선친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그분의 기억을 흐리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무슨 일이든 용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자베드는 그 문제에 흥미가 점점 더해 가서 열심히 귀를 기울였으나 워낙 문제가 미묘해서 그 이상 물어 보지 않기로 했다. 위컴 씨는 좀더 일반적인 화제, 즉 메리튼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그 근방의 일, 그리고 사교계에 관한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보아온 모든 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으로 특히 사교계에 대한 것은 점잖으면서도 눈에 띠게 조용조용히 말했다. "저를 ㅇㅇ주 연대에 들어서게 한 동기는 끊임없이 그리고 훌륭한 사교계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가 덧붙여 말했다. "더없이 기분 좋은 부대라는 걸 알고 있었지요. 더우기 친구인 데니까 현재 주문지의 사정을 설명하고 메리튼에선 소중히 대우를 받게 되면 훌륭한 대인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을 해서 저를 끌어들이게 된 겁니다. 저한테는 사교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실의에 찬 사람이라 고독을 이겨낼 사람은 못됩니다. 그래서 저는 일과 사교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군대 생활은 제가 원했던 바가 아니었습니다만 지금의 처지로는 어울리는 것이 돼버렸습니다. 성직자를 직업으로 택해야 했겠지요.... 성직자가 되도록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앞서 말한 신사의 마음에 들게 되었더라면 지금쯤은 대단히 높은 녹을 누리는 위치에 섰을 겁니다." "어쩌면!" "그렇고 말고요.... 돌아가신 다아시 씨께선 그분의 증여권내에 있는 제일 훌륭한 성직록이 나는 대로 저에게 남겨 주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분은 저의 교부이셨고 저를 지나치실이만큼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친절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충분한 생활을 시켜 주시려 하셨고 또 그렇게 하셨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직록 기한이 끝나게 되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어머나!"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어떻게 해서 그분의 유언을 저버리게 됐단 말이에요? 왜 선생님은 법률상의 보상을 청구하지 않으셨지요?" "유언장의 문구에 형식상으로 미비한 점이 있어서 법에 호소해 봤자 승산이 없었습니다. 명에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같으면 고인의 뜻을 의심하지 않겠지만, 다아시 군은 의심하려 했거든요.... 그뿐이겠읍니까, 그걸 단순한 조건부의 추천서 정도로 취급했고, 낭비, 불근신... 제가 그 요구권을 상실했다고 마구 우겨댔습니다. 정확히 2년 전에 성직록 자리가 비었고 저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딴 사람 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확실히 제가 그것을 놓칠 만한 짓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도저히 저를 책망할 수가 없습니다. 본시 저는 격한 데가 있고 앞뒤를 생각 않는 성품이 돼서 때로는 그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남 앞에서 말한 적도 있었겠지요. 그 이상으로 잘못한 일을 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성격이 너무 틀려서 그 사람이 절 미워하는 겁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그런 사람은 당연히 사람들 앞에서 수모를 당해야 할 분이에요." "아무 때고 그렇게 되고 말겠죠.... 그러나 제 손에 의해서 그렇게는 안되겠죠. 그 사람의 선친을 완전히 잊을 때까지는 그 사람에게 도전으로 맞서거나 폭로는 할 수가 없겠지요."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감정을 지닌 그를 존경하고 싶었으며 그러한 말을 뇌었을 때 그를 한결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무엇이 그러한 동기를 만들었을까요? 무슨 일로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하게 했을까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그건 철두철미하게 제가 미워서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저를 싫어하는 감정은 어느 만큼 질투의 탓으로 돌리고 싶고요. 돌아가신 다아시 씨께서 절 그토록 사랑하시지 않으셨던들 그 친구도 저를 좀더 좋게 대해 줬을 테지만요, 자기 부친이 무던히 저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가 어렸을 때부터 화가 난 게지요. 그는 또 우리들 입장과 같이 경쟁의 상대가 된 일을... 그리고 제가 자주 편애를 받게 되는 것을 참을 만한 성품이 아니었지요." "다아시 씨가 그렇게 나쁜 분인지는 몰랐어요.... 절대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친구분들을 경멸한다고 생각했지만, 그토록 악의에 찬 복수, 그런식의 불법으로 몰인정한 짓을 해치우는 사람으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언젠가 그분이 네더필드에서 자기는 생전의 남은 원한을 잊지 못한다든가 앙갚음을 꼭 하고 만다든가, 사람을 좀처럼 용서할 줄 모르는 기질을 지녔다고 자랑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어요. 무서운 기질을 지니고 있는 분에 틀림없어요." "그 문제에 대해선 자신이 없습니다. 전 그 사람에 대해서는 도저히 공정을 기할 수 없습니다." 위컴이 대답했다. 엘리자베드는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한참 후에 소리내어 말했다. "자기 아버지께서 손수 아들로 삼으셨고 아끼셨던 자기 친구를 그런 식으로 대접하다니!" 그녀는 이렇게 덧붙여서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선생님 같이 한눈으로 보아서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되실 분을" 그러나 그녀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선생님 말씀대로시라면, 어릴 적부터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인 분을 말예요!" "우리들은 같은 교구, 같은 저택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한께 보냈지요. 한집에 살았으며 같은 놀이를 즐겼고, 똑같이 부모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선 댁의 필립스 아저씨가 대단한 성공을 하신 그 직업을 저버리고, 생애를 바쳐 가며 펨벌리의 소유지 관리를 맡아보시게 된 겁니다. 저희 아버지는 다아시 선생한테서 대단한 평가를 받게 되었고, 극히 더 친하며 신뢰받는 사이였습니다. 다아시 선생은 입버릇처럼 저희 선친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다아시 선생께서 자진해서 저를 부양하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건 바로 저에 대한 애정임과 동시에 선친에 대한 감사의 빚 정도로 느끼셨을 것이라 전 확신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군요! ... 정말 미운 짓이에요! 다아시 선생님은 자존심 그 자체를 위해서라도 선생님께 공평했어야 할 텐데! 더 나은 동기를 못 가질망정 자존심 때문에 불성실해지진 말았어야 했을 텐데... 왜냐하면, 전 그걸 불성실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거든요." "신기한 일이죠" 위컴이 대답했다. "그 친구의 모든 행위는 자존심으로 낙착시킬 수가 있고요, 동시에 자존심만이 그의 둘도 없는 벗이니까 말입니다. 그가 미덕에 가까이 간다고 해도 결국은 자존심의 감정에서 하는 짓이니까요. 그러나 우리네는 모순이 있는 법이죠. 저에 대한 그의 행위 속에는 자존심보다 더 강한 충동이 있었지요." "그분의 그와 같은 지긋지긋한 자존심이 도대체 본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있고 말고요. 자존심 때문에 그 친구는 아끼지 않고 너그러워져서 돈을 물쓰듯 해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소작인을 원조해 주기도 하고 빈민을 구원해 주기도 하죠. 가문의 자존심. 말하자면 자식 된 도리로서의 자존심이 그렇게 시킨 거죠. 그 친구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아버지가 그런 일을 행한 것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가문을 더럽힌다든가 좋은 평판을 떨어뜨린다든가 또는 펨벌리 가문의 세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라 보는 편이 유력하죠. 그 친구에겐 또 오빠로서의 자존심이 있지요. 그것이 오빠로서의 애정까지 곁들이게 되어 후견인으로서 매씨를 친절하게 돌보고 있는 거죠. 두고 보십시오. 그 친구는 동기간 우애가 극진하고 다시없는 오빠라고 세상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게 될 겁니다." "그분의 동생은 어떤 분이시죠?"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귀엽다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다아시 집안 사람들을 나쁘게 얘기하는 건 저로선 고통스럽습니다. 다만 그분은 오빠하고 너무나 닮았지요.... 콧대가 센 점에 있어서 말입니다. 어렸을 때는 상냥하고 사람을 잘 따랐지요. 날 얼마나 좋아했다고요. 난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몇 시간이고 시간을 내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아무 소용도 없게 돼 버렸지요. 나이는 열 대여섯 되었을 것으로 압니다만, 그저 예쁘고 재능도 어느 만큼 갖춘 아가씨라 봅니다.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는 거의 런던에서 거주해 왔고, 그곳에 있는 부인 한 분이 붙어 있어 그녀의 교육을 맡았습니다." 몇 차례 대화를 중단시키고, 변경시키곤 해보았으나 엘리자베드는 결국 거의 처음 대화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분이 빙리 선생님하고 친하게 지내시는 건 전 정말 모를 일이에요. 쾌활하시고 무척 상냥하시기만 한 분이신데 어떻게 그런 분하고 친하게 지내실 수가 있을까요? 어떻게 서로가 맞을 수가 있을까 이상하기만 해요.... 선생님께선 빙리 선생님을 알고 계시는가요?" "전연" "양순하고 상냥스럽고 매력 있는 분이시지요. 그분께선 다아시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가 잘 모르실 거예요." "아마 모를 겁니다. 하지만 다아시 군은 남의 마음에 들고 싶어할 땐 그렇게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사람은 재주가 많거든요. 그렇게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땐 재미있는 말동무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과 동지 위의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땐 자신보다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전연 딴 사람이 되고 마니까요. 자존심이 없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나 돈많은 사람 축에 끼게 되면 시원시원하고 공정하고 진실되고 지각이 있고 고귀하고 상냥스럽겠죠.... 재산과 풍채를 다소 감안한다면 말입니다." 휘스트 조가 얼마 안가서 해산해 버리고 나자 모두들 곧 딴 테이블에 모여들고, 콜린즈 씨는 엘리자베드와 필립스 부인 사이에 자리잡았다. 부인은 그의 승부 결과가 어떠했느냐고 평범한 질문을 했다. 결과는 좋은 편이 못되어서 그는 단 한 점도 얻지를 못했다. 그러나 필립스 부인이 그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기 시작하자, 콜린즈 씨는 그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며, 돈 같은 것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다고 자못 정중한 어조로 걱정 말라고 부탁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카드 테이블에 앉게 되면 누구나가 다 한결같이 따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 5실링 정도쯤은 그렇게 대단하게 여길 만한 환경에 놓여 있질 않습니다. 반드시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사람들로 상당히 있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겠지만, 캐더린 드 버그 부인 덕분으로 전 사소한 일에 대해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바로 그때 위컴 씨의 주의가 그쪽으로 끌렸다. 잠시 동안 콜린즈 씨를 보다가 그는 엘리자베드에게 콜린즈 씨가 드 버그 일가와 가까운 사이냐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캐더린 드 버그 부인께서 최근에 그분에게 성직록을 주신 거예요. 콜린즈 씨가 어떤 연유로 부인을 아시게 된 건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만, 그다지 오래된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캐더린 드 버그 부인과 앤 다아시 부인은 자매간이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분은 바로 다아시 군의 이모이신 거예요." "아니, 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요. 캐더린 부인의 인척 관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부인의 존재에 관한 것도 그저께에 비로소 알게 된 걸요." "따님이신 드 버그 양은 적잖은 재산을 갖게 될 테지만, 그분과 사촌 다아시 군이 합치는 경우 두 개의 재산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 정보에 접하게 되자 엘리자베드는 빙리 양에게는 가엾다고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만일 다른 결합될 경우 사람하고 그녀의 관심도 다아시의 누이에게 보내던 애정도 다아시 본인에게 칭찬하는 말도 모두 소용이 없게 될 것이 아닌가. "콜린즈 씨는 캐더린 부인과 그분의 따님을 여간 좋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가 부인에 대해 말한 몇 가지 일로 제가 눈치챈 것은 그가 감사한 나머지 오히려 본인을 그르치고 부인은 콜린즈 씨의 후원자이지만 오만하기 그지없고 잘난 체하는 것 같아요." "두 면이 다 대단한 걸로 알고 있어요." 위컴이 대답했다. "여러 해 못 만났습니다. 그런데 난 부인을 과히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그 태도부터가 독단적인데다가 불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분별심이 대단하고 현명하다는 평판은 있지만, 그분의 재능은 한편에서는 지위와 재산에서 또 한편에서는 권위가 있는 듯한 태도에서, 나머지는 조카 다아시 군의 자랑에서 오는 것으로 보는데, 장본인은 자신과 인척 관계가 있는 사람은 모조리 많은 이해력을 갖고 있다고 제멋대로 정하는 위인이거든요." 엘리자베드는 위컴이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을 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가 만족해하면서 말을 이어나갔으나, 이내 저녁 식사가 나와 카드 게임이 그치게 되자 좌중의 다른 여성들도 위컴 씨의 친절을 고루 받았다. 필립스 부인의 저녁 식사 모임이 소란해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으나 그의 몸가짐이 좋은 점은 모두의 마음에 든 바 있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일은 제대로 해냈고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다 우아하게 보였다. 엘리자베드는 그의 일로 머리가 가득 찬 채 집을 나왔다. 집으로 오는 동안 사뭇 위컴 씨의 일, 그리고 그가 자기에게 말한 것들만 머리에 떠올랐지만, 이름 한번 입밖에 내서 말할 여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리디어도 콜린즈 씨도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디어는 끊임없이 복권 이야기며, 놓친 고기와 잡은 고기 이야기를 했고, 콜린즈 씨는 그 나름대로 필립스 부부의 환대를 말하는가 하면, 휘스트 게임에 진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고 저녁 식사 접시 수를 헤아리기도 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자기 때문에 비좁지 않으냐 걱정해 가면서 마차가 롱본 하우스에 멈출 때까지도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ff 17 엘리자베드는 다음날 제인에게 위컴 씨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제인은 놀라고 근심하면서 귀를 귀울였다. 다아시란 사람이 그렇도록 빙리 씨의 존경을 받을 가치가 없는지 그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그렇다고 위컴과 같은 상냥한 용모의 청년이 말하는 진실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녀의 성격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그런 불친절을 용케 견디어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녀의 부드러운 마음에도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똑같이 좋게 여기고, 그들의 행동을 변호해 주고 그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우연이나 착오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제인은 그렇게 말했다. "두 분이 어쩌다 피차에 오해를 하고 계신 거야, 그 이유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두 분 사이에 이간을 붙여 놓은 거야. 어느 한 분을 탓하지 않고서는 두 분 사이를 멀게 한 원인이나 사정 같은 것을 추측할 수가 없지." "사실 그래.... 그런데 언니, 혹시 이 일에 관련 있는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을 위해서 언니 의견은 없수? 그들에 대해서도 흑백을 가려내야조.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을 나쁘게 생각해야 하니까 말예요." "웃고 싶으면 웃어도 좋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의견은 변하지 않는다. 얘 리지야, 다아시 씨를 얼마나 불명예스럽게 만드는지 생각해 보렴. 자기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던 사람을 그렇게 다루다니... 부양해 주시겠다고 아버지께서 약속까지 하신 분을 말야. 안될 말이지. 보통 인정이 있고, 자기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가 없는 거야. 그분하고 아주 친한 친구분들이 그런 식으로 그분을 속이겠느냐 말야.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위컴 씨가 간밤에 나한테 얘기한 내력을 이름이나 사실을 소상하게 말하는 것으로 봐선, 꾸며냈다기보다는 빙리 씨가 속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편할 거야.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다아시 씨에게 반박하라면 돼. 그뿐 아니라 그분의 얼굴에는 진실성이 나타났어." "정말 어렵게 됐어.... 곤란한 일이지.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미안한 말씀이지만... 사람이 생각하는 건 뻔하지." 그러나 제인으로서는 다음 한 가지는 명백하게 생각할 수가 있었다.... 즉 빙리 씨가 만약에 속은 것이라면 진상이 세상에 드러날 때는 몹시 괴로워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관목 길에서 두 젊은 여인은 그대까지 말하던 당사자들이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아 호출을 당했다. 빙리 씨와 자매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던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초청하기 위해 손수 오게 된 것인데 날짜는 다음 화요일로 확정이 되었다. 두 여인은 가까운 친구 제인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뻐했다. 전번 만난 것이 옛날 같다고 말하면서 헤어진 후에 어떻게 지냈느냐고 몇 번이고 되뇌어 물었다. 그들은 다른 식구들에게는 거의 아랑곳하지 않았고, 되도록 베네트 부인을 피했고, 엘리자베드에게도 말을 많이 건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빙리를 놀라게 할이만큼 날렵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치 베네트 부인의 환대를 벗어나려는 것처럼 황급히 자리를 뜨고 말았다. 네더필드의 무도회에 대한 예측은 가족 중의 어느 여인들에게도 적이 기쁜 일이었다. 베네트 부인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맏딸에 대한 인사조로 개최되는 것이라 해석하고, 형식적인 초대장이 아니라 직접 빙리 씨로부터 초대해 주었기 때문에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러웠다. 제인은 두 사람의 친구들과 그들의 오빠 빙리 씨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게 될 하룻밤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았다. 엘리자베드는 위컴 씨와 춤을 추며, 다아시 씨의 표정에서나 행동에서 확실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캐더린과 리디어가 예상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어느 한 사건이라든가, 누구라고 정해진 특수한 인물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역시 엘리자베드처럼 그날 밤은 위컴 씨와 춤을 출 작정이었으나, 자기들을 만족시켜 줄 상대는 반드시 그만이 아니고, 그러나 무도회는 역시 무도회였던 것이다. 그리고 메어리까지도 무도회에 나가는 것이 싫지 않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오전만 내 마음대로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도 족하단 말예요. 이따금 저녁 모임에 어울리는 것도 별로 희생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우리는 사회에 대해서 의무가 있는 법이에요. 난 휴식과 오락은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에요." 엘리자베드는 그때 마침 명랑해져 있었기 때문에 여느 때 같아서는 필요없이 콜린즈 씨에게 말을 건네는 일이 드물었으나, 빙리 씨는 초대에 응할 것인가, 응한다면 그날 밤 오락에 참가하는 일이 적절하다고 보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오히려 더 놀랐다. 그 점에 관해서는 콜린즈 씨는 조금도 주저하는 빛이 없었고 춤춘다고 해서 대주교나 캐더린 드 버그 부인한테서 책망이나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었다. "내 의견으로는...." 콜린즈가 입을 열었다. "인격 있는 청년이 존경할 만한 사람들에게 베풀게 되는 무도회는 조금도 나쁜 경향은 없는 법이죠. 나 자신으로서도 춤추는 데는 전혀 이의가 없고 그날 밤에는 친척 여러분에게 손을 잡히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어서 말씀드리지만, 엘리자베드 양께선 특히 처음 두 번은 춤을 춰 주셔야 합니다. 이러한 선택을 제인 양께선 정당한 이유가 있어 한 일이라 생각하실 것이고, 그분에 대해 실례가 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꼼짝없이 걸려든 느낌이었다. 바로 그 두 번은 위컴 씨에 의해 프로포즈를 받을 것만 같았었다. 그런데 콜린즈 씨가 먼저 프로포즈하게 되다니! 그녀의 발랄함이 왜 이렇게도 때를 가리지 못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위컴 씨와 자기와의 행복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뒤로 미루고, 콜린즈 씨의 프로포즈를 되도록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이토록 대담한 그의 행위에 그 이상의 어떤 뜻이 들어 있다는 낌새는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썩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떠오른 일이지만, 헌스퍼드 목사관의 주부가 되고, 로징즈 부인 댁에서 특별히 적당한 내객이 없을 경우엔 카드릴의 상대로선 안성마춤의 여성으로, 자매들 중에서 자기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더우기 자기에 대한 그의 은근한 태도가 더해 가는 것을 보고, 또 자기의 기지나 쾌활함에 대해 공연한 찬사를 보내려 드는 점으로 보아서 그녀의 생각은 얼마 안가 확신으로 변했다. 자신의 매력의 이러한 효과에 대해 만족했다기보다는 놀라움이 앞섰지만, 두 사람이 결혼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어머니 입장으로서는 반가운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어떤 형식이든 답을 하게 되면 그 결과가 심각한 토론거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암시를 모근 체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콜린즈 씨는 어떤 제안을 안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전에 그 사람의 일에 대해 논쟁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네더필드의 무도회 준비를 하고, 그 이야기라도 하지 않았던들 막내동이 베네트 자매는 그때쯤은 비참한 꼴이 되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초대받은 날부터 무도회가 있는 그날까지 계속 비가 내려서 메리튼에는 한번도 발걸음을 옮겨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모와 장교들과 그리고 새소식까지도 끊겨 버렸다. 네더필드에서 쓸 구두 장식까지도 시켜서 사들였다. 엘리자베드까지도 위컴 씨와의 친교를 돈독히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기후로 하여 인내심의 시련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화요일에 무도회라도 없었던들 이와 같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을 키티나 리디어에게 견디어낼 수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ff 18 엘리자베드가 네더필드의 응접실로 들어서서 거기 모여 있는 붉은 군복의 무리 사이에서 위컴 씨의 자태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자, 그가 오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마침내 그녀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당연히 그녀를 놀라게 할 어떠한 회상들도 반드시 그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약화시켜 놓지는 못했다. 그녀는 평상시보다 더욱 조심해서 화장을 했고, 위컴 씨의 아직 정복되지 않은 마음 한 구석을 전부 정복할 것, 그것마저 그날 밤 안으로 가볍게 해치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의기양양하게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불현듯 빙리가 장교들을 초대하는 데 있어, 다아시를 꺼린 나머지 위컴 씨를 일부러 제외하지나 않았느냐 하는 무서운 의혹이 일어났다. 그 진상은 정확치가 않았지만, 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의 친구 데니 씨가 알려주었다. 리디어가 그에게 열심히 말을 건네자, 위컴은 어제 볼일이 있어서 런던으로 꼭 올라가야 했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음을 말하고, 뜻있는 미소를 머금으면서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신 신사들을 피할 생각이 없었더라면, 바로 이때에 용무로 해서 떠날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요." 이 부분을 리디어는 듣지를 못했으나 엘리자베드는 들었다. 위컴이 참석하지 못한 사실에 있어서는 그녀의 애당초 억측이 옳았던 경우에 못지 않게 다아시에게도 책임 있다고 확신이 가자, 그에게 품었던 불쾌한 감정 하나 하나가 바로 이 순간의 실망에 의해 더욱 격해져서 곧장 그가 접근해 오며 정중하게 말을 거는데도 참을성 있는 예의로서 대답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다아시에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고 관대하고 인내심을 갖는 것은 곧 바로 위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와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외면했으나 이러한 태도는 빙리 씨에게 말을 건넬 때도 고치지 못했다. 빙리의 맹목적인 편애가 엘리자베드를 화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기분이 좋지 않은 채로 있을 성질이 아니었다. 그날 밤 그녀의 기대는 하나같이 망가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끝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지는 못했다. 일주일 동안 만나지 못했던 샬로트 루커스에게 자기의 슬픈 가슴속을 깨끗이 털어놓고 나서 스스로 콜린즈의 괴팍스런 성미로 화제를 옮기고 특히 그녀의 주의를 그에게로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처음 두 번의 춤 자체가 고통거리였고 고행의 그것이 되고 말았다. 콜린즈 씨는 서투르고 격식에 얽매어서 정신을 차리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는가 하면, 가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멋대로 움직여 두 번씩이나 재미없는 춤 상대로 수치와 비참함을 있는 대로 맛보게 하고 말았다. 그에게서 해방되자마자 하늘로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춤 상대는 어떤 장교였다. 위컴에 대한 이야기와 누구한테서나 호감을 갖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되어 힘이 솟아났다. 그 춤이 끝나자 샬로트 루커스에게 되돌아가서 그녀와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아시 씨가 말을 걸어 왔던 것이다. 그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춤을 청해 왔기 때문에 얼떨결에 승낙하고 말았다. 그가 그 길로 다른 곳으로 걸어나가 버리자 그녀는 자신의 방심한 상태가 짜증이 났다. 샬로트는 그녀를 위로하느라 애썼다. "지금 보니 저분은 정말 호감이 가는 분이셔" "어림없어! 바로 그게 크나큰 불행이란 거야! 미워하려고 맘먹고 있는 그런 남자에게 호감이 가다니! 날 위해서라도 그런 말을 안해 줬으면 해" 그러나 다시 춤이 시작되어 다아시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가까이 올 때 샬로트는 숙맥처럼 굴지 말고 위컴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섣불리 그의 열 배나 유력한 남성의 눈에 불쾌하게 비치지 않도록 하라는 충고를 귀엣말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대꾸도 않고 춤 사이로 끼여들었는데, 다아시 씨와 맞서는 입장이 되어 버려서 자신에 게 어울리자 않는 위엄을 지닌 점에 놀랐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자기의 딱딱한 위엄을 보고 똑같이 노라고 있음을 그들의 표정에서 엿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침묵이 두 번째 춤을 추는 동안 사뭇 계속되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 한참은 자기 스스로 그것을 깨뜨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이윽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입을 떼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하는 편이 더 한층 상대방을 괴롭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들자, 춤에 대한 의견을 가볍게 말해 보기로 했다. 그가 대답을 했으나 또다시 침묵 속에 빠지고 말았다. 몇 분이 지나자 다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엔 선생님께서 말씀하실 차례예요, 다아시 선생님. 제가 춤에 대한 얘길 드렸으니까 선생님은 방 크기라든가 몇 쌍이 모였는가 하는 말씀을 하셔야죠"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에게 시키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든 도맡아 하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했다. "좋아요. 우선 그렇게 대답하시면 돼요. 멀지 않아서 사적 무도회가 공적인 경우보다 훨씬 즐거울 것이라고 말씀드리게 될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잠자코 있는 편이 나을 거예요." "그러시다면, 원칙적으로 춤출 때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때론 그렇게 하죠. 약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예요. 반 시간 동안 전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대서야 우습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뭔가 얘기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 주는 편이 괜찮을 때도 있겠지요." "지금 현재로 자기 자신의 감정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저의 감정을 만족시켜 주시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쪽 다죠" 엘리자베드는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퍽 닮은 데가 많은 것을 봐 왔어요. 둘 다 비사교적이고 말수가 적은 편으로 방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격언을 써서 후세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는 가망이라도 있기 전에는 입을 뗄 생각은 안하거든요." "그 점은 확실히 당신 자신의 성격하고는 닮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요. 그리고 저의 성격과 얼마나 가까운가 그것조차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것을 충실한 초상화처럼 생각하시겠지만" "자기 작품의 성공 여부는 자기가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는 대답을 안했다. 다시 두 사람은 침묵을 지키다가 춤을 추러 나갔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는 그녀와 자매들이 자주 메리튼으로 걸어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주 간다고 대답하고,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어 말을 이어나갔다. "일전에 선생님이 저희들을 만나셨을 때, 저희들은 마침 새 친구를 사귀고 있던 참이었어요." 효과는 즉석에서 나타났다. 오만의 그림자가 금세 그의 얼굴 위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한마디 없었고, 엘리자베드도 자신의 약점을 나무라면서도 말을 계속해 나갈 수가 없었다. 이윽고 다아시가 거북스럽게 말했다. "위컴 군은 명랑한 태도를 타고났으니까 친구 사귀는 일만은 보장하지요.... 그 같은 식으로 오랫동안 잘 지속될는지 그 점은 확실하지가 않습니다만" "그분은 어쩌다 불운하게 선생님의 우정을 읽고 말았더군요."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대답했다. "더우기 평생을 두고 괴로와할 정도로 말예요." 다아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은연중 대화를 바꾸고 싶은 눈치였다. 바로 그 순간 윌리엄 쿠커스 경이 그들 옆을 지나 방 저쪽으로 갈 참으로, 그들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나 다아시를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 자못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그의 춤과 그의 파트너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이었다. "저는 정말 유쾌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훌륭한 춤을 그리 자주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일류 사교계에 속하시는 분이란 걸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아름다운 파트너께선 선생님을 조금도 불명예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음은 자주 베푸시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엘리자 양,(제인과 빙리 쪽을 힐끗 바라보면서) 어떤 희망적인 일이라도 생겼을 때는 더 좋겠어요. 경축의 말씀이 쇄도해 올 것이 아니겠읍니까? 다아시 선생께 잘 부탁을 해놓겠지만... 그러나 방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 젊으신 숙녀하고 나누시는 황홀한 대화를 지체시켜 드려서야 선생님은 물론 덜 좋아하실 테지만, 그 여성의 아름다운 눈도 저를 나무라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이 말의 끝부분을 다아시는 듣지 못했지만, 윌리엄 루커스 경이 빙리를 은연중에 지목한 사실이 크게 마음에 감동을 주게 되었던지 그의 시선은 진지한 표정으로 함께 춤추고 있던 빙리와 제인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는 곧 정신차려 자기의 파트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윌리엄 경이 방해가 돼버려서, 그만 우리가 하던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말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윌리엄 경께서도 이 안에서 할 말이 제일 적은 우리들을 방해하시려 해도 못했을 거예요. 두세 차례 화제를 끌어내 봤지만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뭣이 있었어야죠. 이젠 다음에 어떤 화제를 끌어내야 좋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게 됐군요." "책으로 돌려보면 어떨까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책이라니.... 그건 안돼요. 우리들 사이는 같은 책을 읽지 않았든가 같은 기분으로 읽지 않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다니 유감입니다만, 상태가 그러하다면 조금도 대화의 부족은 없는 셈이죠. 제각기 상반된 의견을 비교할 수가 있게 되니까 말입니다." "천만에요.... 무도회장에서 무슨 책 이야기를 해요. 저의 머릿속은 딴 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이런 곳에서는 눈앞의 일만이 마음에 가득 차 계시겠죠.... 안그러세요?" 그는 의아스런 어조로 말했다. "전 언제나 그래요." 그녀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대답했다. 그녀의 생각은 대화에서 멀리 떨어져 헤매고 있었는데, 그 사실은 곧 이어 그녀가 돌연 이런 발언을 한 것으로 미루어서 알 수가 있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거든요, 다아시 선생님. 선생님 말씀이, 선생님은 사람을 용서 못하는 성질인데다 한 번 화나게 되면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는다고 했죠. 아마 선생님은 화내지 않으려고 매우 애를 쓰고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는 짐짓 정확한 어조로 말했다. "편견 때문에 맹목적이 안되게 하시려는 거겠죠" "그렇게 안됐으면 합니다." "절대로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으려 드는 분에게는 첫째로 적당한 판단을 굳혀 놓는 것이 의무적일는지도 모르죠" "실례 같습니다만, 무슨 생각에서 그런 질문을 하셨는지요?" "그저, 선생님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녀가 되도록 엄숙함을 떨쳐 내려 하면서 말했다. "전 꼭 그것이 알고 싶어서요."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성공을 못했어요. 하나같이 다른 의견을 듣게 돼서 점점 모르게 돼버렸어요." "아마 그러시겠죠" 그는 자못 엄숙한 투로 말했다. "저에 관해선 의견들이 분분한가 봅니다, 베네트 양. 지금 당장 저의 성격을 묘사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만들어 낸 결과가 귀양에게나 저에게도 하등 명예로운 것이 되지 못할 우려가 있기 언니 때문입니다." "지금 선생님의 초상화를 그리지 않게 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예요." "귀양의 즐거움을 중단시키고 싶은 생각은 아예 없습니다." 그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그 이상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춤을 추고 나서는 그대로 헤어지고 말았다. 쌍방이 다 불만스러웠지만 상호간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왜냐하면 다아시의 가슴에는 그녀에 대한 적잖은 강한 감정이 있었으며, 그녀에 대해서는 곧 용서할 수가 있었으나 또 한 사람에게 그의 모든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얼마 안되어서 미스 빙리가 그녀에게로 와서 새침하게 경멸의 빛을 보이며 이렇게 말을 건네 왔다. "저 미스 엘리자, 내가 듣기로는 조지 위컴을 매우 좋아하신다면서요? 언니께서 그분에 관한 일을 말하면서 여러 모로 질문을 하시던데요. 그래서 알게 됐지만, 그 청년은 자기 신상 얘기 중에서 자신이 선대 다아시 씨의 집사를 지낸 위컴 씨의 아들이란 사실을 잊고 만 것이겠죠. 그러나 친지로서 말씀드리지만, 그분의 말을 사실 그대로 믿지 말아 주세요. 왜냐하면 다아시 씨가 그분을 곯려 줬다는 건 멀쩡한 거짓말이고, 반대로 조지 위컴 쪽에서 다아시 씨를 못살게 굴었는데도 다아시 씨는 그에게 늘 친절하게 대해 준 거예요. 전 상세한 일은 모르지만, 다아시 씨가 조금도 나쁜 사람이 아니고, 그분은 조지 위컴이란 이름조차 듣기가 역겹고, 저의 오빠께서 장교들을 초대하는 데 그를 제외하는 건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자기 스스로 사퇴했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매우 기뻐하셨다는 일은 잘 알고 있어요. 그분이 이 지방으로 온 것 자체가 뻔뻔스런 일이에요. 어떻게 그런 일을 감히 할 수가 있겠어요. 매우 죄송해요, 미스 엘리자, 마음에 드시는 분의 좌상이 이렇게 명백해지다니 말이에요. 그러나 그분의 본바탕을 생각할 때 훌륭한 일만을 바랄 수야 없지요." "설명을 듣고 보니까 그분의 좌상과 바탕을 동일시하시는 말씀이시네요." 엘리자베드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분이 다만 다아시 가문의 집사였었다는 그 사실만으로 책망하고 계시는 모양이지만, 그 일에 대해선 그분 입에서 직접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렇다면 미안해요." 미스 빙리가 조소의 빛을 띠면서 대답했다. "방해가 되어서 미안해요.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뻔뻔스런 여자로구먼!" 엘리자베드는 혼잣말로 지껄였다. "이런 비열한 공격으로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야. 그건 네가 모르는 체하고 있는 것과 다아시 씨의 악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밖엔 보지 않아" 그녀는 언니를 찾았다. 마침 언니는 바로 그 문제에 관해 빙리에게 묻고 있던 참이었다. 제인은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띠면서 자못 행복한 듯한 표정으로 동생을 만나게 되었는데 언니의 표정으로 보아 그녀가 그날 밤 일에 대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가를 충분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앨리자베드는 언니의 마음을 금방 알아냈다. 그와 동시에 위컴에 대한 염려와 그의 적들에 대한 분함. 그 밖의 여러 일들이 언니의 행복을 위해 매우 순조롭게 되어 가기를 바라는 희망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엘리자베드는 언니 못지 않게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언니, 위컴 씨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말해 줘요. 그러나 아마도 언닌 재미를 너무 보느라 제3자 같은 건 미처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재미보신 게로군요. 그렇다면 내가 용서해 주겠지마는" "너도 참, 내가 왜 그분을 잊었겠니, 그러나 시원한 얘길 해줄 것이 없구나. 빙리 씨는 그분의 이력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를 못하고, 특히 다아시 씨를 노엽게 만든 사정은 전혀 알고 있지 못하던데. 그렇지만 친구분의 올바른 행동이라든가, 청렴결백하며 명예를 중히 여기는 점에서는 보증을 설 수 있다고까지 말씀하셨어. 그리고 위컴 씨는 다아시 씨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음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빙리 선생이나 구분의 누이동생 말로 볼 때 위컴 씨도 결코 우러러볼 만한 청년은 못돼. 뭔가 경망스런 짓이라도 저지르게 돼서 다아시 씨의 호의를 못 받게 된 것도 당연한 거야." 제인이 대답했다. "빙리 씨는 위컴 씨를 직접 모르지 않아요?" "응 그래, 요 전날 아침 메리튼에서 만난 게 처음이니까 말야." "그럼 이 얘기는 다아시 씨한테서 들으신 거죠. 그만하면 잘 알았어요. 그런데 성직록에 대해선 뭐라고 그래요?" "다아시 씨로부터 여러 차례 듣기는 했지만, 상황을 잘 기억 못하겠다고 해. 어쨌든 조건부로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엘리자베드는 열심히 말했다. "빙리 씨의 성의를 의심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보증한다고 해서 그걸 곧이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죠. 빙리 씨가 친구를 변호하고 나서는 것은 참 잘한 일이죠. 그러나 그분은 이 일에 대해선 모르는 점도 많고 그나마 나머지를 그 친구한테서 들은 것이니까 암만해도 두 분에 대해서는 그전같이 생각해야 되겠어요." 그녀는 그리고 나서 서로가 더욱 즐거울 수 있고 감정상의 차이가 없는 화제를 끌어내었다. 제인이 빙리의 호감에 대해 품고 있는 겸손하면서도 즐거운 희망을 엘리자베드는 귀담아들었으며, 자기도 언니의 확신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해 힘닿는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말했다. 바로 그때 장본인 빙리가 모임에 들어왔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루커스 양 쪽으로 피해 갔다. 아까까지의 파트너와의 춤을 즐거웠느냐고 묻는 루커스 양에게 대답을 채 하기도 전에 콜린즈 씨가 두 사람한테 접근해 와서는 자기는 지금 운좋게도 매우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전 정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겁니다만 바로 이 방 안에 저의 후원자의 가까운 친척 한 분이 계신 겁니다. 그 신사분께서 직접 이 댁의 주부 역할을 하고 계시는 젊은 부인에게 자기 누이동생 드 버그 양과 그녀의 모친 되시는 캐더린 부인의 성함을 말하고 있는 것을 우연히 엿듣게 된 것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누군들 상상조차 했겠읍니까! 아마도 이 모임 속에서 제가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의 조카 되시는 분하고 만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분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씀을 드릴 기회를 놓치기 전에 바로 발견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경의를 표할 참입니다마는 좀더 빨리 하지 않았던 것을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인척 관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씀으로 사과가 될 줄 압니다." "다아시 선생한테 인사하시려는 게 아닙니까!" "정말 해야죠. 좀더 일찍 인사드리지 못한 점을 사과 드려야겠습니다. 그분이 바로 캐더린 부인의 조카가 되시는 분이실 테니까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부인께서 퍽 건강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저로서는 문제없죠" 엘리자베드는 이러한 콜린즈의 계획을 단념시키느라 여간 애쓰지 않았다. 다아시 씨는 소개도 없이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은 자기 숙모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과 피차에 아는 체 할 필요조차 없겠지만, 설령 있다하더라도 인사를 청하게 되는 편은 지체가 높은 다아시 씨가 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콜린즈 씨는 자기의 생각대로 따라야 한다는 확고한 태도로 듣고 있다가 그녀가 말을 마치고 나자 이렇게 대답했다. "엘리자베드 양, 나는 당신의 이해가 가능한 데까지는 어떤 일이든 당신의 뛰어난 판단력을 이 세상에서 제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세속적으로 제정되어 있는 예식과 성직을 규정짓고 있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말씀 드려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을 위엄이란 점에서 우리 왕국의 최고의 위계와도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동시에 그것에 어울릴 만큼 겸허한 행동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겠죠만.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내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의무라고 믿는 바를 행동에 옮길 수가 있게 되는 거죠. 당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됨을 용서해 주십시오. 딴 일 같으면 당신의 충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만, 당장으로선 당신과 같은 젊은 여성보다는 교육과 평소의 연구에 의해 내 쪽이, 뭣이 옳은가를 결정짓는 데는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훨씬 몸을 굽혀 절하고 그는 다아시 씨와 맞설 심산으로 그녀 쪽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가갔을 때 상대방인 다아시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말을 건네자 그가 놀라는 것을 역력히 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친척은 장중한 태도로 절을 하고 나서 말을 꺼냈는데, 그녀에게 들리진 않았지만 들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의 입술 움직임에서는 '사과'니 '헌스퍼드'니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이니 하는 말 들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그가 자신을 내맡기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상했다. 다아시 씨는 자못 의아스런 태도로 그를 보았다. 이윽고 그는 콜린즈 씨가 그에게 말할 기회를 주자, 서먹서먹함을 지니 채 대답을 했다. 그러나 콜린즈 씨는 실망의 빛은 조금도 없이 다시 말을 계속해 나갔고, 그의 두 번째 이야기가 길어지자 다아시 씨의 경멸의 도는 점점 더해 가는 듯이 보였다. 그는 이야기가 끝나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을 뿐 곧 딴 곳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나서 콜린즈 씨는 엘리자베드한테로 되돌아왔다. "사실 인사하는 걸 불만스러워 할 이유는 없거든요. 다아시 씨께선 내가 경의를 표하게 된 점을 무척 좋아하고 계신 것 같았어요. 아주 정중하게 대답을 해주시던데요. 그리고 캐더린 부인께선 사람을 식별하는 안목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으며 값어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고까지 말씀해 주셨어요. 썩 훌륭한 생각이었어요. 결국 나는 그분이 퍽 좋아지게 된 셈이죠" 엘리자베드는 더 이상 자기 마음을 끌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언니와 빙리 씨에게로 마음이 쏠려 갔다. 그러자 그 관찰에서 생겨난 일련의 즐거운 생각들이 그녀에게 제인에 못지 않은 행복을 안겨다 주었다. 진정한 애정이 깃들인 결혼만이 부여할 수 있는 온갖 행복으로 가득 차서 바로 이 집에서 살게 될 제인을 마음 속에서 그려보았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빙리의 두 누이들까지도 좋아질 수 있게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 느꼈다. 어머니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확실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을 많이 듣지 않게끔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저녁상에 앉게 되었을 때 서로의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가고 있다는 것은 미상불 심술궂은 운명의 장난이라 생각했고, 어머니가 바로 그 사람(루커스 부인)에게 거침없고 공공연히 제인이 곧 빙리 씨와 결혼할 가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몹시 화가 났다. 워낙 마음을 들뜨게 하는 화제라 베네트 부인은 그 결혼의 좋은 점만을 나열해 가면서 지칠 줄 모르게 얘기했다. 상대가 그토록 매력 있는 청년이고, 재산도 있고, 거리도 3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은 자기 만족의 초점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두 누이들이 제인을 매우 좋아하고 있거니와, 그녀들이 짐짓 자기에 못지 않게 이 연분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더우기 제인이 이렇게 멋진 결혼을 하게 될 경우 제인의 동생들도 또다른 부자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니만큼 그들에게도 대단히 운이 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자기 생전에 출가 전의 딸들을 그들의 언니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렇게 되면 마음에 내키지 않는 무리들 틈엔 끼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닌가. 하긴 그러한 환경이 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이므로 베네트 부인으로서는 그러한 환경을 재미로 말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연령 때나 베네트 부인만큼 집에 있는 것을 즐거운 일로 여기지 못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루커스 부인에게도 똑같은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고 못내 소원을 되풀이해서 말했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는 없을 것으로 명백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가 하는 말의 골자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다아시의 귀에까지 들리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까와서 어머니의 빠른 말을 중단하려 했고 행복감을 좀더 작은 소리로 말하도록 설득해 보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머니 쪽에서는 오히려 쓸데없는 짓이라고 꾸중만 하게 되었다. "다아시 씨가 뭐길래 내가 겁을 내야 하니? 그분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서는 안될 만큼 우리가 그분에게 예절을 지킬 의무는 없는 거다." "제발 어머니, 좀더 낮은 소리로 말씀하세요, 다아시 씨를 화나게 해서 우리가 무슨 덕을 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시단 그분 친구분께도 좋은 인상을 못 주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효과는 전혀 없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알아듣기 쉬운 말로 자기 생각을 털어놓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몇 차례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주 다아시 씨 쪽을 훔쳐보지 않을 수 없었지만 볼 때마다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왜냐하면 그는 줄곧 어머니 쪽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주의는 끊임없이 어머니에게로 향해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 표정은 분노와 경멸에서 점차 침착하고 차분한 상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마침내 베네트 부인은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어지고 자신의 몫이 돌아올 것 같지도 않은 기쁨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하품을 해 가며 듣고만 있던 루커스 부인은 그제서야 겨우 찬 햄과 닭고기를 맛을 보고 칭찬할 수가 있었다. 마침내 엘리자베드는 되살아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안한 시간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를 못했다. 저녁 식사 후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메어리가 별로 청하는 입장이 아닌데도 노래를 불러 모두를 즐겁게 해주려는 것을 보았을 때 몹시 마음이 쓰렸다. 엘리자베드는 몇 차례 눈으로 마음을 전할 양으로 무언의 간청을 해 가며 메어리가 그러한 자기만족에 빠져들지 않게끔 막아 보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메어리는 그런 뜻을 이해하려 들지를 않았다. 이렇게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들뜬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드의 양쪽 눈은 고통의 감정을 담은 채 메어리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메어리가 노래 몇 절을 불러 나가는 것을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뒤쫓고 있었는데, 그 초조한 심정은 노래가 그ㅌ난 뒤도 별로 마음이 편하지가 못했다. 왜냐하면 메어리는 테이블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의 감사의 말 속에서 다시 한 번 불러 주었으면 하는 빛을 보자 30초 간격을 두고 다시 한 곡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메어리의 힘은 이러한 연출에는 결코 어울리는 편이 못되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해 빠지고 태도는 꾸미는 데가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바야흐로 고통의 상태였다. 제인이 어떻게 그러한 것을 견디어 내고 있는가를 보려고 그쪽을 보았더니 제인은 자못 침착한 태도로 빙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빙리의 두 자매 쪽을 바라보았더니 서로가 멸시하는 눈짓을 하고 있었다. 다아시 쪽을 보았더니 그는 계속해서 둔감할이만큼 묵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메어리가 밤새 노래를 계속하지 않도록 어떻게 해 달라는 눈초리를 아버지에게 보냈다. 아버지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메어리가 두 번째 노래를 끝내자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하면 됐다, 메어리. 우리들을 아주 즐겁게 해주었다. 딴 여성들에게도 발표할 기회를 주자" 메어리는 애써 못 들은 체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리벙벙한 태도였다. 엘리자베드는 어쩐지 메어리에게 미안스러웠고 그런 말을 아버지에게 시키게 된 것을 또한 미안스럽게 여겼지만, 자신의 그런 걱정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편의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해 왔기 때문이다. "제가 만일" 콜린즈 씨가 허두를 떼며 말했다. "다행히 노래를 부를 수가 있어서 여러분을 즐겁게 해드렸으면 오죽 좋겠읍니까마는 저는 원래 음악을 순수한 오락이라고 보며 목사직하고는 절대로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에다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을 옳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딴 일에도 마음을 쏟아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교구 목사에게는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며 동시에 후원자들에게도 불리하지 않게끔 교구세협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자기 설교 문장을 쓸 필요도 있겠고, 남은 시간은 교구의 여러 가지 의무에 써야 하는데 결코 많지가 못하고, 그리고 또 목사관을 돌보고 수리해서 될 수 있는 한 쾌적한 곳을 만들어 놓는 데 어떠한 변명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저는 어떤 사람에게도, 특히 저를 추천해 주신 분들에게는 소중히 대해 드려야 하는 동시에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목사는 그런 의무에서 면책 될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나아가서 그러한 가족과 관계 있는 분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기회를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는 호의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다아시 씨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는데 그에 말소리는 크게 들릴 만큼 컸다. (좌중의 많은 사람들이 한편 놀라고) 한편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트 씨만큼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얼마나 자상스러운 말을 했느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으며, 반 속삭이듯 한 어조로 루커스 부인에게 얼마나 머리가 좋고 선량한 청년이냐고 말했다. 엘리자베드 생각에는 설사 자기 가족들이 오늘 저녁에 힘닿는 한 자신들을 폭로해 버리기로 약속을 했다하더라도 이토록 원기 있고 효과 만점으로 서로서로가 역할을 연출해 낼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러한 우행을 빙리가 보지 못하고 놓치게 되고, 더우기 그의 기분이 그가 목격한 일로 해서 그다지 괴로와하지 않는 사실은 그에게나 제인에게서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 자매와 다아시 씨가 그녀의 육친들을 우롱하게 되는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우기 다아시의 무언의 경멸과 빙리 자매들의 무례한 미소, 그 어느 것이 더 감내 하기 힘든가를 결정짓기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날 밤은 아무런 재미가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줄곧 그녀 곁을 따라다니며 치근대는 콜린즈 씨 때문에 화가 났다. 그는 다시 한 번 춤 상대가 되어 달라는 설득에 실패했지만 그녀로 하여금 딴 사람과 상대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녀 쪽에서 그에게 딴 사람하고 춤추도록 간청하고 방안에 있는 어떤 여성이라도 그에게 소개해 주려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의 끈덕진 주장은 자기는 춤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자기의 목적은 마음을 다해서 그녀와 사귀고 싶고 잘 보였으면 하는 일념뿐이므로 밤새 그녀 옆에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계획에 대해서는 맞서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인 루커스 양의 크나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종종 두 사람에게로 와서 상냥스럽게 콜린즈 씨의 이야기 상대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적어도 다아시 씨로부터 그 이상 주목받는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는 이따금 전혀 상대가 없이 그녀 옆에 서 있기는 했지만, 말을 건넬 수 있을 만큼 접근해 오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것이 아마 위컴 씨에 대한 언급이 가져다 준 결과려니 생각하니 무척이나 기뻤다. 롱본 일가는 자리를 뜨는 데 제일 늦었고, 베네트 부인의 계략으로 일행이 다 가 버리고 난 후 15분간 마차를 기다려야 했지만, 그간에 그들은 이 집안 몇 사람들이 자기들의 출발을 지겹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허어스트 부인과 동생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는 말을 제외하곤 별로 입을 떼지 않았고, 곁에서 보기에도 그들은 자기네끼리만 있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나도 드러났다. 그들은 베네트 부인이 말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거절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동의 기분을 더욱 울적하게 만들어 놓고 말았다. 콜린즈 씨가 빙리 씨와 그의 자매에 대해 그들의 접대가 너무나 우아하며 그리고 손님들에 대한 그들의 행동 속에 나타난 따뜻한 마음과 예의범절이 올바른 점 등을 칭찬해 가며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들의 기분을 녹여 줄 수는 없었다. 다아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베네트 씨는 똑같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그 정경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었다. 빙리 씨와 제인은 딴 사람들한테서 다소 거리를 두고서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허어스트 부인이나 빙리 양에 못지 않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리디어까지도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이따금 '아, 정말 피곤해!' 하고 외치곤 크게 하품을 하는 것 외는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일행이 작별을 하려고 일어섰을 때 베네트 부인은 집요할이만큼 정정하게 가까운 장래에 롱본에서 여러분과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특히 빙리 씨에게 인사를 하면서 정식 초대 같은 격식은 생략해 버리고 어느 때나 부담 없는 식사에 응해 주신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빙리는 기꺼이 감사하고 내일 런던에 가서 잠시 머물게 되지만, 돌아오게 되면 기회 봐서 꼭 방문하겠다고 쾌히 약속했다. 베네트 부인은 매우 흡족해 하고, 결혼을 위한 재산분여라든가 새 마차며 결혼 의상 등의 준비에 필요한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3, 4개월이 지나면 딸이 틀림없이 네더필드에 자리잡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어 가면서 그 집을 물러났다. 또 딸 하나를 콜린즈 씨에게 출가시키는 것을 같은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생각하고, 똑같은 기쁨은 못된다 하더라도 상당히 기뻐했다. 엘리자베드는 자기 애들 중에서 제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 남자나 연분으로 보아서 그녀에게는 다시없이 좋은 편이었으나 그 값어치로 따지자면 빙리 씨나 네더필드에 비할 때 희미한 점이 없지 않았다. @ff 19 다음날 롱본에는 새로운 장면이 전개되었다. 콜린즈 씨가 정식으로 신청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휴가는 다음 토요일까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시도 지체 않고 신청하리라 결심하고, 당장 그 일이 자기에게 어떤 슬픈 결과를 가지고 오리라고 머뭇거리는 감정이 조금도 없었기에 자못 정정당당한 태도로 이 일에 대해서 정식 규정으로 보여지는 관습에 따라 착수했던 것이다. 아침 식사 후 즉시 베네트 부인과 엘리자베드와 손아래 동생 한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나서 그는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서두를 떼었다. "오늘 아침 나절까지 아름다운 따님 엘리자베드 양과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부인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진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엘리자베드가 깜짝 놀라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모를 때 베네트 부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 좋구말구요. 아마 리지도 무척 좋아할 거예요. 그 애도 별로 이의가 없을 줄로 알아요. 키티야, 어서 2층으로 가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서 뜨개질감을 모아서 급히 자리를 뜨려고 했을 때 엘리자베드가 불러 세웠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가지 말아 주세요. 콜린즈 씨도 용서해 주실 거예요. 딴 사람이 들어서 곤란한 얘기는 저에게 하실 리 만무죠. 차라리 제가 나가도록 하지요." "안될 말이다, 리지야. 넌 그 자리에 앉아 있도록 하여라." 그리고 엘리자베드가 당황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거의 도망칠 듯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덧붙여 말했다. "리지야, 난 네가 꼭 이 자리에 남아 있다가 콜린즈 씨의 말을 들어보았으면 좋겠구나" 엘리자베드도 그렇게 명령을 받고 나니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본 결과 되도록 빨리 되도록 조용한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도 뻔한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아 계속 뜨개질에 바쁜 손을 움직이면서 곤혹스러운지 우스운지를 분간 못할 감정을 애써 감추려 했다. 베네트 부인과 키티가 걸어나가 두 사람이 사라져 버리자 콜린즈 씬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엘리자베드 양, 당신의 겸허한 점은 당신에게 해를 끼치기는 커녕 오히려 당신의 딴 아름다운 점을 더해 가기만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믿어 주십시오. 만약 이와 같이 약간 수줍어하는 데가 없었던들 내 눈에는 그와 같이 귀엽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존경해 마지않는 당신 어머니의 허가를 얻어서 이렇게 신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는 바입니다. 당신의 타고난 고상함으로 해서 제아무리 모르는 체하시더라도 나의 취지를 의심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의 은근한 의도는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기 때문에 오해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귀댁에 들어서자마자 난 당신을 내 장래의 배우자로 삼기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나 자신의 감정에 휘쓸려 가기 전에 나의 결혼의 이유(더우기 배우자를 선택할 목적으로 허어퍼드셔에 오게 된 것이지만)를 설명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엄숙할이만큼 침착한 감정에 휩쓸려 간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엘리자베드는 웃음을 터뜨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가 잠깐 쉬는 사이에 그의 이야기를 멈추게 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더니 그는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내가 결혼하고자 하는 이유는 첫째로 안락한 생활환경(나의 경우처럼)에 처해 있는 목사는 누구든 자기의 구역에서 결혼생활을 보여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결혼함으로써 내 행복이 더하기 때문이지요. 세째로, 이건 좀더 일찌기 말해 두었어야 할 일이지만, 내가 감히 후원자라고 부르고 있는 고귀한 부인의 각별하신 충고와 권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두 번씩이나 부인께선 황송하게도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청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내가 헌스퍼드를 떠나기 전날 밤 토요일 밤인 줄 알고 있습니다만(쿼드릴 게임의 계산을 하고 있는 사이에 젠킨슨 부인이 드 버그 양의 족대를 정리하고 있었을 무렵)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콜린즈 씨는 결혼을 해야 합니다. 당신 같은 목사는 결혼을 꼭 해야 합니다-적당한 인물을 선택하도록 하시오. 날 위해서는 점잖은 부인을,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일 잘하고 소용되는 여성으로 교육 정도는 높지 않더라도 얼마 안되는 수입을 잘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하겠소.' 그런데 더 말씀드려 두지만, 캐더린 드 버그 부인의 관심과 친절은 내 힘으로 제공할 수 있는 이점 가운데서 작은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부인의 훌륭한 예절은 나로서는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을 아시게 되겠죠. 한데 당신의 기지와 쾌활함은 내가 아는 바로는 부인의 기분에 썩 들게 될 것입니다. 특히 부인과 같은 지체 높으신 분 앞에서는 어절 수 없이 말수가 줄어들고 경의를 표하는 중용을 취하게 될 테니 말입니다. 내가 결혼할 생각을 하게 된 중요한 이유는 이 정도로 해두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왜 내가 근처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적을 롱본으로 향하게 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인하는 겁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이 아버지께서 별세하실 경우(하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사시게 되겠지만) 이곳의 토지를 계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 따님들 중에서 아내를 선택하지 않으며 직성이 풀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경우-하기야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요 몇 해 동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따님들에게는 손실이 가능한 한 적게 될 것이 아닙니까. 이것이 나의 동기이고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당신 눈에 비친 내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은근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일은 가장 힘있는 말로 나의 결렬한 애정을 표하는 일뿐입니다. 재산 같은 건 난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그리고 아버님께 그러한 요구도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러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당시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라야 차지하게 될 4퍼센트 공채의 1천 파운드만이 당신의 권리에 속할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난 늘 침묵을 지키겠습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는 결코 비열한 비난 같은 것은 입에 담지 않을 테니 안심하셔도 괜찮겠습니다." 바야흐로 그의 말을 가로막는 일이 절실할 때가 되었다. "선생님은 너무 성급하세요." 큰 소리로 말했다. "제가 답을 안하고 있는 사실을 잊으셨군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시려면 저에게 대답을 하게 해주세요. 저를 칭찬해 주신 말씀은 감사합니다. 선생님한테서 결혼신청을 받게 된 영광은 잘 알겠습니다만 우선은 거절할 수밖에 도리가 없어요." "지금 알게 된 일은 아닙니다." 그는 자못 의젓하게 손을 내저어 가면서 대답했다. "처음으로 남성에게서 구혼 받게 되면 속에서는 남몰래 응하고 싶지만, 일단 거절하는 것이 젊은 여성에게는 흔히 있는 일로서, 때로는 그 거절이 두 번씩이나 아니 세번까지도 되풀이 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사실에 대해 나는 조금도 낙담 않겠으며, 언젠가는 당신을 제단으로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려 둡니다만" 엘리자베드는 힘주어 말했다. "정확히 말씀드렸는데도 희망하시다니 매우 이상하시네요. 보증까지 해서 말씀드려 두지만, 저라는 여자는 자신의 행복을 두 번째의 신청에 걸어 버리는 대담한 여성(만일 그런 젊은 여성이 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중의 한 사람은 못됩니다. 저는 지금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는 것이에요. 선생님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실 수 있다고는 정확히 모르겠고, 저는 또 선생님을 가장 행복하게 해드릴 수 없는 여자라고 믿고 있는 거예요. 그래요, 선생님의 후원자이신 캐더린 부인께서 만일 절 알고 계시다면 저라는 사람이 어느 면으로 보나 어울리지 못하는 점을 알고 계시리라 믿고 있어요." "캐더린 영부인께서 설령 그런 생각을 하신다 하더라도" 콜린즈 씨는 자못 엄숙하게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캐더린 영부인께서 전혀 당신을 인정 않으시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영부인을 만날 영광을 갖게 된다면 당신의 겸손함과 경제적인 점, 나아가서 마음에 드는 자질을 입이 닳도록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정말 콜린즈 선생님, 절 칭찬해 주시는 일은 필요 없어요. 저로 하여금 스스로 판단하게 내버려두시고, 제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믿어 주세요. 전 선생님께서 다시없이 행복하시고 부를 다하시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실패로 돌아가지 안토록 이렇게 신청을 거절하고 있는 거예요. 저에게 구혼하시는 일로 해서 저의 가족에 대한 좋은 감정을 만끽하셨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롱본의 토지가 선생님 수중에 들어가게 되면 언제고 자책을 갖지 마시고 소유하시도록 하십시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결정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생각해도 좋겠어요." 그녀는 이 말과 함께 그 방에서 나가려 했을 때 콜린즈 씨는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내가 다시 한 번 당신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광을 갖게 될 때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회답을 얻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장 나는 당신을 결코 잔인하시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처음 신청 받게 되는 경우 거절하는 것이 여성의 정해진 습관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만 해도 당신은 여성의 참되고 섬세한 감정을 저버리지 않는 범위에서 나의 구혼을 격려해 주시는 말씀을 해주셨으니까요." "어머나, 콜린즈 씨." 엘리자베드는 사뭇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절 어리둥절하게 만드세요.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이 선생님께 격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저의 거절을 어떻게 표현해야 그 뜻이 그대로 통하게 될지 전 잘 모르겠어요." "엘리자베드 양, 당신이 나의 신청을 거절하신 것은 물론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영광을 갖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믿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내 청혼을 당신이 받기에 값어치가 없다고는 보지 않으며, 내가 제공해 낼 수 있는 가정생활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내 지위라든가, 드 버그 집안과의 관계라든가 당신 집안과의 연관관계 등은 나에게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지요. 더우기 당신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실 일이지만, 당신에게 숱한 매력이 있다 하더라도 다시 한 번 결혼신청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반드시 명백한 일만은 아닙니다. 당신의 재산 분배는 불행히도 너무나 적기 때문에 당신의 아름다움이나 귀염성 있는 당신의 자질 능력도 결국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난 당신이 진정 나를 거절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겠으며, 또 나는 이토록 우아한 여성이 정해진 수법에 의해서 나의 애정을 잠시 정체시킴으로써 더욱 강화시키려는 당신의 소망 탓이라고 그 거절의 이유를 삼고 싶습니다." "확실히 말씀드려 두지만, 훌륭하신 남자분을 괴롭힐 만큼 우아하다는 건 저한테는 맞지 않은 일이에요. 그것보담 제가 성실하다고 믿어 주시는 게 고맙겠어요. 구혼을 해주신 영광에 대해선 무한히 감사드리지만, 받아들인다는 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저의 기분이 여러 점에서 허용치 않습니다. 좀더 쉽게 말해서 제가 선생님을 괴롭히려 드는 우아한 여성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이성적이 사람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당신은 한결같이 매력적입니다." 그는 어색할이만큼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믿고 있습니다만, 나의 신청이 당신의 훌륭하신 양친의 확실한 권위에 의해 승인되게 되면 그때 가선 안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겁니다." 고집스런 자기기만을 이와 같이 강하게 내세우게 되자 엘리자베드는 그것에 응답해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 길로 말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거절한 것을 그가 끝까지 기분 좋은 격려로밖에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그 일을 아버지에게 부탁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아버지의 거절은 결정적인 강력한 힘으로 선언될 것이고, 그 태도는 적어도 우아한 여성의 꾸밈이나 아양을 떠는 것 등과 동일시되는 걱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ff 20 콜린즈 씨만 남게 되자, 성취한 사랑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관 언저리를 배회하면서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베네트 부인이 엘리자베드가 문을 열고서 총총걸음으로 자기 앞을 통과해서 계단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자마자, 조찬실로 뛰어들면서 두 사람 사이가 더 한층 긴밀해지리라는 행복한 전망이 보인다며 콜린즈 씨나 자신에게도 축하해 마지않는 바라고 열띤 어조로 말했기 때문이다. 콜린즈 씨는 이러한 축하의 말을 똑같은 기쁨으로 받아넘기고 나서 회답의 내용을 소상하게 말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해도 좋은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는다고 말하고 엘리자베드가 한사코 거절 한 것은 그녀의 수줍음이 깃들인 신중함과 자못 섬세한 신경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통고에 놀란 사람은 베네트 부인이었다. 자기 딸이 그의 구혼을 거절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를 격려하려는 것이려니 하고 똑같이 납득이 되었으면 다시없는 기쁜 일이겠건만, 아무래도 그것을 믿을 만한 용기가 나지를 않아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괜찮아요, 리지를 타일러 보도록 할 테니까요." 그녀가 덧붙여 말했다. "내가 직접 얘기하도록 하지요. 그 애는 원래 고집이 센데다가 바보스러운 데가 있고요, 자기에게 이롭다는 걸 모르지만, 내가 꼭 알게 해주고 말겠어요." "말씀 중에 죄송스럽습니다만, 부인" 콜린즈 씨가 말했다. "따님께서 진정으로 고집이 세시고 바보스럽다면 결혼 생활의 행복을 당연히 희구하고 있는 저와 같은 지위 신분의 남성에게는 바람직한 처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따님께서 실제로 완강하게 저의 구혼을 거부하신다면 무리해서까지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게 덜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결점에 쉽사리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면 저의 행복에 하등 공헌할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베네트 부인은 허둥대며 말했다. "리지란 애는 이런 문제에만 고집통인 거예요. 딴 일에 대해서는 그만큼 상냥할 수가 없어요. 곧장 주인한테 가서 곧 결말을 짓도록 해보겠어요." 그에게 답할 여유도 주지 않으려는 듯이 그 길로 남편에게 가서 서재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당신이 꼭 필요해요. 큰 낭패가 생겼어요. 자아, 어서 가셔서 리지에게 말씀해서 콜린즈 씨와 결혼하도록 하세요. 그 애가 시집 안가겠다고 말을 한 거예요. 급히 안 가시면 콜린즈 씨의 마음이 변해서 그앨 안 데리고 가게 되는 거예요." "헌데 이런 경우 난 어떻게 하면 좋소? 아무래도 희망이 없어 뵈는 일 같은데" "당신이 몸소 리지에게 말씀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리지를 꼭 그 사람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말씀하세요." "그앨 이리 오게 하시오. 내 의견을 들려 줄 테니까." 베네트 부인이 초인종을 울려서 엘리자베드를 서재로 오게 했다. "어서 이리 온" 그는 딸이 나타나자 말을 건넸다. "중요한 일로 너를 오라고 했다. 콜린즈 군이 너에게 구혼을 했다는데 사실이냐?" 엘리자베드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래 네 쪽에서 그 구혼을 거절했겠다?" "그래요." "자아 우린 요점에 도달한 거다. 네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지 승낙을 받겠다는 거다. 안 그렇소, 여보?" "그렇구말구요, 내 말을 어겼다간 두 번 다시는 리지를 안 보렵니다."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있다, 엘리자베드야. 넌 오늘 이날부터 너의 양친 중의 한 사람과 인연을 끊어야 할 판이다. 네가 콜린즈 군과 결혼 안하게 되면 너의 엄마가 널 두 번 다시는 안 보게 될 것이고, 네가 또 그 사람하고 결혼하게 된다면 내가 이번엔 널 안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엘리자베드는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가 그런 결말로 끝나게 된 것을 미소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남편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실망하고 말았다. "여보, 어떡하시려고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 사람하고 결혼시키겠다는 말씀을 하시기로 약속하였잖아요." "당신 내가 두 가지쯤 부탁을 하고 싶소. 첫째로 현재 처하고 있는 내 사려 분별을 자유로이 해달라는 것과 둘째 내 방도 역시 자유롭게 해주었으면 하오. 되도록 빨리 서재에서 나 혼자 있게 해주었으면 매우 고맙겠소." 그녀의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남편에게는 실망했으나 아직 이 문제를 단념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엘리자베드에게 말을 건네고 한편 달래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위협해 보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는 제인을 자기편으로 끌어넣어 보려 했으나 제인은 되도록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채 개입하기를 거절했다. 그래서 엘리자베드는 때로는 본심을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장난기 있는 쾌활함으로 어머니의 공격에 응했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변하기는 했지만, 결의는 좀처럼 변할 줄 몰랐다. 콜린즈 씨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해 혼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너무나 잘 보고 있던 터라 엘리자베드가 어떤 동기로 자기를 거절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존심은 상하게 되었지만, 그 밖의 일로 해서 그는 고통을 받지 않았다. 그녀에 대한 그의 생각은 너무나도 상상적인 것이어서, 그녀가 어머니가 비난하는 대로의 여자려니 생각하니 그에게는 조금도 후회스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다. 집안이 온통 혼란해 있는 중에 샬로트 루커스가 하루를 그들과 지내기 위해 찾아왔다. 리디어가 현관에서 그녀를 영접하고 그녀에게로 뛰어가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 잘 오셨어요. 마침 집안이 야단법석이거든요! 오늘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콜린즈 씨가 리지에게 결혼 신청을 했는데, 리지가 싫다지 뭐예요." 샬로트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키티가 같은 정보를 알려 줄 양으로 옆으로 다가섰다. 베네트 부인 혼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부인도 역시 같은 문제를 루커스 양에게 동정을 구하는 투로 말하고, 제발 친구 리지가 가족 모두의 희망에 따르도록 타일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제발 부탁이에요, 루커스 양" 그녀는 짐짓 슬픈 투로 덧붙여 말했다. "집안에서는 아무도 내 편을 들어서 말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너무들 해요. 아무도 내 신경이 약하다는 걸 동정 안해 주지요." 제인과 엘리자베드가 들어왔기 때문에 샬로트는 대답하지 않아도 됐다. "어머, 바로 그 애가 오는군" 베네트 부인이 계속했다. "시치미를 떼고 자기 뜻대로만 된다면 우리들이야 산수갑산을 간들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태도거든(그렇지만 리지야, 내 말 좀 들어보아라. 만일 네가 이런 식으로 결혼 신청을 모조리 거절하고 말다가는 끝내 넌 남편을 얻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기라도 해보지, 누가 널 밥먹여 주겠냐 말이다.(그러니까 지금 말해 둔다만) 오늘로써 너하고는 인연을 끊고 말겠다. 서재에서도 너에게 말해 두었다, 너하고는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언젠가는 내 말을 알아들을 날이 오게 될 거다. 나로서도 부모에게 따르지 않는 아이하고 이야기하는 건 재미도 없거든 누구하고 얘기한다 해도 이렇다 할 재미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나처럼 신경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말하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법이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가는 아무도 모를 거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렇다. 불평을 늘어놓지 않으면 남의 동정은 사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녀의 딸들은 이치를 캐고 들거나 달래 보려 하면 할수록 도리어 어머니를 초조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구 쏟아져 나오는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누구한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는데 마침내 어느 때보다 의젓한 태도로 콜린즈 씨가 들어와서 그녀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를 보자 그녀는 딸들에게 말했다. "자, 어서들 들어 두도록 하여라. 너희들은 모두가 입을 다물어라. 콜린즈 씨와 내가 잠깐 얘기할 테니까." 엘리자베드가 살짝 방 밖으로 나갔다. 제인과 키티가 뒤를 따랐지만 리디어는 되도록 들어볼 참으로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샬로트는 처음 한참 동안은 자기 자신과 지가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묻는 콜린즈 씨의 정중함에 끌려 남게 되었고 나중에는 다소 호기심에 끌리기도 해서 창가로 걸어 나가서 안 듣는 체하고 귀를 기울였다. 수심에 찬 목소리로 베네트 부인은 사전에 준비한 대화를 이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콜린즈 씨!" "예 부인" 그가 대답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원히 침묵을 지키도록 하십시다. 저는 절대로" 그는 간격을 두고 불쾌함을 표시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올시다. 피치 못할 재화를 단념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저의 경우처럼 다행스럽게도 일찍이 승진한 청년의 특별한 의무입니다. 저 자신 단념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설령 아름다운 따님께서 승낙을 해주신다 하더라도 제가 과연 행복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아스럽게 된 점도 이 단념에 힘입은 바 있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제가 지금껏 자주 관찰해 왔지만, 거부당한 행복이 그것을 우리가 평가해 보는 가운데 어느 만큼 그 가치를 상실하기 시작할 때만큼 깨끗한 단념이 가능할 때가 없기 때문이죠. 부인이나 베네트 선생님께 저를 위해 두 분의 힘을 불어 넣어 주십사 부탁 말씀도 안해 본 채로 이렇게 따님에게 했던 저의 신청을 취소하더라도 부인에게나 가족 여러분에게 결례가 된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부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따님을 통해서 거절을 당한 것은 저의 행위의 못마땅한 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들은 모두가 오류를 범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저는 시종 이 문제에 대해서 선의를 지속해 왔습니다. 저의 목적은 귀댁의 가족 전체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한 위에서 저에게 다시없이 귀여운 배우자를 얻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행동거지에 혹시 비난하실 만한 데가 있으시다면 이 자리에서 미리 사과를 드립니다." @ff 21 콜린즈 씨의 결혼 신청에 대한 논의는 이제는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엘리자베드는 그러한 일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불유쾌한 감정이 때때로 어머니의 암시 같은 것으로 해서 괴로움을 당할 뿐이었다. 장본인인 신사 자신의 감정은 차라리 당황함이나 실의 또는 그녀를 회피하려는 그런 식으로 표현되지를 않고, 엄격한 태도나 시무룩한 침묵 등으로 나타났다. 그녀에게는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자의식에 찬 주도면밀한 관심은 그날이 다할 때까지 루커스 양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그녀가 예절 바르게 그 말에 귀 기울여 준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는 때가 때인 만큼 다시없는 구원이었고 특히 그녀의 친구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다음날에도 베네트 부인의 심상과 병의 호소는 조금 덜하질 않았다. 콜린즈 씨도 똑같이 노기 품은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이 노여움으로 해서 그의 체재 기간이 짧아지기를 바랐으나, 그의 계획은 그 일로 해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원래 토요일에 떠날 예정으로 있었는데, 역시 토요일까지 체류할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 후 딸들은 메리튼까지 걸어가서 위컴 씨가 돌아왔는지를 물어 보고, 그가 네더필드 무도회에 오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그녀들이 시내로 들어섰을 때 마침 그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들을 이모 집까지 바래다 주고 그곳에 그가 없어 유감스럽고 속상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모두가 무척 마음에 걸리더라는 이야기를 충분히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엘리자베드에게 고의로 하는 수 없이 부재했다고 스스로 털어놓았다. "난 알아차렸지요.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서 다아시 군하고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같은 방에서 그 사나이하고 몇 시간씩 같이 있는다는 건 정말 나로선 할 일이 못 되었고요. 나뿐만 아니라 뭔가 딴 사람들에게까지 불유쾌한 일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지요." 그녀는 그가 용케도 자신을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그리고 위컴과 또 한 사람의 장교가 그들과 롱본까지 같이 걸어가기로 해서, 그는 사뭇 그녀에게만 붙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취했던 인내에 관해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간 마음껏 칭찬할 여유를 가질 수가 있었다. 그의 동반은 그 중의 행운이었다. 그녀로서는 배웅을 받게 된 일로 그의 호의가 사무치게 느껴지는 반면 그를 아버지 어머니에게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오자 곧 한 통의 편지가 제인 베네트 양 앞으로 배달되어 왔다. 발신지가 네더필드로 되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뜯게 되었다. 봉투 속에는 한 장의 우아하고 작은 가열 프레스 한 광택 있는 종이 위에 깨끗하게 써 나간 필적으로 뒤덮여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그것을 읽는 언니의 안색이 변하고 어떤 특정한 대목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을 보았다. 제인은 곧 제정신이 들면서 언제나 다름없이 쾌활하게 여러 사람의 대화에 끼여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위컴 씨한테도 주의를 돌릴 상황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가 떠나가자 곧 제인의 눈짓으로 뒤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제인이 그 편지를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이 편지는 캐롤라인 빙리한테서 온 거야. 씌어 있는 내용이 너무나 날 놀라게 한 거지. 지금쯤은 모두가 네더필드에서 런던으로 가는 도중일 거야. 더우기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의사가 없는 것 같아. 그 사람이 한 말을 들려 줄께" 그녀는 그리고 나서 첫부분을 소리 높여 읽어 나갔는데 그 대목은 오빠 뒤를 따라 곧 런던으로 가기로 결정지었으며 오늘은 그로스브너에 있는 허어스트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는 그런 내용인 것이었다. 그 다음 부분은 이렇게 씌어 있었다. 친애하는 벗이여, 나는 당신과 사귄 일 이외는 허어퍼드셔에 아무것도 후회할 만한 일이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들이 맛보았던 그 즐거웠던 교제를 하염없이 되새겨 보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그날이 올 때까지는 서로 자주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로 이별의 괴로움을 경감시킬 수도 있을 것이에요. 당신은 꼭 그렇게 해주실 거예요. 이러한 글귀를 엘리자베드는 불신의 생각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듣고 있었다. 그들이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사실에는 매우 놀랐으나 진심으로 슬퍼할 일은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네더필드를 떠난다 해서 빙리 씨가 반드시 그곳에 오지 않는다고는 보지 않았다. 설령 그들과 교제를 못하게 된다 해도 제인은 그와 교제하는 기쁨만 갖는다면 언젠가는 그런 일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될 게 너무나도 뻔한 일이라고 엘리자베드는 믿었다. "불운한 거야." 그녀는 잠시 간격을 두고서 말했다. "친구가 그 고장을 하직하기 전에 못 만나게 되다니 말요. 그렇지만 빙리 양이 고대하고 있다는 장래 기쁨은 그녀가 알아차리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빨리 도달하게 될 것이고, 언니가 친구로서 경험한 즐거웠던 서로간의 교제가 이번에는 시누이 올케 관계라는 더 큰 기쁨이 됨으로써 새롭게 될 것이 아녜요? 빙리 씨는 구분들이 만류한다 해서 런던에 붙어 있을 분이 아닐 테니까 말예요." "캐롤라인은 분명히 그 댁의 누구도 올 겨울에는 허어퍼드셔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 읽어볼까...." 어제 오빠께서 떠나시면서 런던으로 올라가는 용무는 3, 4일이면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럴 턱이 없으리라는 것은 우리들은 잘 알고 있었구요, 게다가 오빠가 일단 런던으로 올라가게 되면 서둘러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동시에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빠가 용무 없는 시간에 부자유스런 호텔 신세를 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들이 오빠의 뒤를 쫓기로 결정한 거예요. 우리의 친지들 중에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겨울을 지내기 위해 그곳에 와 있어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당신이 그 중의 한 사람이 될 의향이 있으시다는 편지를 보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 일만은 단념해 버렸어요. 나는 충정에서 허어퍼드셔의 크리스마스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우리와 함께 떠나버린 세 사람이 없더라도 그 손실을 못 느낄 정도로 여러분의 말을 타는 무사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이걸 봐서 그분께서 올 겨울에는 안 오시게 된다는 것이 확실해진 거야." "확실한 것은, 빙리 양이 그분께선 돌아오셔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뿐이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해? 그건 어디까지나 그분이 알아서 하시는 일일 텐데. 자기 뜻대로 하는 거야. 그리고 넌 모든 걸 다 알지 못하고 있어. 특히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대목을 읽어 줄께. 너한테 감추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단다." 다아시 씨께선 누이가 무척 보고 싶었던 거예요. 사실대로 말하면 우리들도 그분 못잖게 누님을 만나 보고 싶었지요. 미모라든가 그 우아함, 나아가선 재능이란 점에서 조지아나 다아시에 버금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분이 루이저 언니와 나의 마음에 깃들이게 하는 애정은, 그분이 멀잖아 우리들과 시누이 올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희망 때문에 더욱 감동적인 것으로 밀어 올리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서 내 자신의 기분을 전에 말씀드렸어야 했을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기분을 털어놓지 않은 채 이 고장을 떠나고 싶지가 않으며 이 기분을 불합리한 일이라 생각하시지 않으리라 믿어요. 오빠께선 그분을 매우 칭찬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더욱 친밀한 형태로 끊임없이 그분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될 거예요. 그분의 친척들도 오빠의 친척 못잖게 이 연분을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오빠가 어떠한 여성의 마음도 끌어당길 수 있다 하더라도 누이인 나의 편애에 의해 잘못 판단되었다고는 보지 않아요. 이와 같이 이 한 애정의 결부에는 호의적인 사정뿐이어서 그것을 방해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형편이고 보면 사랑하는 제인 양, 이렇도록 많은 사람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이 어찌 내 잘못만이겠어요? "이 문장 어떠니, 리지?" 제인은 다 읽고 난 후 말했다. "이만하면 명확하잖니? 캐롤라인은 내가 그녀의 올케가 된다는 건 예상조차 않고 있으며, 바라지도 않는 점, 오빠도 무관심하다고 완전히 믿고 있고 그분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 느끼고 있더라도(매우 친절하게) 나를 경계하려는 점 등이 여기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지 않겠어? 이 문제를 달리 생각할 방도가 있을까?" "그럼 있겠지, 내 의견은 전연 다르니까 말예요. 들어보겠수?" "듣구말구?" "두세 마디로 말해 두겠어요. 빙리 양은 자기 오빠가 언니를 사랑하고 잇는 것을 알면서 다아시 양과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는 거예요. 오빠를 런던에 머물러 있도록 하고 그의 뒤를 쫓아가서 설복시키려는 거예요." 제인은 머리를 저었다. "정말이에요, 언니. 언니는 날 꼭 믿어야 해요. 언니하고 그분이 함께 있는 것을 본 사람이면 그분의 애정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빙리 양일지라도 의심을 못할 거예요. 그 여자가 그렇게 멍청할 리는 없어요. 그 여자가 다아시 씨로부터 그 반만큼이라도 사랑을 받았다면 결혼 의상을 주문했을 거예요. 그러나 결국 이런 일이에요. 우리들은 그분들에게 어울릴 만큼 부자도 못되고 지체도 그렇지가 못한 터라 자기 오빠를 다아시 양과 연분을 맺게 하고 싶은 거예요. 혼인 관계 하나가 성립되면 또 하나를 성취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겠죠. 그 점은 확실히 재간이 있는 생각이 되겠죠. 드 버그 양만 방해가 안되면 성공하고 말 거예요. 그렇지만 나에겐 둘도 없는 언니, 들어봐요, 빙리 양이 그녀의 오빠가 다아시 양을 찬미하고 있다고 해서 화요일에 언니와 헤어졌을 때보다 그분께서 언니의 좋은 점을 조금이라도 덜 인정한다든가 또 그녀 오빠를 설득해서 언니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친구인 다아시 양을 더 사랑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말 믿어서는 안되는 거예요." "만일 빙리 양에 대한 우리들 생각이 일치한다면 네 해석으로 난 사뭇 안심이 된다만. 그러나 근본이 올바르다고 보지는 못해. 캐롤라인이란 여자는 계획적으로 사람을 속이는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말야. 그래서 이 번 경우에 내가 오직 바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 뿐이야." 제인이 대답했다. "옳은 말이요. 내가 말하는 것으로 해서 안심이 안된다면 그 이상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가 않을 거구요. 그녀가 무엇을 오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도록 해요. 이젠 그녀에 대한 의무는 다했으니까 더 이상 애태울 필요가 없어요." "그러나 너 말야, 설령 제일 좋게만 상상한다 해도 자매 되는 사람이나 친구들이 모두 딴 사람하고 결혼시키고 싶은 사람에게 시집간다 해서 과연 내가 행복하게 될 수 있을까?" "그 점은 언니 스스로가 정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깊이 생각해 보고 나서 그분 두 자매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슬픔 쪽이 그분의 처가 되는 행복보다 더 크다고 생각된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거절해 버리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넌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니?" 제인이 다소곳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자매가 반대한다는 건 슬픈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난 주저할 수는 없다." "언니가 주저하리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면 난 언니의 입장을 동정 해가면서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분이 이번 겨울에 못 돌아오시게 된다면 내 결심 같은 건 아무 소용도 없게 되는 거야. 6개월이 지나면 오만 가지 일이 다 생길 테니까 말야!"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엘리자베드는 사뭇 가볍게 다루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캐롤라인의 제멋대로 소원을 암시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러한 소원은 제아무리 명백하고 기교 있게 표현된다 하더라도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청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소감을 되도록 강하게 언니에게 설명했지만, 얼마 안가 좋은 결과를 보게 된 것이 매우 기뻤다. 제인의 기분은 침울함을 벗어나고 점차 희망을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때로는 애정에 대한 머뭇거림이 그녀를 엄습해 왔지만, 언젠가는 빙리가 네더필드로 돌아와서 자기의 충정을 풀어 줄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에 마음이 부풀었다. 베네트 부인에게는 다만 가족이 출발했다는 말만 하기로 합의하고 빙리 씨의 행동의 자초지종을 말함으로써 경악을 불러일으켜서는 안될 일이라고 뜻을 모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분적인 통고만으로도 베네트 부인은 심히 근심스러웠고, 이토록 잘 되어 가는 차에 그 귀부인들이 떠나가 버렸으니 이 이상 더 불운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한탄을 했다. 그러나 한참 슬픔에 잠겼다가 빙리 씨가 곧 되돌아와서 곧바로 롱본에서 식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는 끝내 가족적인 식사 초대에 그친다 해도 요리는 이품으로 푸짐하게 내놓도록 마음을 즐겁게 먹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ff 22 베네트 일가는 루커스 일가와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그날 역시 대부분 시간을 루커스 양은 친절하게도 콜린즈 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기회를 포착해서 그녀에게 사의를 표했다. "덕분에 그분의 기분이 여간 좋지가 않았어요. 정말 말로는 다할 수 없이 폐를 끼쳤어요." 그녀는 말했다. 샬로트는 도움이 된 데 대해 만족스러워 하면서 시간을 잠깐 냈을 뿐인데도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고 했다. 다시없이 상냥스런 말이었다. 그러나 샬로트의 친절은 엘리자베드로서는 미처 짐작도 못할 데까지 뻗어 나갔다. 이 친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콜린즈 씨의 결혼 신청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여 그것이 두 번 다시는 엘리자베드에게 되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데 지나지 않았다. 바로 그것이 루커스 양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형편이 매우 호전되어 나가서 밤이 되어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가 만약 그렇게 빨리 허어퍼드셔를 떠나지 않았다면 성공은 거의 의심할 여기가 없을 정도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 그녀는 그의 불같은 면과 독립심에 찬 그의 성격을 올바르게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성격은 그로 하여금 다음날 아침 날쌔게 롱본 가를 빠져나가 루커스 가로 달려가서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었기 대문이다. 그는 친척들의 눈에 띄고 싶지가 않았는데, 그 사연인즉 자기가 떠나는 것을 보게 되면 자신의 계획을 알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성공을 보여 줄 때까지는 계획을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샬로트는 상당히 고무적이라 대체적으로 일이 잘 풀려져 가리라고 생각할 이유도 있었지만, 워낙 수요일의 일도 있고 해서 어쩐지 자신이 없는 심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럼에도 다시없이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환영을 받았다. 루커스 양은 자기 집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그를 2층 창문에서 보게 되자, 그 길로 바깥으로 나가서 좁은 길에서 사뭇 우연히 만나게 된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만한 애정과 웅변이 거기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콜린즈 씨의 장광설이 끝나기가 무섭게 쌍방이 다 만족할 만큼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두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는 자신을 가장 행복한 남성으로 만들 날을 정해 달라고 열심히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그의 소원은 성급하다는 감이 없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행복을 경시할 생각은 없었다. 그의 타고난 우둔함은 그 결혼 신청이 계속되기를 여자가 바랄 만한 매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루커스 양은 그저 가정을 갖고 싶다는 순수한 소원에서 그와의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빨리 이루어지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윌리엄 루커스 경 부부는 재빨리 동의하도록 요청 받았는데, 즉석에서 기꺼이 응하고 말았다. 콜린즈 씨의 현재 환경은 별로 재산을 나누어 줄 수 없는 그들의 딸에겐 둘도 없이 좋은 연분이고, 게다가 장차 그에게 재산이 들어오리라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었다. 루커스 부인은 불현듯 지금까지 그러한 문제에 대해 느껴 보지 못했던 흥미를 가지고 베네트 씨가 앞으로 몇 해를 더 살게 될 것일까 계산해 보기 시작했다. 윌리엄 경은 콜린즈 시가 롱본의 토지를 소유하는 날이 오면 그 즉시 딸 부부가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 배알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자신의 의견인 양 말했다. 요컨데 집안이 온통 기뻐 날뛴다는 것은 조금도 무리가 아니었다. 막내딸들은 그렇게 되는 날이면 사교계에 나갈 수 있는 것이 1, 2년이 빨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아들들은 샬로트가 노처녀로 늙어 버릴 것이라는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샬로트 자신은 상당히 침착해 있었다. 목적이 달성된 터라 그 일을 생각해 볼 여우를 보였다. 그녀의 감상은 대체적으로 흡족스러웠다. 바른 말로 콜린즈 씨는 현명하다거나 기분 좋은 사람은 못되었다. 함께 있으면 금방 싫증이 나고 자기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자기의 남편이 될 사람이다. 남성이라든가 부부관계 등은 그다지 문제삼지 않은 채 결혼만이 늘 그녀의 목적이었다. 높은 교육받고 재산 적은 젊은 여성에게는 결혼은 유일한 영광된 희망이며, 행복을 얻는 일이 아무리 불확실해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인 것이다. 이 길을 그녀는 겨우 손에 넣은 것이다. 더우기 나이 스물 일곱에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자기에게는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서 가정 꺼림칙한 일은 자기가 누구하고의 우정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엘리자베드 베네트를 놀라게 할 일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의아해 하며 아마도 자기를 나무라게 될 것이다. 자기의 결의는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런 면에서는 비난은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 너무나 뻔했다. 그녀는 마침내 자기 입으로 그것을 알리려고 결심해서 콜린즈 씨에게 만일 롱본에 식사차 돌아가더라도 가족 누구 앞에서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일렀다. 그는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했지만 그것을 지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오랫동안 비워 두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호기심이 돌아오자마자 직접 터져 나오는 질문으로 폭발해 버려서, 그것을 회피하기에는 너무나 기교가 필요했고, 그와 동시에 자기의 멋있는 연애를 알리고 싶은 데 자신을 억제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은 가족 중의 누구하고도 만날 수 없을 만큼 일찍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들이 잠자리에 들어갈 무렵에 작별 인사를 나눴다. 베네트 부인은 대단히 정중하게, 딴 볼일로 다시 롱본에 올 수 있으면 언제고 반갑게 그를 맞겠다고 말했다. "부인, 이번 초대는 특히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바라고 싶었던 초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단시일 내에 하신 말씀대로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일동은 어안이벙벙했다. 그토록 빠른 응답을 바라지 않았던 베네트 씨가 금방 말했다. "이봐요, 혹시 캐더린 부인이 마다 하실 걱정은 없는 거요? 후원자를 화나게 할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친척들을 등한시하는 편이 나을 거요." "선생님, 친절하신 주의 말씀은 특히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만, 영부인의 동의를 얻지 않고서는 그러한 중대한 일에는 한 걸음도 들어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 주십시오" 콜린즈 씨가 대답했다.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칠 수는 없어요. 영부인의 불쾌감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단 모험을 해보시지. 두 번 다시 우리 집안을 찾아오다가 영부인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있게 된다면 아무 그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댁에 가만히 있는 편이 좋을 것 같고 우리 집안 사람들은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정말 이러한 애정어린 호의에 마음 뿌듯함을 느낍니다. 허어퍼드셔에 체재 중에 저에게 베풀어 주는 여러 가지 호의와 지금 말씀에 대한 감사 편지를 틀림없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저의 친척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근간 다시 돌아오게 되므로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엘리자베드 양도 포함시켜 말입니다." 여자들도 제각기 적절한 인사말을 하고서는 물러 나갔지만, 그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는 한 사람 빠짐없이 놀라고 말았다. 베네트 부인은 그가 돌아오는 것은 다음 딸 중의 한 사람에게 구혼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메어리 같으면 설득해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메어리는 그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의 의견에는 종종 그녀를 감복시킬 만한 견실함이 있었다. 자기만큼은 현명하지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모범을 따르게 함으로써 독서를 시켜 향상하도록 북돋아 주면 매우 어울리는 배우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그러한 희망은 무산되어 버렸다. 아침 식사 후 루커스 양이 찾아와서는 엘리자베드와 단 둘이서 전날에 일어났던 일을 말했다. 콜린즈 씨 자신이 그녀의 친구와의 연애를 꿈꿀 가능성이 요 며칠 사이에 엘리자베드의 머리에 한 번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샬로트가 그것을 격려할 만한 용기가 있으리라는 것은 자기의 경우와 다름없이 도저히 있을 성싶지가 않았다. 따라서 그녀의 놀라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처음에는 예의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콜린즈 씨와 약혼했다구요, 샬로트 양, 있을 수 없는 일예요!" 전후 사정을 말하면서 루커스 양이 지금껏 지켜 오던 침착한 표정은 이렇게 정면으로 쏘아붙이는 말을 듣게 되자 순간 당황하는 빛을 띄었다. 하기에 전연 예기치 못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내 침착성을 되찾아서 예사롭게 대답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엘리자 양? 콜린즈 씨가 불행히도 당신과의 관계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여성의 호감을 받은 게 그렇게 안 믿어지세요?"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이제는 마음의 편안함을 되찾게 되었고 또 몹시 노력함으로써 사뭇 확고한 태도로 당신네가 결혼한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진심으로 기뻐할 일이며 가능한 모든 행복이 있길 빈다고 통고해 낼 수가 있었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점은 나로서도 이해가 가요." 그렇게 샬로트가 대답했다. "아마 놀랐을 거예요, 매우 놀랐을 거예요.... 극히 최근까지만 해도 콜린즈 씨가 당신과 결혼하길 원했으니까요. 그러나 나중에 시간을 둬서 생각하신다면 내 일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아시다시피 난 낭만적인 사람이 못돼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어요. 난 단지 안락한 가정이 필요할 뿐이에요. 콜린즈 씨의 성격과 연고관계나 지위를 생각할 때, 그분하고 들어서면서 자랑하게 되는 것만큼이나 확신할 수 있어요." 엘리자베드는 조용히 대답했다. "틀림없겠지요." 한참 동안 어색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은 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샬로트는 그다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드는 들은 이야기를 곰곰 되새겨 보았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두 번이나 결혼 신청을 한 콜린즈 씨에 대한 묘한 기분도 지금 와서 그 신청이 받아들여진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혼에 대한 샬로트의 의견이 자기하고는 같지 않다는 것을 평소에 느껴 왔던 터이지만, 세속적인 이익을 위해 보다 고상한 감정을 다 희생하면서까지 행동에 옳기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콜린즈 씨의 처로서의 샬로트는 너무나 굴욕적인 양 상태 외에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친구 스스로가 망신살이 뻗치고 이 편의 눈에 낮게 비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고통에 더하여, 그 친구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는 거의 행복해질 수가 없을 것이라는 슬픈 확신이 서는 것이었다. @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