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전6권 중 제1권 지은이: 제인 오스틴 옮긴이: 홍건식 도서출판 육문사 저자 소개 * 저자의 삶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1775년 영국 햄프셔주의 스트븐튼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으며, 생애의 절반이 넘는 26세까지 그곳에서 평원한 전원생활을 했다. 1801년 아버지가 목사를 그만두자, 가족은 당시 향락장이며 사교장의 중심이었던 바스(Bath)로 이사하여 그 후 5년동안 화려한 도시에서 살았다. 1805년 아버지가 죽자 경제적으로 어려워져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사우스 앰프으로튼(South ampton)으로 이사하여 거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1871년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그녀의 의사 가까이 윈체스터(Winchester)로 이사했으나, 마침내 42세의 일기로 그곳에서 죽었다. 그녀의 생애는 결코 엄숙하고 고독한 예술적 생애는 아니었으며, 또한 그녀는 전문 직업 작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이 2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애독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비길 데 없이 예리한 관찰력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그녀의 사실주의적 수법 때문이리라.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약점과 결점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그녀 자신이 호의와 애정을 쏟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조차 그녀는 결코 완전한 인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다운 우행을 연출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인간의 약점에 대해 결코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서 포용한다. 그녀가 묘사한 인간 세계에 특유한 빛과 조화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풍자적인 시각과 기지의 빛인 것이다. * 작가 연보 1775년 12월 16일 스티븐튼에서 태어나다. 1796년(21세) <첫 인상> 집필하다. 후에 <오만과 편견>으로 개제하다. 1797년(22세) 11월 <첫 인상>의 출판 거절당하다. <분별과 감수성> 집필하다. 1798년(23세) 8월 <노오생거 사원> 집필하다. 1801년(26세) 5월 스티븐튼을 떠나 바아스로 이사하다. 1803년(28세) <노오생거 사원>을 <수잔>이라는 이름으로 런던의 크로스비에 팔다. 1805년(30세) 1월, 아버지 조지 오스틴 세상을 떠나다. 1806년(31세) 바아스를 떠나 사우샘프튼으로 이사하다. 1809년(34세) 4월 <수잔>의 판권을 되사다. 사우샘프튼을 떠나다. 7월 초튼으로 옮기다. 1811년(36세) 10월 <분별과 감수성> 출판다. 1813년(39세) 1월 <오만과 편견> 출판하다. 1814년(39세) 1월 <엠마> 완성하다. 12월 <엠마> 출판하다. 1816년(41세) 7월 <설복> 완성하다. 8월 <설복>의 일부 다시 고치다. 1817년(42세) 1월 <샌디튼>를 쓰기 시작하다. 5월 윈체스터로 이사하다. 7월 18일 숨을 거두다. 7월 20일 윈체스터 사원에 잠들다. @ff (역자 소개) * 홍건식(번역 문학가) 193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사 기자, <여원> 편집장, <월간 광고> 주간 등을 역임했다. 역서로는 <유태인의 처세술> <인형의 집> <이솝 우화> 등 다수가 있다. @ff 이 책에 대하여 그의 생애는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있으며 이 시대는 영문학사상 소위 의고전주의문학 (Pseudo-classicism)에서 로만주의적인 경향으로 옮겨가는 가장 활발한 과도기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참신한 문학으로서 출세하려는 야심가들은 정도와 종류의 차는 있을지언정 또는 자연을 찬양하고 또는 감상적인 탐미주의에 흐르고 또는 중세에의 동경을 묘사하여 현실의 사회생활의 불안을 잊어버리려는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같이 현실을 떠나서 꿈과 관념의 세계를 갈망하는 요구가 밑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문학적 경향을 후세의 역사가는 로만주의 운동이라고 불렀다. 원래 이 경향은 서정시에 가장 많이 그 흔적을 남겨 놓았으나 소설면에 있어서도 18세기 중엽부터 공상을 만족시키는 작품과 사람의 공포본능을 자극하여 격정을 선동하는 소설이 유행했다. 이 경향은 로만주의 운동이 통속화됨에 따라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면 이 시대의 조류와 제인 오스틴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확실히 제인은 자연의 초목과 경치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문학적으로 다룰 때는, 자연은 주로 작중인물의 움직임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오히려 일종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제인의 자연묘사에는 거의 감정이 들어 있지 않다. 제인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야기 줄거리나 풍경이 목표가 아니라, 늘 작중인물의 정밀하고도 정확한 성격묘사가 주안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제인은 대중 없이 중세의 세계를 동경한다든지, 병적인 감정에 흐르기 쉬울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유행적 심리를 비웃고 있다. 그의 전작품에 흐르고 있는 독특한 정서는 절대로 생경하게 또는 무절제하게 방산되는 법이 있다. 이 점은 로만파 아류와는 정반대이다. 이와 같은 관찰에서 제인 오스틴을 고전파 작가라고 보는 이들이 많은데 영문학사를 저술한 까자미앙 씨도 제인을 로만파 이전의 고전적 부류에 넣고 있다. 그러나 그들 새 시대와 호흡을 맞추지 않는 작가라고 단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면 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초월했기 때문에 오늘날 역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고 볼 것인가? 이러한 생각도 많은 오스틴 찬미자들의 취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라는 극시인도 그 시대 정신과 분리시켜서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인 오스틴도 그 시대와 호흡이 일치되는 데서 그의 특색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로만적은 아니지만 역시 19세기 초엽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곧 평범 속에서 인간적 흥미를 발견하고 정적인 활력을 자아내는 방법인 것이다. 우리는 이따금 선동적인 흥분, 영웅적 모험, 또는 파란중첩한 사건을 좋아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꿈의 세계이며 그 작의를 알게 되는 순간 권태를 느끼게 되는 법이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 주변의 것, 일상적인 인사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그 속에서 다른 데서는 느끼지 못하던 의의를 발견하는 것이다. 거기에 리얼한 무엇이 싹트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은 화려한 도시의 사교계를 멀리하고 (그의 일생을 독신으로 보냈다) 시끄러운 문단 생활도 몰랐지만 극히 좁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로부터 소재를 발견하면서 일견 평범한 성격의 언행을 진지하게 묘사해 가는 가운데서 그의 독특한 상념이 발전해 간 것이었다. 그의 소설을 응접실소설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작품이 가정의, 즉 응접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는 데서 생긴 말이지만, 당시의 중상층 계급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소음악회와 우인 친척간의 파티 또는 소풍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제인의 소설도 그러한 환경의 요구에서 씌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플롯이 있기는 하나 플롯 대신에 작중인물이 끌려다니는 것 같은 무리는 없다. 오히려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어떠한 결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결말은 대개의 경우 결혼이다. 일생을 결혼이라는 체험을 해보지 못한 그에게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운명적인 조건이며, 인생의 모든 방향은 조만간 결혼의 목표를 향하여 집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 결혼이라는 종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리얼한 생활을 발견했다. 소위 리얼한 생활이라는 것은 과학적 내지 철학적으로 규정한 심각한 것을 의미하는 아니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어 가는 동안에 평온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곧 일종의 서명의 실감인 것이다. 즉 우리 체험 가운데 살아 있는 생명의 흐름이 그의 작품의 흐름과 합류하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필시 영국 사람이 좋아하는 휴머라는 것은 이러한 심경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오만과 편견"은 "첫 인상"이라는 제명으로 1796년에 집필을 시작했으나 다음해 모 출판사가 그 출판을 거부하자 이를 개정하여 1813년에 출판했다. 성격묘사의 날카로운 예지, 인간 희극을 묘사하는 작가적 기능의 탁월함을 이 작품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드야말로 작가 자신의 변신이며 이상이며 따라서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사랑의 테마인 것이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자에게 아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이다.' 이 진리에 가장 민감한 것이 베네트 부인이었다. 롱본이라는 벽촌에 자리잡은 베네트 가에는 베네트 씨 부부와 딸 다섯 자매가 있다. 베네트씨는 상당한 연배로서 이따금 농을 섞어가며 곧잘 비꼬는 성질이나 바탕은 온화한 사람이다. 맏딸 제인과 둘째딸 엘리자베드는 시집갈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항상 그들의 혼인만을 생각한다. 마침 근처의 네더필드라는 저택에 독신 청년 빙리가 들게 된다. 그의 매년 수입은 4, 5천 파운드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솔깃한다. 이윽고 빙리 씨를 환영하는 무도회가 이 마을에서 열린다. 마을의 처녀들이 총출동하고 빙리는 런던에서 한패를 데리고 참석한다. 그의 일행은 빙리 이외에 그의 자매, 손위 매부, 그리고 빙리의 친구 다아시 모두 다섯 명이었다. 빙리는 의젓하고 인상이 좋은 청년이며, 그의 누이동생도 미인이다. 매부인 허어스트 씨는 평범한 신사로서 마을 여자들의 화제에도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가 나타나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키가 크고 당당한 미남자로서 일 년 수입 1만 파운드라는 것까지 알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의 태도는 거만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깔보는 것 같다는 평판이 나돈다. 특히 베네트 부인과 그의 둘째딸 엘리자베드는 그의 거만한 태도에 화를 낸다. 그러나 제인은 빙리의 눈에 띄어서 여러번 춤을 같이 춘다. 그러자 이 무도회가 끝나고 얼마 안되어 네더필드에서 제인에게 놀러 오라는 초대장이 온다. 본인보다도 어머니가 더 기뻐서 날뛴다. 그리고 제인이 네더필드로 간 뒤 비가 와서 하룻밤이라도 묵게 되기를 바란다. 사실로 제인은 비를 맞아 감기가 들었다는 소식이 온다. 엘리자베드는 걱정이 되어 빙리 집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 집 사람들은 엘리자베드의 용감을 오히려 냉소하는 편이었다. 거만한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의 기질에 놀라기도 하고 통쾌한 감정도 품는다. 그런데 다아시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빙리의 누이동생 캐럴라인은 다아시의 누이동생을 올케로 삼으려는 심산이다. 그래서 두 남자가 베네트 집 딸들과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와 같이 다아시가 차츰 엘리자베드의 아름다움에 끌려가는 것을 방해하는 캐럴라인에 대해서 언제나 냉정한 다아시의 태도, 조금도 굽히지 않는 엘리자베드의 반격 등 통쾌한 희극적 장면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그런데 이 다아시라는 청년은 런던의 재산가의 아들로서 귀족적으로 자라났기 때문에 오만한 태도가 남아 있다. 그래서 그는 엘리자베드나 제인에게는 호의를 가질 수 있었으나 그들의 부모의 속됨을 싫어한다. 이즈음 먼 친척이 되는 콜린즈라는 젊은 목사가 찾아온다. 그는 아들이 없는 베네트 가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이다. 그는 레이디 캐더린 버그라는 파트론의 알선으로 조그만 목사의 녹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이 청년은 몹시 경박한 사람이라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이 집 딸 중의 한 명과 결혼해 주겠다는 것이다. 베네트 부인은 그 제의에 맞장구를 치고 엘리자베드를 설득시키려고 한다. 콜린즈는 엘리자베드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용감하게 결혼 신청을 한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일축해 버린다. 콜린즈는 예기했던 것이 틀려지자 샬로트 루커스라는 처녀와 결혼해 버린다. 샬로트는 엘리자베드의 친구로서 결혼에는 이렇다 할 의견이 없는 여자이다. 한편 엘리자베드의 동생들은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오가고 있었는데 그 군인 중에 위컴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위컴은 명랑한 성격인 데다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해서 엘리자베드도 다소 호의를 품게 된다. 그러자 위컴은 다아시와 가까운 사이며 다아시의 냉대로 불행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위컴 자신으로부터 듣게 된다. 원래 의협심이 있는 엘리자베드는 더욱 다아시를 미워하게 되고 위컴을 동정한다. 그런데 콜린즈의 아내가 된 샬로트로부터 자기들의 새살림을 와서 보라는 청을 받아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엘리자베드는 그들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레이디 캐더린도 만나게 되고 그의 딸을 조카인 다아시의 아내로 만들려는 계획도 알게 된다. 그런 관계로 다아시도 이곳을 방문하게 되어 어느날 엘리자베드는 우연히 다아시를 만나게 된다. 그러자 제인에게서 빙리를 만나지 못하는 쓸쓸함을 적은 편지가 왔기 때문에 더욱 다아시를 미워한다. 사실은 빙리와 제인의 사이를 떼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에게 결혼 신청을 한다. 남자 쪽에서는 자기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은 억울하지만 사랑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며 당연히 엘리자베드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태도였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통쾌하게 이를 거절한다. 동시에 제인으로부터 빙리를 떼어놓은 것, 위컴을 냉대한 것을 들어 다아시를 비난한다. 그후에 위컴은 엘리자베드의 동생 리디어와 도망을 친다. 다아시는 위컴의 모든 비행을 편지로 자세히 설명하고 오해를 풀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도망친 것까지 알게 되자 그들을 찾아가서 모든 뒷처리를 해준다. 이와 같이 다아시의 타고난 거만스럼도 참된 사랑에 굴복하여 엘리자베드에게 성의를 보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비로소 사랑을 맺게 된다. 그리고 제인도 빙리와 결혼하게 된다. 대체로 이 작품에는 제각기 특색 있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의 성격이 간결하고 대담하게 묘사돼 있다. @ff 1 많은 재산을 모은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진리이다. 이런 남자가 처음으로 이웃에 옮겨오게 되면,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떻고 생각이 어떠한가를 동리 사람들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더라도, 이 진리는 주위 사람들 마음 속에 꽉 자리잡고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되어, 자기네 딸 중의 누군가가 그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어느 날 베네트 부인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여보, 네더필드 저택에 결국 사람을 들이기로 한 것 같은데 그 얘기 들으셨어요?" 베네트 씨는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틀림없다는가 봐요, 롱 부인께서 방금 다녀가셨는데 그 말을 하시더군요." 부인도 맞받아 말했다. 베네트 씨는 대꾸는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들게 되었는지 당신은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아내는 더 조바심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들려 주겠다는데, 왜 난들 듣지 않겠소?" 이 정도면 충분히 구미가 당긴 말이었다. "글쎄 들어 보세요, 당신도 알아두셔야 하니까요. 롱 부인 말로는, 네더필드에 들게 된 사람은 북 잉글랜드 출신의 청년으로 꽤 부자라나 봐요. 월요일에 사두마차를 타고 와서 집을 둘러보고서는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모리스 씨와 결정을 보았다는 거예요. 미가엘제(9월29일) 전에 들 예정이고, 하인 몇 사람은 내주 말까진 오게 돼 있나 보죠" "이름이 뭐랍디까?" "빙리래요." "결혼을 한 사람인가, 그렇지 아니면 독신인가?" "독신이에요. 여보! 재산이 많은 독신인데다가, 일 년에 4, 5천 파운드. 우리 애들에겐 꼭 어울리는 사람이란 말예요!" "어떻게 해서 그렇다는 거지? 그게 우리 애들에게 어쨌다는 거요?" "정말 딱하신 분이세요,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있어요! 그 사람하고 우리 집 애하고 연분을 맺게 했으면 하는 제 생각을 당신은 알아 주셔야 하는 거예요." "그런 속셈으로 이사를 온답디까?" "속셈이라뇨! 그런 말씀 마세요.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실까. 그렇지만 우리 애들 중의 누구 하나를 사랑하게 될 공산도 없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오는 대로 당신이 방문해 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할 필요가 어디 있소. 가려면 애들 데리고 당신이나 가보도록 해요. 아니면 애들만 보내면 될 게 아니오.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소. 당신은 애들만큼이나 예쁜 사람이니까. 혹시 빙리란 청년이 당신을 제일 좋아하게 될지 누가 알겠소." "아이구 망측해라. 이래도 저도 한때는 누구 못지 않은 미인이었지만, 이제는 잘난 체할 입장이 못되거든요. 다 자란 딸자식을 다섯씩이나 거느린 여자가 예쁘니 뭐니 하는 생각은 다 그만둬야지요." "그런 경우에 예쁘고 어쩌고 할 게 뭐 있소?" "하지만 여보, 그 청년이 이웃에 오면 당신이 꼭 방문해서 인사를 나눠야 해요." "약속은 못하겠는데" "그렇지만 우리 애들 생각을 하셔야죠. 그 애들 중 누구하고 인연이 맺어진다고 생각해 보란 말이에요. 정말 윌리엄 루커스 경과 부인께선 그런 이유로 방문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에요. 아시다시피 그분들은 새로 왔다고 해서 찾아가는 그런 분들이 아니거든요. 정말 당신이 가셔야 하는 거예요. 당신이 안가신다면 제가 그 애들하고 간다는 건 정말 엄두도 못 낼 일이니까요." "당신은 지나치게 겸손하군 그래. 내 생각 같아선, 빙리 씨는 여자들끼리 오는 것을 더 좋아할 것 같은데. 내 편지 한 장을 써서, 우리 애들 중에서 누구든 선택해서 결혼하게 되면 아무 이의 없이 승낙하리라는 내 뜻을 정확히 전하도록 할 테니까. 리지(엘리자베드)에 대한 칭찬을 꼭 한마디 써넣어야겠어." "제발 그런 짓은 그만두세요. 리지가 다른 애들보다 어디가 괜찮아요, 글쎄. 사실 제인의 반만큼도 예쁘지가 못하고 리디어의 반만큼도 상냥하지가 못해요. 그런데도 당신은 리지만 내세우시니까 말이에요." "원 애들이라고 하나같이 이렇다 할 점이 있어야지." "우리 애들이 어느 계집애들처럼 한결같이 못나고 무식하단 말야. 그런데 리지만은 형제들 중에서 제일 예민하거든" "여보, 어쩌면 당신은 제 자식들 흉을 그렇게 하시기예요! 재미가 있어서 절 놀리시는 모양인데요. 저의 약한 신경을 손톱 만큼도 생각 안해 주시는군요." "그건 오해야, 당신 신경을 굉장히 아끼고 있단 말요. 나에겐 옛 친구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적어도 20년 동안 당신이 신경 얘길 할 때마다 각별히 고려를 해가며 말하는 것을 들었소." "아, 제 고통이 어떤가는 당신이 잘 모르실 거예요." "그러나 당신이 그 고통을 극복해서 매년 4천 파운드의 청년들이 이웃에 많이 와서 살아 줬으면 좋겠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당신께선 그들을 찾아가실 분이 아니시니까, 스무 명이 와 산대도 아무 소용 없겠어요." "그때 돼 봐야 알게 되는 거요. 스무 명이 와 보시오, 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찾아가고 말 테니까." 베네트 씨는 워낙 기민한 재주와 풍자적인 기질과 신중함과 변덕장이의 혼합체였었기 때문에 23년을 함께 살아온 부인으로서도 그의 성격을 이해하기란 힘든 처지였다. 반면에 부인의 마음을 알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은 이해력이 부족하고 지식이 많지 못한데다가 변덕이 심한 여인이었다. 무슨 불만이 생기게 되면 그것 때문에 고통스럽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평생에서 중요한 사업은 딸들을 출가시키는 일이며, 낙이 있다고 한다면 남의 집을 방문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나누며 지내는 것이었다. @ff 2 베네트 씨는 빙리 씨를 맨 처음 방문한 사람들 중에 끼여 있었다. 베네트 씨는 빙리 씨를 찾아가겠다고 항상 마음먹고 있었지만, 부인에게만은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문한 그날 저녁때까지도 부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냈다. 그때서야 다음과 같은 식으로 해서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때마침 둘째딸이 모자 장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는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 "리지, 그 장식이 빙리 씨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어떤 것이 그분의 마음에 들게 될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군요, 어디 한번이라도 찾아간 적이 있어야 말이죠" 어머니가 원망스럽게 말했다. "그분하고 무도회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요. 게다가 롱 부인께서 소개해 주기로 돼 있는 사실을 엄마는 잊고 계시나 봐" 그렇게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롱 부인은 그런 일을 해주실 분 같지가 않구나. 당신의 조카딸도 둘씩이나 있으니까 말이다. 이기적인데다가 겉치레를 좋아하는 분이시니까, 난 그분을 안 믿기로 했다." "나 역시 그래. 임자가 그분의 폐를 안 끼치겠다니, 정말 기쁜 일이군" 베네트 부인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으나 참다못해 딸 아이를 꾸짖기 시작했다. "얘 키티야, 제발 기침 좀 하지 마라! 내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 다오. 갈기갈기 찢어 놓는 기분이구나" "키티는 기침할 때 분별이 없구나, 꼭 중요한 시간에 하니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말했다. "누구는 심심해서 기침하나요, 뭐" 키티는 뾰로통하게 대꾸했다. "다음 무도회는 언제지, 리지 언니?" "2주일 후야." "아 그랬어, 그러니까 롱 부인께서는 그 전날까지 못 돌아오시게 되니까, 당신께서도 모르고 지내는 처지고 보면 더욱 소개를 시켜 줄 입장이 못되시겠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그렇다면 당신이 술수를 써서라도 빙리 씨를 그분에게 소개하도록 해요." "안될 말씀이에요, 여보.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인데. 왜 사람을 자꾸 놀리시기만 하세요?" "당신의 신중함에는 그저 머리가 숙여지는구료. 하긴 2주일 정도의 교제로는 좀 부족하지. 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기엔 2주일 정도로는 안되는 법이니까. 그러나 우리 쪽에서 먼저 손쓰지 않으면 딴 사람이 손댈 것이 아니겠느냐 그 말이요. 그리고 롱 부인과 조카가 그런 기회를 엿보게 되거든, 그럴 경우 롱 부인은 얼마나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하겠소. 그러니까 당신이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나서야 할 형편이란 말요." 딸들은 아버지를 주시했다. "당치 않은 일이야, 당치 않은 일이야!" 베네트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떡하자는 거요, 그렇게 큰소리만 치고 있으니! 그래 당신 생각엔 사람을 소개하는 절차라든가 형식의 중요성이 별것 아니란 말요? 그 점에 있어선 찬성을 못하겠소. 메어리, 네 생각은 어떠냐? 넌 본래부터 생각이 깊은데다 좋은 책도 많이 읽고 때때로 필요한 부분은 적어 두기도 하는 애니까." 메어리는 아주 재치 있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메어리가 생각을 가다듬고 있는 동안, 본론에 돌아와서 빙리 씨 애기나 하자꾸나"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욕지기가 날 지경이에요." 이번에는 부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유감인데, 진작 그런 말을 했어야 옳은 일인데. 오늘 아침에 그런걸 알기나 했던들 절대로 그를 찾지 않았을 것이야. 공교럽게도 그를 찾아간 이상은 지금 와서 교재를 끊을 수도 없게 됐구먼" 여자들의 놀라움은 그가 바라던 대로 들어맞았다. 그 중에서도 베네트 부인의 놀라움이 더 컸다. 흥분이 가라앉게 되자, 부인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언명하기에 이르렀다. "여보, 당신 참으로 좋은 일을 하셨구료. 언젠가는 당신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죠. 애들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분이 이런 교제를 무시하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전 정말 기뻐요! 더우기 아침에 다녀오셨는데도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하시다니 너무하셨지 않아요." "키티야, 이젠 너 편할 대로 기침을 하도록 해라." 베네트 씨가 말했다. 그러나 좋아 날뛰는 부인 눈꼴이 사나왔던지 말을 하면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문이 닫히자 부인이 입을 열었다. "얼마나 훌륭하신 아버지시냐, 애들아! 아버지의 호의를 너희들이 어떻게 다 갚을 수 있느냐. 나도 그렇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매일 새 사람을 사귄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이 못되느니라. 그러나 너희들 때문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얘, 리디어, 넌 제일 어리지만, 이번 무도회 땐 빙리 씨가 너랑 춤을 추게 될 거다." "어머! 난 조금도 두렵지가 않단 말예요! 나이는 제일 어려도 그 대신 키는 제일 크니까 말예요." 그날 밤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그가 얼마나 빨리 베네트 씨의 방문에 대한 답례차 그들을 찾아올 것인가 예측도 해보고, 언제쯤 그를 만찬회에 초청할 것인가를 결정해 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ff 3 베네트 부인은 다섯 딸들의 도움을 받아 그 문제에 대해 여러 형태로 물어 보았으나, 빙리 씨에 대한 흡족한 설명을 남편에게서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노골적인 질문을 비롯해서 교묘한 가정과 나아가 몇 살인가 예측 등, 여러 가지 공세를 펴보았으나, 이러한 많은 술법들을 그는 재치 있게 받아 넘기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들 이웃에 사는 루커스 부인의 간접적인 조언을 받아들일 수박에 방법이 없었다. 정작 루커스 부인의 조언은 좋은 편이었다. 윌리엄 경은 그가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새파랗게 젊은 데다가 매우 미남이요, 게다가 상냥스럽기 그지없고, 뿐만 아니라 이번 무도회 때는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나온다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무도회를 좋아한다는 것은 한 걸음 나아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뜻이므로, 빙리 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는 강한 희망을 품었다. "어떤 애건 네더필드에서 행복하게 사는 걸 볼 수만 있다면, 다른 애들도 그와 같이 시집을 잘 가게 될 수 있을 테니까, 그 이상 무엇을 바랄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베네트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2, 3일 후, 빙리 씨가 베네트 씨의 방문 답례차 찾아와 서재에서 십 분 가량 머물렀다. 그는 일찌기 들어서 알고 있던 미인인 딸들을 만나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찾아왔었지만, 정작 만난 사람은 그들의 아버지였다. 여자들 편이 더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2층 창문에서 그가 푸른색 코트를 입고 검은 말을 타고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곧 파티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냈으며, 베네트 부인은 벌써부터 자기 살림 솜씨를 보여 줄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을 때 공교럽게도 연기한다는 답장이 날아들었다. 빙리 씨는 다음날 런던으로 가야 하므로 따라서 모처럼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운운하는 내용이었다. 베네트 부인은 크게 당황했다. 허어퍼드셔에 당도하자마자 곧바로 런던에 볼 일이 생기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고, 여기저기 쏘다니기만 하는 것으로 미루어 정작 머물러 있어야 할 네더필드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런던으로 가는 일은 결국 이번 파티에 참석시킬 많은 사람을 초청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러주는 루커스 부인의 말로 다소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빙리 씨는 열두 명의 숙녀와 일곱 명의 남자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다. 딸들은 그렇게 많은 여자를 데리고 온다는 것을 한탄했으나, 무도회 그 전날, 열두 명이 아니라 자매 다섯 명과 사촌 한 명 모두 합해 여섯 명만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듣고 우선 위안이 되었다. 막상 그들이 회장에 들어섰을 때는 전부 다섯 명 뿐으로 빙리 씨, 그의 두 자매, 큰매부,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청년 뿐이었다. 빙리 씨는 호남아이며 신사다왔다. 그는 명랑하고 여유 있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의 자매는 세련된 여성들로서, 나무랄 데가 없는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그의 매부 허어스트 씨는 그저 신사다와 보였지만, 그의 친구 다아시 씨는 큰 체구와 수려한 용모, 품위 있는 태도와 더불어 일 년에 1만 파운드란 소문이 그가 들어서서 5분이 못되어서 좌중에 퍼져 나가 주목을 끌게 되었다. 남자들은 입을 모아 그를 위풍당당한 멎진 사나이라 칭찬했고, 여자들은 빙리 씨보다 휠씬 더 멋지다고 말했다. 그날 밤중까지는 대단한 찬미의 대상이 되었으나, 얼마 안가서 그의 불쾌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비쳐서 이내 그의 인기는 떨어지고 말았다. 거만한데다 남과 어울려 즐기기를 싫어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더비셔에 막대한 토지가 있다고 하지만, 가까이하기가 꽤나 어렵고 불쾌한 용모를 가졌기 때문에 그의 친구와는 상대가 못된다는 이유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빙리 씨는 이윽고 회장의 주된 인물들과 가까와졌다. 그는 발랄하고 가식이 없으며, 매회마다 춤을 추었고, 무도회가 너무 빨리 끝났다고 화도 내고, 자기도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런 온화한 성격은 남의 눈에 꼭 띄게 마련이다. 그 친구와는 너무나도 대조가 된다! 다아시 씨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과 꼭 한 번씩 춤을 추었을 뿐 끝내 다른 여자에게 소개받기를 싫어하고, 그날 밤 방안에 돌아다니며 이따금 동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넬 정도였다. 그의 성격은 금방 드러나 버렸다. 세상에서 둘도 없이 거만한 존재요 불유쾌한 인물이어서 두 번 다시는 와 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모든 이의 공통된 희망이었다. 그 중에서 반발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은 베네트 부인으로, 그의 모든 행동도 싫은데다가 딸 중의 한 사람을 무시한 것이 더욱 더 그녀를 분노케 했다. 엘리자베드는 남자 수가 적어서 두 번이나 춤을 못 추고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다아시 씨가 그녀 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와 빙리 씨가 나눈 대화를 엿들을 수가 있었다. 빙리 씨는 춤을 멈추고 친구에게 춤을 추도록 권하기 위해 그에게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서, 다아시. 자네 춤 솜씨를 내 눈으로 봐야겠어. 이렇게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는 자네를 난 못보겠단 말야. 신나게 춤추는 게 좋아" 그렇게 빙리가 말했다. "그만두겠네. 파트너가 누군지도 모르고 춤추는 걸 싫어하는 내 성미 자네는 알 텐데 그래. 이런 무도회에서 춤춘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거든. 자네 누님들은 선약이 있겄다, 다른 여자들하고 춘다는 건 나에게 벌주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 되네"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지 말게,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오늘밤만큼 유쾌한 여자들을 만난 적도 별로 없었다니까. 아주 예쁜 여자들도 몇 사람 있는데 그래" "자넨 이 방안에서 제일 예쁜 여자하고만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냐" 다아시 씨는 맏딸 베네트 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저런 미인은 보기 드물 거야! 하지만 자네 바로 뒤에 그 여동생이 한 사람 앉아 있네. 얼마나 예쁘다고 그래. 상냥하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거든. 내 파트너한테 소개를 부탁해 보겠네" "누구 말인가?" 그는 잠시 동안 엘리자베드를 보다가 시선이 부딪치자 시선을 돌리고 냉랭하게 말했다. "그만하면 됐군. 하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로 예쁘지가 않은데. 지금은 난 다른 남자들에게 딱지 맞은 여자들을 관심 갖고 싶은 생각은 없네. 내 걱정 말고 자네나 파트너한테 가서 즐거운 시간을 갖게나. 나하고 같이 있으면 시간만 손해 보게 된다구" 빙리 씨는 그의 충고대로 따랐다. 다아시 씨는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엘리자베드는 그에 대해 유쾌한 기분을 안가진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과 짐짓 명랑하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발랄하고 장난기 기질이 있어서 우스꽝스런 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은 가족 전체가 즐거운 밤이 되었다. 베네트 부인은 자기 맏딸이 네더필드 사람에게서 칭찬을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빙리 씨는 두 번씩이나 그녀와 춤을 추었고 빙리 씨 자매들이 잘 위해 주고 있었다. 제인은 온화한 편이긴 했어도 어머니나 다름없이 만족했다. 엘리자베드는 제인의 기쁜 모습을 알아차렸다. 메어리는 자기가 이 근처에서 제일 교양 있는 여자라고 누군가가 빙리 양에게 말하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캐더린과 리디어는 다행스럽게도 파트너가 부족하지 않았으나 아직까지는 무도회에서 그런 일을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명랑한 기분으로 자기들이 살고 있는 롱본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이 마을의 필요한 주민이었다. 집에 와 보니 베네트 씨가 아직 자지 않고 있었다. 손에 책만 쥐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위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밤이었던만큼 그 결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즉 새로 이사온 그 사람에 대한 자기 아내의 기대가 어긋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베네트 부인이 방에 들어서며 말했다. "아, 여보, 이렇게 즐거운 밤이 또 어디 있겠어요, 무도회도 썩 훌륭했구요. 당신도 가셨으면 좋을 뻔했어요. 우리 제인은 너무너무 인기였지요. 모두들 너무나 예쁘다고 야단들이었어요. 빙리 씨도 예쁘게 보았던지 두 번이나 춤을 췄거든요. 생각해 보시구료. 정말 그애하고 두 번이나 춤을 췄다니까요. 그분이 두 번이나 춤을 청한 사람은 우리 애뿐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루커스 양에게 청하더군요. 그 여자하고 서 있는 걸 보고서 마음이 안좋았지만 결국 그 여자가 아니었어요.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을 리 없었죠. 제인이 차례차례 교대해 가며 추는 것을 보고 그분은 매우 놀란 것 같습디다. 우리 애를 누구냐고 묻더니 소개받게 되자 두 번이나 춤을 추었던 거예요. 다음에는 킹 양 하고 추고, 또 이어서 마리아 루커스양, 다시 그애 차례가 됐어요. 그리고 리지, 불랑제 춤은...." 남편은 짜증이 난듯 끼여든다. "그 친구 나한테 동정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절반도 추지 않았어야 했었는데 말요! 제발 파트너 얘긴 그만두도록 해요. 차라리 처음 출 때 복사뼈라도 삐었으면 좋을 뻔했거든!" 베테트 부인이 계속 말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제 마음에도 꼭 들었거든요. 얼마나 잘생겼다구요! 그분 자매들도 매력이 있읍디다. 그분들의 의상만큼 우아한 것을 여태까지 저는 보질 못했다니까요. 그런데 허어스트 부인의 가운 레이스야말로...." 여기서 그녀는 또다시 저지를 당했다. 베네트 씨는 어떤 의상에 대한 이야기도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화제를 다른 데서 찾아야 했으므로 다아시 씨의 좋지 못한 점을 못마땅하다는 듯 과장되게 말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할 수 있을 성싶어요. 리지가 그 사람 마음에 안들었다 해서 별로 손해 볼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유쾌하고 지겨운 존재인데다가 반갑지 않은 인물이란 말예요. 어찌나 콧대가 세고 잘난 체하는지 어디 눈뜨고 봐줄 수가 있어야조! 혼자서 우쭐해 가지고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말예요! 춤 상대가 될 만큼 잘생긴 남자도 못되면서! 당신이 거기에 계셨던들 당신 방법으로 한 번 멋지게 콧대를 꺾어 주실 수 있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은 꼴도 보기 싫어." 그녀는 덧붙여서 말했다. @ff 4 제인과 엘리자베드만 단 둘이 남게 되자, 그때까지 빙리 씨 칭찬을 조심해 오던 제인이 자기가 얼마나 빙리 씨를 사모하고 있는지를 동생에게 말했다. 제인이 말했다. "정말 그분은 청년으로선 전형적인 분이셨어. 똑똑하고 명랑하고 쾌활하신 분야. 나는 그렇게 훌륭한 분을 아직껏 보지 못했단 말야.... 그토록 부드럽고 나무랄 데 없는 품격을 지녔거든!" "게다가 미남자가 아니우" 엘리자베드가 대답했다. "젊은 사람이면 이왕에 그 정도 미남자는 돼야지. 그분의 성격은 만점인 편이구" "두 번째 춤을 추자고 청했을 땐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 그런 영광이 나에게 올 줄은 기대를 않했거든" "그래? 나는 언니를 위해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점이 우리 두 사람의 다른 점예요. 언니가 그런 반가운 말을 들으면 놀라겠지만 나는 꼼짝도 않거든요. 두 번 청한 것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수? 그 방에 있던 여자들에 비하면 언니는 그분 눈에는 다섯 배나 예쁘게 보였을 거예요. 그 정도의 공대를 받고 뭘 그러세요. 그러나 어쨌든 그분은 상냥스럽기는 해요. 언니가 그분을 좋아하게끔 허락을 내리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을 언니는 좋아했었지, 언니는...." "얘는!" "정말 언니는 너무나 쉽게 좋아한다니까. 남의 결점이 전혀 눈에 띄질 않는 모양이야. 온 세상이 착하고 기분 좋게만 보여지는가 봐. 언니가 남을 욕하는 것을 여지껏 들어본 일이 없거든요." "난 서둘러 남의 욕을 않길 원해. 그렇지만 난 언제나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야." "그건 나도 알아. 바로 그 점이 이상하거든. 언니같이 분별 있는 사람이 남의 어리석은 점이나 못난 짓을 그렇게 어수룩하게 몰라보다니! 솔직함을 가장하는 건 흔해빠진 짓이구(그런 건 어딜 가나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겉치레나 속셈이 없는 솔직함) 다시 말해 남의 성격의 좋은 점을 취해서 더욱 좋게만 말하고 나쁜 점은 아예 눈을 감아 버리는 그런 짓은 언니나 할 짓이에요. 그래서 언니는 그분의 누님들까지 좋아졌다 그거죠? 누님들 태도는 그분만큼은 못했단 말예요." "하긴 그랬어.... 처음엔. 하지만 말을 건네보면 매우 상냥스럽다는 걸 알게 돼. 빙리 양은 오빠를 모시고 생활하고 있나 보더라. 그런 사람이 좋은 이웃이 되는 걸 모른다면 이쪽의 잘못이야." 엘리자베드는 잠자코 듣고 있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질 않았다. 무도회에서의 빙리 자매의 말과 행동은 대체로 마음에 드는 편은 못되었기 때문이다. 언니보다 관찰이 예민하고 좀처럼 꺾일 줄 모르는 기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추켜세운다고 해서 판단을 그르치거나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로선 도저히 그들을 칭찬할 계제가 못되었다. 사실 그들은 훌륭한 여자들이었다. 기분이 좋을 땐 아주 싹싹해지고, 마음만 먹으면 상냥스러워질 수도 없지 않으나,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미인축에 들며 런던의 일류 사숙에서 교육을 받았고, 2만 파운드 가량의 재산도 있으며, 지나치게 돈을 써 가며 지체 높은 사람들과 교재를 한다. 그런 결과로 자기네들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고 남을 얕보는 것이 있다고나 할까. 원래 영국 북부의 좋은 가문 출신으로 그러한 환경이 그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 있었다. 실은 그들 동기간의 재산은 상업으로 얻어진 것이다. 빙리 씨는 아버지한테 거의 10만 파운드 가량의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토지를 살 생각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빙리 씨도 같은 뜻을 품고 때때로 장소 물색을 해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집에 살고 있고 장원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형편이므로, 그의 안이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네더필드에서 여생을 보내고 토지 구입은 다음 세대에 미룰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자매들은 그가 자신의 토지를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세들어 사는 것이라 하더라도 빙리 양은 그의 살림을 돌봐 주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재산가라기보다는 상류층 사람에게 결혼한 허어스트부인까지도 자신에게 편리하다면 친정 동생 집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는 점에서는 누이동생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빙리 씨가 우연한 기회에 권유를 받아서 네더필드 집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그가 성년이 되어 2년이 채 못되었을 때였다. 반 시간쯤 그 집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그 환경이나 주요한 방들이 마음에 들었고, 소유자가 집 자랑을 하는 바람에 당장 빌은 것이다. 그와 다아시 사이는 성격이 정반대인데도 굳은 우정으로 맺어져 있었다. 빙리는 그의 태연함과 솔직한 점, 그리고 유순한 점 등으로 해서 다아시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고 다아시 자신의 기질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었고, 더우기 다아시는 자신의 기질에 대해 크게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빙리는 다이시의 강한 우정에 그를 한껏 믿었고, 그이 판단력을 최고로 존중하고 있었다. 이해력 면에서는 다아시가 앞서고 있었다. 빙리도 이해력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다아시는 예민한 편이었다. 동시에 그는 도도하고 말 수가 적고 까다롭고 교양 있게 자라기는 했으나 사람을 끄는 데가 없었다. 이점에 있어서는 그의 친구가 훨씬 나았다. 빙리는 어딜 가나 환영을 받았고, 그 반면에 다이시는 항상 남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메리튼의 파티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들의 특징을 소상하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빙리 쪽은 그토록 쾌활한 사람들과 예쁜 여자들을 본적이 없다 했고, 누구에게나 격식을 차리지도 않고 전혀 딱딱하지 않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좌중의 사람들하고는 금방 친해질 수가 있었고, 베네트 양에 관해서는 그렇게 아름다운 천사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다아시에게는 정반대로 아름다운 것은 찾아보기 힘들고 품위도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 누구에게도 흥미를 갖지 못했고, 대접이나 즐거움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베네트 양이 예쁜 것은 사실이나 웃음이 헤퍼 보였다. 허어스트 부인과 그의 동생도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녀가 마음에 들어 더욱 가까이해서 알고 지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베네트 양은 귀염둥이로 통하게 되었고 빙리는 그러한 추천을 받게 된 이상은 앞으로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도 괜찮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ff 5 롱본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베네트 가족들과 특히 가까이 지내는 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윌리엄 루커스 경은 한때 메리튼에서 상업에 종사했다가 상당한 재산을 모아서 시장까지 지내다가 국왕에게 청원해서 기사의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 영예가 어떻게 크게 작용했던지 상업을 계속하면서 작은 도시에서 사는 게 싫어서 툭툭 털어버리고 메리튼에서 일 마일쯤 떨어져 있는 루커스 집으로 가족과 함께 옮겨갔으며, 거기서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마음껏 즐기고 상업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많은 사람들에게 정중히 대했던 것이다. 지위가 있어서 도도하게 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사람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정중했다. 선천적으로 되바라지지가 않고 정이 깊으며 남을 잘 돌봐 주기도 했는데, 세인트 제임즈 궁전에서 배알을 한 후부터는 더욱 정중한 이가 되었다. 루커스 부인은 매우 선량한 부인으로서 지나치게 약삭빠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메네트 부인의 소중한 이웃이 될 수 있는 점이었다. 루커스 경 부부 사이에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스물 일곱 살쯤 되는 맏딸은 분별 있고 총명하며 엘리자베드의 친구였다. 루커스 집안의 딸들과 베네트 집안의 딸들이 만나서 무도회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절대로 필요했다. 모임 있는 다음날 아침 루커스 집안의 딸들은 소식도 듣고 말도 전할 겸 해서 롱본으로 향했다. "참, 그날 밤 시작이 참으로 좋았지, 샬로트. 빙리 씨가 제일 먼저 골라잡은 사람이 바로 나였거든" 베네트 부인은 흥분을 억제해 가며 말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분은 두 번째 상대가 더 좋은 것같이 보이던 걸요, 뭐" "응, 제인 말이로구나.... 두 번씩이나 춤을 추었지. 그러고 보니 그분은 그애가 매우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그런 얘길 좀 듣기는 했지.... 그렇지만 모를 일이야.... 뭔가 로빈슨 씨에 관한 얘기 같던데" "제가 그분하고 로빈슨 씨가 나눈 얘기를 엿들었다는 말씀이죠. 안 드렸던가요? 로빈슨 씨께서 메리튼 파티가 마음에 들었느냐, 또는 예쁜 여자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느냐, 그 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 하고 물으시더군요. 그랬더니 그분께선 마지막 질문에 금방 대답하는 거예요.... 아, 그야 베네트 댁 큰따님이 제일이죠, 그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그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어머나! 그래요.... 그렇다면 벌써 결정난 거나 다름없겠지.... 그렇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닌지 누가 알겠어." "아무래도 내가 엿들은 것이 네가 들은 것보다 낫겠다 엘리자" "다아시 씨의 말은 빙리 씨 말보다 들을 만하지 못하거든, 안그래? 엘리자... 안됐구나.... 겨우 그만하면 쓸만하다니" "그런 소리를 리지에게 알려서 그분의 냉대로 해서 상심시켜서는 안되는 거야. 그분은 너무나도 불쾌한 사람이고 보면, 그런 사람 맘에 든다는 건 달갑지가 않은 일이거든. 간밤이 롱 부인한테 들은 얘기지만, 30분 동안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않더라는 거야." 제인이 말했다. "그거 정말이에요, 어머니? 조금 잘못된 일이 아니에요? 전 틀림없이 그분이 롱 부인에게 말하는 걸 봤거든요." "아, 그건, 롱 부인이 참다못해 네더필드가 맘에 드느냐고 물어서 할 수 없이 대답을 한 거야. 그런데 말을 건네니까 화내더라던데" "빙리 양 말로는 구분 성격은 친한 사이가 아니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과 함께 있을 땐 꽤나 상냥스럽다는 거죠" "어째 믿어지지가 않는구나, 제인. 만일 상냥한 사람이라면 롱 부인께서 말을 걸었을 게 아니냐. 나도 짐작이 간다. 그 사람 자존심이 너무 강하다고들 하던데. 롱 부인이 마차를 안가져서 무도회에 세를 내어 타고 온 사실을 들었기에 그렇게 거들거리는 거야." "그 사람이 롱 부인과 말을 안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엘리자하고 춤을 추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루커스 부인이 말했다. "리지야, 이 다음에 나 같으면 그런 사람이라면 춤 안추겠다." 모친이 그렇게 말했다. "약속해도 좋지만요, 전 그 사람하고는 절대로 춤 안추겠어요. 어머니" "그분의 자존심은 저한테는 자주 있는 경우처럼 그렇게 불쾌하질 않더군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으니까요. 명문 출신으로 재산이 있고, 뭣 하나 아쉬울 것이 없는 멋진 남자가 자기를 높인다고 해서 크게 잘못은 아닌 거죠. 이렇게 말할 수만 있다면 그분은 자존심을 가져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루커스 양이 말했다. "정말 그래요, 그분의 자존심이 제 자존심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쉽게 용서해 줄 수가 있어요." 그러자 메어리는 자기 의견에 대해 자신만만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이란 건, 누구나가 갖고 있어요. 책에서 본 바로는 너무나도 보편적인 거예요. 인간성은 거기에 빠지기 쉽고 그리고 실제적이든 상상적이든간에 자기에게 갖추어진 일에 대해 자기만족의 감정을 갖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는 법이에요. 허영심과 자존심은 말로는 유사하게 쓰이지만, 별개의 일이거든요. 허영심이 없이도 자존심을 갖는 사람도 있어요. 자존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견과 깊은 관계가 있고, 허영심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데 관계가 잇는 거죠" "내가 만약 다아시 씨만큼이나 부자라면 나에 자존심 정도는 어떻단 말이에요. 포크스하운드 종류의 사냥개나 기르고 매일같이 포도주를 마시겠어요." 자매와 함께 온 루커스 댁 아들이 말했다. "그렇게 마시면 도가 지나치다니까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마시는 것을 보는 즉시 병을 뺏어 버리고 말겠어요." 젊은이는 그럴 수가 없다고 하고, 그녀는 뺏어 버리고 말겠다고 계속 우겨대는 바람에 그 토론은 돌아갈 무렵에서야 끝났다. @ff 6 롱본의 여자들은 곧 네더필드의 여자들을 찾아갔다. 그 방문에 대해 곧 답례가 있었다. 베네트 양의 다정다감한 태도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의 호의를 더 크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견딜 수 없을 정도고 동생들은 이야기 상대가 없었지만, 위로부터 두 사람에 대해서는 더 가까와지고 싶다는 희망이 표현되었다. 제인은 이 배려를 더할나위없이 기쁘게 받아들였다. 엘리자베드는 누구를 대할 때마다 거만하게 대하고, 더우기 언니에게마저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인에 대한 그들의 친밀한 사랑도 그 정도였지만 제인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빙리 씨의 영향에 힘입은 것이고 보면, 그런대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날 때는 언제나 그가 진정으로 제인을 사모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제인 역시 어느새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은 엘리자베드에게는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실이 주위 사람들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인은 매우 강한 감정을 지닌 반면 주제넘은 사람들의 의혹에서 자신을 막아 줄 침착한 기질과 한결같은 명랑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사실을 친구인 루커스 양에게 알렸다. "그런 경우에 세상 사람들의 눈을 살짝 속인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긴 해요. 그렇지만 감쪽같이 남의 눈을 속이고만 있으면 불리해질 때도 있어. 만약에 여자가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자기 애정을 상대방에게 감추고 있다면 끝내 그 사람 마음을 끌 기회를 잃고 말 거야. 그때 가서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해 봤자 조금도 위안이 되진 않지. 본래 애정엔 감사니 허영심이니 하는 따위가 많이 붙어다니기 마련이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아무짝에도 못쓰게 되는 거야. 사랑을 시작하는 건 퍽 자유로운거야.... 그리고 마음이 조금 끌려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지. 그렇지만 이렇다 할 자극 없이 진정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이상의 애정을 보여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애. 빙리 씬 틀림없이 당신 언니를 진정 좋아하고 있어. 그렇지만 언니가 손을 뻗쳐 주지 않나 봐. 그 이상의 진전을 바라기란 어려울 테니까 말야." 그렇게 샬로트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제인 언닌 자신의 성질이 허용하는 데까진 그분에게 손을 뻗쳐 줄 거야. 그분에 대한 언니의 생각은 내가 다 느낄 수 있는 정돈데, 그걸 몰라 준다면 그분은 정말 바보천치일 거야." "알아둬요, 엘리자. 그분은 당신만큼 제인 언니 성질을 모르고 있단 말야." "그렇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마음을 두고서 그걸 감추려 들지 않을 것 같으면 상대방 남자가 그걸 모를 리 없지." "자주 만나면 알 수 있겠지. 하지만 빙리 씨와 제인 언니는 꽤 자주 만나는 편이긴 하지만, 계속해서 몇 시간씩 만나는 일은 별로 없거든. 게다가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만나게 되니까, 둘이서만 다정하게 얘길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러니까 제인은 그분의 주의를 끌 수 있는 30분 향상 최대한으로 이용해야 하는 거야. 상대방을 꼭 손아귀에 잡아 두기만 하면, 마음껏 연애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법이거든" "행복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욕심만을 문제삼는다면 그것이 썩 좋은 방법이 되겠지만...." 엘리자베드는 그렇게 대답했다. "만일 돈이 있는 어떤 남자를 찾아보겠다는 결심만 가진다면 나도 그런 방법을 택하겠어. 그렇지만 제인의 기분은 그렇지가 않단 말야. 어떤 계획이 있어서 행동하고 있는 게 아냐, 지금 당장은 자기 애정의 정도며, 나아가 그 정당성마저도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야. 알게 된 것이 두 주일 밖에 안됐지. 메리튼에서 네 번쯤 춤을 같이 췄고, 어느 날 아침 그분 집에서 만나, 그 후로 네 번 정도 식사를 했을 뿐이거든. 이것으로는 상대방 인간 됨을 알아내기가 어려워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렇겠지. 그저 식사만 함께 했다면 고작해야 상대방 식욕이 왕성한가 하는 정도나 알아냈겠지. 그러나 알아둬야 할 일은 나흘 밤을 함께 있었다는 점.... 나흘 밤이면 무슨 수확이 있을 법도 한 일이거든" "그래요, 나흘 밤이나 함께 지내고서 확인한 것이라곤 고작 두 사람이 다같이 코머스(카드 놀이의 일종)보다 벵텅(카드 놀이의 일종)을 더 좋아하는 걸 알았대. 그 밖의 중요한 특질 같은 건 별로 드러나지 못한 것 같애" "진정으로 제인의 성공을 빌고 싶어. 그분하고 내일 당장 결혼하게 된다고 해도 그분의 성격을 일 년 동안 연구한 거나 다름없는 좋은 행복의 기회를 얻었다고 보고 싶어요. 결혼의 행복이란 전적으로 운인 게예요. 쌍방의 기질을 서로가 잘 알고, 서로가 또 닮았다는 걸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행복을 더해 주지는 않는 법이에요. 나중에 차츰 어긋나서 곤란한 일이 생기게 되거든. 그러니까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면 흠 같은 건 되도록 모르는 게 좋아" "웃기지 말아요, 샬로트. 그렇지만 건전한 생각이 못돼요. 건전하지 못하다는 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그래. 더우기 자기 자신의 일 같으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언니에 대한 빙리 씨의 애정을 저울질하는 나머지 엘리자베드는 자신이 그 친구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아시 씨는 처음에는 그녀를 예쁘다고 하지 않았고, 무도회에서도 감탄해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그저 비판하기 위해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녀의 검은 눈의 아름다운 표정에 의해 용모가 이상할이만큼 총명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발견에 이어 이에 못지 않게 그를 흥분하게 만드는 사실도 있었다. 비판적인 눈으로 그녀의 몸매 균형이 안잡힌 점을 한두 가지 아니게 찾아냈지만, 그녀의 자태는 어디까지나 경쾌하고 기분 좋은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예의범절은 결코 상류사회에 속하지 못한다고 단정을 내렸지만, 그 자연스런 명랑성에 마음이 끌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그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자기에게 어디까지나 유쾌한 사람이 못되며 자기를 춤 상대가 될 만큼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더 알기 위해서 그녀와 대화하는 첫단계로서, 그녀가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쯤 접근해 갔다. 그러한 행위가 그녀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윌리엄 루커스 경 댁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였다. "다아시 씨는 어쩌시려고 그러는지 몰라. 내가 포스터 대령하고 얘길 하는데 엿들으니 말야." 그녀는 샬로트에게 말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은 다아시 씨만이 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만 자꾸 그러시면 어떡할 작정이신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말해 주고 말 테야. 꼭 빈정대는 투거든. 그러니까 이쪽에서 다소 무례하게 나가지 않으면 결국 그분은 무서운 존재가 될 것 같아" 별로 할 말이 없는데도 금방 다아시가 가까이 다가오자, 루커스 양은 친구에게 그 문제를 끄집어내어 말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했기 때문에 엘리자베드는 즉시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다아시 씨, 조금 아까 제가 포스터 대령님께 메리튼에서 무도회를 열어 달라고 했을 때, 말솜씨가 근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기세가 대단하시던데요. 그렇지만 그 화제 자체가 결국은 부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 걸요." "여자들에 대해 매우 엄격하시군요." "이번엔 엘리자베드가 귀찮게 될 판이다." 루커스 양이 말했다. "내가 피아노를 열께, 엘리자. 그 뒤엔 어떻게 되는가 알겠지?" "당신은, 친구로선 좀 괴상한 사람야! 누구 앞에서나 피아노를 치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니 말야. 만일 내 허영심이 음악분야로 바뀌게 된다면 당신은 더할나위없이 고마운 분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니까 최고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던 분들 앞에 앉을 엄두가 안나요." 그러나 루커스 양이 계속 권하자 근ㄴ는 덧붙여 말했다. "좋아요, 꼭 해야 한다면 할 수 없지." 다아시 씨 쪽을 근엄한 얼굴로 한 번 슬쩍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다 잘 아시는 속담이 있지요.(죽을 식히기 위해 숨을 몰아쉬어라) 그러니까 저도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숨을 몰아쉬도록 하겠어요." 그녀의 노래는 결코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한두 곡 부르고 나자, 한곡 더 청하는 몇 사람의 간청에 답례하기도 전에 그녀의 뒤를 이어 동생 메어리가 잽싸게 피아노 앞에 앉았다. 메어리는 용모가 평범한 편이다. 그 대신 학식과 재능을 가져보겠다고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언제고 그것을 내보이고 싶어했다. 메어리는 재능이나 취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심한 허영심은 없지만 그 허영심은 아는 체와 잘난 체하는 태도를 동시에 취하게 했는데, 그러한 것들은 그녀보다 훨씬 우수한 사람도 결함이 되고 말 것이다. 한결 소박하고 덜 잘난 체하는 엘리자베드는 동생의 반 정도도 잘치지 못했지만 듣는 이들로 하여금 훨씬 더 즐겁게 해주었다. 메어리는 긴 협주곡이 끝나자, 동생들의 부탁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곡으로 칭찬을 받고 기뻐했으나 동생들은 루커스 집안 사람 몇 사람과 두세 명의 장교들과 방 한끝에서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다아시는 그들 옆에 서서 대화가 없는 이런 모음은 처음이라고 화가나 있었으며, 너무나 자기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던 나머지 윌리엄 루커스 경이 다음과 같은 말을 끄집어낼 때까지 그가 바로 옆에 있는 줄도 몰랐다. "이거 정말 젊은이들한테 얼마나 매력 있는 오락입니까, 다아시 씨! 춤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야. 난 이거야말로 사회에서 제일 좋은 풍류라 생각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사회에서도 유행하고 있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습니다. 야만인도 춤출 줄 아니까요." 윌리엄 경은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친구분께선 즐겁게 춤추시는군요." 빙리가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한몫 끼는 것을 보고 계속했다. "틀림없이 선생 자신도, 그 재능엔 남다르게 능하실 줄 믿습니다, 다아시 씨." "메리튼에서 제가 춤추는 걸 선생님께서 보셨던 게죠" "여부가 있소, 적잖이 즐겁게 해주셨소. 세인트 제임즈(영국의 왕궁)에서 더러 추시는가요?" "아뇨, 전혀" "그곳은 무도만이 적합한 의례가 아니겠소." "전 그런 의례는 되도록이면 안가기로 마음 먹고 있습니다." "런던에 저택을 소유하시는 걸로 알고 있소만" 다아시 씨는 고개를 숙였다. "나도 한때, 런던에 정착해서 살고 싶었지요. 상류사회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고 해서요. 그러나 런던 공기가 우리 집사람한테 맞을지 확실치가 않아요." 그는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잠시 멈추었지만, 상대방은 그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엘리자베드가 바로 그때 두 사람 있는 데로 다가왔기에 숙녀에게 매우 친절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라서 큰 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자 양, 왜 춤을 안추십니까? 다아시 씨! 이 젊은 숙녀를 잘 어울리는 파트너로 당신에게 소개해도 좋겠소, 이런 미인을 바로 앞에 두고 춤을 마다시지는 않겠지요." 그녀의 손을 잡고서 몹시 당황하긴 했으나 그리 싫지만은 않은 것 같은 다아시 씨에게 건네주려 하자, 그녀는 별안간 몸을 사리고 약간 마음의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 윌리엄 경에게 말했다. "선생님, 전 정말 춤출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파트너를 구하러 이쪽으로 걸어왔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다아시 씨는 엄숙할이만큼 정중히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영광을 받겠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윌리엄 경이 설득하려 들었으나 그녀의 결의를 번복할 수는 없었다. "엘리자 양은 춤의 명수이신데, 그렇게 아름다운 춤 구경을 안시켜 주신다는 건 너무하신 일이요. 게다가 이 신사양반은 오락을 대체적으로 싫어하시는 분이지만 반 시간쯤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시는 데 이의가 없으시겠지요, 틀림없이" "다아시 씨는 예절이 밝으신 분이세요." 엘리자베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렇소. 그러나 마음을 유혹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엘리자양, 다아시 씨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지요. 이런 파트너를 두고 누가 싫다 하겠소?" 엘리자베드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외면했다. 엘리제베드가 거절했다고 해서 그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가 자못 만족스런 기분으로 그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빙리 양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선생님,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전 알아요." "그렇지가 않을 텐데요." "이런 식으로 이런 사회에서 몇 밤이고 지내신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시겠죠. 저도 똑같은 의견이에요. 이렇게 성가신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멋없고 시끄럽고 전부 보잘것없는데도 위세만 부리고요! 선생님의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잘못 추측인데요. 전 지금 조금 더 기분 좋은 일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은 어떤 미인의 얼굴에 아름다운 눈이 보여 줄 수 있는 아주 큰 기쁨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빙리 양은 얼른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그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숙녀가 대체 누구인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아시 씨가 대담하게 대답했다. "엘리자베드 베네트 양입니다." "엘리자베드 베네트 양이라고요!" 빙리 양이 되물었다. "정말 놀랐어요. 언제부터 그분을 좋아하시게 되신 거지요. 그리고 언제쯤 축하 인사를 드릴 수가 있겠어요?" "빙리 양이 그렇게 물어 오실 줄 알았습니다. 여자의 상상력이란 무척 빠른가 보죠. 관심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결혼으로,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니까요. 그런 말씀을 저에게 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 문제는 다 결정난 거나 다름없게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장모님 되실 분도 여간 좋은 분이 아니시구요. 물론 그분께선 펨벌리에서 함께 사시게 되는 거겠죠" 그녀가 이런 식으로 흥겨워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전혀 무관심하게 듣고만 있었다. 그의 침착한 태도로 미루어 보아, 모든 일이 틀림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재치 있는 말이 한참 동안 흘러나갔다. @ff 7 베네트 씨의 재산은 거의가 토지로서 일 년에 2천 파운드에 불과했으나, 그나마 딸들에게 불행하게도 남자 상속인이 없어서 먼 친척 한 사람에게 상속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재산은 자신만으로는 충분한 것이었으나, 남편의 재산 부족을 메꾸기에는 불충분했다. 친정아버지는 메리튼에서 변호사를 지냈고 딸에게 4천 파운드 정도를 남겼다. 그녀에게는 필립스라는 사람과 결혼한 여동생 하나가 있었다. 필립스는 아버지 밑에서 서기 노릇을 하면서 그 일을 잇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런던에서 상당한 방면의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롱본 마을은 메리튼에서 1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보통 한 주일에 서너 번 메리튼에 드나들며 이모를 방문하고, 길 건너 편에 있는 부인 양품점에 나들이를 안하고는 못 베기는 여자들에겐 안성마춤의 거리였다. 가족 중에서 제일 어린 캐더린과 리디어는 곧잘 이런 용무로 해서 자주 드나들었다. 언니들보다는 마음이 공허하고 달리 좋은 일도 없고 해서 아침 나절을 이럭저럭 보내고, 저녁 이야깃거리를 들을 겸해서 메리튼의 산책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본래 시골이라는 데는 이렇다 할 새 소식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그들은 늘 그들 이모로부터 이야기를 접하곤 했다. 지금 현재는 근처에 의용군 연대가 도착해 왔기 때문에 그네들에게는 새소식과 즐거움을 갖다 주는 데 부족하지가 않았다. 연대는 겨울 내내 주둔하기로 되어 있었고 메리튼에 사령부가 있었다. 그네들에게 이모 뻘인 필립스 부인을 방문하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다시없이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날이면 날마다 장교의 이름이나 연고관계에 대한 그들의 지식에 무엇인가 덧붙여지고 있었다. 군대의 숙소는 비밀이 오래 가지 못해서 그녀들은 마침내 그들과 알게 되었다. 이모부 필립스 씨는 군인들을 다 찾아다니는 사이여서 조카딸들에게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행복의 원천이 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이젠 자나깨나 장교들 이야기뿐이었다. 빙리 씨의 재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어머니는 활기를 띠었지만, 그것도 기수의 군복에 비할 때, 그들 눈에는 무가치한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 일에 대해 한참 수다를 늘어놓고 있는 것을 듣고서, 베네트 씨는 냉담하게 말했다. "너희들 말버릇을 보아하니, 우리 고장에 제일가는 바보 애들 같구나. 오랫동안 그렇지 않을까 하고 의아스럽게 여겨 왔었는데, 이젠 그것이 확실해졌구나" 캐더린은 당황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 반면 리디어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카터 대위를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내일이면 런던으로 가게 되어 있으니까 오늘 안으로 만나야 한다는 식이었다. "너무하시군요, 제 자식들을 당신은 그렇게 바보 취급만 하시다니. 저 같으면 남의 자식은 욕하게 될지 몰라도 내 자식은 어림도 없어요."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만일 내 자식이 바보 같으면, 그걸 언제나 알아둬야 하는 거요." "그래요. 그렇지만, 우리 집 애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기만 하거든요." "이 점만 우리 내외 의견이 맞지 않는 거요. 그래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사소한 데까지 일치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끝의 아이 둘이 바보란 점에 있어서는 당신 생각하고는 크게 달라." "저런 철부지들에게 분별을 바라는 게 잘못이죠. 그애들도 우리 나이가 돼보구료, 장교 얘긴 하래도 않을 테니까요. 저도 한땐 붉은 군복이 못견디게 좋은 때가 있었거든요.... 제 마음 속에서는 지금도 좋지만서두요. 일 년에 5, 6천 파운드 수입이 있는 장교가 만일 우리 애들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전 거절 않겠어요. 전말 밤 윌리엄 경 저택에서 본 포스터 대령의 군복은 정말 잘 어울리던데요." "엄마, 이모 말씀엔, 포스터 대령과 카터 대위는 처음 왔을 때처럼 그렇게 자주 워트슨 양 집엘 드나들지 않는다는군요. 그런데 요즘은 클리아크 댁 서재에 서 있는 걸 이모가 자주 보신대요." 베네트 부인의 대답은 하인이 마침 베네트 양 앞으로 온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기 때문에 대답하려다 중단했다. 네더필드에서 온 회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네트 부인의 눈은 기쁨으로 빛났고, 딸이 읽고 있는 동안에 숨가쁘게 소리를 질렀다. "얘야, 어디서 온 거니? 무슨 사연이니? 뭐라고 씌어 있니? 제인아, 어서 끝내고 우리들에게 말해 다오, 어서" "빙리 양한테서 온 편지예요, 어머니" 제인이 말하고서 소리내어 읽었다. 친애하는 친구에게. 만일 그대가 오늘 루이저와 나하고 식사를 함께 하는 데 대해 동정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면 우리 자매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서로가 미워하며 살아야 할 위험이 있는 거예요. 여잘 둘이 하루 종일 함께 있게 되면 결국 싸움도 하게 마련이거든요. 이 편지 받는 즉시 되도록 발리 오도록 해요. 오빠와 남자분들은 장교들과 식사를 하기로 돼 있어요. 총총. 샬로트 빙리 "장교들하고 말이야!" "이모는 그런 말씀을 우리에겐 안하시던데" "그분은 딴 데서 식사를 하시는 모양이다. 정말 운이 나쁘구나" 베네트 부인이 말했다. "마차로 가도 좋겠어요?" "아냐, 말을 타고 가는 게 좋을 거다. 비가 올 것 같으니까. 그렇게 되면 그 댁에서 묵게 되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저편에서 돌려보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면요." 엘리자베드가 끼여들었다. "아, 그렇지만 남자분들은 메리튼으로 가는 데 빙리 씨 댁 마차를 이용하게 될 테고 허어스터 댁엔 말이 없으니까." "전 그래도 마차로 가고 싶어요." "그렇지만, 너희 아버지께선 말을 빌려 주시지 않을 것 같다. 말은 농장에서 필요하거든. 여보?" "사실은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는 농장에서가 더 필요한 거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오늘 일에 쓰신다면 어머니의 소원은 성취되시는 게구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마침내 엘리제베드는 말을 남에게 빌려 주었다는 사실을 아버지로 하여금 인정하게 만들고 말았다. 제인은 할 수 없이 말을 타고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날씨가 불순할 것이라고 되뇌면서 문간까지 배웅해 주었다. 마침내 어머니의 희망이 이루어진 셈이다. 제인이 출발한 지 얼마 안되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언니 걱정을 했지만,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비는 밤새도록 줄기차게 내렸다. 확실히 제인은 돌아 올 수가 없었다. "내 생각이 맞아들어가는구나!" 베네트 부인은 비가 온 것이 자기의 공로인 것처럼 몇 번이나 말했다. 다음날 아침에 가서야 자기의 계획이 자아내는 행운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아침 식사가 끝났을 까 했을 때, 네더필드의 하인이 엘리자베드 앞으로 이런 내용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사랑하는 리지! 어제 비에 흠뻑 젖은 탓인지 오늘 아침 기분이 좋지가 못한 것 같아. 이곳의 여러분들께서는 내가 좋아질 때까지는 돌려보내 주지 않겠다고들 하셔. 그리고 존스 선생님께 진찰을 받아 보라고들 하셔(그러니까 내가 혹시 진찰받았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놀라지 말도록 해) 목이 좀 아프고 두통이 있는 것 외엔 별로 걱정될 것이라곤 없어. 언니 씀 "그러니까 당신은 딸이 무서운 병을 앓게 되어도... 죽는다 하더라도... 빙리 씨를 따라다니다가 생긴 병이라고 한다면 마음이 편하겠지. 더우기 당신의 명령에 따른 것이니까 말야." 베네트 씨는 엘리자베드가 소리내어 편지를 읽고 난 후 말했다. "그애가 죽긴 왜 죽어요. 감기 좀 앓는다고 다 죽는답디까. 잘들 봐줄 텐데요. 거기에 있는 동안은 문제 없어요. 마차 준비만 되면 내가 당장 가서 만나봐야겠어요." 엘리자베드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그냥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말을 탈 줄 몰라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넌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냐, 진흙탕인데도 가겠다고 하니, 도착했을 때 네 꼴은 정말 못봐 줄 거다." 어머니는 그렇게 외쳤다. "언니를 만나는데 뭐 어때서요.... 목적이 그건데요." "그건 이 아버지에게 슬쩍 넘겨치는구나, 말을 보내 달라구" "그렇지 않아요. 걷는 걸 싫어하진 않아요. 목적만 있으면 거리 같은 건 문제가 안돼요. 그까짓 3마일 정도는 저녁 식사 때까진 돌아올 수 있어요." "언니의 자비심엔 그저 감탄할 뿐이야. 그렇지만 모든 감정은 이성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거예요. 내 생각엔 모든 노력은 그 필요성에 따른 것이어야 해요." 메어리가 그렇게 말했다. "저희들이 메리튼까지 같이 가도록 하겠어요." 캐더린과 리디어가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그들의 동행을 받아들여서, 딸 셋이 같이 출발했다. "빨리 가기만 하면 카터 대윈가 하는 사람을 출발 전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이 걷고 있을 때 리디어가 말했다. 메리튼에서 그들은 헤어졌다. 두 동생은 어느 장교 부인의 숙소로 갔고 엘리자베드는 혼자서 계속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들판을 한 곳 한 곳 질러서, 울타리의 층계를 뛰어넘고, 조급한 행동으로 빗물이 괸 웅덩이를 넘고서 마침내 저택이 보이는 곳까지 당도했을 때, 발목은 지치고 양말은 젖고 얼굴은 운동의 열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엘리자베드는 조반실로 안내받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제인을 빼놓고 모두 모여 있었는데, 그녀가 나타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날씨가 그렇게도 불순한데다가 그렇도록 이른 시각에 그것도 혼자서 3마일을 걸어왔다니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으로서는 조금은 믿기 어려웠다. 그리고 엘리자베드는 그 일로 해서 이 집안 사람들이 자기를 경멸하고 있는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매우 정중하게 그녀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빙리 씨의 태도는 정중한 것 이상이 깃들여 있었다. 상냥함과 친절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다아시 씨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고, 허어스트 씨는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다아시는 엘리자베드의 얼굴이 운동을 했기 때문에 빛이 난다고 칭찬하는가 하면 혼자 이렇게 먼 곳까지 걸어오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어스트씨는 아침 식사만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의 병세를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썩 만족스런 것이 못되었다. 베네트 양은 간밤에 잠을 잘 못 이루고, 지금은 일어나 있으나 열이 많아서 방 밖으로 나올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드는 즉시 언니에게로 안내를 받아 매우 기뻤다. 더우기 제인은 이렇게 찾아 주기를 몹시 아쉬워하는 내용의 편지를 쓰려다가 집안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불편을 줄까 봐 그만두었던 참이라 동생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긴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워서 빙리 양이 두 자매만 남겨 놓고 나가 버리자, 다시없이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감사의 말 이외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엘리자베드는 잠자코 간호를 맡아보았다. 아침 식시가 끝나자 빙리 자매가 자리를 함께 했다. 엘리자베드는 자매가 제인에게 보여 주는 깊은 애정과 염려를 보고서, 자신도 그들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약사가 와서 환자를 진찰해 보더니 예상했던 대로 심함 감기이므로 잘 낫게 간호해 주도록 부탁한다고 말하고 환자더러는 침대로 돌아가도록 지시하고 물약을 주겠다고 말했다. 곧 지시대로 따르기로 했다. 열의 증세가 더해지고 두통이 몹시 심해져 갔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드는 한시도 방을 떠나지 않았고 자매들도 그러했다. 남자들이 외출을 하고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그들에게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시계가 세 시를 가리키자, 엘리자베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그렇게 말했다. 빙리 양이 마차를 내어 주겠다고 제안했고, 약간 옥신각신한 끝에 엘리자베드가 응하게 되었을 때, 제인이 동생과 헤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빙리 양은 마차의 제공을 변경하고 당분간 네더필드에 머물도록 권유했다. 엘리자베드는 감사하며 그 제안에 동의하고, 그곳에 머물게 된 사연을 알리는 동시에 옷을 가지고 오도록 롱본으로 하인을 보냈다. @ff 8 다섯 시에 두 여자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물러났고, 여섯 시 반에 엘리자베드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그때 근심스레 안부를 여러 사람들이 물어왔는데, 그 중에서도 빙리 씨의 걱정이 유난히 좋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그럴 듯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인의 경과는 결코 좋지가 못했다. 자매는 그 사실을 접하자, 정말 가엾다고도 했고 지독한 감기에 든다는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라고 되뇌었다. 제인이 눈앞에서 없어 자매가 냉담해지는 것을 보자 엘리자베드는 일찍 그들에게 품어 왔던 혐오의 정을 품게 했다. 빙리 씨만이 그들 중에서 엘리자베드에게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다. 제인에 대한 그의 근심은 명백했고, 그녀 자신에게까지 친절한 사실은 다시없이 기쁜 일이었다. 그리하여 딴 사람들이 엘리자베드를 방해자 취급을 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그러한 의식을 강하게 지니지 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빙리 이외의 사람들은 별로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있었다. 빙리 양은 다아시 씨 생각에 골몰해 있었고, 동생 역시 그런 상태였다. 엘리자베드 바로 옆에 자리잡은 허어스트 씨라는 사람은 워낙 게으른 사람으로서 그저 먹고 마시고 카드 놀이를 하기 위해 사는 사람 같았고, 엘리자베드가 스튜 요리보다 신선한 요리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엘리자베드는 곧 제인에게로 돌아갔다. 빙리 양은 그녀가 방을 나가자마자 이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은 몹시 좋지가 못하며 교만과 자존심이 뒤섞였다고 했다.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품위도 없으며, 취미 또한 없는데다 예쁘지도 않다고 했다. 허어스트 부인도 같은 생각이라 덧붙여 말했다. "걸음걸이만 빼놓으면 별로 볼 점이 없는 여자야. 오늘 아침의 그 모양은 평생 잊지 못하겠다. 그 정도면 영락없는 야만인일 테지." "정말이야, 루이저, 안웃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첫째는 그 사실부터가 말이 아니란 말야! 언니가 감기 들었다고 자기가 뛰어다닐 필요까진 없거든, 그 머리 꼴을 보라지, 단정치 못하게 산발이라니!" "그래, 그리고 그 속치마 꼬락서니라니. 속치마까지 흙에 빠지고 말았어. 그걸 감추느라 가운을 내려 입었는데, 그게 감춰졌어야 말이지." "그래, 네 그림은 그만하면 정확하다, 루이저"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 눈엔 하나도 안보이던데. 엘리자베드 양이 오늘 아침 방에 들어왔을 때, 매우 훌륭하고 괜찮게 보이던데. 그녀의 흙투성이 속치만 난 못봤어." 빙리 양이 말했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보셨죠, 다아시 씨. 선생님 누이 같으면 그렇게 수치스럽게 내버려두지는 않으실 줄 생각해요." "여부가 없는 일이겠죠" "3마일 아니라 4마일, 5마일, 몇 마일이든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발목까지 진흙에 빠지면서 그나마 혼자서 걸어오다니! 그래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지? 매우 건방진 독립심, 어딘가 촌스러운 행동은 아예 담을 쌓아 버리고 말야." "언니에 대한 우애를 잘 나타내니 얼마나 기특한 일이야."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다아시 씨. 이런 모험이 그 여자의 예쁜 눈을 칭찬하신 선생님께 영향을 주었을까 걱정이에요." 빙리 양이 반 속삭이듯 말했다.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분의 눈은 운동으로 더 빛나기만 하던데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허어스트 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제인 베네트에 대해선 좋은 호의를 가지고 있어요. 그 여자는 정말 상냥하지요.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살 수 있기를 난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그런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이 그래서야 우선 그런 기회가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숙부되시는 분이 메리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이요. 또 한 분이 계시는데, 치이프사이드(런던의 상업지구) 근처에 살고 계신 모양이에요." "그저 참 훌륭하신데" 누이동생이 덧붙여 말하자 둘이 마구 웃어댔다. "치이프사이드를 메울 만큼 많은 숙부가 있다 해도 그들 자매의 상냥함을 덜하게 하지는 않을 거요." 빙리가 외쳤다. "그러나 지체 있는 사람하고 결혼하게 될 기회는 사실 줄어들게 되는 거지." 다아시가 말했다. 이 말에 대해 빙리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매는 열심히 그 말에 동의하며, 한참 동안 친구의 저속한 친척을 놀림감으로 해서 한바탕 웃고 있었다. 그러나 차분한 감정이 되자, 그들은 식당을 나와 곧장 제인 방으로 가서 커피가 될 때까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제인의 병세는 아주 나빴다. 엘리자베드는 언니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으려 했고, 이윽고 밤이 늦어져서 언니가 잠들고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달갑지가 않았지만 내려가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응접실로 들어서자 모두가 루우라고 하는 카드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같이 하자는 말도 들었으나, 돈을 너무 많이 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해 버리고 언니를 구실 삼아서 잠시 아래층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허어스트 씨는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드 놀이보다 책 읽는 것이 더 좋은가요? 아주 신기한 일인데요." 그가 말했다. "엘리자 양께선 카드 놀이가 싫으시대요. 대단한 독서가이시라 딴 데는 재미가 없다나 봐요." 빙리 양이 그렇게 말했다. "언니 간호에도 틀림없이 재미가 있으시겠죠" 빙리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곧 완쾌되는 걸 보시면 기쁨이 더하실 테죠" 엘리자베드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책 몇 권이 놓여 있는 테이블 있는 데로 걸어나갔다. 그는 곧 서재에서 다른 책들을 다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베네트 양께서 읽어 주시거나 제 명예를 위해서도 책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전 꽤 태만스런 사람이라서 많지도 않은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죠" 엘리자베드는 이 방에 있는 책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요. 아버지께서 이 정도 책만 남기시다니. 펨벌리의 선생님 서재는 썩 훌륭하시겠지요. 다아시 씨!" 빙리 양이 말했다. "당연한 일이죠, 몇 대에 걸쳐서 모은 것이니까요." 그가 대답했다. "그건 또 선생님께서 모으신 거죠. 언제나 책을 사시는 분이시니까요." "요즘은 각 가정에서 서재의 소홀히 하는 것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일입니다." "소홀히 하시다니요! 선생님을 그렇게 훌륭한 저택을 더 아름답게 구밀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으시겠지요. 오빠, 다음 집을 지으실 땐 펨벌리의 반만큼이라도 지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나 됐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그 부근 땅을 매수해서 펨벌리를 하나의 모델로 삼도록 권하고 싶어요. 더비셔보다 더 좋은 곳은 영국에선 찾지 못해요." "그렇게 하마. 다아시가 팔겠다면 펨벌리를 몽땅 사들이기로 하자" "전 가능한 일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오빠" "정말야, 캐롤라인. 흉내내기보다는 차라리 사들이는 편이 펨벌리적인 것을 내 것으로 할 수가 있지." 엘리자베드는 이런 식으로 나누는 대화에 마음이 끌려서 책에는 전혀 눈이 가지를 않았고, 이어 읽던 책을 접어두고 카드 놀이용 테이블에 가까이 가서, 빙리 씨와 그의 제일 손위 누이 사이에 끼여들 듯 자리를 잡고서 놀이를 지켜볼 참이었다. "다아시 양은 올봄에 많이 자란 것 아녜요?" 빙리 양이 말했다. "내 키만큼이나 자란 것 같아" "그럴까요, 이젠 엘리자베드 베네트 양과 거의 키가 같을까 아니면 조금 클지 모르겠어요." "다시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네요! 만나서 그렇게 좋은 사람은 여태껏 못봤으니까요. 그 용모에 그 예절 그리고 그 나이에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다니! 피아노 연주는 아주 일품이었구요." "놀라운 일이야, 젊은 여성들이 그렇게 꾹 참고 그런 걸 다 배우다니"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젊은 여성들이 그런 걸 다 배운다고요! 오빠는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시죠!" "그야, 전부한테 하는 말이다. 모두들 화판에다 칠을 하고, 병풍에 표지를 씌우고 지갑을 짜기도 하지. 그런걸 못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 처음으로 어떤 숙녀에 대한 소문이 나돌 때, 으례껏 뭐든지 잘한다는 말을 안들을 때가 없다니까." "흔해빠진 재능에 대한 자네의 목록에선 그럴 테지." 다아시가 말했다. "그리고 지능이란 말이 고작해야 지갑이나 자고 병풍에다 표지를 씌우는 일을 하는 부인들에게 적용되니까 말야. 그러나 난 모든 부인에 대한 자네 의견에는 반대야. 내가 알고 있는 한 부인들이 재능을 잘 갖추고 있는 사람은 반 정도도 못된다고 생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빙리 양이 말했다. "그렇다면 재능 있는 여자란 선생님의 관념 속에서는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게로군요." 엘리자베드가 끼여들었다. "과연 그렇소, 많은 뜻이 들어 있죠" "아무렴, 그렇구말구요! 흔히 보는 일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재능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 말에 적합하기 위해서는 기악, 노래, 그림, 무용 그리고 현대어 같은 걸 완전히 내 것으로 하고 있어야 하는거고요. 어디 그뿐이겠어요, 용모, 걸음걸이, 억양, 말과 표현 등에 있어 뭔가를 지니고 있어야죠. 그렇지 않으면 재능이란 말은 절반밖에 가치가 없을 거예요." 그의 충실한 조수가 덧붙였다. "그런 것들을 다 가져야 해요. 첨가해서, 광범한 독서로 정신의 향상을 위해, 더욱 본질적인 뭔가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다아시가 덧붙여 말했다. "재능 있는 여자를 여섯 명 밖에 모르신다고 하셔도 전 조금도 놀라지 않아요. 한 사람이라도 알고 계시다는 말이 지금으로선 오히려 다행스러울 정도니까요."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의심하신다는 건 동성간에 대해서 좀 가혹한 짓이 아닐는지요?" "전 여지껏 그런 여성을 본 적이 없어요. 더우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정도로 능력과 취미, 근면과 우아함을 한몸에 갖춘 사람은 말예요."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엘리자베드가 은연중에 비친 의혹은 부당한거라고 같이 반대의 뜻을 말했고 방금 말한 자격을 갖춘 부인은 얼마든지 알고 있다고 항의하기 사작하자, 허어스트 씨는 진행중인 게임을 내버려둔다고 심하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들에게 주의를 주게끔 되었다. 그래서 얘기가 중단되자, 엘리자베드는 곧 방을 나가 버렸다. "엘리자 베네트 양은" 빙리 양은 문이 닫히자 말을 꺼냈다. "동성을 과소평가함으로써, 이성의 환심을 사려는 젊은 여자의 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많은 남성에 대해서 그것이 성공할지는 몰라도 제 생각 같아선 부질없고 비열한 수단일 거예요." "정말 그대롭니다. 여자가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불사하는 기교엔, 언제나 비열함이 깃들여 있습니다. 교활에 가까운 것은 어떤 것이든 경멸 받아 마땅한 겁니다." 곧 다아시가 대답했다. 빙리 양은 그 대답이 흡족한 것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엘리자베드는 언니의 병이 나빠져서 곁을 떠날 수가 없다는 말을 전해 주기 위해 되돌아왔다. 빙리는 즉시 존즈 씨를 불러 오도록 사람을 보내라고 채근했다. 한편 자매들은 시골 의사의 손이 닿지 않으니까 런던으로 급히 보내어 명의 한 사람을 모셔 오도록 제안했다. 그녀는 이 제안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만, 빙리 씨의 제안은 마다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이튿날 아침까지 베네트 양이 확실히 좋아지지 않을 경우엔, 아침 일찍 존즈 씨를 부르도록 의견을 모았다. 빙리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다. 자매는 몹시 괴롭다고들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저녁 식사 후에 이중창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래었으나, 그는 병석에 누운 여자와 그 동생을 잘 돌보도록 가정부한테 지시하는 일 외엔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힐 다른 방법이 없었다. @ff 9 엘리자베드는 그날 밤 대부분을 언니 방에서 보냈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찌기 빙리 씨는 하녀를 시켜 제인의 안부를 물어왔고, 곧 자매의 시중드는 시녀들이 들어와서 병세를 물었을 때 흡족한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리하여 병세는 좋아져갔지만, 롱본에 편지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가 제인을 찾아와서 병세를 직접 판단해 주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편지는 즉시 도착되었고, 편지 내용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베네트 부인이 두 딸을 데리고 네더필드에 도착한 것은 아침 식사가 막 끝난 후였다. 제인이 눈에 띄게 좋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베네트 부인은 매우 가슴 아파했으리라, 그러나 염려할 정도의 상태가 아닌 것을 보고 만족해 했으며, 건강이 회복되면 네더필드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좋아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 달라는 딸의 간청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게다가 거의 같은 시각에 온 의사마저 집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딸 셋은 잠시 제인과 함께 있은 후에 빙리 양이 나타나서 초대를 하자, 그녀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빙리는 그들을 맞으면서 베네트 양의 상태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좋지가 않더군요." 이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그앤 몸이 아주 불편하니까 움직일 수가 없어요. 존즈 선생님께서도 움직일 생각 말라고 말씀하시구요. 그래서 조금 더 폐를 끼쳤으면 합니다." "옮기다뇨?" 빙리가 외쳤다.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제 누이도 말을 안들을 것입니다." "염려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베네트 양이 저희 집에 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한 다 해드리겠으니까요." 빙리 양이 자못 냉담할이만큼 정중하게 말했다. 베네트 부인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정말 이렇게 친절하신 친구분들이 안계셨더라면 그애가 어떻게 됐을지 누가 알겠읍니까. 우리앤 지독히 몸이 불편해서 고통을 심히 받고 있지만, 그렇게 잘 참아내니 장하지요. 언제나 상냥스런 그애 같은 기질은 좀 찾아보기 힘들답니다. 전 자주 다른 애들에게 말하지만 언니하고는 상대가 되질 않는다구요. 빙리 씨 이 방은 썩 훌륭하네요. 게다가 자갈 깐 보도를 잘 내다볼 수도 있구요. 이 고장에선 네더필드만한 곳은 찾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급히 여길 떠나실 생각은 않고 계시겠지요. 계약 기간은 짧을지 모르겠으나" 베네트 부인이 덧붙여 말했다. "어떤 일이든, 전 몹시 성질이 급한 편이죠" 빙리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만약 네더필드를 떠나려고 마음만 먹게 되면 5분 이내에 빨리 떠나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여기에 뿌리를 박아 볼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한 바로 그대로군요?" 그녀 쪽을 향해 그가 말했다. "아, 그래요. 완전무결하게 말예요." "그 말씀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속속들이 아시게 되면 제가 가엾지 않겠읍니까." "저절로 그렇게 된 건데요. 복잡한 성격이 선생님과 같은 성격보다 더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는 전 보고 싶지가 않아요." "리지야, 장소를 가려야 하느니라. 집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지껄여 대선 못 쓰는 법이다." 어머니가 소리쳤다. "지금껏 전 몰랐습니다만, 따님께선 성격의 연구가이시군요. 퍽 재미나는 연구겠습니다." 빙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럼요, 복잡한 성격 편이 흥미가 더 있죠, 최소한 그런 점에선 우세하다고 볼 수가 있거든요." "이 고장에선 일반적으로 그러한 연구 대상은 별로 제공되지가 못할 겁니다. 이 지방의 이웃에선 극히 제한되고 변화 없는 사회를 돌아다녀야 하니까요." 다아시가 끼여들었다. "그렇지만, 사람들 자체가 매우 변화무상하니까, 언제나 새로운 것을 관찰해 낼 수가 있지요." "그렇고말고요." 이 지방의 이웃 운운하는 그의 말에 화가 난 모양인지, 베네트 부인이 소리를 높였다. "시골이건 도회지건 재미있는 일에는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에요." 좌중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 다아시는 잠시 그녀를 바라다보고는 잠자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베네트 부인은 그를 완전히 때려 눕힌 줄 알고서 의기양양해 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생각 같아선 상점이나 구경할 곳을 제외하고는 런던이 시골보다 낫다고 보지는 않아요. 오히려 시골이 재미있고 좋아요. 안그래요, 빙리씨?" "전 시골에 있으면 좀처럼 떠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도회지에 있어도 역시 똑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마다 다른 장단점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즐거움도 다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아, 그건 어디까지나 선생님의 성품이 훌륭하셔서 그런 겁니다. 그러나 저 신사분은 시골은 전혀 눈에 안차시는 모양이에요." 다아시를 바라다보면서 말했다. "어머나, 엄만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어머니 때문에 얼굴을 붉히면서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엄만 다아시 씨 말씀을 잘못 아시고 계신 거예요. 그분은 지방에선 도회지만큼 여러 사람을 못 만난다고 말씀하신 것뿐이에요. 엄만 그걸 인정하셔야 해요." "그건 그래, 얘야, 그렇지만 누가 그렇지 않다고 그러니. 그러나 이 근처에서 사람을 많이 못 만난다고 하신다면 이 근처만큼 교제가 더 많은 곳도 없을 게다. 우린 스물 네 가구하고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처지인데" 빙리가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은 것은 오로지 엘리자베드의 기분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누이동생은 덜 세심한 편이어서 다아시 씨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자못 의미 있는 미소를 머금었다. 엘리자베드는 어머니 생각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자기가 여기에 온 후에 샬로트 루커스가 롱본을 방문했는가 물어보았다. "그래 어저께 아버님과 함께 왔었단다. 윌리엄 경은 무척 좋으신 분이세요, 빙리 씨... 안그렇수? 상류층 청년의 귀감이시구, 점잖으시고 부드러우시구요! 누구와도 말을 잘 하시니 말예요. 그분이야말로 내가 말할 수 있는 이상형이죠.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해서 무표정한 양반은 뭔가 잘못된 거예요." "샬로트와 식사를 같이 했수?" "아냐, 자꾸 집에 가려고 해서, 아마 민스파이 때문에 일이 있었나 보더라. 빙리 씨, 나로선 자기네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 집 들은 좀 다르게 키우고 있지만서도요.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의 입장에서 판단해 줘야 하는 것이니까. 루커스댁의 따님들도 다들 훌륭하신 분들이에요. 예쁘지 않은 점이 가엾을 뿐이죠! 그렇다고 샬로트를 아주 못생겼다고는 보지 않지만, 아뭏든 그 사람은 우리하곤 너무나 친한 사이죠" "그분은 정말 좋은 분인 것 같던데요."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래요.... 그렇지만 별로 인물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아셔야 해요. 루커스 부인께서도 그렇다고 늘 말씀하시며 우리 제인이 예쁘다고 부러워하고 있지요. 내가 내 자식을 자랑할 순 없는 일이지만, 확실히 우리 제인은... 그만한 인물을 보기도 힘드는 일이에요.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있지요. 나혼자 생각만 어디 믿을 수가 있겠어요. 그애가 열 다섯 나던 해에 런던에 있는 친정 동생 가디너 집에 들른 한 신사가 어떻게 그애한테 반했는지 올케 말로는 바로 그분이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청혼을 할 것이라고 했던 일이 있었죠. 그러나 그 정도는 되지 못했어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죠. 그 대신 그분이 그애에 관한 시를 썼다는데, 어찌나 아름다운 것이었는지." "그래서 그분의 사랑이 식어 버리게 되었다는 거예요." 엘리자베드는 초조한 듯 말했다. "제 생각엔 그런 식으로 사랑을 극복한 사람이 허다하지요. 사랑을 쫓는데 시의 효력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요!" "전 시란 사랑의 음식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그건 훌륭하고 억세고 건강한 사랑의 경우겠죠. 원래 강한 것에는 뭐든 양분이 될 수 있는 법이죠. 그러나 가령 훌쭉하고 말라깽이 사랑 같아 보세요, 뛰어난 소네트 하나를 가지고서도 사랑을 굶겨 죽이기에 안성마춤일 테니까요." 다아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전체가 침묵이 흐르자 엘리자베드는 어머니가 또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까 근심스러웠다. 그래서 입막음을 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베네트 부인이 빙리 씨에게 제인에게 베풀어 준 친절과 리지로 해서 폐를 끼치게 된 데 대해 사과의 말을 했다. 빙리 씨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대답을 했고, 그 때문에 그의 누이동생 역시 얌전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 필요한 말을 했다. 물론 그녀는 상냥스럽게 자기 역할을 다 해내지는 못했으나, 베네트 부인은 그런대로 만족하고서 곧 마차를 존비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막내딸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 집에 와 있는 동안 두 딸은 사뭇 서로 이야기를 나눈게 있었는데, 그 결과는 막내딸이 빙리 씨에게, 이 고장으로 옮겨오는 즉시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하고 한바탕 몰아붙이자는 것이었다. 리디어는 썩 체격이 좋은 15세 소녀로 안색이 훤하고 명랑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어머니는 리디어가 마음에 들어 어릴 때부터 남 앞에 나서게 했다. 원기발랄하고 선천적으로 자신만만한 데가 있었고 더우기 장교들은 그녀의 숙부 집에서 베푸는 훌륭한 만찬과 그녀의 명랑한 태도로 해서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빙리 씨에게 하고 또 아울러 약속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둘도 없는 수치일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그 갑작스런 공격에 그의 대답은, 딸들의 어머니의 귓전에는 즐거운 일로만 들렸다. "확실하게 말씀드리지만, 전 약속만은 절대 지킵니다. 언니께서 회복되시거든, 제발 무도회의 날짜를 정해 주십시오. 그러나 언니가 아픈 동안은 춤을 추고 싶지가 않으시겠지요." 리디어는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아, 그래요.... 언니 병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때면 카터 대위님께서도 돌아오실 테고요. 선생님께서 먼저 무도회를 열어 주신다면 제가 그분들에게도 부탁해서 열도록 해보겠어요. 만일 그분들이 안 열면 제가 포스터 대령님께 일러바치고 말 테니까요." 베네트 부인과 딸들은 곧 출발하였고 엘리자베드는 그 길로 제인 곁으로 돌아가서 자신과 식구들의 행동에 관한 것은 두 숙녀와 다아시 씨의 비판에 맡겼다. 그러나 다아시 씨는 빙리 양이 엘리자베드 양의 아름다운 눈에 대해 많은 평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비난하는 쪽에는 같이 할 수가 없었다. @ff 10 그날도 그 전날처럼 지나갔다. 허어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오전 몇 시간을 환자와 함께 지냈고, 환자는 완만하기는 했으나 나아지고 있었다. 저녁에 엘리자베드는 응접실로 가서 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루우 놀이는 이번에는 선을 보이지 않았다. 다아시 씨는 편지를 쓰고 있었고, 빙리 양은 옆에 앉아서 편지의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누이동생에게 전하는 말을 함으로써 몇 번이고 편지 내용에서는 그의 주의를 따돌리고 있었다. 허어스트 씨와 빙리 씨는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고, 허어스트 부인은 그 승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엘리자베드는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고, 다아시 씨와 그의 상대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자못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숙녀는 그의 필적이 어떻고 행이 고르고 편지의 길이가 어떻다고 하면서 사뭇 그를 칭찬했고, 칭찬을 받고도 그가 무관심했기 때문에 기묘한 대화가 되었고 그것이 쌍방에 대해 그녀가 생각해 왔던 바와 일치했던 것이다. "이 편지를 받으면 다아시 양이 퍽 좋아하겠네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참으로 빨리 쓰시네요." "그렇지가 못합니다. 오히려 늦은 편이죠" "일 년에 퍽 많은 편지를 쓰시게 되겠네요! 사업상의 것도 말예요! 저 같으면 싫증이 나고 말겠어요!" "그렇다면 그 운명이 귀양이 아니고 저에게 떨어진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되겠습니다." "제발 누이를 한 번 뵙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그런 소원이셔서 그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펜이 맘에 안드시는 것 같애요. 제가 고쳐드리지요. 제 솜씨가 보통이 아니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제 손으로 고치고 있죠" "어떻게 그렇게 고르게 쓰시죠?" 그는 이 말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누이께 하프 솜씨가 많이 느셨다니 반가운 일이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또 테이블의 예쁜 장식이 선생 절 황홀케 했다고 전해 주시고 그랜틀리 양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 쓰는 걸 잊지 마세요." "황홀한 내용은 다음 편지 쓸 때까지 연기시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대로 다 쓸 여유가 없습니다." "아! 괜찮아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1월엔 만나 뵐 수가 있어요. 언제나 누이께 그렇게 훌륭한 편지를 길게 쓰시나요, 다아시 씨!" "거의 긴 편이죠.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저로선 결정지을 수가 없는 문제죠" "저에겐 그렇게 생각돼요, 긴 편지를 손쉽게 쓸 수 있는 분은 절대로 서투른 글을 안쓰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말한다고 칭찬이 되는 건 아냐, 캐롤라인, 쉽게 쓰는 편도 못되는데 말야. 사음절의 낱말을 쓰려고 무척 애쓰고 있지, 안그래, 다아시?" 그녀의 오빠가 외쳤다. "내 문체는 자네 것과는 다르단 말야." "아, 그래요. 오빠는 상상 외로 아무렇게나 쓰는 편이죠. 내용도 반쯤 빼먹고, 나머지 반은 지워 버리곤 하죠" 빙리 양이 외쳤다. "내 사상은 너무나도 빨리 흐르고 마니까, 그걸 표현해 낼 겨를이 없어. 그래서 이따금 내 생각이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어." "겸손이 지나치세요, 비난할 수도 없구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겸손한 체하는 것보다 사람을 더 속이는 건 없을 거야. 그건 남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에 불과하고 때로는 간접적인 자만이 될 수도 있는 법이죠" 다아시가 말했다. "지금의 내 겸손은 그 중의 어느 편이란 말인가?" "물론 간접적인 자만이지. 자넨 사실상 글을 쓸 때의 결함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말야. 그리고 그 결함은 머리의 회전이 빠른 것과 쓰는 법이 태평스런 데서 오는 것이니까, 그건 존중은 못할망정 최소한 흥미 있는 일이라고 자네는 생각하고 있어. 무슨 일이든 민첩하게 할 수 있는 힘은 그 소유자에게 언제고 너무나 크게 평가되고, 그 일의 불완전성에 대해선 눈을 돌리지 않는 법이거든. 자네가 오늘 아침에 베네트 부인에게 네더필드를 떠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5분 내에 떠나 버린다고 말했을 때, 그것을 자기에 대한 찬사 또는 칭찬의 말처럼 말했지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미완성인 채로 남겨 두고서, 자신이나 남에게까지 아무 소용 없는 일을 급하게 서둘러봤댔자, 뭐 그리 장한 일이냐 말야?" "아냐, 아침에 말해 버린 바보 같은 일을 밤에 가서 회상한다는 건 지나친 짓이야. 그러나 내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이지만, 자신에 대해 거짓 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고, 이 순간에도 그렇게 믿고 있어. 그러니까 적어도 다만 부인들 앞에서 자신을 내세울 마음으로 느닷없이 일을 서두르는 남자로 자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말이야." 빙리가 이어서 말했다. "자넨 그렇게 믿고 있는지 몰라도 난 자네가 그렇게 빨리 가리라고는 도저히 믿질 않으니, 자네의 행위 자체도 내가 알고 있는 누구누구에 못지 않게 우연이라는 것에 영향받기 쉬워. 만일 자네가 말을 타려고 하고 있을 때 친구가 자네더러 빙리 군, 자네 내주까지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네 하고 말했을 때 자넨 틀림없이 머물고 말 것이야, 그리고 가지 않을 걸세... 또 한 번 말을 듣게 되면 한 달이라도 있을 사람인 거야." "그 말씀으로 확실해진 것은 다만 빙리 선생님께서 자신의 기질을 정당히 평가하시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선생님께선 이분 자신이 하신 것보다도 과장되게 보이신 거예요." 엘리자베드가 외쳤다.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가 한 말을 저의 기질의 부드러운 것에 대한 찬사로 바꾸어 주셨으니까요. 그러나 귀양께서 혹시 이 친구가 생각지도 않는 의미를 말씀하신 게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 이유로서는 그러한 상황 아래선 제가 깨끗이 거절해서 되도록 빨리 말을 달리게 했더라면 이 친구는 오히려 저를 좋게 생각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처음에 하시겠다고 마음먹은 점을 끝까지 끌고 나가겠다는 완고한 점으로써 보상이 되는 줄로 다아시 선생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요?" "그 점에 대해선 정직하게 말해서 명확히 설명을 할 수가 없는데요.... 다아시 군에게 직접 말을 시켜보는 것이 좋을 성싶습니다." "자넨 내 의견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정해 버려 놓고서 나더러 설명하라는 것 같은데, 난 그걸 내 의견이라고 하지 않았네. 그러나 베네트 양, 가령 이것만은 잊어선 안되겠습니다. 이 사람이 말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계획을 연기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가정하는 그 친구란 사람은 그저 그렇게 하기를 소원해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지, 그렇게 하는 편이 적당하다는 이유 같은 건 하나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친구의 설득에 순순히 따른다는 건 당신 눈엔 쉬운 일처럼 보여지겠지요." "확신이 없는데도 따른다는 건 서로간의 사려분별에 대해 명예롭지가 못합니다." "다아시 씨께선 우정이나 애정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군요. 청하는 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면 토론 형식으로 설복 당하기 이전에 자진해서 그 요청에 응하는 경우가 많죠. 전 선생님께서 빙리 씨에 대해 가정하고 계시는 경우를 특별히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들은 차라리 그러한 행위를 논할 때에 그 상황이 야기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친구 사이에선 한쪽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해 왔을 때, 그것에 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해야겠어요?" "이 문제를 계속해 나가기 이전에 당사자 사이의 친밀 정도뿐만 아니라, 그 부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좀더 정확하게 결정짓는 게 현명하지 않겠읍니까?" "어디 꼭 해보게" 빙리가 그렇게 말했다. "어디 상세한 것을 들어보기로 할까. 두 사람의 키와 몸집도 잊지 말고 말일세. 왜냐하면 베네트 양, 그 문제가 당신이 알고 있는 이상으로 토론에 있어 주요성을 띠고 있으니까 말예요. 가령 다아시가 저하고 비교할 때, 그토록 당당하고 큰 사람이 못될 바엔, 전 그 반만큼 경의도 그에게 표하고 싶지가 않으니까요. 때와 장소에 따라선 그 사람만큼이나 무서운 존재가 또 있을는지 전 모르겠어요. 특히 자기 집에서 별로 할 일이 없는 일요일 저녁 같은 때 말입니다." 다아시는 살며시 웃음을 지었으나, 엘리자베드는 그가 조금 화나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웃음을 참았다. 빙리 양은 오빠가 그런 소리를 한 것을 나무라면서 다아시가 받은 모욕에 대해서 격분했다. "자네 속셈을 알겠구먼, 빙리" 그의 친구가 입을 열었다. "자넨 토론을 안좋아하는 거야. 그만두도록 하세" "그러는 게 좋을 걸세. 작은 시비가 큰 시비가 되기 쉬우니까 말일세. 내가 방에서 나갈 때까지 자네와 베네트 양이 토론을 멈춰 주었으면 매우 고맙겠네. 그 다음에 가서 자네 마음내키는 대로 내 얘길 하게나" "선생님 소원은 저에겐 아무것도 아녜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다아시 씨께서도 쓰시던 편지를 끝내셔야 하니까요." 다아시 씨는 그녀의 충고에 따라 편지를 끝냈다. 그 용무가 끝나자, 그는 빙리 양과 엘리자베드 양에게 무슨 음악이라도 들었으면 하고 청했다. 빙리 양이 곧바로 피아노 있는 데로 가서 엘리자베드에게 먼저 쳐보라고 정중히 청하자, 엘리자베드도 정중히 거절을 했기 때문에 빙리 양이 피아노에 앉았다. 허어스트 부인이 동생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네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엘리자베드는 피아노 위에 있는 악보를 넘기면서 다아시 씨의 눈길이 자신한테 줄곧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와 같은 훌륭한 사람의 칭찬의 대상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으나, 그렇다고 자기를 미워해 보리라는 것은 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 주의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올바른 생각에 의할 것 같으면 그녀 자신에게 좌중의 그 누구보다도 잘못되고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 있는 줄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닿아도 상심은 안되었다. 그에게 잘못 보인다 해서 마음이 아플 정도로 그녀는 그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탈리아 노래 몇 곡을 치고 나서, 빙리 양은 경쾌한 스코틀랜드 곡으로 흥을 불어넣었다. 이어서 다아시 씨가 엘리자베드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베네트 양, 이 기회에 경쾌한 춤을 추고 싶으시지가 않습니까?" 엘리자베드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에 조금은 당황했던지 그는 질문을 되풀이했다. "어머나! 아까도 그러셨는데, 지금 당장 무슨 대답을 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선 저의 취미를 경멸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저더러 예하고 대답을 시키고 싶으셨겠지만 저는 그런 종류의 속셈을 지닌 사람한테서 벗어나는 게 다시없는 즐거움이죠. 그러니까 전 그 춤 같은 건 안추기로 정해 버렸어요.... 그럼 경멸하시고 싶거든 해보세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엘리자베드는 그가 면박을 당해서 노발대발할 줄만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은근한 태도를 보고 적이 놀랐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에는 귀염성과 장난기가 있기에 좀처럼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다아시에게는 이 여자만큼이나 자기의 마음을 끄는 이는 없을 성싶었다. 그녀는 집안이 나쁘지만 않았던들 자신은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빙리 양은 질투심이 날 정도로 보기도 하였고 느끼기도 하였다. 친우인 제인의 회복을 바라는 열망은 엘리자베드를 제거해 버리겠다는 염원의 힘을 입어 더 강한 것이 되어 버렸다. 빙리 양은 여러 차례 두 사람이 결혼한 경우를 가정해서 말하기도 하고, 그러한 결합으로 그의 행복이 어떠한 것이 될 것인지 그려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마음 속에다 엘리자베드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려 애를 썼다. 다음날 관목 숲속을 함께 거닐었을 때 그녀 쪽에서 이렇게 말을 꺼냈다. "만약 연분이 맺어지게 되시거든 선생님의 장모님께 좀 말수를 줄여 주셨으면 하고 넌지시 말씀드려 주세요. 그리고 그것이 성공되시거든 그 다음엔 막내따님들일랑 제발 좀 장교님들 꽁무니를 못 따라 다니게 일러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좀 복잡한 일이 될지 모르겠으나, 장차 사모님이 되실 분은 자기 잘난 체하는 점이라든가, 예의 없는 점 같은 건 좀 억제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예, 있어요.... 처이모부 되시는 필립스 내외분들의 초상화를 펨벌리의 복도에 내걸면 좋겠구요. 판사를 지내신 종조부 바로 옆자리에 말예요. 다소 다르긴 해도 같은 계통에 종사하는 분들이니까요. 게다가 엘리자베드 사모님의 초상화에 관해선, 그리기조차 힘들 거예요, 그렇게 예쁜 눈을 어떤 화가가 그려내겠어요." "과연 그 눈의 표정을 잡기란 쉽지 않겠지만, 색과 형, 그리고 그렇게도 아름답고 섬세한 속눈썹은 묘사해 낼 수 가 있겠지요."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걸어나온 허어스트 부인과 엘리자베드와 마주치게 되었다. "두 분께서 산책을 나오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빙리 양은 자기가 한 얘기를 그들이 듣지 않았나 싶어 당황해 하며 말했다. "너무하셨어요. 바깥으로 나온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니 말예요." 허어스트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다아시 씨의 다른 한 팔을 잡고서 엘리자베드를 혼자 걷게 해버렸다. 그 길은 세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다아시 씨는 그들이 무례한 짓을 하고 있다고 느끼고 곧 이렇게 말했다. "이 길은 우리들에겐 너무 좁은 것 같군요. 가로수길로 빠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들과 함께 남아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그러실 것까지 없어요. 그대로 계세요. 세 분의 군상이 여간 잘 어울리지가 않거든요. 드물게 볼 수 있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어요. 넷이 되면 그 아름다운 장면이 망가지고 마니까요. 그럼 안녕" 그리고는 명랑하게 뛰어가 버렸다. 하루 이틀 후면 집으로 간다는 희망에서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날 밤에는 두 시간 정도 밖으로 나갈 만큼 제인의 용태는 꽤나 좋아졌다. @ff 11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부인들이 식당을 나가자, 엘리자베드는 2층에 있는 언니에게 달려가서 춥지 않게 옷차림을 한 것을 보고서, 언니를 부축해 응접실로 내려왔다. 거기에서 언니는 두 친구한테 여러 가지 기쁜 말로 환영받았다. 엘리자베드는 남자들이 나타나기 전에 여자들끼리 그렇게 다정스럽게 지내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들의 입심은 대단했다. 어느 파티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었고, 유머를 섞어 가며 어떤 일화를 말하고 있었고, 활기차게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줄기차게 웃어 가며 얘기해 나갔다. 그러나 남자들이 들어서자, 제인은 더 이상 주요 인물이 되지 못했다. 빙리 양의 눈초리는 금세 다아시 씨를 향하게 되어, 그가 몇 걸음 채 오기도 전에 무엇인가 말을 안하고는 못 배길 지경이었다. 그는 먼저 베네트 양에게 말을 건네고 정중하게 축하했다. 허어스트 씨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참 잘된 일이올시다.' 하고 뇌었다. 그러나 정작 넘쳐흐르는 열의는 빙리의 인사말에서 알 수가 있었다. 그의 말에는 기쁨과 걱정이 넘쳐 흘렀다. 처음 반 시간 동안은 방 안이 변한 것이 행여 그녀의 몸에 지장을 줄까 불을 지피는 데 보내졌다. 그리고 그의 희망으로 그녀가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난로 옆으로 옮겨져 갔다. 그는 그 옆에 자리잡고서,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드는 반대쪽 모퉁이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매우 흐뭇하게 건너다보고 있었다. 티이가 끝나자, 허어스트 씨는 처제에게 카드 놀이 테이블 이야기를 슬쩍 비쳤으나 헛수고였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카드 놀이를 덜 좋아한다는 비밀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곧 허어스트 씨는 까놓고 청해 보았지만, 깨끗이 거절당하고 말았다. 그녀 말로는 아무도 카드 놀이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일에 대해 전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허어스트 씨는 소파 중 하나에 큰대 자로 누워 잠을 청할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다아시는 책을 들었다. 빙리 양도 같이 책을 들었다. 허어스트 부인은 주로 팔찌와 반지를 매만지고 있었는데, 때때로 베네트 양과 동생 사이의 대화에 끼여들었다. 빙리 양은 자신이 읽는 책과 간간이 다아시 씨가 읽고 있는 책으로 눈을 돌리는 일에 주의를 쏟고 있었다. 끊임없이 무슨 질문을 하든가, 아니면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고작이고,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그녀는 그의 두 번째 책이란 이유만으로 택한 자기 책을 재미있게 보려다가 하품을 한바탕 하며 말했다. "이렇게 밤을 보내는 건 퍽 재미있는 일이에요! 독서만큼 좋은 즐거움은 없는 거예요! 책을 빼놓고는 뭐든 곧 싫증이 나게 되거든요! 나 자신의 집을 갖게 될 때, 훌륭한 도서실이 없으면 정말 비참할 거예요." 이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시 한 번 하품을 하고 나서, 책을 제쳐놓고 무슨 흥미거리나 없을까 하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오빠가 베네트 양에게 무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자, 느닷없이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오빠 정말 네더필드에서 무도회를 가지실 계획이세요? 결정하시기 전에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의 의향을 확인해 두시도록 권하고 싶어요.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 중에는 무도회를 즐거움이라기보다는 형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분도 계시거든요." "다아시 말이라면 시작하기 전에 뭣하다면 자면 될 거 아냐, 그렇지만, 이미 정해진 일인데. 니콜즈가 흰 수프를 충분하게 준비만 한다면, 곧 초대장을 띄우기로 하겠다." 오빠가 큰 소리로 말했다. "저도 무도회가 훨씬 좋거든요. 조금 색다르게 진행이 된다면 말예요. 그러나 그런 모임이 판에 박은 듯 진행된다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일이죠. 춤 대신에 대화가 모임의 중심이 된다면 더욱 합리적인 것이 되겠지만" 그녀가 대답했다. "더욱 합리적이라 캐롤라인, 그러나 그렇게 되는 날이면 무도회 같지가 못해질걸" 빙리 양은 대답 않고, 잇달아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 안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자태는 우아했고, 걸음걸이도 여간 좋지가 않았지만... 그것을 보아 주기를 바랐던 다아시는 한눈을 팔지 않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절망적인 기분으로 그녀는 다시 한 번 애를 써 보려고 마음먹고, 엘리자베드 쪽을 향하며 말했다. "엘리자 베네트 양, 저 하는 대로 제 뒤를 따라서 방 안을 돌아보시지 않으시려우....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가 걷게 되면 한결 기분이 새로아질 테니 말예요." 앨리자베드는 짐짓 놀랐으나, 즉시 그 제안에 동의했다. 빙리 양의 정중한 태도는 목표로 삼았던 상대편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다아시 씨가 고개를 추켜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빙리 양의 보기 드문 정중함을 엘리자베드 못지 않게 깨닫고서, 무의식중에 책을 덮고 말았다. 그도 함께 걷지 않겠느냐고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들이 둘이서 방 안을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동기는 두 가지 밖에 상상이 안되지만, 자신이 가담하면 그 동기의 어느 것에도 방해가 된다는 게 그의 거절의 이유였다. "저분 말씀은 뭣일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 죽겠어." 엘리자베드에게 그분의 마음을 이해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전혀 모르겠어요." 이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우리들을 엄하게 다루시려나 봐요. 그러니까 그분을 실망시키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빙리 양은 어떤 일에서든지 다아시 씨를 실망시킬 수 없어서, 그의 두 가지 동기에 대한 설명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걸 설명하는 데 조금도 이의가 없습니다." 그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자 그는 곧 그렇게 말했다. "두 분께서 그런 식으로 밤을 보내시겠다는 것은 첫째 서로가 믿는 사이로 어떤 비밀 얘기가 하고 싶든가, 아니면 두 분의 자태가 걷는 데 큰 이점이 있음을 의식해서겠지요.... 만일 첫째 동기시라면 전 두 분에게 완전한 방해가 될 것이고, 둘째 동기시라도 난로 옆에 앉아 있는 편이 두 분의 미를 훨씬 더 잘 바라볼 수가 있으니까요." "어머나! 정말 놀랐어요!" 빙리 양이 말했다. "전 이렇게 분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말씀하신 데 대해 어떤 벌을 드려야 할까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쉬운 일이겠어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우린 서로가 괴롭게 해주고 벌도 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분을 놀려 줘야 해요.... 웃어 주는 거예요. 서로가 친한 사이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셔야죠" "정말 모르고 있어요. 친하긴 해도, 그런 일까진 모르고 있어요. 냉정하고 침착한 마음씨를 지닌 분을 놀리다니요! 전 못하겠어요.... 그런 짓을 했댔자 상대도 안해 줄 것 같구요. 웃음이란 것도 그래요, 웃을 상대도 없는데 웃는다는 건 오히려 수치만 당하게 되는 거예요! 다아시 씨를 기쁘게 해주는 결과가 되고 말거든요." "다아시 씬 남에게서 조롱을 당할 분이 못되신다구요!" 엘리자베드가 소리쳤다. "그건 정말 보기 드문 우월성이군요. 언제까지나 지속됐으면 좋겠네요.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저에겐 손해가 크겠지요. 전 웃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성미니까요." "빙리 양은 절 사실 이상으로 높이 봐주시는데요. 가장 현명하고 선한 사람, 아니 가장 현명하고 선한 행위일지라도, 농담을 인생의 제일 목적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겁니다." "옳은 말씀이세요." 엘리자베드가 대꾸했다. "그런 사람이 있긴 하지만, 전 그런 사람은 못되는 거예요. 현명하고 선한 것을 절대 웃고 싶지는 않아요. 정직하게 말해서 바보스런 일이나 변덕과 무분별은 확실히 절 웃기지만서도요.... 제 생각엔 선생님께선 그런 것들은 안 가지고 계시거든요." "그런 일은 쉽게 이뤄지지가 않을 겁니다. 자칫 뛰어난 지성을 지난 사람까지도 웃음거리로 삼으려는 저의 결점을 피하려고 사뭇 마음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허영심이라든가 자존심 같은" "그렇습니다. 허영심도 틀림없는 결점이지요. 그러나 자존심은(진정으로 우월한 정신이 깃들여 있다면) 자존심은 잘 조절이 될 줄로 압니다." 엘리자베드는 웃음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다. "다아시 시에 대한 검토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결과를 제발 알려 주세요." 빙리 양이 말했다. "다아시 씨에겐 결점이 손톱만큼도 없다는 걸 확신합니다. 본인께서도 감추지 않고 인정하시니까 말예요." "아닙니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다아시가 말했다. "저에겐 결점이 많습니다만, 다만 이해력의 결점이 아니길 원합니다. 저의 기질은 저도 보증하지 못하거든요. 유순하지가 못해서 세상살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확실하죠. 전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짓과 악은 당연히 잊어버려야 할 때도 빨리 잊지를 못합니다. 게다가 저의 감정은 그것을 움직이려는 어떤 시도에도 쉽사리 휩쓸려 들지를 않지요. 저의 기질은 어느 쪽이냐 하면 골을 잘 내는 편이 되겠고, 한 번 남에게 호의를 잃게 되면 영원히 그렇게 되고 말지요." "그건 정말 결점이군요!" 엘리자베드가 말했다. "달래기 힘든 노여움이란 확실히 성격의 결함이죠. 하지만 선생님은 자신의 결점을 선택하셨어요. 그것만은 정말 웃을 수 없어요. 안심하셔도 좋아요." "제가 알기로는 어떤 기질에도 독특한 악의 경향이 있죠.... 타고난 결점 말예요, 그건 제 아무리 훌륭한 교육으로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선생님의 결점은 모든 사람을 미워하는 성격이세요." 그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음악이나 좀 들어보실까요." 자기가 끼여들지 않은 이야기에 진력이 나서 빙리 양이 말했다. "언니, 허어스트 씨를 깨워도 괜찮을까요?" 그녀의 언니가 조금도 반대의 빛을 띄자 않자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다아시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엘리자베드에게 지나치게 기울고 있는 위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ff 12 언니하고 의논한 결과 엘리자베드는 다음날 아침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그날 중으로 곧 마차를 보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베네트 부인은 제인이 네더필드에 묵기 시작한 지 꼭 일주일이 되는 다음 화요일까지는 두 딸이 그대로 거기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전에 두 딸을 기꺼이 맞아들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의 회답이 탐탁한 것이 못되어서 적어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엘리자베드의 소원에 답하는 것이 못되었다. 베네트 부인은 두 딸이 화요일 전에는 마차를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전하고, 추신에다 만일 빙리 씨와 그의 누이가 좀더 있으라고 권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고 첨가해서 말했다. 그러나 엘리자베드는 그 이상 체류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한 바 있었고, 더 머물러 달라는 청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쓸데없이 오래 머물러 있어 폐만 끼치고 있다고 그 집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이지 않나 걱정스러워서 제인 보고 당장 빙리 씨의 마차를 빌도록 재촉했고, 그래서 결국 그날 아침 네더필드를 출발한다는 애당초 계획을 끄집어내고 마차 부탁을 하도록 합의를 보았다. 이 말을 전하자 주인측에서는 여러 번 염려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다음 날까지만이라도 체류해 주도록 제인을 움직이게 할 만큼 여러 차례 말을 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까지 출발이 연기되었다. 빙리 양은 곧 자기가 더 있어 달라고 청한 것을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엘리자베드를 질투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그녀의 언니에 대한 애정보다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이 집 주인은 두 사람이 그렇게 빨리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했고, 그래서 여러 번 베네트 양에게 아직 완전하지가 못하다는 점과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설득하려 들었으나, 제인은 자기가 옳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다. 다아시 씨에게는 그것은 반가운 소식이었다.(엘리자베드의 네더필드 체류는 그만하면 충분했다. 그녀는 다아시가 좋아하는 이상으로 마음을 끌었다.) 빙리 양이 엘리자베드에 대해서는 버릇이 없었으며 다아시 자신에게도 유달리 짓궂게 굴었다. 이제 찬미하는 표시, 즉 남자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여 여자를 우쭐하게 하는 일은 일체 내색하지 않겠다고 그는 현명하게 결심했다. 만일 그러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비치게 되는 날이면 최종일의 그의 행동은 그런 생각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분쇄해 버리는데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띠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목적을 고수하느라고 토요일 하루 종일 그녀에게 열 마디도 말을 붙이지 않았으며, 30분 정도 단 둘이 있을 때도 그는 애써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일요일 날 예배가 끝난 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즐겁게 여겨지는 작별이 있었다. 끝내 빙리 양의 엘리자베드에게 대한 정중함은 제인에 대한 애정 못지 않게 더해 가기만 했다. 그들이 작별을 했을 때, 제인을 향해 롱본이나 네더필드에서 만나게 되면 더 반가울 것이라고 말하고 그녀를 아주 부드럽게 포옹하고 엘리자베드와는 악수까지 나누었다. 엘리자베드는 다시없이 명랑하게 그들과 작별했다. 어머니는 딸들이 귀가하는 것을 반갑게 맞지 않았다. 베네트 부인은 그들이 돌아온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으며, 그렇게 말썽을 일으키는 딸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틀림없이 제인이 감기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로 아버지는 즐거움의 표현이 간결하기는 했지만, 딸들의 얼굴을 보자 매우 기뻐했다. 그는 가족의 모임에서 딸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저녁에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가질 때 제인과 엘리자베드가 끼지 않으면 어쩐지 활기가 없어지고 거의 의미마저 상실한다는 식이었다. 메어리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저음부와 인간성 연구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인용구에 감탄해야 했으며, 케케묵은 도덕론에 관한 새로운 관찰을 듣게 되었다. 캐더린과 리디어는 다른 종류의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전 주 수요일 이래, 연대에서 여러 가지 일이 행해졌으며 화제도 많았다는 것이다. 장교 몇 사람이 최근 이모부 댁에서 식사를 함께 했고 졸병 한 사람이 매를 맞았으며, 포스터 대령이 근간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틀림없을 것이라 했다. @ff 13 "여보, 오늘은 맛있는 음식 준비를 하도록 직접 일러두도록 하시오. 우리 식구 외에 또 한 사람이 오게 되어 있으니까 말요." 다음날 아침 모두가 아침 식사 하러 모였을 때 베네트 씨가 부인에게 말했다. "누구 말예요, 여보? 혹시 샬로트 루커스가 올지는 몰라도요. 그 밖엔 올 사람이라곤 없을 텐데요. 그리고 샬로트에겐 제 음식 솜씨면 충분하지요. 자기 집에서 이런 정도의 음식을 먹기가 그리 쉽지 않을 테니까 말예요." "내가 말하는 사람은 남자인데다 우리 집엔 처음 오는 사람이요." 베네트 부인의 눈이 빛났다. "남자 분에다 처음 오시게 되는 분이라뇨! 틀림없이 빙리 씨일 거예요. 아니 제인아(넌 이런 말을 한마다도 하지 않았지, 앙큼스런 것 같으니! 그런데 나도 빙리 씨를 만나게 되면 반갑지 뭐냐. 그렇지만) 어떡하나! 큰일났구나! 오늘은 생선 한 토막도 없으니 말이다. 리디어, 너 벨을 울리도록 해라. 지금 당장 힐에게 얘기해야겠다." "빙리 씨가 아니래두" 남편이 그렇게 말했다. "내 생전에 처음 보게 되는 사람이란 말요." 이 말을 듣자 가족 전체가 다 놀랐다. 그리하여 그는 부인과 다섯 딸들로부터 열심히 질문 받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한참 동안 그들의 호기심을 즐겁게 맛보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약 한 달 전에 이 편지를 받았어. 그리고 두 주일 후쯤 회답을 보냈지. 좀 까다로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일찌감치 주의를 기울여 본 거지. 내 친척 콜린즈한테서 온 편진데, 이 사내는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날, 언제라도 자기가 뜻하는 때에 너희들을 이 집에서 몰아낼 수가 있는 거야." "아니, 여보" 아내가 말했다. "그 말은 참고 들을 수만 없군요. 그런 지긋지긋한 사람의 얘긴 그만 듣겠어요. 당신의 재산이 한정 상속이 돼서 친자식들에게 넘어가지 못한다니 이토록 아픈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제가 만일 당신이라면 먼 옛날 이렇게 저렇게 그 일을 끝맺었을 거예요." 제인과 엘리자베드는 한정 상속의 성질을 어머니에게 설명하려 들었다. 그들은 그 전에도 여러 차례 설명한 적이 있었으나, 이성으로는 베네트 부인을 설득하기가 불가능했고 부인은 끊임없이 누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나이에게 다섯 명의 딸의 재산을 빼앗아서 넘겨 주는 일은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심하게 비난했다. "그건 확실히 도리에 어긋난 일이야." 베네트 씨가 받아 말했다.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콜린즈군이 롱본을 상속하는 죄를 씻을 수가 없겠지. 그러나 그의 편지를 읽게 되면 그의 마음을 털어놓은 태도에 약간은 마음이 누그러지겠지." "아뇨, 저의 마음은 절대 누그러지지 않을 거예요. 도대체 당신에게 편지를 내는 그 자체가 무례하고 위선적이란 말예요. 전 그렇게 속이 검은 사람을 싫어한단 말예요. 그 사내가 왜 자기 아버지가 한 것처럼 당신하고 싸움질을 계속 않는지 모르겠거든요." "그거야, 그 점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 신중을 기하기 때문이겠지. 들어보구료" 켄트 주 웨스터램 근교 헌스퍼드 10월 15일 선친과 족숙님 사이에 개재한 불화는 항상 저의 불안거리였습니다. 그러던 중 불행하게 부친상을 당 하고 나서 여러 번 두 분 사이를 고쳐 보려고 마음먹어 왔습니다만, 생전에 사이가 좋지 못했던 분하고 어떻든 화해를 한다는 것은 영혼에 대한 불경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한동안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오고 가지 못했던 것이올시다. ('이것 봐요, 당신') 그러나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결심한 바가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부활절 때 안수식을 받게 되어 다행스럽게도 루이스 드 버그 경의 미망인 라이트 어너러블(백작 이하의 귀족에게 붙이는 경칭) 캐더린 드 버그의 애호를 받아 그분의 너그러우신 은혜에 힘입어 이곳 교구의 막중한 목사직에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 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처신하여 언제나 영국 국교가 제정해 놓은 제전과 의식을 거행해 나가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나아가 목사로서의 저의 힘이 미치는 범위 내의 가정에 평화와 축복을 조성 확립시키는 것은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해서 이렇게 화해의 제의를 하게 됨은 상찬할 만한 일이겠으며, 그리고 제가 롱본의 재산을 한정 상속하게 되는 권리를 가진 점을 너그러이 보아 주시고 평화의 표시인 이 감람의 가지를 거절하시지 않으시기를 빌어 마지않습니다. 제 자신이 귀여운 영애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점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보상을 해 드릴 각오가 있음을 약속드리는 동시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 건에 대해서는 후일 말씀드리고자 하옵니다. 귀댁에서 저를 맞아 주시는 데 이의가 없으시다면, 11월 18일 월요일 네 시가지 여러분을 가 뵙고 일주일 후의 토요일 까지만 폐를 끼치고자 하옵니다. 저에게는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누군가 딴목사가 일요일의 예배를 대신해 주기만 한다면 캐더린 부인은 제가 가끔 일요일에 빠지더라도 별 이의가 없으실 줄 알고 있습니다. 부인과 영애들에게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윌리엄 콜린즈 "그러니까 네 시까지는 이 화해의 신사가 오기로 되어 있단 말요." 편지를 접으면서 베네트 씨가 말했다. "아니 확실히 양심적이고 정중한 청년 같아. 그리고 틀림없이 가까이할 만한 사람일 거야. 특히 캐더린 부인께서 너그러이 봐주셔서, 그 사람을 다시 우리 집에 보내 주시기만 한다면야." "우리 애들에 대해선 분별이 있어 보이네요. 그리고 만약 애들에게 어떤 보상이라도 해줄 의사가 있다면 그분의 의사를 막고 싶지는 않아요." "어떻게 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보상을 해줄 것인가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겠다는 행위 그 자체는 훌륭하다고 봐요." 제인이 말했다. 엘리자베드는 특히 캐더린 부인에 대한 그의 비상한 경의와 필요하다면 어제고 교구 사람의 세례며 결혼과 나아가 매장 같은 일을 맡아보겠다는 그 친절한 의향에 매우 놀랐다. "괴짜임에 틀림없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분이예요. 문체에도 점잔을 빼고 있구요. 다음의 한정 상속자가 된 데 대해 사과해서 어떻하자는 건지요? 되도록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는 상상도 안되거든요. 상식 있는 사람인가요, 아버지?" "그렇지는 않을 거야. 만나 보면 정반대의 인물이길 바란다. 편지엔 비굴한 점과 점잔을 빼는 점이 뒤섞여 있어 가망이 있기는 하다만, 빨리 만나 봤으면 좋겠구나" "문장으로 볼 땐, 그분의 편지는 결점이 없어 보여요. 평화의 감람나무 가지 같은 대목은 생판 새롭지는 못해도 잘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메어리가 말했다. 캐더린과 리디어에게는 그 편지도 그 편지를 쓴 당사자도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들의 친척이 빨간 웃옷을 입고 오리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며 딴 빛깔의 사람을 맞아들이는 재미를 누린 지는 이미 몇 주일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머니로 말하자면, 콜린즈의 편지에 의해 그녀가 지녔던 악의는 많이 가셨고 남편이나 딸들이 놀랄 만큼 침착성을 가지고 그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콜린즈 씨는 정확히 시간을 지켰고, 가족들이 정중하게 그를 맞아들였다. 베네트 씨는 말수가 적었으나 여인들은 곧 그의 말상대가 되어 버렸다. 콜린즈 씨는 자극을 줄 필요가 없을 뿐더러 짐짓 침묵을 지키려 드는 편도 아니었다. 키가 헌칠하고 둔중하게 생긴 스물 다섯 살 난 청년이었다. 얼핏 보아 엄숙하며 위엄이 있었고 태도는 극히 형식적이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베네트 부인에게 훌륭한 따님들을 두었다고 칭찬을 하고 아름답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으나 이 경우에 있어서는 명성이 사실만 못한다고 말하고, 언젠가는 제각기 훌륭히 성혼되는 것을 보고 말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딸들에 대한 이 은근한 말은 듣는 쪽의 어떤 사람들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으나 베네트 부인은 칭찬하는 말에 대해 화를 낼 줄을 모르는 사람으로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참 친절도 하셔라. 그렇게 돼 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가 못하다면 얼마나 옹색하게 되겠어요. 세상일이란 묘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아! 바로 그 얘기예요. 가엾은 우리 딸애들에게는 가엾은 일이 되고 말겠어요. 그건 당신도 인정하셔야 해요. 그렇다고 댁의 잘못으로 돌리는 건 아녜요. 이런 일은 세상엔 흔히 있는 일이니까 말예요. 재산이 일단 한정 상속돼 버리고 나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선 알 길이 없는 노릇이죠" "아름다운 따님들한테는 고생이 될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릴 것이 많지만 경솔하게 너무 서두르면 안될 것 같아서 조심하는 것뿐이죠. 다만 따님들에게 대해서는 제가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점을 확언하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이 이상 것을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좀더 사귀고 난 후라면 몰라도." 식사를 알려옴으로써 그의 말이 중단되고 말았다. 딸들은 서로 마주보고 미소를 지었다. 콜린즈 씨가 칭찬하는 것은 비단 딸들뿐이 아니었다. 그는 홀, 식당, 가구점들을 돌아보고 칭찬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장차 자기 재산이 된다고 보고 있다는 화나는 상상만 없었던들 그가 마구 칭찬하는 일이 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 차례로 식사도 대단한 칭찬을 받았다. 예쁜 딸 중 누구의 요리 솜씨가 이렇게 훌륭한가를 가르쳐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점에 관해서는 베네트 부인한테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훌륭한 요리사를 두고 있을 만했으며, 딸들에게는 부엌일을 일체 상관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분을 상하게 해준 데 대해 사과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조금도 화나 있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줄곧 사과를 했다. @ff